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2년 전부터 벼르던 여행 계획이 있었는데, 그 여행 계획을 성사시킬 마지막 타이밍이 이번 방학 뿐이다.
이번 방학이 지나면 날 불러줄 친구가 한국으로 돌아와야 하니까.
비행기 표를 처음 알아봤을 때는 가격도 예상했던 만큼이었고 좌석도 여유가 있었다. 보충수업 일정이 확정되지 않아서 미리 예약을 못하고 뒤늦게 좌석을 알아보니 홀라당 매진. 오마낫! 급 당황하여 2시간 동안 검색한 끝에 터키 항공사가 아닌 러시아 항공사로 예매. 날짜도 예상을 비켜가고 금액도 더 오르고, 무엇보다도 비행 시간이 무지무지 늘어났다. 이집트로 가기 위해서 모스크바를 경유해야 하니까.
갈 때는 그래도 중간 경유 시간이 그다지 길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올 때가 문제였다. 금요일 밤에 출발해서 토요일 새벽 5시에 모스크바에 날 떨궈놓고, 무려 15시간이 지나고 오후 8시에 인천으로 출발, 일요일 아침에 한국에 도착한다.

15시간. 너무 길다. 기왕에 가는 거 공항 밖으로 잠깐 나가서 붉은 광장이라도 밟아보고 오면 좋겠구나... 바실리 성당이라도 어케 구경을... 푸시킨 미술관은 힘들겠지??? 뭐 이러면서 경유비자를 알아봤다. 홈페이지에는 24시간 내 출발은 무료라고 되어 있어서 얼라 무룐가?? 하고 좋아했다. 주한 러시아 대사관에 전화를 했는데 전화받는 사람이 러시아 말로 ##$%^&**^$##$% 라고 해서, 어버버 했더니, 우리 말로 다른 번호를 불러준다. 받아 적고 다시 거니 한국 사람이 받는다. 휴우....
근데, 경유비자 무료 없단다. 2주 전 신청시 87,000원이던가? 그렇게 내야 한다고.
지식인에 물어봤더니 15시간 동안 푸시킨 미술관은 택도 없고, 가장 가까운 모스크바 시내까지 2시간 동안 택시 타고 나와야 하는데 택시비 약 10만원은 예상해야 한다고 한다. 게다가 지금 현지 기온 -25도라고....
후덜덜... 그래서, 그냥 공항에 짱 박혀 있기로 결심했다. 돈도 없고, 말도 안 통하는 거기서 미아되면 어쩌라고...ㅜ.ㅜ 게다가 밖에 눈 내리는 걸 보아하니 러시아에 겨울은 무리다. 설마, 공항 안은 따뜻하겠지??? (이것도 막 불안...;;;)
여기까지가, 벼르고 벼른 나의 여행 계획. 비행기 표 때문에 일정이 밀려서 여행 날짜가 줄어들었고, 친구 학교 일정이 겹쳐서 중간에 카이로로 몇 차례 돌아와야 하고, 왕복 45시간이라는 어마마한 숫자가 나를 압박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내 평생 이집트를 가본다는 데에 모든 장애물은 다 통과!!!를 외치려고 했는데, 급브레이크가 하나 걸렸다.
바로 지난 주에 신청한 실업급여.
지금 일하고 있는 곳과 그 전에 일한 학교를 더하면 실업급여 신청 자격 180일에서 이틀이 모자라는 거다. 두 학교 모두 담당 정교사 샘이 놀토를 다 가져가서 계약을 반토막 내놓아서 날짜가 모자란다. 서럽지만 별 수 있나. 그 전에 일했던 학교로 거슬러 올라가서 1년 반 전에 근무했던 학교 기록까지 가져와서 실업급여를 신청하려고 보니, 오마이,갓! '고용보험'을 내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1년 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당시 선생님이 한 달밖에 일 안했는데 공제되는 게 너무 많을 것 같아서 고용보험 등등 신고 안했다고 하신 거다. 그때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고 나한테 좋은 거라고 해서 그러려니 했다. 그게 이제 와서 나의 발목을 잡는구나.
일단 고용보험을 지금 다시 낼 수는 있다. 다만 과태료가 붙는다. 1만원이 안 되는 고용보험에 과태료가 현재 5만원 가량 붙어 있다.
더 큰 문제는 건강보험료와 국민연금인데, 내가 당시 지역보험료를 냈을 테니 이중으로 내는 건 둘째 치고 이 두 녀석은 직장에서 절반을 부담해야 하는 것이므로 교육청에서 돈을 내야 하는데 이미 1년 반이 지나 있다는 거다.
해당 학교 담당자 분과 전화 통화를 했는데 아직 확답을 못 받았다. 서로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케이스.
나로서는 당장 뱉어내야 할 돈이 아깝긴 하지만 어쨌든 실업급여를 받아야 하므로 감수할 생각이 있지만 그쪽은 그쪽대로 또 초난감.
그분이야 날 배려해준 거지만 결과적으로는 서로에게 독이 되었다. 나 역시 그런 사례가 처음이고 보통 세금은 월급에서 알아서 정산되고 나오는 거라 이런 문제나 파장을 예상은커녕 그때 그 조치가 뭘 의미하는지도 못 알아차렸다.
일단 내일은 되어봐야 진행 사항을 알 것 같은데, 속상하다.
일을 정석대로 하지 못한 대가야 달게 받을 수 있지만, 이번 학교 저번 학교 계약 날짜 토막난 건 무지무지 화가 난다. 내가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지만 아무튼!
실업급여를 받아도 부담 백만 배 안고서 떠나는 여행인데, 만약 실업급여가 아작나 버리면 빚을 떠안고 가야 하는 여행이 되어버린다. 이미 비행기표는 현금 결제해 버렸으므로 취소할 수도 없고(수수료 300불), 그러고 싶지도 않다.
만약 비행기표 결제 전에 실업급여가 불투명하다고 판단되었으면 언감생신 여행은 꿈도 못 꿨을 것 같다.
친구는 지금 내가 싸들고 떠안고 갈 한국 식재료와 옷가지와 기타 등등 한국 물건들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
창밖엔 눈이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는데 좀 뜸해졌고, 내 마음엔 더 큰 눈비가 오는구나. 흑....
신년하례식 끝나고 교내 식당에서 떡국을 먹었는데 따뜻한 술을 한 잔씩 돌렸다. 처음 본다. 이게 정종이구나. 근데 사케가 같은 말인가?
암튼, 첨 먹어봤는데 독하다. 소주보다 독하다 느꼈는데 그럴 리 없다고 한다. 그런가 보다. 아, 난 위가 아니라 속이 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