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2 - 한니발 전쟁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2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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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은 그 시대 그 나라의 모든 인간의 시험대이자 심판이었다. 로마는 1차 포에니 전쟁에서는 거의 모든 전투를 승리의 함성으로 장식했다. 그래서인지 로마는 순진(?)하게도 승자로써의 전후처리를 그들 특유의 통상적인 방식대로 패자(敗者)인 카르타고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처리했다. 하지만 패배 후에는 결국 로마와 서서히 동화되어가면서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던 지금까지의 나라와는 달리 재전쟁을 일으킨 카르타고야말로 로마의 입장에서는 두 번이나 전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던 독일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 원인을 살핀다면 역시 1차 패전 당시의 카르타고의 손실이 시칠리아에 국한되어 영향이 미미했고, 로마의 전후처리 또한 그들이 아직은 지중해 최고의 강국 자리를 유지하는데 일익을 담당한 듯 했다. 로마의 이제까지의 너그러운 전후처리는 소소한 부족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지 카르타고처럼 실력뿐만 아니라 잠재력 또한 막강한 대국을 상대로 실행할 수는 없는 것이라는 쓰디쓴 교훈을 남겨준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카르타고가 승전국인데다가 그리스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던 로마에 다시 전쟁을 걸 생각을 하지는 못했을 테니 말이다.

 또 이 2차 전쟁은 앞에서 들었던 이유와 동시에 한니발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확신한다. 이 전쟁이야말로 한니발에게는 그의 '존재의 이유'였던 까닭이다. 그는 바로 이 전쟁의, 이 책의, 주인공으로 불릴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그가 2차 포에니 전쟁의 8년 기간 동안 보여 준 여러 차례의 승전은 기존의 전술(戰術)을 획기적으로 바꾸었으며, 천여년의 세월이 흘러간 지금도 세계 각 국 사관학교의 전술 교과에 응용될 정도로 치밀했다. 그러나 이런 수천년 전의 전투가 그 머나먼 세월을 뛰어넘어 내게 더욱 가까이 다가올 수 있게된 데는 수십권의 문헌을 참조해가며 전투의 서술에 생동감을 부여하기 위해 열성을 다한 지은이의 노력도 한 몫을 했다. 이토록 적지(敵地)인 이탈리아에서 연전연승을 거둔 한니발도 겨우 포로의 석방 정도로 한창 강화되고 있던, 로마 최대의 버팀목인 로마 연합의 붕괴를 예상했다는 것에서 그 패배의 말로는 점쳐지고 있었다.

 그러한 결정적인 관점의 실수는 인정하더라도 결국 그는 불세출(不世出)의 명장(名將)이었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심지어는 그를 쓰러뜨린 스키피오의 전술도 한니발의 영향이 지대했다는 사실에서는 드러났듯이 말이다. 또한 이런 두 천재를 각각 한명씩 따로 내려보낸 역사의 공평함에도 아울러 감탄했다. 그렇게 조국을 위기에서 구하고 그 자신의 이름 역시 빛낸 스키피오도 적군의 화살은 피할 수 있어도 타인의 시기와 질투, 모함에서는 벗어날 수 없었다. 그 위태로웠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임에도 돈 몇 푼에 발목이 잡혀 실각했으니 말이다. 전쟁 승리 15년 만에 로마인들은 전쟁의 그 모든 것을 잊은 걸까? 아마 그들은 '잊고 싶어서' 그리 했으리라. 패배의 고통을 멀리하고 승리의 쾌락만을 원했던, 평범한 그들이 버린 것은 스키피오가 아니라 그 악몽(惡夢)같았던 전쟁이었다. 그 망각의 재물이었던 스키피오와 그 악몽의 문을 연 한니발은 같은 해에 그들의 꿈을 마쳤다. (1997. 9. 22∼10. 1, 1997. 10. 1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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