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독서 - 개인주의자 문유석의 유쾌한 책 읽기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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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함무라비>의 저자, 문유석 판사의 독서만담 에세이다. 모태부터 활자 중독이었던 저자의 독서 관련 썰들과 개드립 한두 스푼 넣은 통찰이 담긴 이 책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다름 아니라 내가 쓴 건가 착각할 정도로 내 문체랑 똑같은 것이었다. 거기다 시니컬함 속에 블랙 유머를 겸비한 B급 감성을 추구하는 것도 어쩜 나랑 똑같은지. 심지어 아름다운 글, 있어 보이는 글에 가시가 돋는다는 것까지도 닮았더랬다. 노빠꾸 멘탈의 족보 없는 글쓰기가 나 말고 또 있단 사실도 놀랍지만, 이 호불호 갈리는 마이너 코드로 버젓이 필드 활동을 한다는 게 더 놀랍도다. 그래도 명색이 판사인데 이렇게나 체통을 지키지 않아도 괜찮으신가? 독자들은 몰라도 법조계에선 좋아하지 않을 거 같그등.


많은 사람들이 지식과 교훈을 얻기 위해 독서를 한다. 그러나 저자는 오직 재미를 위한 독서를 해왔고, 어떤 명저라도 재미가 없으면 지체 없이 덮어버렸단다. 네, 이것마저도 저랑 똑같으시고요. 문학이든 비문학이든 흡인력이 있어야 하고, 부실한 스토리라 해도 소위 글맛이 있으면 완독할 마음이 생긴다. 그러니까 나나 저자가 생각하는 독서란, 일단 재밌어야 한다. 독서의 궁극적인 목표는 문화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수행평가를 위한 독서법을 익힌 탓에 성인이 되어서도 즐기는 독서를 잘 못한다. 반면 일찍이 즐기는 독서법을 터득한 저자는, 책이 주는 쾌락이 얼마나 좋은지를 침 질질 흘려가며 설명한다. 진정 이분만큼 독서를 순수하게 좋아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었던가. 판사님, 저하고 북토크 해주시면 안될까요? 나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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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3-04-06 1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의 최우선 목표는 재미죠!ㅎ 격하게 동의합니다.

<쾌락독서> 저도 재밌게 읽었고 문유석 판사도 좋아합니다. 물감님 저랑 독서 취향 비슷하신듯!

<더 로드>는 정말정말 재미없죠!!

물감 2023-04-06 13:15   좋아요 1 | URL
역시 고양이라디오 님은 배우신 분 ㅎㅎㅎ
알라딘서 저랑 취향 비슷한 분이 잘 없는데 괜히 반갑습니다^^
그리고 저는 코맥 메카시랑 안맞나봐요 하하...

고양이라디오 2023-04-06 13:24   좋아요 1 | URL
물감님 친구신청 받아주세요ㅎㅎ

관심가는 책들도 많고 리뷰 재밌게 보겠습니다ㅎ

물감 2023-04-06 13:46   좋아요 1 | URL
아이고 친추 완료입니다ㅎㅎ 활동 자주하진 않지만 잘 부탁 드립니다😀

고양이라디오 2023-04-07 13:10   좋아요 1 | URL
넵 감사합니다. 종종 봬요😀
 
다니엘 핑크 후회의 재발견 - 더 나은 나를 만드는, 가장 불쾌한 감정의 힘에 대하여
다니엘 핑크 지음, 김명철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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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에 관한 책은 처음이지만 어떤 내용일지가 대충 그려지긴 했다. 과연 내 예상은 맞았고, 인생 설계 법이나 방향 제시도 다 해본 거라 딱히 새로운 게 없었다. 다 그렇듯 나도 후회 때문에 여러 번 죽다 살아났는데, 중요한 건 살아났다는 사실이다. 이 후회에도 어떤 장인 정신 같은 게 필요한 데 그건 뒤에 가서 얘기하고, 먼저는 책 내용부터 살펴본다.


저자는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후회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참여자들을 크게 4가지 유형으로 나눴는데 간단히 정리하자면, 한 일에 대한 후회와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라고 보면 된다. 전자는 안전한 삶을 구축하지 못한 이유고, 후자는 마음의 풍요를 챙기지 못한 이유이다. 이것은 바로 앞전에 읽은 심리학 책에서 말한 안전형과 의미형의 내용과도 같다. 다만 후회는 자신을 통합하는 게 아니라 분리하는 데에 목적을 둔다고 하겠다.


어디서 들은 건데, 각 분야의 대표자들이 모여서 후대에 한 가지만을 물려준다면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의논을 했단다. 그리고 만장일치로 내린 답이 바로 ‘관점‘이었다. 사람은 이 관점을 통해 모든 굴레와 멍에에서 자유로워질 수가 있게 된다. 이것의 쉬운 설명을 위해서 나의 정신건강 트레이닝법을 소개하자면, ‘그럴 수도 있지‘라는 주문을 외우는 거다. 이 마법의 주문은 온갖 불편한 감정에서 나를 해방시켜주고 괜한 에너지 낭비를 막아준다. 하늘 아래 새것이 없다는데 누가 더 잘났니 못났니를 따져서 뭐 할까. 이같이 관점을 달리하는 방식은 지난 후회로부터 나를 분리시켜주며, 앞으로의 후회를 예측하게 해주는 기능을 한다. 매우 유용하니까 꼭 기억해두시길.


사람들 대다수가 한 일보다는 하지 못한 일에 대한 후회가 더 크다고 한다. 해도 후회고 안 해도 후회라면 그냥 하는 게 낫다고들 하는데, 이거 또한 관점을 달리하면 해결될 문제이다. 그러니까 덜 후회하는 쪽을 고르기보다,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빨리 벗어나는 길을 찾는 게 먼저다. 저자의 말대로 후회가 남은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장치라면, 왜 사람들은 지난날의 후회에서 여태 못 빠져나오는 걸까. 이는 단지 실패의 경험만으로 앞날을 개선하려 한 탓이다. 저자가 강조한 ‘행동‘하기 이전에 ‘관점‘부터 바꾸는 훈련이 필요하다.


어차피 사람은 죽는 날까지 선택과 후회를 반복한다. 그러니 후회가 삶을 어떤 식으로 바꿔놓느냐를 논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연연해하지 않고 살아갈지를 고민할 차례다. 자, 그럼 내가 강조한 관점을 갖췄다 치고, 다음은 뭘 해야 할까. 감이 안 온다면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 된다. 침구를 정리하고, 널브러진 옷들을 개고, 스트레칭을 하시라. 운동화를 신고 동네 한 바퀴 돌든, 책 하나 들고 근처 카페를 가든, 도파민 중독에서 그만 좀 벗어나시라. 그렇게 내 행동들이 단기 보상에서 점차 장기 보상으로 옮겨가야 한다. 후회하고도 아무런 액션이 없다면 둘 중 하나겠지. 현재에 만족하거나, 절실하지 않거나. 뭘 그리 복잡하게 사냐고 하실 분들은 그냥 정신승리하면서 살면 됨. 솔직히 그게 더 잘 먹히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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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3-03-02 07: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요즘 회사 책 뽀개기 열심히 하시네요.
관점을 바꿔라 저도 오늘부터 실천해 보겠어요.
그럴 수 있지...마법같은 힘을 가진 말 같아요.
그리고 역시 순간의 쾌락보다는 내 생활 속에서 맛보는 작은 것들이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거 동감이에요.
운동, 책읽기 더욱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물감 2023-03-02 09:14   좋아요 3 | URL
부지런히 읽고 쓰고 있습니다. 이 혜택이 곧 종료되거든요 ㅎㅎㅎ
제가 해본 바, 관점의 전환은 가히 천하무적입니다. 단지 불편한 감정에서 벗어나는 것뿐만이 아니라, 내가 원하면 기쁨도 평안도 감동도 가질 수 있더라고요^^
쿨캣님의 작은 변화를 응원하겠습니다!

다락방 2023-03-02 0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감 님 회사 책 뽀개기 리뷰 재미집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물감 2023-03-02 10:02   좋아요 0 | URL
기존의 소설 리뷰 스타일과는 다른 맛이 있죠? ㅋㅋㅋㅋ
 
어른의 중력 - 생의 1/4 승강장에 도착한 어린 어른을 위한 심리학
사티아 도일 바이오크 지음, 임슬애 옮김 / 윌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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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책 뽀개기 네 번째. 제목만 보고 인문학일 줄 알았는데 심리학 책이었다. 심리치료사인 저자가 네 명의 환자를 상담하며 변화하는 과정을 기록하였다. 저자는 주로 10대 후반 ~ 30대 초반의 환자를 집중 케어하는데, 그 나이대를 통틀어 ‘쿼터라이프‘라고 부른다. 성인이 되었으나 미성숙한 정신에 멈춰있는, 그 상태를 어떻게 벗어나는지를 모르는 현대인들의 아픔을 들여다본다.


심리학에서는 사람을 크게 안정형과 의미형으로 나눈다. 현실이 중요한 안정형은 공허함에 부딪히고, 영혼이 중요한 의미형은 생존 앞에 무너진다. 뭐 쉽게 말해 두 유형이 적절히 섞이고 보완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이다. 컵은 물이 있을 때라야 쓸모가 있고, 물은 컵이 없이는 마실 수가 없다. 그처럼 자신이 어느 유형인지 파악한 다음 반대 유형의 특징대로 변화를 주는 것이 삶의 균형과 건강을 가져다준다는 거.


머리는 안정형이고 가슴은 의미형인 나는 이 책에 없는 세 번째 유형이다. 정신과 내면을 챙기는 건 일단 살고 본 다음의 일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분별력을 난 어릴 때부터 길러왔는데, 오히려 그것이 평범한 남들과 나를 더 떼어놓는 것만 같아서 괴로웠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공부를 마친 뒤로 인생 3회차의 현자가 되어, 감정도 상황도 전부 컨트롤이 가능해졌다. 나의 인생 독학은 이렇다. 모든 사람은 본캐와 부캐가 있는데, 사실은 부캐가 본인의 진짜 자아와 정체성인 것이다. 부캐의 탈을 쓰면 억눌려왔던 어떤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방출되는데, 이것이 결국 내가 원하던 자화상이란 말씀. 이 본캐와 부캐의 균형을 잡게 될 때 비로소 초연함을 얻게 된다. 그러면 잔잔하기만 한 일상도 퍽 재미가 있고 의미를 가진다. 무슨 재미로 사냐는 말을 내내 듣고 살았지만 따분하거나 지루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암튼 내 방식이 저자가 말하는 것과 일맥상통해서 그리 새로울 것도 없었지만, 다른 독자들은 충분히 도움 될 듯싶다.


자기만의 독립적이고 고유한 삶을 구축하는 것. 안정적이고 의미 있는 삶이 정확히 뭔지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밝혀내는 것.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쿼터라이프의 목표이다. 여기에는 정상적이거나 훌륭하거나 성공적인 것과는 관련이 없다고 하니 참고들 하시길. 다 읽고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책은 잊어버리고 그냥 내 안의 부캐를 끄집어내면 된다. 놀라울 정도의 평온과 자족을 갖게 되리라. 이상 자칭 현자의 인생 클리닉 리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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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3-03-01 0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미래의 대현자인데… 현재의 현자님을 뵈옵니다. 균형에 도달하셨군요? 난 좀 잘 안되던데… 전 부캐가 30개라서 통합이 좀 어려워요….

물감 2023-03-01 09:19   좋아요 0 | URL
그 부캐들도 안정형과 의미형이 있으니까 내가 어떨 때에 어느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지를 알면 됩니다 🙂 사실 롤모델을 찾고 닮아가는 게 제일 빠른데, 현대인들이 다 병들고 고장나있어서 닮고 싶단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잘 없죠...

자목련 2023-03-01 0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회사 책 뽀개기. 너무 좋은 걸요. 다양한 책들을 읽을 수 있고, 물감 님의 회사에서 도서 구매를 담당하는 분의 안목도 엿 볼 수 있고요. 좋은 회사 같아요^^

물감 2023-03-01 10:23   좋아요 0 | URL
사내 도서관은 엄청난 복지가 맞습니다ㅎㅎ 의외인 건 책 읽는 직원이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한국인들이 1년에 책 한 권 안읽는다고 하던데 반전이네요🤔

은오 2023-03-01 23: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부터 물감님이 제 롤모델입니다 물감님 근데 몇살이에요?! 젊지않아요? 언제부터 현자가 되신건가요 ㅋㅋㅋㅋㅋ

물감 2023-03-01 23:25   좋아요 1 | URL
은오님 롤모델 저 아니잖아요~ 다락방님 잠자냥님인거 다 알아요ㅋㅋㅋ
저는 20대부터 쭉 현자였습니다. 애늙은이의 표본이었고요 ㅋㅋㅋ

은오 2023-03-01 23:48   좋아요 1 | URL
물감님으로 롤모델 바꾸려고요 다락방님이랑 잠자냥님은 너무 좋아서 아무래도 롤모델 말고 결혼해야겠어요 ㅋㅋㅋㅋㅋ ㅎㅏ 저는 20대엔 글렀고 30대에라도 현자가 되기 위해 아니 40대라도 좋겠다 암튼 물감님이 되기위해 지혜를 추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물감 2023-03-02 09:17   좋아요 1 | URL
비움의 미학...아직 기억하고 있었군요? ㅋㅋㅋ
근데 단지 지혜만 추구해선 안되고요, 뭐랄까 폭력적인 사상과 세계관에서 멀어져야 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득도한들 제자리걸음에 그치지 않걸랑요... 여튼 파이팅

잠자냥 2023-03-08 13:21   좋아요 1 | URL
뭐여, 여기서도 결혼타령이여........

은오 2023-03-08 13:49   좋아요 0 | URL
결혼도 안해주면서..........

물감 2023-03-08 14:44   좋아요 1 | URL
음. 제가 남자라 다행입니다.

잠자냥 2023-03-08 15:35   좋아요 2 | URL
(한국) 남자한테 결혼해달라고 농담으로 말했다가 큰일 남 ㅋㅋㅋㅋㅋㅋㅋ 착각 엄청 잘하잖아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물감님이 그렇다는 건 아니고.ㅋㅋㅋㅋㅋㅋㅋㅋ
 
매일을 헤엄치는 법 - 이연 그림 에세이
이연 지음 / 푸른숲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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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책 뽀개기는 계속된다. 이번 책은 나도 종종 챙겨 봤던 유튜버의 그림 에세이다. 내가 이분을 기억하게 된 건, 그녀가 평소 해오던 고민들과 내린 결론이 내 것하고 너무 많이 겹쳐서였다. 삶을 지탱하고 유지해 주는 것들이 가지는 의미. 현실 너머의 것들을 위하고 바라는 인생 방식. 이런 생각으로 가득한데 남들과 잘 섞일 수 있겠냐고. 그래서 나 같은 사람들은 평생 이방인으로 살게 된다는 거다. 그것은 곧 존재의 쓸모없음을 뜻하므로 어떻게든 부정하기 위해서 세상과 타협을 시도한다. 결국 같은 패턴의 무한 반복이다.


박살 난 인류애, 염세주의, 물질에 대한 인식 등등. 그동안 내가 리뷰에 적었었던 내용들이 줄줄이 언급된다. 과연 동족은 동족이다. 우리 이방인들의 삶은 나 자신보다 타인한테 맞춰져있다. 그래서 나를 먼저 돌보고 우선시하는 게 잘 안된다. 왜 그런 말도 있지.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민겨. 그처럼 이타주의가 디폴트라 그 안에서 나름대로의 답들을 찾아낸다. 그리고 각자의 방식대로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한다. 우리 이방인들은 남들이 내게서 어떤 에너지를 받아 갈 때 그렇게나 기뻐한다. 그러나 세상은 선한 사람을 좋게 평가하지 않는다. 아무리 선하게 살아봤자 그거 가지고는 좋은 사람이 될 수가 없는 거다. 이 진리에 도달한 이방인은 둘 중 하나다. 끝없는 자기 연민에 빠지거나, 각성하고 흑화 되거나. 나는 후자다. 인류는 사랑해도 인간은 사랑할 수 없다는 말을 이해하실는지.


회사의 팀원들과는 전부 내적 손절을 해버렸다. 맞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그냥 묵언수행하고 있다. 해외여행, 맛집 탐방, 연예인 덕질, 스마트 기기, SNS 등 오직 플랙스와 쾌락만 좇는 것들과 있다 보니 왜 인간을 혐오하게 되는지를 알겠다. 사회생활이 다 그런 거라지만 1차원의 인간들과는 도저히 안되겠더라. 언론과 넷상에서 물가가 어쩌고 취업이 어쩌고 결혼이 어쩌고 노조가 어쩌고 하지만 현실은 잘만 놀고먹고 있으니 이거야 원 코미디가 따로 없다. 왜 나만 살기 바쁠까. 왜 나만 혼자 겉돌까. 습관적으로 자신을 탓한다. 이연 작가도 똑같았다. 사람들이 어렵지만 인정은 받고 싶어서 자신 있는 그림만 냅다 그렸단다. 그러다 문득 내가 좋아서 그리는, 나를 위해 그려온 게 아님을 알고부터 방황했단다. 알맹이는 싹 타버리고 껍데기만 남은 그 느낌, 갑자기 자아가 부재된 그 기분을 너무나도 잘 안다. 단 한 번도 성실하지 않았던 날이 없었는데, 어째서 허랑방탕 허송세월을 보낸 것과 똑같은 결과일까.


책 내용의 절반이 가난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가난에 지배된 사람은 모든 게 조심스럽고 늘 극단적으로 사고하게 된다. 그건 주머니 사정이 나아져도 크게 바뀌지 않는다. 힘들면 힘든 대로 잘되면 잘 되는 대로 불안함이 엄습해온다. 그래서 늘 똑같은 일상과 한결같은 태도를 고집하는 것이다. 내가 그렇고 저자가 그러하다. 회사를 나오고 수입이 없는 중에도 수영을 배우러 다닌 그녀는, 하루도 빠짐없이 출석하여 상급반까지 올라간다. 여전히 가난했지만 점차 좋아지는 수영 실력이 텅 빈 마음에 평온을 채워주었다. 매일의 작은 노력이 나를 성장시키고 긍지를 갖게 한다. 그러니까 너도 도전해 봐,식의 응원과 격려를 하자는 게 아니다. 지금의 달라진 내가 되어, 울고 있던 과거의 나를 그만 놓아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살림 걱정하는 부모님 눈치만 보며 살았던 과거에 아직도 갇혀있는 나. 가난해서 놓쳐버린 경험과 감정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당신이 가난을 모른다면 이 책을 읽지 말라 하고 싶다. 어차피 공감도 못할 거니까,라는 삐딱한 마음이 들어서 그렇다. 빈곤함이 반복되면 속이 깊어질 순 있어도 넓어지지는 않는다. 그릇이 커지는 게 두려운 나머지 성장의 가능성을 차단해버리거든. 그렇지만 당신이 삶에 의미를 바라는 고차원의 이방인이라면 환영한다. 겨울밖에 없었던 나와 당신의 인생에 부디 봄이 찾아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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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2-26 14: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리뷰가 자주 올라오니까 너무 좋다! 근데 물감님 리뷰만 말고 본인 얘기도 따로 가끔 해주시면 안되나요 저는 물감님이 좀 궁금한데 ㅋㅋㅋㅋ

물감 2023-02-26 17:00   좋아요 2 | URL
저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어딘가에 기록하고 싶지는 않네요 ㅋㅋ
정 듣고 싶으시면 분당에 놀러 와요~ 희로애락이 뭔지를 보여드리겠음.

coolcat329 2023-02-26 14: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자가 수영으로 힘든 시기 이겨낸 얘기군요. 저도 한 때 수영에 광적으로 매달린 적이 있어요. 초급에서 연수반으로 6개월만에 고속 승급했고 아침 저녁으로 연습을 해댔습니다. 물속에 있으면 모든 걱정근심 다 사라지고 앞 사람 발만 보며 25미터 라인을 수없이 돌고나면 나중에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납니다 ㅋㅋ저도 당시 이래저래 힘든 시기였는데 수영으로 몸과 마음 다잡았네요.

물감 2023-02-26 17:06   좋아요 0 | URL
쿨캣님도 수영 다니셨군요. 맞아요. 뭔가에 몰두하면 잡생각이 사라지죠.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과, 나를 완성시켜주는 것은 정말 별개에요. 독서만 하는 것과, 읽고 쓰기까지 하는 게 다른 것처럼요 ㅎㅎㅎ

그레이스 2023-02-26 16: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마음이 다 전달되네요. 얼마 전에 봤던 이성민 배우의 ‘버티기‘ 메시지가 생각나네요. 어려운 시기를 이겨낸 여행 유튜버들의 말들도 생각나구요. 겨울인 듯하지만 지구의 기울기를 바꿀 수 없기에 봄은 꼭 찾아올거예요^^

물감 2023-02-26 23:24   좋아요 3 | URL
버틴다는 게 정말 쉽지가 않습니다. 평범하기가 제일 어렵다는 말처럼요. 어쨌든 계속 살아야죠. 저는 유재석씨가 절대 2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던 말이 생각나네요. 저도 그래요. 예나 지금이나 제자리지만 그래도 세월을 머금은 지금이 훨씬 좋아요. 언젠가 봄이 올거라 믿어봅니다 ㅎㅎㅎ

잠자냥 2023-03-08 1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류는 사랑해도 인간은 사랑할 수 없지요.........ㅎㅎㅎ

물감 2023-03-08 14:21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저 그 문장 쓰면서 잠자냥님 생각했어요. 잠자냥 님은 백퍼 이해하시리라!
 
인생의 역사 -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신형철 지음 / 난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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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 작가의 책은 처음 읽어본다. 문학비평가로 유명한 그의 글을 읽어볼 맘이 들지 않았던 건 어떤 직감 때문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이유가 분명해졌다. 정서나 가치관의 문제는 아니고 그냥 좀 과하달까. 그래, 이 자리를 빌려서 그동안 할까 말까 망설였던 잡설이나 풀겠다. 좀 억지스럽지만 알기 쉽게 mbti로 설명하자면, 나는 책이든 서평이든 작성된 글이 s성향인지 n성향인지를 먼저 분간한다.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고, 그저 내가 s성향의 글을 선호하지 않기에 뇌가 자동으로 판단을 해버린다. 그러면 s성향의 글이 무엇이냐. 어떤 포인트에 팍 꽂혀서 집요하게 파고드는, 쉽게 말해 논문 같은 글들을 말한다. 그런 건 공부가 목적인 독서에는 어울리지만 그 외 장르나 목적에는 갑갑하다는 인상을 준다. 재밌는 사실은 본인의 mbti가 n이어도 s처럼 쓴다거나 혹은 반대 경우도 있고, n성향의 글만 쓰던 사람이 s성향의 글을 쓰기도 한다는 거다(이것 때문에 난 되도록 중립의 글을 쓴다). 아무튼 나의 시답잖은 생각과 달리 대중들은 장르 구분 없이 s성향의 글을 더 좋아하긴 하더라. <인생의 역사>는 전형적인 s성향의 글이다. 국내외 작가들의 시 한 편을 읽어주고, 그 시에 대한 비하인드 내용과 배경 그리고 본인의 해석을 첨언한다. 제목 따라 매 챕터마다 인생에 관한 이모저모를 알려주나 했더니 딱히 그런 건 없었다. 그리고 모든 글들이 내가 생각하는 ‘사유의 범위‘를 초과한다. 글쎄, 이런 글 성격을 좋아하는 분들도 많을 테지만, 내게는 독자와 함께 호흡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이것도 나만 그렇게 생각하지 싶다). 그러니까 이 분은 오직 나무 얘기만 하는구나, 숲을 얘기할 마음은 없구나, 하는 생각에 읽다 말고 책을 덮었다. 그래도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은 관심 있었는데 저자의 투머치함에 흥미가 뚝 떨어져 버렸다. 아무튼 호평이 그렇게나 많은데 비평 하나쯤 있어도 괜찮겠지 뭐. 다 쓰고 보니 책 얘기를 안 해서 비평이랄 것도 없네. 그만큼 인상 깊은 책은 아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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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4 18: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26 1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24 1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24 2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23-03-08 1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투머치! 단 한 단어로 요약! ㅎㅎㅎㅎ 공감합니다.

물감 2023-03-08 14:20   좋아요 0 | URL
근데 이분 원래 이런 스타일이었나요? 전에 인기 되게 많았던 걸로 언뜻 기억나는데 ㅋㅋㅋ 어느새 하나 둘 손절을...

잠자냥 2023-03-08 14:28   좋아요 1 | URL
여전히 인기는 많으신 거 같고.... 하나 둘 손절하는 분들은 실은 원래 이런 글 안 좋아하거나 관심 없었는데 하도 인기가 많으니 한번 읽어봤다가 학을 뗀 거 같고.... ㅎㅎㅎㅎㅎ

물감 2023-03-08 15:15   좋아요 2 | URL
제가 곧 그 케이스... 뭐라는지 들어나보자 했다가 낭패본ㅋㅋ

고양이라디오 2023-04-06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최근에 읽었는데, 저랑 딱 맞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초반에 좋은 부분이 있었습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