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할데 헤르만 헤세 선집 8
헤르만 헤세 지음, 윤순식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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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도 꽤 오랜만인데 역시나 재미있다. 아직까지는 독일 작가 중에선 헤세가 가장 좋다. 자기 고뇌에만 집중하는 타 작가들에 비해 이 분은 이야기에 먼저 집중하기 때문이다. 다루는 주제도 자아나 정체성에 대한 거라서 막 어렵지도 않고, 남녀노소 공감할 만한 내용이라 호불호도 거의 없다. 이렇게 작가로서의 헤세는 참으로 훌륭하고 위대한데, 인간으로서의 헤세는 과연 어떠할까. <로스할데>를 읽고나서 헤세가 마냥 옥구슬 감성러는 아니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오랫동안 사이가 틀어져 버린 화가 부부. 남편은 로스할데 저택 별채에서, 아내는 안채에서 각자 별거하고 있다. 아들이 둘인데, 큰 애는 오래전부터 엄마 편에 가있다. 작은 애가 유일한 가족의 연결고리인 상황. 이에 화가의 절친은 자기와 인도에 가서 살자고 제안한다. 고민 끝에 인도행을 결심한 순간, 그동안의 고통과 외로움이 전부 사라지는 게 아닌가. 그러나 기쁨도 잠시, 작은 애가 뇌막염으로 숨지고 화가의 생명도 반 토막이 난다.


늘 그렇듯 이 작품도 자전 소설이다. <로스할데>는 헤세의 가장 안 알려진 작품 중 하나란다. 기존 방식처럼 상반된 두 인물의 이야기도 아니고, 해설을 읽어야만 겨우 이해할 주제였기 때문이지 싶다. 여튼 지루한 초반만 잘 이겨내면 꽤 재미있는 이 작품은 ‘예술가한테 가족이 꼭 필요한가‘ 하는 고찰을 던지고 있다. 본업에 진심인 화가는 가족들과 어울릴 시간이 없다. 아내와는 한참 전에 멀어졌고 큰 애도 아빠를 싫어한다. 종종 찾아와주는 작은 애랑도 놀아주질 못한다. 말로는 작은 애가 삶의 전부라지만 딱히 애한테서 기쁨을 얻는 것 같지도 않다. 이렇게 이도 저도 아닌 가정생활을 하고 있으니 친구가 보기에 얼마나 답답했겠나. 이 로스할데에 메여있다가는 진정한 예술가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해, 작은 애를 아내에게 맡기고 떠나려는 주인공. 어떻게 보면 참 무책임한 냉혈한이지만 사실 예술가의 기질이란 게 지밖에 모르는 거라서 막 비난할 수만도 없는 일이다.


아빠를 싫어하는 큰 애는 피아노를 전공 중이다. 작중에는 그런 묘사가 없지만, 아들은 아빠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중이었지 싶다. 막연하게 예술에 뛰어든 자신과 달리 아빠는 저 나이에도 열정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실력과 명성까지 갖춘 아빠는 선망의 대상이자 목표였을 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본인 예술 하기에 바쁜 아빠는 아들의 일에 별 관심이 없고, 오히려 철부지 동생만 이뻐하고 있으니 많이 서운했을 터. 한 번은 아빠의 예술 철학에 대해 들으며 내심 놀라는 장면이 나온다. 아마도 자신을 예술가라 생각하고 꺼낸 얘기였기 때문이리라. 이렇게 같은 예술가로써 지도와 조언을 해줬었다면, 같은 예술가로써 대우하고 인정해 줬었다면 부자 사이가 틀어지진 않았을 텐데. 남자들이란.


작은 애가 점점 아파하다가 끝내 숨을 거두는 것은, 점점 시들해지다 끝나버린 헤세의 결혼생활을 표상하고 있다. 아홉 살 연상의 신경질적인 아내를 못 이기고 인도로 도피했다는 헤세. 근데 한편으로는 헤세의 부족한 현실감각 때문에 아내가 화딱지 났던 걸 수도 있겠다. 헤세가 워낙 이상주의자라서 말이지. 여하튼 집안에서 자그마한 희망의 끈이 돼주었던 작은 애처럼, 헤세도 어떤 가느다란 끈을 붙들고 있었던 듯하다. 그런데 그 희망마저 끊어지자 슬픔과는 별개로 놀랍도록 차분해지고 평안해지는 화가였다. 가족한테 받았던 방황과 소외에 드디어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작은 애를 간병하며 아내와도 사이가 좋아져서 혹시나 했는데, 화가는 예정대로 로스할데를 떠나기로 한다. 슬퍼하는 아내가 그를 강경하게 막지 못한 것은, 실패한 결혼생활의 원인이 본인에게 있음을 남편이 인지해서였다. 나는 이 장면 때문에 헤세의 아내가 공격수였던 걸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하지만 유리 멘탈 헤세도 언제까지나 수비수는 아니었다. 반격할 틈을 찾자마자 거침없이 달려나가는 걸 보면 말이다.


확실히 이 작품은 헤세의 스타일 같지가 않다. 일단 고뇌의 결과가 현실도피로 끝난 것도 그렇고, 묵직한 주제에 비해 이야기는 다소 싱거웠고. 게다가 그 주제들도 좀 모호하게 다루고 있다. 또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가, 예술가와 기혼자가 아니면 썩 공감되지 않을 장면들로 가득했기에. 아무튼 헤세 작품은 늘 대만족이다. 올해는 헤세의 전작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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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5-19 12: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최근에 <수레바퀴 아래서>를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헤세를 다 읽어볼까 하던 참인데 마침 물감 님이 헤세를 똭!! 이 책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물감 2023-05-19 12:23   좋아요 2 | URL
<수레바퀴 아래서> 넘나 재밌죠! 그 책 리뷰에 영혼을 갈아넣었던 기억이 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헤세 짱짱맨! 이 책도 재밌어요, 읽어보세요 ㅋㅋㅋㅋ 그다음은 어떤 거 읽으실 건가요? 다락방 님 따라가야지 ㅋㅋㅋㅋ

새파랑 2023-05-19 13: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름 헤세 책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은 처음 봅니다 ㅎㅎ 헤세의 아내 이야기는 잘 모르지만, 예민한 헤세랑 사는게 쉽지는 않았을거 같아요 ㅋㅋ

역시 독일은 헤세~!! 전작을 응원합니다~!!

물감 2023-05-19 14:20   좋아요 2 | URL
새파랑 님도 모를 정도면 진짜 안 알려진 작품이 맞나봐요ㅋㅋ 저도 예민한 사람 만나서 고생 꽤나 해본 지라 할말은 많지만... 다음엔 나르치스 골드문트 읽을 예정입니다ㅋㅋ

잠자냥 2023-05-19 15: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잉 <로스할데>는 재미 없을 거 같아서 안 읽었는데 재밌어 보이네요.......
근데 저도 예술가도 기혼자도 아니라서...ㅋㅋㅋ 으흠... 그래도 일단 장바구니에 주섬주섬..

물감 2023-05-19 16:00   좋아요 2 | URL
이래서 마케팅이 중요한 거군요ㅋㅋㅋ근데 꼭 예술가, 기혼자가 아녀도 대강 알아먹을 내용이라 안 어려워요ㅋㅋㅋ자냥 님의 리뷰 기다리겠습니다😀

그레이스 2023-05-19 16: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채와 별채^^;; 한 집에서 별거가 가능한 구조네요 ㅎㅎ
저도 <로스할데> 이제야 알게 되네요.
중요하게 다루지 않아서 그냥 지나친듯요^^

물감 2023-05-19 16:41   좋아요 2 | URL
보니까 별채를 더 지은 거더라고요ㅋㅋ이 책 읽을만 합니다요. 이렇게 된 김에 영업이나 해야겠어요ㅋㅋㅋ

coolcat329 2023-05-19 2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헤세 책 중에 이런 책도 있었군요.
헤세가 좋은 남편은 아니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저도 헤세 책 조만간 읽어야 겠습니다.

물감 2023-05-19 22:36   좋아요 1 | URL
알라딘 고인물들이 다 모르는 작품이라니. 참 놀랍네요. 여하간 헤세가 좋은 남편감은 아니겠구나 싶었어요. 본인도 그걸 알았을 법한데 어째서 결혼을 했는지가 의문이에요. 여튼 쿨캣 님도 헤세 문학 읽기에 동참하시는 걸로!

모나리자 2023-05-20 2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헤세 좋아하는데 이 작품은 아직입니다.헤세의 작품은 늘 감동과 생각거리를 안겨주지요.
헤세의 전작 읽기 응원합니다. 물감님.^^

물감 2023-05-21 04:36   좋아요 1 | URL
갈 길이 멀지만 부지런히 달려보겠습니다. 일단 대여한 책들 먼저 해치우고나서ㅎㅎㅎ

책읽는나무 2023-05-20 2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헤세 좋아하는데 이 책 제목은 처음이네요?^^
헤세 넘 좋아해서 작년엔 헤세가 그린 풍경 수채화 달력까지 사서 걸어놓고 헤세~헤세~ 했었는데, 책은 몇 권 안 읽었네요ㅋㅋㅋ

물감 2023-05-21 04:38   좋아요 1 | URL
헤세는 워낙 친숙해서 그런지 안 읽고도 읽은듯, 안 읽었어도 죄책감 같은 거 없는 작가 같아요ㅋㅋ 조만간 책나무님의 리뷰가 올라오길 기다립니다🙂

꼬마요정 2023-05-21 00: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헤세 좋아하는데 개인적인 삶이 그닥 훌륭하지 못해서 자꾸 책 읽는 데 방해가 되더라구요. 예를 들면 <크눌프>에서 가정을 두고 방황하는 작가가 생각난다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고 감동적인 소설이 많아서 참 그렇습니다. <로스할데>는 처음 들어봅니다. 물감 님 덕에 또 주섬주섬 장바구니로 책을… 기대별적립금은 늘 쓰일 데가 있네요 ㅎㅎㅎ

물감 2023-05-21 04:46   좋아요 2 | URL
영업 성공했군요ㅎㅎㅎ 유명작만큼 재밌진 않지만 이름값은 합니다. 그래도 헤세가 본인을 파악할 깜냥은 된 인간이구나 싶어요. 안그러고서야 이런 작품을 쓸 수가... 신기하게도 누구나 공감하고 고민해볼 만한 고찰이어서 막 저격하지도 못하겠고 암튼 그렇습니다ㅋㅋ 같이 읽어요😀
 
사랑을 배운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6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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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진짜 오랜만에 읽는 애거사 크리스티. 추리소설로 유명한 작간데 정작 추리쪽은 하나도 안 읽고 요 시리즈만 읽었더랬다. 필명인 ‘메리 웨스트매콧‘으로 출간한 여섯 권의 작품은 여성의 심리를 중심으로 한 서사이다. 다 좋았던 건 아니지만 대부분 평타 이상이었다. 지금과 맞지 않는 시대상에 불편해할 독자도 많겠으나 감안하고 본다면 썩 괜찮은 즐길 거리가 되리라고 확신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장르소설의 기법을 써서 문장이 간결하고 전개도 매우 빠르다. 게다가 인물의 고뇌와 독자의 생각이 머물지 못하게 연속해서 단타를 날린다. 이렇게 작품성과 대중성을 다 갖춘 작가는 의외로 찾아보기 힘들다. 과연 롱런하는 작가들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번 작품도 꽤나 평범한 내용이다. 오빠만 이뻐하는 집에서 자란 여동생 로라. 오빠가 소아마비로 죽고 이제 사랑을 독차지하나 했더니 금세 여동생이 생겨버린다. 이후 불난 집에서 동생을 구하고부터 로라의 시기는 사랑의 감정으로 탈바꿈한다. 부모님마저 사고로 죽자, 로라는 오직 동생의 뒷바라지에 생을 바친다. 세월이 지나 갓 성인이 된 동생에게 청혼한 남정네가 등장하는데, 로라의 눈엔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들의 불장난이었다. 그리고 우려했던 대로 이들의 결혼생활은 얼마 안 가 밑바닥을 찍는다. 로라는 동생에 대한 사랑이 어떤 집착과 소유욕으로 느껴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자기를 아주 많이 사랑하지는 말아달라던 동생의 말이 생각나서.


어려서부터 눈치 만렙이었던 로라. 사랑받을 존재가 될 수 없다면 차라리 사랑을 주는 쪽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무한정 퍼부었던 사랑은, 동생의 의사와 자유를 억누른 결과로 나타났다. 로라의 ‘주는 사랑‘이 뭐가 잘못된 거냐면, 상처받는 게 싫어 사랑받기를 거부하던 데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이 일방적인 희생과 헌신은, 인간으로서 다양한 감정을 누릴 동생의 권리를 박탈하였다. 뿐만 아니라 로라는 자신을 전혀 챙기지 않아, 사랑받을 권리를 박탈하며 살고 있었다. 아아아. 여성호르몬 과다인 나님은 로라가 어떤 심정인지 아주 잘 알겠더라.


이 사랑의 공급이 중단되고 나서야 두 자매는 서로에게 미안함을 깨닫는다. 지금 상태가 베스트란 걸 알기 때문에 서서히 왕래는 끊어지고 각자의 길을 간다. 동생은 남편의 노답 플레이에 넉다운 되고도 헤어지지 않고 삶을 감당한다. 남편에게 무슨 기대가 있길래 그토록 미련을 못 버리는 걸까. 여기에는 언니의 ‘주는 사랑‘을 동생도 실천하게 되었기 때문이라 본다. 로라는 부족하고 철없는 자신을 조건 없이 사랑해 주었다. 받는 사랑에 익숙했던 자신은 이제 사랑을 줌으로써 언니의 사랑을 배워간다.


사랑과 사람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이 많은 작품이다. 그때마다 애거사는 똑같은 답변을 내린다.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고. 이랬더라면 나았을 텐데,라는 생각은 소용이 없고 끝도 없다. 로라도 동생의 결혼을 막지 못한 데에 후회를 하지만, 모든 결과는 개인의 몫이며 누구도 간섭해선 안 될 책임임을 깨닫는다. 더불어 본인이 사실로부터 도망치는 생애를 살아왔다는 것도. 마침내 로라는 자신을 사랑한다는 이를 받아들이면서 사랑받는 법을 배운다. 이 작품의 원제는 <짐>이다. 사랑이 짐으로 느껴진다면 그 사랑이 일방통행 중이기 때문일 터. 꽃이 예쁘다 해서 계속 물을 주면 어떻게 될까. 이렇듯 표현해야 할 때와 절제해야 할 때를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쓰다 보니 글이 센티해졌는데 사실 지금 기분이 몹시 안 좋다. 어제 더워서 밤잠을 설쳤고, 오늘 낮 기온도 30도를 넘겨가지고 쪄죽는 줄 알았거든. 뭔 5월부터 월하 준비를 해야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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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5-19 23: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잘 읽어 내려 왔는데, 기분이 안 좋다고 하시고 쪄죽는 줄 알았다고 하셔서 웃음 납니다. 하하~~
저 또한 그저께 외출했다가 너무 더워서 당황스럽고 불편했어요. 무슨 5월 날씨가 그럴 수 있는지...
에어컨 없는 곳은 들어갈 수가 없겠더라고요. 아직 집엔 선풍기도 안 꺼냈는데...

사랑 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도 없을 듯. 대중 가요 가사만 해도 거의 사랑 타령이잖아요.
사람마다 각기 다른 사랑이 있을 뿐이라는, 어디서 읽은 대목이 생각납니다. 요점은 사랑은 어떻게 해야 된다, 하는 게 없다는 것. 경우에 따라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의 연애가 있다는 것 같았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사랑에도 감정의 절제가 필요한 것 같아요.

물감 2023-05-20 04:40   좋아요 1 | URL
날씨 정말 너무하다 싶은데 또 어떤 나라는 40도를 넘었다고 하니 참 할 말이 없어지네요ㅎㅎ
사랑 얘기는 다 뻔한데 왜이리 재미날까요. 수많은 사랑을 보고 듣고 하면서도 학습되지 않는다는 게 참 신기합니다. 이정도면 나름 가이드가 잘 되어있는 편인데 말이에요.
요즘 시대는 절제는커녕 아에 시작조차 하지 않는 분위기네요. 갈수록 소극적으로 변해가는 사회라서 이대로라면 사랑타령도 곧 없어지겠다 싶고요🤔
 
책 대 담배 쏜살 문고
조지 오웰 지음, 강문순 옮김 / 민음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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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쪽 가량 되는 이 얇은 책은 아홉 편의 산문집이다. 작가와 책에 대한 이모저모를 썼지만 온통 진지하고 정치적인 내용뿐이라 썩 즐겁지는 않았다. 기억에 남는 두 가지만 간략히 적겠다. 먼저는 <어느 서평가의 고백>이다. 오웰은 상투적인 표현의 서평을 따끔하게 지적한다. 그저 무난한 칭찬 일색의 습관은 대중의 반응을 조작하는 사기로 이어진다는 말이다. 과연, 말 그대로 내가 별점 사기에 얼마나 많이 낚였던가. 예나 지금이나 똑같고만. 쯧쯧. 두 번째로는 <나는 왜 쓰는가>이다. 글쟁이한테는 네 가지 동기가 있단다. ①온전한 이기심(허영,욕구) ②미학적 열정(아름다움,애착) ③역사적 충동(기록,보존) ④정치적 목적(설득,추구). 글의 성격과 목적에 따라 동기는 다르게 작용하는데, 의미를 지닌 문장에는 꼭 정치적 목적이 포함된다고 한다. 이런 걸 알고 나면 주목받는 글들이 어떤 식으로 여론몰이를 하는지 더 잘 알게 된다. 물론 나 역시 예외는 아닐 테지만 그것 또한 글쓰기가 주는 매력인 걸 어찌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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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5-12 08: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과 담배>라니 제목은 아주 멋진데 내용은 좀 즐겁지는 않군요 ㅋ
어느 서평가의 고백 글을 보니 좀 뜨끔 합니다 ㅎㅎ 오웰은 역시 소설~!!

물감 2023-05-12 09:10   좋아요 1 | URL
오웰이 수백 번의 에세이를 썼는데도 몇 권의 소설 쓴 걸로 유명해졌다고 하니, 에세이는 그냥 그런가 봐요. 아니면 그당시에만 먹혔는지도 모르겠고요 ㅋㅋㅋ
 
내가 죽인 남자가 돌아왔다
황세연 지음 / 마카롱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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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서 끈기가 없어서 그런지 책을 몇 시간씩 붙들지는 못한다. 집중력이 흐려져 꼭 한 번씩 딴짓을 하게 되는데 놀랍게도 이번 책은 스트레이트로 읽어버렸다. 그만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으니 말 다 했다. ‘범죄 없는 마을‘의 타이틀을 수년째 유지 중인 깡촌 중천리에서 기어코 사건이 터진다. 하필이면 기록 경신 시상식을 앞두고 말이다. 죽은 신 씨는 나무와 트럭 사이에 끼여있었고, 시상식이 걸렸던 마을 사람들은 이 일을 은폐하기로 한다. 마침 이곳을 방문한 형사와 기자가 지역 물난리로 인해 발이 묶이면서 사건 수사 및 취재를 하게 된다. 근데 이상하게도 용의자마다 자신이 신 씨를 죽였다는 것이다. 이게 말이 돼?


각자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생긴 사고를 실토하는데, 어떻게 신 씨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죽음을 당했냐는 말이다. 나 때문에 죽은 사람이 눈앞에 트럭 사고로 죽어있으니 다들 놀랄 만도 하겠다. 저자는 여기서 또 한 번 상황을 비튼다. 마을 외곽의 자살바위에서 자살한 외지인의 신원이 신 씨로 밝혀진 것이다. 이 황당무계한 미스터리가 궁금하다면 꼭 읽어보시길.


기본적으로는 밀실 추리 형식이지만 크게 다른 점이 있다. 보통은 용의자들이 알리바이를 꺼내며 결백을 주장하나, 이 책은 다들 본인이 죽였다고 하니까 멘붕이 오는 것이다. 웃기게도 자백은 하는데 정말 본인이 죽였는지는 확신하지 못한다. 그래서 상황을 무마하고 조금이라도 더 약화시키려 저마다 뻔한 연출을 해댄다. 그래도 나름 추리소설인데 이렇게 허술해도 되나 싶다가 이 책은 사회소설이란 걸 눈치챘다. 형사가 얘기한 ‘악인과 의인은 백지 한 장 차이‘에서 말이다. 왜 그리 많은 서사를 다루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싹 풀렸다. 스포 방지를 위해 여기까지만.


아쉬웠던 몇 가지를 적자면, 좀 더 으스스한 분위기로 조성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이만하면 스릴러 조건은 다 갖춘 셈인데 좀만 더 주물렀으면 정유정의 <7년의 밤> 같은 작품이 나올 수도 있었겠다. 그러나 마을의 충청권 사투리와, 때묻지 않은 순박함이 심각한 상황을 매번 평범한 일상으로 돌려놓는다. 이게 킬링 포인트라 하기에는 웃음 주려 한 것도 아닌 데다 전반적으로 무겁고 난감한 흐름이어서 참 애매모호했다. 게다가 사건의 내막을 알아감과, 개개인의 서사를 파악하는 과정이 말도 안 되게 순조롭다. 메인 사건뿐만 아니라 용의자 개개인의 서사를 풀고 매듭지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었대도 아쉬운 건 맞다. 다만 이 많은 인물과 사건을 다루는데도 어색함 없는 개연성을 보여준 데에 박수를 보낸다. 편집자 출신이란 말에 바로 납득이 가네. 여튼 너무 잘 읽었다. 영화보단 드라마로 만들어지면 딱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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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5-11 14: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읽었는데 왜 하나도 기억 안나죠? 찾아보니 감상 적어둔 것도 없네요. 아무것도 적을 말이 없었던 걸까요? 2019년 9월에 읽었다고 되어있는데 어쩌면 이렇게 아무것도 기억이 안날까요? 껄껄. 책을 대체 왜 읽는건지 ㅠㅠ 기록은 중요합니다! ㅠㅠ

물감 2023-05-11 15:15   좋아요 0 | URL
그렇게 임팩트는 없었던 게 아닐까요ㅋㅋㅋ 저는 무조건 한 권 읽고 리뷰하는 편이지만 여러 권 읽는 분들은 페이퍼로 쓰시니까 놓칠 수도 있겠네요. 기억 안나신다고 재독 하기에는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으시죠?ㅋㅋㅋ
 
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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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체코 문학이랑도 안맞는갑다. 체코의 3대 작가라는 프란츠 카프카, 밀란 쿤데라, 보후밀 흐라발까지 만나본 후 내린 결론이다. 어렵고 심오한 건 좋은데, 이야기의 문맥이 영 매끄럽지가 못하다. 그게 다 번역 때문인 줄로만 알았지. 알고 보니 체코 작가들이 꼭 이런 식이네. 철학, 사상, 교훈 다 좋지만 소설이라면 일단 재미가 1순위 아니냐. 그나마 읽는 맛이라도 있었던 카프카가 제일 낫다고 본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제목 때문에 궁금했던 책이었는데 안 사고 빌려읽길 잘했다는 생각부터 든다. 짧은 분량만큼 내용도 간단하다. 35년간 지하실에서 폐지압축공으로 일하는 아재가 버려지는 책들을 읽으며 책 수집가가 된다. 은퇴 후에도 압축기를 사서 쭉 일할 계획이었는데, 어느 날 들어온 신형 압축기한테 일자리를 빼앗기고 만다. 뼈대는 이게 다인데, 쥐와 바퀴벌레, 도심의 지하 구조, 과거 집시 여인 등등 이건 뭐 하러 넣었지 싶은 살덩이가 잔뜩 붙어있다. 아니, 내용 자체로는 문제가 없는데 자꾸 횡설수설하고 겉돌기만 하니까 집중이 안 된다. 솔직히 이런 정신 사나운 작품을 진지하게 임해야 할 이유가 없다. 다들 좋다는데 나 혼자 까내린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겠지만.


소련의 침공 이후 저자의 책들은 금서로 분류되었다고 한다. 출판이 불가한 자신의 책들은 폐기처분 대상이 되었고, 이렇게 점점 사라져가는 무수한 책들을 기리고자 이 작품을 썼지 싶다. 지하세계를 무대로 한 것은, 지독했던 당시 상황에서 현실도피하려던 게 아니었을까. 주인공은 시대에 뒤쳐진 것들을 갈아치우기 급급한 세상에 끝까지 저항하는 최후를 보여주었다. 그래, 아무리 달라질 게 없다해도 아니다 싶은건 아니라고 외쳐야 한다. 이 책은 드럽게 재미없다고 말하는 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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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5-09 12: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 이 책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재미도 없어서 별 셋 줬나 둘 줬나 그런데 저만 외톨이가 아니었네요? 껄껄

물감 2023-05-09 12:12   좋아요 0 | URL
저항정신 투철한 다락방 님ㅋㅋㅋㅋㅋ
제가 있으니 이제 외톨이는 아닙니다요 ㅋㅋㅋㅋ

잠자냥 2023-05-09 13: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잠깐! 근데 차페크 <도롱뇽과의 전쟁>까지만 읽어봐요...

물감 2023-05-09 13:12   좋아요 2 | URL
차페크도 체코에요?! 집에 체코 소설이 왜이리 많이 있지....ㅋㅋㅋㅋ도롱뇽도 있어요ㅋㅋㅋ

잠자냥 2023-05-09 13:18   좋아요 3 | URL
아 도롱뇽 구비? 그럼 읽어보세요......
알고 보니 물감님 체코 작가 좋아하네....ㅋㅋㅋㅋㅋㅋㅋ

물감 2023-05-09 13:22   좋아요 1 | URL
<평범한 인생>도 있네요. 그냥 체코인 거 몰랐어야 하지 않았나 싶은ㅋㅋㅋㅋ 차페크도 읽어볼게요ㅋㅋ

잠자냥 2023-05-09 13:31   좋아요 3 | URL
지금 분위기라면 <평범한 인생>은 싫어할 거 같......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도롱뇽부터 읽읍시다.

coolcat329 2023-05-09 22: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아 물감님 글도 재밌고 댓글들도 웃깁니다.
저 이 책 있고 도롱뇽, 평범한 인생도 있습니다. 다 안 읽었지요.
이 책 읽게 되면 물감님 글 생각나서 영향을 받을 듯 한데요 😅

물감 2023-05-10 00:21   좋아요 1 | URL
저보다는 체코랑 잘 맞으실거에요ㅋㅋㅋ 차페크는 천천히 읽어보겠습니다. 겁나네요 😅😅😅

새파랑 2023-05-10 08: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제목이 좋아서 읽어보고 싶었는데 별로군요 ㅜㅜ 체코가 좀 그렇긴 한거 같아요 ㅋ 막 재미있게 읽히는 문학은 아니라는~!!

잠자냥 2023-05-10 08:56   좋아요 3 | URL
새파랑님은 좋아할 거 같은데…. 그리고 쿤데라 <농담> 안 읽어보셨다면 이것도 추천이요. 이건 재미있는데…!

새파랑 2023-05-10 11:08   좋아요 3 | URL
앗 맞춤형 추천인가요? ㅋ 읽어보겠습니다. 쿤데라 3종 (농담, 존재, 불멸)은 읽어봤습니다 ~!!

물감 2023-05-10 11:41   좋아요 2 | URL
어떤 스토리가 생각나서 책을 쓴다기보다 본인들의 생각을 전달하려고 애써 스토리를 구상한 느낌이랄까... 암튼 그렇습니다ㅋㅋ

고양이라디오 2023-05-20 01:53   좋아요 1 | URL
물감님 말씀 동감! 저도 본인들의 생각을 전달하려고 애써 스토리를 구상한 느낌 안 좋아합니다ㅎ

물감님 좋아하는 작가 궁금합니다ㅎ 알려주세용!ㅎㅎ

yamoo 2023-05-10 12: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두 그런 작품들 있어요. 유명하다는 작품들이 재미가 없어서뤼..ㅎㅎ 저도 보후밀의 이 작품을 오래 전에 읽었지만. 그냥 좋다라는 느낌밖에 없습니다. 책좋아하는 분들은 대체로 좋게 볼 듯한데...좀 지루한 면이 많지요. 저는 유진 오닐 작품이 별로 였습니다. 불행한 가정사...뭐 어쩌라고..라는 느낌..

뭐, 자기에게 맞는 작가의 작품을 읽는 게 최고로 좋죠. 읽어야 할 책은 많고 나와 안 맞는 작가는 언제나 있으니까요..ㅎㅎ

물감 2023-05-10 13:58   좋아요 1 | URL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별로라고 느낀 독자들은 아예 기록조차 남기질 않기 때문에 호평만 넘친 것이 아닐까. 저는 읽었으면 무조건 기록을 남기자는 편이라서 매번 나만 이렇게 삐딱한가 싶었는데, 평을 남기면 동의한다는 댓글이 꽤 달리더라고요. 뭔가 씁쓸한 현실... ㅎㅎㅎ 어차피 읽을 책은 밀려있으니 말씀하신대로 각자한테 맞는 걸 찾아가야죠! ^^

자목련 2023-05-11 09: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의 말씀처럼 물감 님 체코 작가 좋아하시네요. ㅎ
<평범한 인생>어떻게 읽으실까 궁금합니다^^

물감 2023-05-11 12:18   좋아요 1 | URL
윽 그렇게 되나요 ㅋㅋㅋㅋ
체코작가는 당분간 멀리하려 했는데 다들 차페크 얘기하셔서 한번 읽어봐야 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과연 차페크는 다를 것인가

고양이라디오 2023-07-10 15: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저도 이 책 재미없었습니다ㅠ 별점 2개 줬습니다. 저도 체코 작가랑 안 맞는가봐요.

물감 2023-07-10 18:09   좋아요 1 | URL
흑흑 동지 만나 정말 반갑습니다ㅜㅜ 저는 장르 불문하고 혼자만 별로인 경우가 많거든요ㅋㅋㅋ

고양이라디오 2023-07-10 18:29   좋아요 1 | URL
아 그런가요ㅎ? 저도 가끔 대세와 다를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동지가 있으면 정말 반갑고 든든하죠ㅎ

저도 물감님이 동지라서 반갑고 든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