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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4 - 율리우스 카이사르 (상) ㅣ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4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6년 3월
평점 :
카이사르. 이번 권의 제목이 다름 아닌 그의 이름이었고 그 분량까지도 상 하로 나뉠 만큼 상당한 것이어서 이 인물에 대해 어느 때보다 큰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그의 심모원려(深謀遠慮)를 나 같은 이가 어찌 알리요마는, 카이사르는 그 당시의 로마와 같은 변혁기에 나오는, 이른바 하늘이 낳은 인물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 자신이 그의 자유분방함을 가두는 영웅(英雄)의 자리를 마다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하늘이 채워준 그릇을 그냥 받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남보다는 훨씬 크지만, 역시 그들과 같이 비어있는 자신의 그릇을 홀로 채워나갔다. 그러한 큰그릇을 채우려면 범인(凡人)들이 가진 한두 가지 능력만으로는 가능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쉬는 순간까지도,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데 멈춤이 없었다. 그는 일생동안 자신의 그릇을 채워나갔던 것이다. 특히 기원전 60∼49년에 걸친, 이번 권의 대부분을 할애한 갈리아 전쟁은 저자의 풍부한 자료 제시와 마치 그곳에서 직접 취재하는 듯한 정학한 기술로 카이사르의 격에 맞는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기술과 자료마저도 카이사르가 직접 써서 남긴 '갈리아 전기'가 그 바탕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일분일초가 급한 전쟁터에서 글을 쓰는 그 여유도 여유려니와 자신의 패배까지도 자신의 손으로 직접 그대로 기록하는 그의 솔직함에도 호감이 갔다. 그러나 실제로 카이사르의 패배는 손에 꼽을 정도여서 싸울 때마다 이긴다는 상승장군(常勝將軍)의 칭호가 아깝지 않았다. 말 그대로 생과 사가 오가는 전쟁터의 현장감을 그대로 전하는 그의 손끝에서 카이사르는 수 천년 후의 미래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그 자신을 스스로 창조했다. 더군다나 그가 이룩한 찬란한 승리의 뒤에는 항상 그만의 기민한 정보 수집과 시의 적절한 활용이 있음을 알았을 때 오늘날 강조되는 정보전의 중요성을 기원전의 그 시대에 알고 있었던 통찰력에 새삼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정보의 위력은 그의 '정치적' 전쟁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어 본국에서도 한참 떨어진 전쟁터에서 수도의 정국을 낱낱이 파악하는 예리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던가.
이렇게 빈틈없는 카이사르가 이루려는 야심만큼 허영심도 많은 사람이라는, 허영심이란 다름 아닌 남에게 잘 보이고픈 마음이라는 작가의 새로운 해석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에서 즐겁게 해주었다. 카이사르는 전쟁 내내 문화와 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현지민들에게 과시하는 여러 가지 공사를 벌였다. 현지만에 대한 과시, 곧 허영심과 당장 로마의 우위를 피지배층에게 납득시켜야 하는 당장의 필요성을 동시에 충족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의 이런 다중효과를 노리는 성향 또한 그가 항상 이길 수 있는 키워드의 하나였다. 그가 이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기울여 로마의 밖을 다질 즈음, 안에서는 나날이 위세를 더하고 기세를 드높이는 그의 축출을 위해 조용하지 못했으니, 언제 들어도 결의에 찬 사자후(獅子吼)를 루비콘 강가에서 터뜨린다. "나아가지, 신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우리의 명예를 더럽힌 적이 기다리는 곳으로, 주사위는 던져졌다." 로마의 혼미가 기다려온 위대한 개인, 그 자격의 시험이 시작되는 것인가? (1997. 10. 3∼13, 1997. 10. 13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