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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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파트리크 쥐스킨트를 좋아하고, 장자크 상뻬도 좋아하건만, 이 책은 나의 만족도에 조금 못 미쳤다.

쥐스킨트의 전작을 떠올리며 좀 더 기발하거나 엉뚱한 이야기를 생각했던 나의 기대치 때문이겠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좀 지루하게 읽혔다.

아이의 입장에선 성장 소설처럼 기술했지만, 그 아이가 자라 좀머씨의 죽음을 목격하는 장면에서 예상되었던 소년의 성장보다, 소년의 충격만이 보여주었고(그게 작가의 의도일 테지만.)

좀머씨의 기이한 행동에 대한 이유나 원인, 그런 것들을 이야기해줄 줄 알았는데, 그의 괴상한 행동의 과정과, 그리고 결말만이 제시되었다.

번역자의 얘기대로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나치 치하였던 시점인 것을 감안하여 뭔가 그가 받았을 충격 등이 제시되었더라면 우리가 좀 더 그를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그는 침묵을 원했고, 끝내 침묵했고, 그리고 사라졌다.  그는 세상이, 사람들이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기를 바랬고, 그가 원한대로 죽음의 순간 최후의 목격자는 그의 사라지는 그 찰나의 시간을 그대로 지켜주었다. 

소년은 충격적이었던 그 장면을 목격한 그 상태로 성장할 것이고, 오래오래 그에게서 들었던 또렷한 한마디를 떠올리며 되새길 것이다.  나를 내버려둬 달라는...

지금처럼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비정한 세상을 사는 우리들조차도, 누군가 나를 돌봐주길 바라고 돌아봐 주길 바라는 게 인지상정인데, 대체 무엇이 그를 그렇게 혼자 있고 싶게 만들었을까.  잠시도 멈출 수 없을 만큼 걷고 또 걷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변변한 대사 한마디 없이 사라져간 좀머씨가 안스럽고 가엾다.  그리고 소년은 더욱 가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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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한 정원
미셸 깽 지음, 이인숙 옮김 / 문학세계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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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동화책처럼 보이는 책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생각이었는데, 이토록 처절한 감동을 줄 줄이야...

작품 속의 '나'는 초등학교 교사이면서도 수시로 어릿광대 분장을 하며 사람들을 웃기고 보수는 받지 않는 아버지의 기행동에 어려서부터 상처가 많았다.  그로 인해 희생된 아버지와의 시간, 마음졸였던 순간순간들.

소년은 아버지가 무언과 큰 잘못을 저질러서, 그 죄를 참회하기 위해 그리 살고 있는 것이라고 짐작했다.  허나, 아버지에게는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처절한 이야기가,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위대함이 깃들어 있음을, 삼촌을 통해서 알게 된다.

아버지와 삼촌은 나치 시절 레지스탕스였다.  그들은 비시 정부 하에서 변압기를 폭파시키는 임무를 맡았는데, 변압기를 폭파시킨 그 날에 붙잡혔다.  범인으로 붙잡힌 것이 아니라 인질로 잡혔던 것.  비시 정부는, 진짜 범인이 잡히지 않을 경우, 인질을 죽여도 좋다는 조항을 통과한 이후였다.  아버지와 삼촌, 그리고 엄하게 붙들려온 두 사람까지 모두 네 사람이 진흙 구덩이에 갇혀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것.

그때, 그 사람을 만났다.  독일군 보초병이었는데, 그는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그들을 웃기더니, 실수하는 척하며 자신의 식사여야 할 샌드위치를 이들에게 제공한다.

독일군은, 자수자가 없으면 한 사람씩 죽이겠다고 엄포하고, 구덩이 안의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다.  원래부터가 범인이었던 아버지와 삼촌은 두 사람이 제비뽑기를 해서 먼저 죽겠다고 나서고 다른 두 사람은 용납할 수 없다고 버틴다.  그때, 그들에게 웃음을 선사한 독일군이 그들을 일깨워준다.  그들 스스로 희생양을 선택한다면 반인륜적 선택을 하도록 한 그들의 논리에 덩달아 춤추는 거라고... 그들이 동정을 베푸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 거라고...

그 사건이 있고 얼마 후 네 사람은 풀려난다.  누군가가 자수했고, 그 사람은 이미 총살당했다는 것...

범인은 아버지와 삼촌인데, 대체 누가 자수를 했고, 누가 그들 대신 죽었단 말인가...

그 속사정이, 바로 이 작품의 핵심 내용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면서 나는 눈가가 뜨거워져서 감정을 참아내느라 혼이 났다.

그 시절에... 이렇게 살았던 사람도 있었구나.  이런 위대한 희생과 사랑의 실천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킨 사람들이 있었구나...

이 작품은 프랑스에서 1999년에 있었던 '모리스 파퐁'의 재판을 배경으로 한다.  비시 정권 하에서 유태인을 죽음의 수용소로 몰아갔던 그는,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고 레지스탕스였던 것처럼 살아 왔다.  그는 평생을 고위 관료로 살면서 자신의 잘못을 부정하며 살아왔다.  그런 그가 법정에 섰다.

당연하게도, 우리의 현실과 맞물려 생각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최근에 친일파 문제에 대한 법령 통과로 재수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우리의 경우 그 기한이 정해져 있다.  밝혀지면 다행이지만, 기한 내에 못 밝히면 그들은 영원히 면죄부를 얻게 된다.

국가와 민족의 반역자로서, 인류에 대한 몰염치로 일관했던 자들이 지금도 떵떵거리며 살고 그 부와 명예, 권세를 자손 대대로 물려주며 사는 기막힌 현실에 속이 쓰리다.  그들이 장악한 부도덕한 언론과 그 언론에 장단 맞추어 춤추는 세뇌된 국민이 가엾고 안타깝다.

작품은, 진실이 보여주는 희망을 처절한 감동으로 포장해서 보여주며, 동시에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게 한다.

짧은 페이지 안에서 이토록 전율이 흐르는 작품을 만나다니, 고맙고 기쁜 일이다.  도서관에서 만났지만, 이 책은 역시 소장용으로 간직해야겠다.  많은 사람이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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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푸른고개 2006-09-03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만큼의 감동을 기대하면서, Thanks to하고 갑니다.

마노아 2006-09-03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헷, 고맙습니다. ^^ 전 아주 좋았거든요. ^^

2006-09-11 1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06-09-11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잘 보셨다니 저도 기뻐요. 뜨거운 책이었죠^^
 
레벌루션 No.3 더 좀비스 시리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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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게 가네시로 카즈키를 알려준 작품이다.  친하게 지내는 언니 집에 집들이를 갔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독서편력이 까다로운 언니가 대뜸 강추!라고 외쳤다.  거의 반강제로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작품에 매료되어 결국 빌려 읽은 책 돌려주고 새로 구입했다.  내가 갖고 있는 책은 주황색 표지인데, 요번에 새로 재출간되면서 바뀐 표지들은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작품 속 '튀는' 학생들을 꼭 저 이미지 같은 것인양 미리 한정하는 것 같아서 더 그렇다.

하여튼, 내용이 바뀌는 것은 아니니까 표지의 비호감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여전히 멋진 책으로 남아 있다.  어쩌면, 그건 향수일지도 모르겠다.  이미 지나쳐왔으니 추억이 되어버렸는데,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아니 내가 겪은 것보다 더 멋졌던 시간이라고 포장하고 싶은 마음이, 학원물인 이 책을 더 사랑하게 만든 것일 지도.

어느 쪽이어도 좋다.  나는 마음껏 이입했고, 맘껏 즐겼으며, 또 맘껏 부러워 했으니...

우리나라도 학력차별이 약한 편은 아니지만, 일본에 견줄 바가 아니라고 많이 들었었다.  일류 고등학교에 둘러싸인 삼류고등학교의 "더좀비스"  이들이 비록 명문고교에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각자 가진 개성으로만 점수를 매긴다면 이미 최고 엘리트 코스가 아닐까 싶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족함과 아직은 어리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또 자신들이 이미 갖고 있는 장점의 미덕과 어리다는 사실이 갖고 있는 역동성도 충분히 활용할 줄 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눈부셨고, 마음이 행복했다.

심지어 늘 실수투성이로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날리게 하는 야마시타조차도 매력쟁이로 보였으니... ^^

작품은 사실 시간 순서대로 구성되어있지 않다.  굳이 시간순서대로 하자면 끝에서부터 읽어야 맞지만, 왜 그렇게 구성했는지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며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게임이다.

중간중간 경구처럼 들어가는 말들도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내어준다.  이 매력적인 "더좀비스"가 오래오래 학교를 졸업하지 않고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그들은 졸업하더라도 이 차가운 사회에서도 여전히 더좀비스답게 살아갈 테니, 그들의 직장생활을 기다리는 게 더 재밌을 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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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6-08-31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에 대한 느낌, 동감!입니다.

마노아 2006-08-31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 디자인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주었지요ㅡ.ㅡ;;;
 
내 생애의 아이들 - 양장본
가브리엘 루아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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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生)'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한다.  그래서일까.  유독 제목이 마음에 들렸고, 빛바랜 느낌의 표지도 많이 끌렸다.   뭐, 느낌표 선정 책이니 믿을 만하다고 여긴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직 교사였던 분이 쓴 글이라 뭔가 얻어갈 게 많다는 생각을 했다.

난 이 책을 읽는 내내 실화라고 여겼는데, 지금 보니까 분류가 "외국 문학"이다.  그 아래 책들을 살펴보아도 "소설"로 분류되어 있다.  헉... 소설이었나?  자전적 소설... 뭐 이런 분류인가?  갑자기 속은 느낌이 팍 들고 있다^^;;;;

하여간, 책은 비교적 담담하게 읽혔다.  이야기가 뒤로 갈수록 아이들도 나이를 먹고 키가 커지고 성장한다.  뿐 아니라 그 아이들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시선도 더 크고 멀게 바라보는 듯 느껴진다.

이야기들 중에서는 성탄절의 아이가 가장 애잔하게 남았다.  선생님께 선물을 해드리고 팠던 그 소박한 마음과 상처입은 얼굴, 눈길을 뚫고 온 그 정성어린 마음이 눈물 겨울 정도였다.  이렇게나 순수한 아이들이라니...

종달새에 비유된 아이의 노래에 사람들이 힘을 얻고 삶의 위기에서 다시 도전하는 모습은 마치 기적처럼 보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적.  그 노래 나도 듣고 싶은 강한 충동이 일었다. ^^ 

그런데, 다 읽고서, 뭔가 허전하고 좀 답답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의 배경은 20세기 초다.  조금 더 보태면 거의 100년 전 이야기다.   요즘의 영악한 아이들을 떠올려 보니... 갑자기 한숨이 나왔다.  물론, 여전히 아이들은 순수하다.  때로 그 순수함을 무기로 너무 영악해져서 탈이지만... 그리고 아이들이 그렇게 변하는 것은 사실 어른들 책임이 큰 거니까 탓할 수는 없지만... 어쩐지 기분에, 뭔가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풍족하지 못했던 그 시절에 갖췄던 그 무엇을, 넘치게 풍요로운 지금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를 만큼 멀리 와버린 느낌.

가만.  아니다.  과정과 방법이 다르긴 해도 내게도 순수한 아이의 모습이 방금 막! 떠올랐다.  한번은 수업 시간에 딴짓하다가 걸린 학생이 있었는데, 그때 잠깐 지적하고 난 금세 잊었다.  헌데 수업 끝나고 학생이 쫓아나왔다.  그리고 수줍어하며 쪽지 한장을 내밀었는데 본인이 그린 그림이었다.  자그마한 종이엔 수업하는 내 모습과, "죄송했어요."라는 짧은 글이 적혀 있었다.   그 그림은 지금도 내 책에 붙여져 있다. ^^

 

아마도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들의 지나칠 정도의 눈치빠른 모습과 영악스러움에 혀를 내두를 때가 많을 것이다.  그래도 그런 순간보다 예뻤던 순간들을 더 많이 기억할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한다.  그렇게 믿어주고, 또 그렇게 이끌어주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도 나중에 "내 생애의 아이들"... 하면서 추억할 아름다운 기억들이 가득찰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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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데라토 칸타빌레 (구) 문지 스펙트럼 19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정희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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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얇은 소책자의 표지에 그려져 있는 지적인 여인. 그리고 조금 이국적인 느낌으로 읽혀지는 제목 “모데라토 칸타빌레”

 

“보통 빠르기로 노래하듯이”라는 의미의 이 책은, 감정의 큰 기복 없이 평이하게 진행되나, 노래하듯 경쾌한 소설은 아니다.  대략 어떠냐 하면, 영화 “The hours"와 같은 느낌이랄까?

 

삶 안에서, 우리의 모든 시간이, 모든 행동이 다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다.  때로 걷잡을 수 없는 충동으로 ‘일탈’을 꿈꾸는 것은 소시민적 삶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잠재되어 있는 성분이 아닐까.  모데라토 칸타빌레의 여주인공 안 데바레드가 그랬다. 

 

결혼 생활 10년 동안 남들 입에 이렇다하게 오르내리지도 않을 만큼 조용히 지내온 그녀는 죽음으로 실현되는 절대적 사랑의 장면으로 여겨지는 살인 사건을 목격한 뒤, 한 사내를 만나기 위해 카페를 찾게 된다.  그렇다고 두 사람 사이에 크나큰 일탈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서로 손을 맞잡는 것조차 환영으로 느껴질 만큼 두 사람은 조심스럽다. 

 

어찌 보면 “동문서답”을 하는 듯한 대화가 줄곧 이어지지만, 그 속에서 이미 그들만의 언어로 속 깊은 울림을 토해내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당신이 죽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남자의 고백에 여자는 “그대로 되었어요.”라고 대답하고 곧 그 자리를 떠난다.  카페의 여주인은 라디오의 볼륨을 높이고 모든 것은 일상의 그 자리로 되돌아간다. 

 

시작부터 끝까지 이렇다 할 상황 묘사도 없고, 행동을 설명하지도 않은 채 조용조용한 어투로 이어지는 대화로 소설은 진행된다.  언뜻 가볍지도 않고, 지나치게 진지하지도 않은 채 작가는 자신만의 독특한 은유적 표현을 찾아낸 것 같다.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는 부유하는 무언가를 잡으려는데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에 뭐 이런 게 다 있지? 하며 당황하였는데, 그 혼란함을 무시한 채 계속 읽어가다 보니까, 딱 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무언가 이미지들이 그려지는 기분이었다. 

 

놀라운 것은, 이 책 어땠어~! 라고 말하기는 어려운데 거부감 없이 별점은 다섯을 주고 만 것.  이유?  나도 모른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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