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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3 - 승자의 혼미 ㅣ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3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5년 11월
평점 :
승자는 항상 승리의 기쁨에 취해서 혼미(昏迷)해지는 것이 고금(古今)의 운명인가? 그 법칙 아닌 법칙을 못 벗어난 로마도 결국은 인간의 국가인게다. 결코 책의 분량으로 그 내용을 판가름해서는 안되겠지만, 명색이 한 국가의 격동기를 다룬다는 이번 권이 다른 권에 비해 여실히 얇은 것은 로마가 그 어김없는 운명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더라도 적어도 남들보다는 빨리 깨어났다는 것이다. 바로, 역시 우리가 되돌아볼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그 나라를 이끌었다는 반증이었다. 그 벗어남을 위한 격동의 와중에서 많은 이들이 제물로 삼아진 것은 역시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 중에서도 그라쿠스 형제에게는 그들이 대표하는 집단, 평민의 권리보장을 위한 권한과 열정이 있었다. 오늘날의 우리와 아쉬움과 불행은 주어진 권한은 부족하지 않음에도, 자신을 희생해서 자신에게 부여된 책무를 수행하는 적극적인 이의 부재(不在)에 있다.
로마는 경제 사정이 지금의 우리처럼 무척이나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힘겹게 승리한 점령지 카르타고와 그 밖의 점령지에서 밀려드는 값싼 농산물로 당시 로마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자영농의 몰락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폭발적으로 증가한 몰락 농민, 곧 실업자가 사회문제화 되는 것은 오늘날과 같았지만 바로 그 해결의 전면에 나서는 지도자, 그라쿠스 형제가 있었다는 것은 로마의 행운이요, 그들의 나라가 제국의 자격이 있다는 증거였다. 물론 그라쿠스 형제의 앞날은 순탄치가 않았다. 먼저 형인 티베리우스 그라쿠스가 오직 평민만을 생각하는 과격한 입법 활동의 와중에, 날로 커지는 그의 세력에 위협을 느낀 귀족 세력의 음모로 사실상 '공개 처형'되었다. 다행히도 몇 년이 지난 후 나타난 '다음 타자' 가이우스 그라쿠스는 형의 그러한 최후에서 배운 점이 있어서인지 온건함을 표방하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귀족과 평민 사이의 격차로 인해 분열의 양상까지 보이기 시작한 국가의 유지를 위한, 개혁이라는 목표의 달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온건파라고는 해도 이미 그의 정책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귀족 세력의 반발을 살 수 밖에 없었다. 그 중에서도 귀족들의 대농장 경영으로 인해 나날이 늘어나는 빈농(貧農)들에게 농지를 분배하기 위한 농지법(農地法)과 전 이탈리아 반도와 로마의 진일보된 단결을 위한 시민권법(市民權法)이 있었다. 그렇게 혼미에서의 탈출을 위해 노력하던 가이우스 그라쿠스마저도 귀족들의 '온건한' 음모로 호민관(護民官)에서 낙선하고 급기야는 형과 같은 운명을 밟아 암살되고 말았으니 안타깝기 더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그들의 죽음 후에 농지법이 폐기됨으로써 귀족으로의 부의 집중이 심화되어 하류 계층의 증가라는 사회 문제를 낳았으며, 시민권법은 그 폐지에 불만을 품은 동맹시들의 반란이 일어나고서야 재입법되었으니 오직 조국 로마의 앞날을 생각한 그라쿠스 형제의 선견지명에 감탄할 뿐이었다. 그러나 감탄하는 것도, 그런 이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결국은 '후세의' 우리다. 그들 이후에 등장한 술라는 이미 시대의 흐름인 원로원 체제의 균열에 저항하는 강경한 태도가 내 마음을 끌지 못했다. 이런 혼란의 시대에서 평민 연 수입의 10배에 해당하는 미식(美食)을 즐기며 지금도 그 이름을 호화 미식의 대명사로 남긴 루쿨루스 같은 귀족들의 존재는 술라의 목소리를 더욱 공허하게 만들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귀족들의 존재는 없는 것으로 한다고 해도 로마의 번영을 위해 노력하며 수많은 승전을 거듭한 폼페이우스는 왜 시오노가 말하는 로마 역사의 '위대한 개인'이 될 수 없는 것일까? 그 위대한 개인은 누구란 말인가? (1997. 10. 1∼3, 1997. 10. 3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