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찰은 임금이 쓴 편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임금이 직접 쓴 글씨는 어필이라 하고, 임금이 직접 지은 글은 어제라고 한다. 임금이 글을 직접 지어 친필로 썼다면 어제어필이라고 부른다. 임금뿐만 아니라 세자나 세손이 쓴 글씨도 특별한 명칭으로 불렀다. 세자나 세손이 직접 쓴 글씨는 예필, 직접 지은 글은 예제, 직접 쓴 편지는 예차이라고 하여 임금 또는 일반인과 구분했다.-27쪽
정조는 자유로운 필치로 간단하게 적은 글인 소품문을 배격하고 올바른 문체의 창작을 유도하고자 문체반정을 정책적으로 추진했다. 그런데 비밀편지에서는 오히려 자신의 정책노선과 거꾸로 가는 경향을 따랐다. 이러한 표현의 특징은 그 시대 소품문 창작자들이 즐겨 쓰던 문체였고, 정조는 이들의 문체를 비판해왔다. 그럼에도 그의 비밀편지에서는 그가 비판하던 문체가 사용되었다. 누구에게나 공표되는 공식적인 글에서는 자신의 정책에 부합하는 글을, 비공식적인 비밀편지에서는 그가 비판한 소품체의 문장을 구사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정조의 문장에서 발견되는 이중적 태도는 문젯거리이다.-1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