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인 남자가 돌아왔다
황세연 지음 / 마카롱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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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서 끈기가 없어서 그런지 책을 몇 시간씩 붙들지는 못한다. 집중력이 흐려져 꼭 한 번씩 딴짓을 하게 되는데 놀랍게도 이번 책은 스트레이트로 읽어버렸다. 그만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으니 말 다 했다. ‘범죄 없는 마을‘의 타이틀을 수년째 유지 중인 깡촌 중천리에서 기어코 사건이 터진다. 하필이면 기록 경신 시상식을 앞두고 말이다. 죽은 신 씨는 나무와 트럭 사이에 끼여있었고, 시상식이 걸렸던 마을 사람들은 이 일을 은폐하기로 한다. 마침 이곳을 방문한 형사와 기자가 지역 물난리로 인해 발이 묶이면서 사건 수사 및 취재를 하게 된다. 근데 이상하게도 용의자마다 자신이 신 씨를 죽였다는 것이다. 이게 말이 돼?


각자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생긴 사고를 실토하는데, 어떻게 신 씨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죽음을 당했냐는 말이다. 나 때문에 죽은 사람이 눈앞에 트럭 사고로 죽어있으니 다들 놀랄 만도 하겠다. 저자는 여기서 또 한 번 상황을 비튼다. 마을 외곽의 자살바위에서 자살한 외지인의 신원이 신 씨로 밝혀진 것이다. 이 황당무계한 미스터리가 궁금하다면 꼭 읽어보시길.


기본적으로는 밀실 추리 형식이지만 크게 다른 점이 있다. 보통은 용의자들이 알리바이를 꺼내며 결백을 주장하나, 이 책은 다들 본인이 죽였다고 하니까 멘붕이 오는 것이다. 웃기게도 자백은 하는데 정말 본인이 죽였는지는 확신하지 못한다. 그래서 상황을 무마하고 조금이라도 더 약화시키려 저마다 뻔한 연출을 해댄다. 그래도 나름 추리소설인데 이렇게 허술해도 되나 싶다가 이 책은 사회소설이란 걸 눈치챘다. 형사가 얘기한 ‘악인과 의인은 백지 한 장 차이‘에서 말이다. 왜 그리 많은 서사를 다루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싹 풀렸다. 스포 방지를 위해 여기까지만.


아쉬웠던 몇 가지를 적자면, 좀 더 으스스한 분위기로 조성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이만하면 스릴러 조건은 다 갖춘 셈인데 좀만 더 주물렀으면 정유정의 <7년의 밤> 같은 작품이 나올 수도 있었겠다. 그러나 마을의 충청권 사투리와, 때묻지 않은 순박함이 심각한 상황을 매번 평범한 일상으로 돌려놓는다. 이게 킬링 포인트라 하기에는 웃음 주려 한 것도 아닌 데다 전반적으로 무겁고 난감한 흐름이어서 참 애매모호했다. 게다가 사건의 내막을 알아감과, 개개인의 서사를 파악하는 과정이 말도 안 되게 순조롭다. 메인 사건뿐만 아니라 용의자 개개인의 서사를 풀고 매듭지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었대도 아쉬운 건 맞다. 다만 이 많은 인물과 사건을 다루는데도 어색함 없는 개연성을 보여준 데에 박수를 보낸다. 편집자 출신이란 말에 바로 납득이 가네. 여튼 너무 잘 읽었다. 영화보단 드라마로 만들어지면 딱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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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5-11 14: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읽었는데 왜 하나도 기억 안나죠? 찾아보니 감상 적어둔 것도 없네요. 아무것도 적을 말이 없었던 걸까요? 2019년 9월에 읽었다고 되어있는데 어쩌면 이렇게 아무것도 기억이 안날까요? 껄껄. 책을 대체 왜 읽는건지 ㅠㅠ 기록은 중요합니다! ㅠㅠ

물감 2023-05-11 15:15   좋아요 0 | URL
그렇게 임팩트는 없었던 게 아닐까요ㅋㅋㅋ 저는 무조건 한 권 읽고 리뷰하는 편이지만 여러 권 읽는 분들은 페이퍼로 쓰시니까 놓칠 수도 있겠네요. 기억 안나신다고 재독 하기에는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으시죠?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