<나는 다석을 이렇게 본다>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나는 다석을 이렇게 본다 (반양장)
정양모 지음 / 두레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 나는 다석을 잘 모른다.

 ‘다석’ 책에서 봤던가? TV? 인터넷에서도 본 적이 없었나? 잘 모르겠다. 1981년에 돌아가셨으면 어디서든 슬쩍 봤을 텐데.

 이 책을 읽으면서 먼저 떠 오른 것은 김규항씨가 쓴 <예수전>입니다.
 이 책의 서평을 쓰면서 종교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저는 잘 모르면 그냥 주저앉습니다. 목사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데,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정확한 반론의 논리와 증거 없으면 일단 기다립니다. 종교에 대해서는 판단이 쉽지 않는데, 그래서 판단 유보를 합니다. 하지만 저 나름대로의 판단은 있고,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 기독교에 배중률을 적용하지 않습니다. 배중률을 적용하지 않으면 성경의 많은 부분이 이해가 되지만 (예를 들면 예수님은 신이자 인간이다.) 제도권의 기독교에서는 종교 간의 배중률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즉 기독교도 옳고 불교도 옳다.) 종교 중에 배중률을 적용하지 않는 종교가 힌두교인데, 기독교에서 선교가 가장 어려운 종교라고 합니다.

 p54
그런데 다석이 예수, 석가, 공자 모두가 똑같다고 하자 좌중이 웅성거리고 여기저기서 질문을 하려고 하였다.

 이 책을 읽으니 ‘다석’의 박학다식이 눈에 보입니다. 한자를 비롯해서 불교, 유교적 지식이 기독교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은 종교에 관해서는 언어의 유희나 박학다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총체적 통찰력 및 모순 없는 논리(교리)입니다.

 대학교 시절에도 성경공부를 하면 제가 이것저것 질문을 쏟아 냈는데, 순장님으로부터 만족할 만한 답변을 얻지 못했습니다. 군복무 시절에는 목사님과 동거도 했는데 제가 질문을 드려도 답변을 주시지 않더군요.

 (그 당시 다른 사람들은 제가 목사님과 함께 산다고 저를 불쌍?하게 여겼지만 사실은 목사님 불쌍하게 지내셨습니다.)

 예전에 목사님이 우리나라 안에서 보면 잘 모르겠지만 밖에서 보면 한국 기독교는 불교적 요소와 무속적 요소가 많다고 하셨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하지 않나요. 종교라는 것이 문화와 떨어져 생각할 수 있을까요? 사람 자체가 문화적 요소를 배제할 수 없는데.

 전능에 대한 농담이 있는데, 하나님은 전능할 수 없다. 하나님이 들 수 없을 정도의 무거운 돌을 만들라고 하는 것이다. 못 만들면 못 만들어서 전능하지 않고 만들면 들 수 없는 것이 있으므로 전능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인식의 한계를 반영합니다. 전능으로 무게라는 개념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 버리면 됩니다. (지구에는 위아래가 있지만 우주에는 위아래가 없는 것처럼.)

 이 책이 문학이나 인문학 책으로는 매우 흥미로웠지만 철학이나 종교 책으로 다른 보조적인 책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알라딘 서평단 도서입니다.)

* 교회 나가는 친구에게 던졌던 질문 ; 사람과 하나님과의 교제는 불완전한 것인가? 아니면 완전한 것인가?
* 한 핏줄 도서 <예수전> ; 무화과나무의 저주의 의미를 몰랐는데, 이 책에서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갑자기 김규항씨가 ‘다석’을 어느 정도 잘 알았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 ‘착한 고양이’님의 <예수전> 서평에서 발췌 ; 예수가 실재하지 않았다 한들,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존재 기반 안에서 예수(진리)는 살아있는 것이고, 그 해석은 모든 상황에서 다르게 이뤄진다는 아주 당연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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