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한 정원
미셸 깽 지음, 이인숙 옮김 / 문학세계사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동화책처럼 보이는 책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생각이었는데, 이토록 처절한 감동을 줄 줄이야...

작품 속의 '나'는 초등학교 교사이면서도 수시로 어릿광대 분장을 하며 사람들을 웃기고 보수는 받지 않는 아버지의 기행동에 어려서부터 상처가 많았다.  그로 인해 희생된 아버지와의 시간, 마음졸였던 순간순간들.

소년은 아버지가 무언과 큰 잘못을 저질러서, 그 죄를 참회하기 위해 그리 살고 있는 것이라고 짐작했다.  허나, 아버지에게는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처절한 이야기가,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위대함이 깃들어 있음을, 삼촌을 통해서 알게 된다.

아버지와 삼촌은 나치 시절 레지스탕스였다.  그들은 비시 정부 하에서 변압기를 폭파시키는 임무를 맡았는데, 변압기를 폭파시킨 그 날에 붙잡혔다.  범인으로 붙잡힌 것이 아니라 인질로 잡혔던 것.  비시 정부는, 진짜 범인이 잡히지 않을 경우, 인질을 죽여도 좋다는 조항을 통과한 이후였다.  아버지와 삼촌, 그리고 엄하게 붙들려온 두 사람까지 모두 네 사람이 진흙 구덩이에 갇혀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것.

그때, 그 사람을 만났다.  독일군 보초병이었는데, 그는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그들을 웃기더니, 실수하는 척하며 자신의 식사여야 할 샌드위치를 이들에게 제공한다.

독일군은, 자수자가 없으면 한 사람씩 죽이겠다고 엄포하고, 구덩이 안의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다.  원래부터가 범인이었던 아버지와 삼촌은 두 사람이 제비뽑기를 해서 먼저 죽겠다고 나서고 다른 두 사람은 용납할 수 없다고 버틴다.  그때, 그들에게 웃음을 선사한 독일군이 그들을 일깨워준다.  그들 스스로 희생양을 선택한다면 반인륜적 선택을 하도록 한 그들의 논리에 덩달아 춤추는 거라고... 그들이 동정을 베푸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 거라고...

그 사건이 있고 얼마 후 네 사람은 풀려난다.  누군가가 자수했고, 그 사람은 이미 총살당했다는 것...

범인은 아버지와 삼촌인데, 대체 누가 자수를 했고, 누가 그들 대신 죽었단 말인가...

그 속사정이, 바로 이 작품의 핵심 내용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면서 나는 눈가가 뜨거워져서 감정을 참아내느라 혼이 났다.

그 시절에... 이렇게 살았던 사람도 있었구나.  이런 위대한 희생과 사랑의 실천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킨 사람들이 있었구나...

이 작품은 프랑스에서 1999년에 있었던 '모리스 파퐁'의 재판을 배경으로 한다.  비시 정권 하에서 유태인을 죽음의 수용소로 몰아갔던 그는,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고 레지스탕스였던 것처럼 살아 왔다.  그는 평생을 고위 관료로 살면서 자신의 잘못을 부정하며 살아왔다.  그런 그가 법정에 섰다.

당연하게도, 우리의 현실과 맞물려 생각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최근에 친일파 문제에 대한 법령 통과로 재수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우리의 경우 그 기한이 정해져 있다.  밝혀지면 다행이지만, 기한 내에 못 밝히면 그들은 영원히 면죄부를 얻게 된다.

국가와 민족의 반역자로서, 인류에 대한 몰염치로 일관했던 자들이 지금도 떵떵거리며 살고 그 부와 명예, 권세를 자손 대대로 물려주며 사는 기막힌 현실에 속이 쓰리다.  그들이 장악한 부도덕한 언론과 그 언론에 장단 맞추어 춤추는 세뇌된 국민이 가엾고 안타깝다.

작품은, 진실이 보여주는 희망을 처절한 감동으로 포장해서 보여주며, 동시에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게 한다.

짧은 페이지 안에서 이토록 전율이 흐르는 작품을 만나다니, 고맙고 기쁜 일이다.  도서관에서 만났지만, 이 책은 역시 소장용으로 간직해야겠다.  많은 사람이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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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푸른고개 2006-09-03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만큼의 감동을 기대하면서, Thanks to하고 갑니다.

마노아 2006-09-03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헷, 고맙습니다. ^^ 전 아주 좋았거든요. ^^

2006-09-11 1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06-09-11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잘 보셨다니 저도 기뻐요. 뜨거운 책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