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4 - 율리우스 카이사르 (상)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4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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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이사르. 이번 권의 제목이 다름 아닌 그의 이름이었고 그 분량까지도 상 하로 나뉠 만큼 상당한 것이어서 이 인물에 대해 어느 때보다 큰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그의 심모원려(深謀遠慮)를 나 같은 이가 어찌 알리요마는, 카이사르는 그 당시의 로마와 같은 변혁기에 나오는, 이른바 하늘이 낳은 인물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 자신이 그의 자유분방함을 가두는 영웅(英雄)의 자리를 마다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하늘이 채워준 그릇을 그냥 받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남보다는 훨씬 크지만, 역시 그들과 같이 비어있는 자신의 그릇을 홀로 채워나갔다. 그러한 큰그릇을 채우려면 범인(凡人)들이 가진 한두 가지 능력만으로는 가능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쉬는 순간까지도,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데 멈춤이 없었다. 그는 일생동안 자신의 그릇을 채워나갔던 것이다. 특히 기원전 60∼49년에 걸친, 이번 권의 대부분을 할애한 갈리아 전쟁은 저자의 풍부한 자료 제시와 마치 그곳에서 직접 취재하는 듯한 정학한 기술로 카이사르의 격에 맞는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기술과 자료마저도 카이사르가 직접 써서 남긴 '갈리아 전기'가 그 바탕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일분일초가 급한 전쟁터에서 글을 쓰는 그 여유도 여유려니와 자신의 패배까지도 자신의 손으로 직접 그대로 기록하는 그의 솔직함에도 호감이 갔다. 그러나 실제로 카이사르의 패배는 손에 꼽을 정도여서 싸울 때마다 이긴다는 상승장군(常勝將軍)의 칭호가 아깝지 않았다. 말 그대로 생과 사가 오가는 전쟁터의 현장감을 그대로 전하는 그의 손끝에서 카이사르는 수 천년 후의 미래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그 자신을 스스로 창조했다. 더군다나 그가 이룩한 찬란한 승리의 뒤에는 항상 그만의 기민한 정보 수집과 시의 적절한 활용이 있음을 알았을 때 오늘날 강조되는 정보전의 중요성을 기원전의 그 시대에 알고 있었던 통찰력에 새삼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정보의 위력은 그의 '정치적' 전쟁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어 본국에서도 한참 떨어진 전쟁터에서 수도의 정국을 낱낱이 파악하는 예리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던가.

 이렇게 빈틈없는 카이사르가 이루려는 야심만큼 허영심도 많은 사람이라는, 허영심이란 다름 아닌 남에게 잘 보이고픈 마음이라는 작가의 새로운 해석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에서 즐겁게 해주었다. 카이사르는 전쟁 내내 문화와 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현지민들에게 과시하는 여러 가지 공사를 벌였다. 현지만에 대한 과시, 곧 허영심과 당장 로마의 우위를 피지배층에게 납득시켜야 하는 당장의 필요성을 동시에 충족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의 이런 다중효과를 노리는 성향 또한 그가 항상 이길 수 있는 키워드의 하나였다. 그가 이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기울여 로마의 밖을 다질 즈음, 안에서는 나날이 위세를 더하고 기세를 드높이는 그의 축출을 위해 조용하지 못했으니, 언제 들어도 결의에 찬 사자후(獅子吼)를 루비콘 강가에서 터뜨린다. "나아가지, 신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우리의 명예를 더럽힌 적이 기다리는 곳으로, 주사위는 던져졌다." 로마의 혼미가 기다려온 위대한 개인, 그 자격의 시험이 시작되는 것인가? (1997. 10. 3∼13, 1997. 10. 13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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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3 - 승자의 혼미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3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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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자는 항상 승리의 기쁨에 취해서 혼미(昏迷)해지는 것이 고금(古今)의 운명인가? 그 법칙 아닌 법칙을 못 벗어난 로마도 결국은 인간의 국가인게다. 결코 책의 분량으로 그 내용을 판가름해서는 안되겠지만, 명색이 한 국가의 격동기를 다룬다는 이번 권이 다른 권에 비해 여실히 얇은 것은 로마가 그 어김없는 운명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더라도 적어도 남들보다는 빨리 깨어났다는 것이다. 바로, 역시 우리가 되돌아볼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그 나라를 이끌었다는 반증이었다. 그 벗어남을 위한 격동의 와중에서 많은 이들이 제물로 삼아진 것은 역시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 중에서도 그라쿠스 형제에게는 그들이 대표하는 집단, 평민의 권리보장을 위한 권한과 열정이 있었다. 오늘날의 우리와 아쉬움과 불행은 주어진 권한은 부족하지 않음에도, 자신을 희생해서 자신에게 부여된 책무를 수행하는 적극적인 이의 부재(不在)에 있다.

 로마는 경제 사정이 지금의 우리처럼 무척이나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힘겹게 승리한 점령지 카르타고와 그 밖의 점령지에서 밀려드는 값싼 농산물로 당시 로마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자영농의 몰락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폭발적으로 증가한 몰락 농민, 곧 실업자가 사회문제화 되는 것은 오늘날과 같았지만 바로 그 해결의 전면에 나서는 지도자, 그라쿠스 형제가 있었다는 것은 로마의 행운이요, 그들의 나라가 제국의 자격이 있다는 증거였다. 물론 그라쿠스 형제의 앞날은 순탄치가 않았다. 먼저 형인 티베리우스 그라쿠스가 오직 평민만을 생각하는 과격한 입법 활동의 와중에, 날로 커지는 그의 세력에 위협을 느낀 귀족 세력의 음모로 사실상 '공개 처형'되었다. 다행히도 몇 년이 지난 후 나타난 '다음 타자' 가이우스 그라쿠스는 형의 그러한 최후에서 배운 점이 있어서인지 온건함을 표방하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귀족과 평민 사이의 격차로 인해 분열의 양상까지 보이기 시작한 국가의 유지를 위한, 개혁이라는 목표의 달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온건파라고는 해도 이미 그의 정책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귀족 세력의 반발을 살 수 밖에 없었다. 그 중에서도 귀족들의 대농장 경영으로 인해 나날이 늘어나는 빈농(貧農)들에게 농지를 분배하기 위한 농지법(農地法)과 전 이탈리아 반도와 로마의 진일보된 단결을 위한 시민권법(市民權法)이 있었다. 그렇게 혼미에서의 탈출을 위해 노력하던 가이우스 그라쿠스마저도 귀족들의 '온건한' 음모로 호민관(護民官)에서 낙선하고 급기야는 형과 같은 운명을 밟아 암살되고 말았으니 안타깝기 더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그들의 죽음 후에 농지법이 폐기됨으로써 귀족으로의 부의 집중이 심화되어 하류 계층의 증가라는 사회 문제를 낳았으며, 시민권법은 그 폐지에 불만을 품은 동맹시들의 반란이 일어나고서야 재입법되었으니 오직 조국 로마의 앞날을 생각한 그라쿠스 형제의 선견지명에 감탄할 뿐이었다. 그러나 감탄하는 것도, 그런 이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결국은 '후세의' 우리다. 그들 이후에 등장한 술라는 이미 시대의 흐름인 원로원 체제의 균열에 저항하는 강경한 태도가 내 마음을 끌지 못했다. 이런 혼란의 시대에서 평민 연 수입의 10배에 해당하는 미식(美食)을 즐기며 지금도 그 이름을 호화 미식의 대명사로 남긴 루쿨루스 같은 귀족들의 존재는 술라의 목소리를 더욱 공허하게 만들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귀족들의 존재는 없는 것으로 한다고 해도 로마의 번영을 위해 노력하며 수많은 승전을 거듭한 폼페이우스는 왜 시오노가 말하는 로마 역사의 '위대한 개인'이 될 수 없는 것일까? 그 위대한 개인은 누구란 말인가? (1997. 10. 1∼3, 1997. 10. 3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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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 2005-04-02 16:02   좋아요 0 | URL
세상에, 97년이었으면 제가 고1이었을 것이고 로, 로, 로렌초님은 그때...아니 그때 이미 저는 아직도 읽지 않은 로마인 이야기 3권을 읽고 이런 글을 쓰셨단 말이예요? 아...부끄러운 주말이어요 ㅜ_ㅜ

로렌초의시종 2005-04-03 00:04   좋아요 0 | URL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중학교 시절에서 거의 발전하지 못했다는 것이 정말이지 차마 부정할 수 없는 정확한 제 현실이랍니다. 사과님 흙흙흙. 이 글을 다시 읽으면서 저도 제 자신을 얼마나 부끄러워했는지 몰라요. 그때는 겉늙은 아이였고, 지금은 철없는 아이이니, 언제쯤 제 나이를 제대로 찾게될까요? 저는. 흙.
 
로마인 이야기 2 - 한니발 전쟁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2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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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은 그 시대 그 나라의 모든 인간의 시험대이자 심판이었다. 로마는 1차 포에니 전쟁에서는 거의 모든 전투를 승리의 함성으로 장식했다. 그래서인지 로마는 순진(?)하게도 승자로써의 전후처리를 그들 특유의 통상적인 방식대로 패자(敗者)인 카르타고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처리했다. 하지만 패배 후에는 결국 로마와 서서히 동화되어가면서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던 지금까지의 나라와는 달리 재전쟁을 일으킨 카르타고야말로 로마의 입장에서는 두 번이나 전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던 독일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 원인을 살핀다면 역시 1차 패전 당시의 카르타고의 손실이 시칠리아에 국한되어 영향이 미미했고, 로마의 전후처리 또한 그들이 아직은 지중해 최고의 강국 자리를 유지하는데 일익을 담당한 듯 했다. 로마의 이제까지의 너그러운 전후처리는 소소한 부족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지 카르타고처럼 실력뿐만 아니라 잠재력 또한 막강한 대국을 상대로 실행할 수는 없는 것이라는 쓰디쓴 교훈을 남겨준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카르타고가 승전국인데다가 그리스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던 로마에 다시 전쟁을 걸 생각을 하지는 못했을 테니 말이다.

 또 이 2차 전쟁은 앞에서 들었던 이유와 동시에 한니발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확신한다. 이 전쟁이야말로 한니발에게는 그의 '존재의 이유'였던 까닭이다. 그는 바로 이 전쟁의, 이 책의, 주인공으로 불릴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그가 2차 포에니 전쟁의 8년 기간 동안 보여 준 여러 차례의 승전은 기존의 전술(戰術)을 획기적으로 바꾸었으며, 천여년의 세월이 흘러간 지금도 세계 각 국 사관학교의 전술 교과에 응용될 정도로 치밀했다. 그러나 이런 수천년 전의 전투가 그 머나먼 세월을 뛰어넘어 내게 더욱 가까이 다가올 수 있게된 데는 수십권의 문헌을 참조해가며 전투의 서술에 생동감을 부여하기 위해 열성을 다한 지은이의 노력도 한 몫을 했다. 이토록 적지(敵地)인 이탈리아에서 연전연승을 거둔 한니발도 겨우 포로의 석방 정도로 한창 강화되고 있던, 로마 최대의 버팀목인 로마 연합의 붕괴를 예상했다는 것에서 그 패배의 말로는 점쳐지고 있었다.

 그러한 결정적인 관점의 실수는 인정하더라도 결국 그는 불세출(不世出)의 명장(名將)이었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심지어는 그를 쓰러뜨린 스키피오의 전술도 한니발의 영향이 지대했다는 사실에서는 드러났듯이 말이다. 또한 이런 두 천재를 각각 한명씩 따로 내려보낸 역사의 공평함에도 아울러 감탄했다. 그렇게 조국을 위기에서 구하고 그 자신의 이름 역시 빛낸 스키피오도 적군의 화살은 피할 수 있어도 타인의 시기와 질투, 모함에서는 벗어날 수 없었다. 그 위태로웠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임에도 돈 몇 푼에 발목이 잡혀 실각했으니 말이다. 전쟁 승리 15년 만에 로마인들은 전쟁의 그 모든 것을 잊은 걸까? 아마 그들은 '잊고 싶어서' 그리 했으리라. 패배의 고통을 멀리하고 승리의 쾌락만을 원했던, 평범한 그들이 버린 것은 스키피오가 아니라 그 악몽(惡夢)같았던 전쟁이었다. 그 망각의 재물이었던 스키피오와 그 악몽의 문을 연 한니발은 같은 해에 그들의 꿈을 마쳤다. (1997. 9. 22∼10. 1, 1997. 10. 1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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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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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솔직히 말하자면 로마에 대해서 그다지 깊이 알지는 못했다. 다른 이들도 많이 읽은 '먼 나라 이웃나라'에 나온 지금의 이탈리아에 있었던 대제국이었다는 사실 밖에는...... 그러면서도 내가 머물고 있는 반대편의 기나긴 역사에 대한 호기심은 식지 않았고, 그러던 중에 물론 이 책의 발간 소식도 접했지만 드넓은 로마의 바다에 빠질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마침 내 주위에 머물던 책들이 싫증나던 그 때, 비로소 이 책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이 책이 내 마음 속에 더욱 크게 자리잡은 이유는 동 서양의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그 쇠락(衰落)과 멸망의 대목에서는 어김없이 나오는 그 나라의 정신적 종교적 문제를 배제하는 저자만의 독특한 역사관이었다. 다른 문제와는 달리 이러한 요인은, 그 시대를 겪지 않은 후세인들의 지나치게 주관적 추상적인 기준으로써 역사의 일관성을 해치기 쉽다는 것을 개인적인 경험으로 자주 느꼈던 나는 이 책이 더욱 끌렸다. 또한 이 사관(史觀)은 아직은 먼 나중의 이야기지만 로마 말기의 거대한 정신적 사건이요,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기독교의 성립과 그 융성과도 뗄 수 없는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오직 한 신(神)만을 섬기는 기독교와 유대교와는 달리 초 중기의 로마인들은 여러신을 섬기는 다신교였다.

 하지만 이 다신교라는 점이 로마 발전의 밑바탕인 개방성과의 연관성이 지대함을 알았을 때, 일신교는 단순히 밑는 신의 수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는 저자의 말이 잊을 수 없으리만치 절실하게 다가왔다. 카톨릭의 본산이요 부흥지인 이탈리아에서 수십년을 살고 있는 저자가 아직껏 카톨릭에 귀의(歸依)하지 않은 것도 그녀에게는 이미 그 머나먼 그 때의 로마인의 정신이 깃들여있기에 가능했던 것이리라. 로마인들은 신에게 인간 세계의 관리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행동에 자유로웠고, 신의 역할은 그런 인간의 감시자가 아니라 동반자였다. 그 안에 로마의 강점인 개방성이 있었다. 심지어는 신마저도 다른 민족의 신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였을 정도니 말이다. 그 개방성과 유연성은 왕정(王政)에서 공화정(共和政)으로의 이행이라는 시의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하였다. 이야말로 로마의 뛰어난 정치 감각의 증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로마가 지중해(地中海) 문명의 선구자라는 아테네보다도 오랫동안 공화정체를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그 타고난 감각이 도운 바 컸으리라. (1997. 9. 17∼22, 1997. 9. 22 기록)

ps. 원래 이 리뷰 카테고리에 있는 책들은 모두 내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읽었던 책들의 리뷰다. 이 곳에 올릴까 말까 한참 고민했지만, 꽤나 오랫동안 손으로 써오던 독후감들을 이제는 컴퓨터로 쳐서 이곳에 올리는 지라, 예나 지금이나 유치하기 그지 없는 글들이지만, 결국은 이 책들 덕에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감사의 표시로, 종종 옛적의 글들을 타이핑해서 올릴까한다.(뻔뻔하기도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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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5-03-23 03:06   좋아요 0 | URL
하하. 이번에 13권인가 나왔던데....몇권까지 올리실건가요. ^^

로렌초의시종 2005-03-23 09:48   좋아요 0 | URL
일단 제가 예전에 읽은 것은 6권까지네요. 마냐님~~
 
신화, 그림으로 읽기 - 그리스 신들과 함께 떠나는 서양미술기행
이주헌 지음 / 학고재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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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빠듯한 시간을 쪼개서 파르나소스 산으로 뮤즈 9자매를 찾아갔다. 물론 보다 권위 있는 음악의 신은 아폴론이지만 그에게 음악을 청하기에는 부족함 점이 많기에 일단은 9명의 미녀 선생님들에게 예술의 기본을 전수 받기 위해서였다. 포근한 서늘함을 드러내는 초가을 달빛을 타고 내려오는 곡을 들으니 낯이 익었다. 바로크 시기 작곡가인 파헬벨의 『캐논 D장조』다. 두드리는 악기의 강렬함이 없이 그저 몇 가닥 줄을 따라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그 선율이 언제까지라도 내 귀와 마음을 적셔주겠다는 듯 쉬지 않고 변한다. 3대의 바이올린이 저마다 다른 성부(聲部)로 같은 주제의 선율을 자유자재로 바꾸며 연주하는 음악 속에는 그들, 그리스 신들이 여전히 우리 곁에 자리할 수 있는 이유가 담겨 있었다. 지상에서의 영속성을 부정할 때가 많지만, 달빛에 실려오는 영원함에의 자신감이 그리 싫지 않다. 그 선율 뒤에 자신들의 무궁(無窮)한 영광을 뽐내는 그리스 신들의 변주곡이 숨어있으니 말이다. 같은 듯 하면서 다르고 다른 듯 하면서도 같은 선율을 지탱시키는 너무도 정교해서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이는 질서는 바로 그리스 신과 인간의 관계, 그 자체를 말하고 있었다.

 하나의 주제 속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변용. 신들의 왕 제우스도 이상적인 남성의 결정체인 아폴론도 그리고 사랑의 기억을 흩뿌리며 날아다니는 에로스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분명 올림포스에 머물던 고대와는 다른 모습으로 숨어있다. 우리가 그들을 찾지 못하고 심지어 그들이 사라졌다고 단정하는 이유도 그들의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재주 탓이다. 때로는 혼란스럽게 보이는 이러한 변신에도 분명 하나의 주제는 있었다.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존재'라는 주제 말이다. 신으로써의 권능에 상관없이, 그리스의 신들은 인간 이상의 인간다움을 추구했다. 신이 인간과 같은 모습을 지닌 존재인 이상, 신성(神性)의 소유는 결국 인간에게도 개방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인들이 그들의 신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강림하는 신들의 모습보다도 그런 신들을 대신해 신들의 자리에까지 올라갈 수 있는 인간의 절대성이었다. 페르세우스, 오디세우스, 그리고 하늘과 땅을 가로지르는 영웅 헤라클레스까지, 바로 그들은 저마다 인간이 지닐 수 있는 미덕의 극치를 대표하고 있었다. 그리스인들이 인간을 초월해야 할 신들에게 인간의 성품을 부여한 것은, 결국 인간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은 신들이 아니라 그 자신뿐이라는 드높은 자부심의 발현에 다름 아니었다.

 하지만 올라오는 인간을 대신해서 그리스의 신들이 땅 위에 현현했기에 중세이래 전 서양을 지배한 기독교 아래서도 인간의 정신은 닫히지 않았으며, 천년의 시간을 보내고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온전히 부활할 수 있었다. 그들이 우리 곁에 있음으로 해서 예술은 외롭지도, 답답하지도 않았다. 갑자기 주어진 예술의 자유 속에서 소재의 빈곤에 고민하던 예술가들을 도와준 이는 하늘로 오르는 인간이 아니라 이 지상의 삶과 예술을 즐기는 그리스의 신들이었다. 로마에 있는 바티칸 박물관의 벨베데레 궁에는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순간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미남자의 표상' 아폴론 상이 있다. 항상 지상에 그 시대의 자신을 만들기 위해 부지런히 돌아다니던 그는, 같은 로마의 시스티나 예배당에 르네상스 시대의 자신의 분신을 만들었다. 바로 미켈란젤로가 그린 최후의 심판에서 그 마지막 날을 주재하는 예수 그리스도였다. 뜻밖의 행운으로 찾아간 로마에서 아폴론 상과 최후의 심판을 보았을 때, 이 책이 들려준 두 절대자의 하나 됨을 수긍할 수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으로 느꼈다. 천년 동안 하늘에 군림하던 신을 인간에게로 모셔 온 르네상스의 힘과 그 시대를 만들어 간 인간들에게 기꺼이 자신을 빌려준 그리스 신들의 인간미를 말이다.

 구석구석 빛이 들어오는 시대가 되어 버린 이제는 그리스 신들이 머물 환상의 공간이 사라졌다고 생각한 나에게 이 책은 미처 알지 못했던 환상의 신대륙으로 향하는 지도와 같았다. 가벼운 산보를 하듯 찾아간 신대륙에서는 고대에 그랬듯, 저마다 주연이 되는 수많은 연극이 무대에 올려지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도 배우와 각본만은 변치 않는 그 연극과 함께 여름을 보냈다. 보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무대 위에 올라간다면 누구라도 배우가 된다. 관객들 역시 이 지상에 신들과 함께 발 딛고 있는 존재이니 말이다. (2001년 여름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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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4-08-24 19:44   좋아요 0 | URL
로렌초의 시종님! 이주의 마이리뷰...
축하드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주헌 선생 저도 참 좋아하는 분인데... 끝 부분이 아주 매력적인 리뷰네요.

starrysky 2004-08-24 21:39   좋아요 0 | URL
저도 마이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
책부터가 님께 아주 잘 어울리는 책이고, 또 그 책에 걸맞는 멋진 리뷰입니다.
앞으로도 계속계속 좋은 일들만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축하드려요!!

urblue 2004-08-24 22:17   좋아요 0 | URL
처음 인사드리네요. (__) 좋은 리뷰입니다. 축하드려요.

로렌초의시종 2004-08-25 00:10   좋아요 0 | URL
바람구두님/ 어찌 이 누추한 곳까지 행차를. 님의 서재에 자주 들르지만 이 천학비재함이 드러날까 두려워 감히 기척을 못했더랬지요. 거듭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주헌 선생, 항상 같은 이야기만 하는 것 같지만 실은 항상 다른 이야기거리를 준비하셔서 매력적이에요. 하지만 때로는 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냥 단순한 글장사로 보이지 않을까 걱정도 돼요. 겉보기에는 이책이나 저책이나 다 비슷해보이는, 그런 사람으로 말이죠.

starry sky님/ 잊지 않고 이리 들러주셨군요. 정말 감사드려요~~~!!! 무엇보다도 압박받던 재정에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아서 다행스러워요. 사실 저는 늘 하루하루가 좋은 일만 있는 거에요. 이렇게 알라딘에서 좋은 분들을 많이 알고 사니까요. 문제는 좀처럼 다잡아질 줄 모르는 이 좁어터진 마음 속 뿐이죠. 책은 여러모로 꽤나 멋진 책이었지만, 제 글은 지금 다시보니 부끄러워요. 하지만 님의 축하는 정말 감사해요......

urblue님/ 이 부족한 글이 님까지 이 누추한 서재로 모시고 말았군요. 이렇게 들러주시고 축하까지 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알라딘의 다른 분들에 비하면 부족한 솜씨라서 리뷰쓰는 게 항상 쉽질 않답니다. 하지만 이렇게 이 리뷰로나마 좋은 분들을 많이 뵐 수 있어서 정말 기뻐요. 축하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반가워요~

꼬마요정 2004-08-25 00:26   좋아요 0 | URL
축하드려요~~~^^*
와~ 정말 잘 쓴 리뷰로군요~~~ 정말 정말 축하드려요~~~^^*

로렌초의시종 2004-08-25 01:09   좋아요 0 | URL
무슨 말씀이세요. 꼬마요정님. 님께서는 이 글보다 훨씬 정갈하고 멋진 글을 꼬박꼬박 올리시면서 말이죠. 완전히 망친 글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너무 멋부리면서 쓴 글이 아닌가 싶어서 뜨끔한 리뷰랍니다. 왠지 뚜렷한 중심이 없는 글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신과 인간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논리적으로 허술한 점이 눈에 띄어서 맘에 걸려요.

꼬마요정 2004-08-26 11:49   좋아요 0 | URL
약간의 논리적인 허술함이 있다하더라도,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다면... 멋진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로렌초의시종 2004-08-26 11:55   좋아요 0 | URL
그렇게 칭찬해주시니 부끄럽고 감사할 뿐입니다. 앞으로는 더 잘써야 겠다는 생각을 해보면서 말이죠......

stella.K 2004-08-27 10:46   좋아요 0 | URL
저도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잘 읽고 갑니다.^^

로렌초의시종 2004-08-27 10:4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스텔라 공주님, 읽기에 너무 난삽하지나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sweetmagic 2004-08-29 15:15   좋아요 0 | URL
너무너무 멋진 리뷰예요 ~
어찌하여 이리도 글을 잘 쓰신단 말입니까 ? 저 같은 사람은 기죽어서 글 못 쓰잖아요 흑흑 추천 입니당..............

로렌초의시종 2004-08-29 16:27   좋아요 0 | URL
무슨 말씀을요~ 스윗매직님. 저보다 잘쓰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전 그냥 잘난척 하려다 앞뒤 안맞고 난삽한 글을 썼을 뿐인걸요. 단지 운이 좋았을 따름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