괭이부리말 아이들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양장본
김중미 지음, 송진헌 그림 / 창비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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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소재로 한 글들은 참으로 아팠다.  그 대상이 아이일 때는 더욱 아팠다.  가난 구제는 나랏님도 못한다지만, 그들을 그토록 가난하게 살게 만드는 이 세상의 야박함이 싫어질 때가 참으로 많았다.  그것이 단지 허구속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현실을 반영하고 있음을 알기에 더욱 가혹하게 느껴질 때도 많았다.  그것은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보여졌으니...

아마도 현실은, 모든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나진 않을 것이다.  지독히 가난한 집 아이들이 그래도 마음만은 곱고 다부져서 오뚝이 기질을 갖고 억척스럽게 살고 또 거기에 효녀 효자이기까지 한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적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희망'을 이야기해주는 결말을 선호한다.

그것이 환상일지라도, 짧은 위안일 지라도, 현실은 이리 고되고 지독한 것일 뿐이야!라고 적나라하게 말해주는 책보다는 더 사랑한다.  이 책이.. 그러했다.

그랬기에, 느낌표 선정 추천 도서가 됐을 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느낌표에서 추천했던 책 치고 교육적이지 않은 것이 없었고, 또 따스하지 않은 책이 없었다.

성인은 물론 중학생을 대상으로 읽게 한대도 부담이 없는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또 생각해 보면, 좋은 책은 연령에 관계 없이 두루 마음을 움직이고 기쁨과 감동을 주는 것이 기본 덕목인 것처럼 보인다. 

이상을 꿈꾸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내가 바라는 것은... 그 가혹한 가난의 무게를 가까스로 이겨내고 씨익 웃는 고난의 땀보다, 나는 그들이 남들만큼의 평범한 행복과 안일함을 가질 수 있는 약간의 사치를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 땅을 사는 모든 가난한 민중이 지금보다는 덜 가혹하게 살기를 바란다.  모두가 조금씩 더 잘 살 수 있는 세상...

오늘 내가, 좋은 책 한권을 읽고 마음이 부자가 된 것 같은 뿌듯함과 같은 종류의 기쁨이, 그들에게도 일상으로 다가올 수 있기를 바란다. 

으, 유랑가족 봉순이 언니 기타 등등... 가난한 사람들이 나오는 이야기를 당분간 피해 읽으려고 했건만, 오늘 읽은 피아노의 숲도 그렇고, 피해갈 길이 없다.  그게 현실 속 거울이니까...

그래도 '희망'이 있다면 아주 우울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렇게 믿고 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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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순이 언니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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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고향과 같은 곳에서 시작하는 소설의 배경... 혹 작가의 자서전적 이야기인가?  이렇게 혼돈이 가는 설정을 나는 무지 싫어한다.  소설은 소설이야!라고 딱 잘라서 상상이 안 가기 때문이다.  박완서씨의 "그 남자네 집"도 그래서 혼란스러웠는데,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나는 주인공 짱아가 꼭 공지영 작가처럼 느껴졌다.  아무튼... 소설은 소설이고, 그렇지만 또 그만큼 리얼한 게 소설이었으니... 읽으며, 6,70년대 서울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도 좋지만, 그 지독한 가난과, 그 서러운 계층 차이가 빚어내는 수많은 이야기들에 오래오래 가슴을 쓸어야 했다.  그러한 이야기 중심에 봉순이 언니가 있었다.

이름조차도 지극히 소박하고 순진한 봉순이 언니는 짱아네 집에서 식모살이를 한다.  처음엔 더부살이, 그리고 식모살이, 한때 가족처럼 대우받기도 했지만, 그래도 역시 남일 수밖에 없는 봉순이 언니는 엄마에게 도둑 취급을 받고 나서 집을 뛰쳐나갔었다.  그러나 남자에게 속아 버림 받고, 결국 아이를 지우게 되고 다시 늙은 홀아비에게 시집을 가지만 남자는 병들어 있었던 터여서 반년 만에 사망한다.  박복한 봉순이 언니의 신산스런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가슴이 저민 반면, 짱아네 가족의 변천사를 보는 것은 쓴웃음이 나온다.

아버지가 부재해 있을 때와, 아버지가 직장을  갖지 못했을 때의 이들의 가난한 삶은, 그 무렵 다른 이들의 삶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택시를 잡아 타고 동네 한바퀴 돌며 드라이브를 시켜부던 아버지가 택시 기사에게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어조는 사실 배부른 사치에 불과했다.  아버지는 곧 외국인 회사에 취직이 되었고, 기울었던 집은 이제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넉넉한 집으로 변신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들은 사회 안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나름대로 선을 긋고 그들보다 어려운 형편의 이들을 기피한다.  어머니의 마실이 그러했고, 공부하는 언니 오빠들이 그러했다.  그래서 식구일 수도 있었던 봉순이 언니는 결국엔 식모로만 남아야 했던 것이다.  개구리 올챙이 적 모른다고, 날 때부터 귀부인인척 하며 지낸 어머니는 이제 사람 사이의 인정과 도리보다 물질적인 것에 더 집중하며 살게 된다.  숨겨두었던 반지를 찾아 봉순이 언니의 억울함을 알아차렸을 때에도 어머니는 남탓을 하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리가 사람을 변하게 만든다고 하더니, 더 이상 가난하지 않은 그들은 더 이상 사람 사이의 인정과 도리를 따지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그 모습들을 모두 지켜보며 커온 짱아는, 학생운동도 하지만 자신의 모습이 가진 자의 오만이라는 이중성을 일찍이 깨닫는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깨달음 중에서 가장 소름 끼친 장면이 따로 있었으니, 바로 지하철 씬에서의 독백이다.

책의 소개에도 인용되었는데, 옮기면 이렇다.

그런데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다가 문득 돌아봤을 때 놀랍게도 그녀가 날 바라보고 있었어. 설마 하는 눈빛으로... 희미한 확신과 놀라움과 언뜻 스치는 그토록 반가움... 나는 돌아보지 않았어. 어서 전철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가 내려섰지. 엄마... 너무 많은 세월이 지났고, 그녀의 얼굴이 가물거려서... 그래, 그래서야, 그거지. 이제 와서 뭘 어쩌겠어. 30년이나 지났잖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말이야... 그런데 그런데 날 더욱 뒤돌아볼 수 없게 만들었던 건, 그건 그 눈빛에서 아직도 버리지 않은 희망... 같은 게... 희망이라니, 끔찍하게... 그 눈빛에서... 비바람 치던 날, 이상한 생각에 내가 문을 열었을 때 두 발을 모으고 애타게 날 바라보던 메리.

'희망'이라는 말이 이렇게 인용이 되면, 그토록 무시무시한 단어가 될 수 있다는게... 작 중 주인공이 느낀 그 끔찍한 희망이라는 것을 내가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더 공포를 느꼈다.

가끔은, 그런 생각들을 했었다. '희망'이라는 말이 마술인 것이 아니라, '세뇌'인 것은 아닌지... 어차피 불가능하고, 어차피 정해진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데, '희망'이라는 말로 포장하여 닥쳐올 불안과 공포로부터 잠시 도망치고 회피하고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결국엔 희망이 절망이 될 것이면서 나를 속이고, 남을 속이고, 그렇게 아무 것도 아닌 척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들이 무서워서, 다시금 '희망'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귀한 것이라고 말해보지만, 그 다짐만으로 올곧이 위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 스스로가 이미 알고 있다.

그렇다고 희망조차 없이 어찌 살 수 있느냐고 하면, 그 또한 맞다고 나는 말할 테지... 봉순이 언니가, 그렇게라도 살아야 했던 것처럼...

재밌게, 잘 읽었다.  유랑가족을 읽을 때에 느껴진 밑바닥 인생에 대한 서러운 공감은 뚜렷하지 않았지만, 그녀만의 색깔로, 그녀만의 스타일로 나름의 고민과 문제의식을 잘 보여준 듯 하다.  이렇게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는 늘  후유증이 남는다. 다음엔 좀 밝은 이야기를 읽어야겠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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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와타야 리사 지음, 정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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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작가 와타야 리사는 1984년생으로 역대 최연소 수상자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칭찬도 하도 많이 들려와서, 호기심에 읽게 되었다.  그리고... 실망했다.  기대가 과했던 것일까.  대체 난 뭘 기대했던 것일까?

성장 소설이라고 나와 있지만, 글쎄... 나는 꼭 요시모토 바나나의 글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글이 비슷하다는 게 아니라, 남들은 모두 재밌다고, 혹은 감동적이라고 칭찬을 많이 하는데, 나로서는 도저히 왜 그렇게 열광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

나의 취향이 그렇게 마이너틱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데, 몇몇 작가들은 정말 맞지 않을 때가 있다. 요시모토 때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도 그랬는데, 나는 지극히 건조한, 그리고 지루하게 읽혔다.

그냥, 청소년이 주인공으로 나올 뿐, 그들의 소소한 일상에 대해서 조금 보여줄 뿐, 나는 여기서 내가 무엇을 취해야 할 지 찾을 수가 없었다. 

제목처럼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이라는 게 그리 대단하게 나온 것도 아니고, 그냥 어느 대목의 한 씬에 불과할 뿐이었다.  '최연소'라는 타이틀에, 그리고 독특한 제목에 잔뜩 속은 것 같아 나는 읽으면서도 심통이 조금 났다.

그래서 나로서는 별 감흥 없을 때 주는 별점, 세개...

청소년들은 다르게 읽을까?  내가 그 시절을 지난 지 오래여서... 까마득하게 잊어서일까?  흠... 알 수 없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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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아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5
호메로스 지음, 유영 옮김 / 범우사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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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유명한 책이어서 익히 알고 있다고 여기고 읽었다 착각하고 넘어가기 쉬운 책이었다.

어느날 문득, 만화나 영화로, 그리고 이야기로만 접하고 실제로 책으로는 읽지 않았다는 것을 무심코 깨달았다.  그래서, 읽게 되었다. ^^

사실, 나는 오디세이아를 떠올리면 "율리시스" 만화가 떠오른다.  30세기 지구에서 우주를 떠돌며 방랑하는 율리시스 선장의 이야기, 그 애니메이션의 주제곡이 나의 향수를 자극했다.

깊은바다 넓은땅 활기찬 지구 우리들은 지구인 우주로 나가자

대선장 율리시스 우리들의 율리시스 천하무적 비행선 우리들에 오딧세이

재주있고 귀여운 꼬마로봇 노노야 지구를 지켜라 우주를 지켜라

나와라 우주의 신 율리시스가 왔다 끝없는 우주에서 힘과 지혜 겨루자

율리시스 율리시스 율리시스 평화의 방패 율리시스 율리시스 율리시스 우주의 선장


노래에도 나오지만 그는 신과 겨뤄 끝을 본 사나이였다.  그가 신의 노여움을 살 때는 교만한 마음에 화를 스스로 자초했다고 볼 수 있지만, 또 끝없이 그를 견제하고 시험하고 약올리는 신을 향해 결코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그의 정신은 강인하고도 아름다워 보였다.

물론, 이 책의 내용을 그저 감상적으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적, 역사적 배경과 맞물려서 본다면 그 느낌과 의미는 또 엄청 달라질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어쩐지 그저 감상적으로 접근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조금 무책임한 기분은 든다^^;;;)

이 책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있는데, 컴퓨터 그래픽은 솔직히 조금 조잡한 편이었다.  그럼에도 역동적이었고 스펙터클한 분위기로 꽤 재밌게 본 기억이 난다. (그때가 아마 서양사 관련 수업 중이었을 것이다^^;;)

내가 짐작했던 것보다 그가 다스리는 왕국이 아주 작았던 것, 그래서 적이 놀랐던 기억도 난다.  오디세우스 하면 활이 떠오른다.  그의 아내의 지혜로운 기다림도 같이 떠오르고, 최근에 주몽에서 '다물 활'의 시위를 거는 장면이 나왔는데, 시청자들이 니가 오디세우스냐? 하는 반응도 많이 보았다^^ㅎㅎㅎ 뭐, 활을 부러뜨려버린 주몽은 오디세우스가 발 벗고 뛰어와야 할 상대같지만..;;;;

이 책의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우리가 '트로이' 영화로도 잘 알고 있는 일리아드에도 나온다.  트로이 목마의 아이디어를 낸 사람. 역시 잔머리의 대가라니까..^^

일리아드도, 익히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보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다.  오딧세이아를 주문하면서 같이 주문했는데, 일리아드도 어여 읽어야겠다.

수천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인간의 감정은 너무도 비슷함에 놀라게 된다.  그 옛날의 호메로스가 보았던 인간 군상도, 21세기를 살고 있는 내가 보는 인간 군상과 몹시 닮아 있다.  사람 사는 모습들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진다.  묘한 감동도 같이 전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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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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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리뷰를 쓰려고 하니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영상이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두일이가 맛있게 먹던 치킨이 비둘기 요리라는 것을 알고서 한강변을 달리며 외치는 장면이었다.  "비둘기야, 비둘기야, 평화의 상징 비둘기야...." 라며 한탄하는 장면이지만, 시트콤에서 그 장면은 엄청 코믹했었다.

깊이에의 강요를 워낙 재밌게 읽어서 비슷한 두께의 이 책도 비슷한 분위기나 느낌을 받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책을 펼쳐보니 분위기가 영 딴판이다.  한 마디로, 황당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황당한 이야기를 작가는 썼을까 생각해 보게 한다.

은행 경비원 조나단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그러나 파란만장한 자신의 인생을 그 자신은 그닥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30년 동안 한 직장에서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결혼도 않고 자식도 없이 그렇게 살아온 자신이지만 불만도 없고, 그렇다고 크게 서러울 일도 없다.  그는 그냥 자신의 그 똑같은 패턴의 하루하루를 자족(?)하며, 혹은 자족한다고 믿고 살고 있다.  그런 그의 일상에 파란을 몰고 올 존재가 등장하니, 바로 비둘기 한마리다.

어느날 아침, 자신의 집 앞 복도에 비둘기가 똥을 싼 채 어슬렁거리고 있다.  조나단은 충격을 받았다.  비둘기가 너무 무서운 것이다.  무섭고 불결하고, 곁에 스치기만 해도 하늘이 두조각날 것처럼 큰일이 발생한 것처럼 보인다.  그는 화장실 가기도 포기하고 방안 세면대에서 볼 일을 해결한다.  한여름에 한겨울 복장을 한 채 도망치듯이 집을 빠져나온다.  은행에서는 실수 연발이다.  모든 것이 불안하고 또 불안하다.  저녁이 되어서는 집으로 가지 못한다.  가장 싼 호텔을 찾아가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 지 계산한다.  그렇게 비둘기 한 마리로 야기된 그의 일상은 폭풍이라도 만난듯 쑥대밭이 되어버리지만, 끝내 인생 마칠 결심까지 할 정도로 흔들린 조나단이지만, 어느 날 그 같은 폭풍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사악 사라진다.  돌아간 집에 비둘기는 없었고, 녀석의 영역 표시도 사라졌다.  모든 것은 그대로였다.

나는, 비둘기 한마리로 야기된 이 황당한 이야기도 놀랍지만, 이렇게 작은 에피소드에서 크게 확장되는 이야기를 구성해 낸 파트리크의 감각도 참으로 놀라웠다.   얼핏 느끼기에 조나단은 너무 한심하다. 헌데 책을 읽어보면 그의 공포와 두려움이 내게도 그대로 전달되어, 마치 나라도 그 집에 못 돌아갈 것만 같은 착각이 인다.

이 비둘기로 인해, 조나단은 자신의 인생에 어떤 변화를 맞게 될까.  지극히 단조롭고 똑같았던 일상의 특이한 소동으로 받아들일까.  자신의 인생도 좀 더 동적으로 살아야겠다고 결심할까.  아니면 다시는 비둘기의 침입을 받지 못하게 만반의 준비를 할까. ^^;;;

어찌 보면, 그런 일들이 생기는 것도 같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큰일이고 엄청난 일이, 남이 보기에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일 수도 있는 것. 

또, 평화의 상징이라 일컬어지는 비둘기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추하고 무섭고 불길한 존재로 보일 수도 있다는 야유로도 들리고,

또 한편으로는, 만물의 영장인 척 하는 인간도 한낱 미물로 취급하는 동물에게서 이만큼의 위협을 받을 수 있는 것... 비둘기는 조나단의 공포는 아랑곳않은 채 유유히 제 갈 길을 가는데, 혼자 무한 삽질을 한 조나단0인간에 대한 또 다른 야유...

그러나, 사실 이도 저도 아니라, 그저 작은 에피소드 하나로 큰 이야기를 재밌게, 엽기적으로 꾸려간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장난질일 수도.

어느 쪽이든, 그저 읽고 즐겼으면 사실 아무 이상 없는 것...(ㅡㅡ;;;)

그래도, 깊이에의 강요보다는 창의력에서 조금 떨어지므로 별 넷.  게다가 읽는 동안 같이 찝찝했으니 역시 별 넷.(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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