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1인치의 풍경… 그곳을 알려주마
추천! 1박2일 주말여행

▲ 마법의 정원처럼 환상적으로 펼쳐진 보성 녹차밭. 김영근기자 kyg21@chosun.com

‘소원 빌러 오세요’(대구광역시의 ‘팔공 기원 투어’), ‘골굴사에서 선무도 체험!’(경상북도의 ‘신라 천년의 역사 속으로’), ‘우리 고장에 오셔서 형제간 우애를 떠올려 보세요’(충청남도의 ‘의좋은 형제의 고장, 예산’)….

한국관광공사가 발행한 ‘내나라 여행 함께 가꾸기 답사보고서’에 실린 이색 여행 코스다. ‘보고서’에는 주5일 시대를 맞아 집집마다 ‘어디로 떠날까’가 고민인 요즘, 손님을 끌려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제안한 ‘우리 고장 최고의 여행 코스’가 실려 있다. 모두 1박2일 일정으로 큰 주제 아래 여행지를 묶어 코스를 짰다. ‘검증’ 작업도 거쳤다. 강원·전남·충북·충남·경북·경남·경기도를 비롯해 인천·대전·광주·대구·울산·부산시 등이 추천한 총 30군데의 여행 코스 대로 ‘내나라 여행 답사단’이 둘러보고 평가를 내렸다. ‘내 나라 여행 답사단’은 한국여행작가협회·네이버 카페 ‘여행매니아’·다음 카페 ‘모놀과 정수’와 ‘일상탈출’·싸이월드 클럽 ‘2030 추억만들기’ 회원 63명으로 구성됐다. ‘보고서’ 중 일부 내용을 발췌, 요약해서 소개한다. 한국관광공사는 ‘내나라 여행 함께 가꾸기 답사 보고서’를 올 상반기 중 책자로 정리해 펴낼 예정이다.

▲ 순천만 갈대밭에 갔다면 탐사선을 타보자. 조선영상미디어 김영훈기자 adamszone@chosun.com

인천 지붕 없는 박물관 강화도를 찾아서

● 인천시 추천코스: (제1일)강화역사기행(초지진·덕진진·광성보)→점심식사(밴댕이 구이·인삼 무침)→전등사→강화역사관→곤충농장→고인돌 관람→(제2일)석모도→보문사→점심식사(회)→동막 갯벌체험

● 평가단 총평: 안내판만 보면 지루하다. 문화해설사를 활용, 당일이나 1박2일 버스투어가 있으면 좋겠다.

강화도 서쪽과 석모도·주문도·불음도 등 섬을 연결하는 낙조 유람선도 운영해 볼만하다. 동막해변보다는 민머루 해수욕장 해수욕과 갯벌체험을 추천한다. 강화대교로 들어와 →고려궁지·강화향교→곤충농장→고인돌→강화산성·강화역사관→광성보·초지진·덕진진 순으로 둘러보자.

경기도 수원·용인·여주·광주 역사기행 및 문화유산 답사

▲ 고요하고 맑은 신륵사 풍경. 조선영상미디어 허재성기자 heophoto@chosun.com
●경기도 추천코스: (제1일)화성행궁·수원화성→한국민속촌→국악당 상설공연→경기도 박물관→(제2일)신륵사→목아불교박물관→세종대왕릉→명성황후 생가→분원백자관

●평가단 총평: 역사·문화만 가지고는 여행이 자칫 건조해 질 수 있다. 여주지역의 풍부한 그린 투어(농촌체험)를 관광 코스에 끌어들이면 어떨까. 이틀째 신륵사 새벽풍경을 감상하고 황포돛배 타보기에 나서도 좋을 듯.

충청북도 청풍명월의 고장서 행복한 여름 휴가를

● 충청북도 추천코스: (제1일)단양 온달 동굴, 고구려 온달 전시관 혹은 구인사→남한강 래프팅→저녁식사(마늘정식·곤드레정식·한방오리 등)→단양 도담삼봉 야경·수변무대, 장미터널 산책→(제2일)단양 장회나루유람선→제천 산야초 마을과 솟대공원→청풍문화재단지서 비빔회나 매운탕으로 점심→청풍랜드

● 평가단 총평: 구경거리와 체험거리가 잘 어우러진다. 단, 구인사는 오르막길 경사가 심해 가족 여행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산야초 마을은 아직 관광객을 맞을 준비가 부족한 듯 보인다.

대전 첨단 과학의 도시 대전을 찾아서

● 대전광역시 추천 코스: (제1일)국립중앙과학관등→점심식사(구즉묵)→화폐박물관·지질박물관·한국항공우주연구원·한국 기계연구원 등 방문→금병산→유성온천→(제2일)갑천변 산책→장태산→뿌리공원

● 평가단 총평: 교육과 휴식을 테마로 잡은 짜임새 있는 코스. 그런데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한국기계연구원은 예약한 단체만 입장할 수 있다. 계룡산이 빠져 아쉽다.

충청남도 역사와 경관이 잘 보존된 의좋은 형제의 고장 예산

● 충청남도 추천: (제1일)예당저수지(‘의좋은 형제’ 산책로 등)→점심식사(민물어죽·붕어찜)→추사고택→예산 전통옹기 만들기→덕산온천→(제2일)남연군 묘소 답사→화전리 사면석불→점심식사(삽다리 더덕정식·산채비빔밥)→충의사→한국고건축박물관

● 평가단 총평: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의좋은 형제’ 이야기를 테마로 삼았지만 차라리 ‘충효의 고장’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듯 하다. 수덕사를 여행 코스에 포함시키고 덕산장이나 예산장에서 더덕 등 특산물 쇼핑에 나서도록 해도 좋겠다.

▲ 광주 무등산 자락의 의재미술관. 김영근기자

광주 ‘민주의 성지 광주를 찾아서’

● 광주광역시 추천: (제1일)국립5·18묘지→중식(보리밥)→도청, 5·18광장→5·18 기념 공원→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충장로 야경→(제2일)양동시장→아침식사(추어탕)→김대중컨벤션센터→김대중홀→5·18자유공원·영창체험→점심(떡갈비)→포충사

● 평가단 총평: 민주화 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느낄 수 있는 코스. 단, 즐길거리가 하나도 없어 지루할 수 있다. 순례객이 아니라 관광객을 위한 코스가 없다. 소쇄원이나 의재미술관 등을 추가하면 어떨까.

전라남도 녹색의 땅 전남의 다양한 체험을 찾아

● 전라남도 추천 코스: (제1일)구례(화엄사, 지리산 반달곰 사육장, 농업기술원 야생화단지 등)→점심식사(산채비빔밥)→곡성(섬진강 기차마을, 도림사 계곡)→저녁식사(곡성 참게탕)→(제2일)아침식사(은어매운탕)→순천(낙안읍성, 순천만 갈대밭 등)→점심식사(짱뚱어 탕)→보성녹차밭(율포해수욕장)

● 평가단 총평: 농업기술원 야생화단지는 10월이면 꽃이 지기 때문에 대체 코스가 필요하다. 곡성-구례-순천-보성은 더 이상의 관광지 개발이 필요없을 정도로 충분히 매력적인 곳이다. 그런데 이번 1박2일 코스에 포함된 볼거리는 워낙 유명세를 타는 곳들이라 진부해 보일 수 있고, 제대로 구경하려면 2박3일도 모자라는 일정이다.

대구 팔공 기원 투어

▲ 너무나도 유명한 숲길,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길. 조선영상미디어 정정현기자 rockart@chosun.com
● 대구광역시 추천코스: (제1일)팔공산→점심식사(산채 비빔밥)→팔공산 동화사→케이블카 타고 올라가 팔공 스카이라인 감상→저녁식사(한정식)→교동 주얼리 타운→야시골목→(제2일)스파밸리(온천욕·바데풀 등 체험)→고령 대가야 박물관·우륵박물관

● 평가단 총평: 팔공산 ‘갓바위 약사여래불’을 앞세운 듯한 ‘기원 투어’란 테마는 적절할까. 물론 불교신자가 아니라도 뜨거운 기도 현장에서 가족애를 느껴볼 수 있다. 동인동 찜갈비 골목, 갓바위 관광단지 두부마을, 막창 골목뿐 아니라 밤 9시 이후 열리는 칠성시장 해산물 포장마차 등도 적극 알릴 필요가 있다.

경상북도 신라 천년의 역사 속으로

● 경상북도 추천코스: (제1일)점심식사(안강 매운탕)→양동민속마을→경주(천마총·안압지·첨성대)→골굴사(선무도 수련·참배·공양 등)→(제2일)아침예불→좌선→산책 및 등산→감은사지 답사→이견대 및 문무대왕릉→석굴암→불국사→점심식사(향토 쌈밥)→민속공예촌

● 평가단 총평: 추천 코스 동선이 딱 좋다. 그러나 워낙 스케일이 방대해서 문제다. 골굴사 템플스테이는 선무도를 접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여행상품이다. 아예 골굴사에 초점을 둔 1박2일 산사 체험 여행도 좋을 듯 하다.

부산 역사 탐방

● 부산광역시 추천코스: (제1일)부산도착 점심식사(갈비·회덮밥)→태종대→자갈치시장→UN기념공원→부산박물관→광안대교 경유 해운대 이동→부산 아쿠아리움→(제2일)해동 용궁사→누리마루 APEC하우스→동래→점심식사(동래파전, 낙지볶음, 해물탕)→범어사

● 평가단 총평: 체험 아이템을 발굴할 필요가 있다. 자갈치 시장-남포동-국제시장을 묶어 부각시키고 달맞이 고개, 낙동강 하구 둑 코스도 연계시켜 볼 만 하다.

울산 역사유적 및 옹기 문화체험 탐방

● 울산광역시 추천코스: (제1일)고래박물관→점심식사(장생포 고래고기)→진하해수욕장→서생포 왜성→간절곶→(제2일)간절곶→외고산 옹기마을→울산대공원→문수축구경기장→월드컵기념관

● 평가단 총평: ‘역사 여행’다운 코스가 많이 빠졌다. 반구대, 천전리 각석, 망해사지, 처용암까지 일정에 넣으면 좀 더 주제에 충실해 질 듯 하다. ‘옹기 문화체험’의 경우 여행 테마로 삼기에는 무리인 듯 보인다.

강원도 횡성·평창군 내 몸이 숨쉬는 웰빙 여행

●장송모 도자 연구원: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창봉리. 도자기 만들기 체험을 해 볼 수 있다. (033)342-0011, www.jangsongmo.com

●방아다리 약수: 평창군 진부면 척천리 오대산 국립공원 내. 철분 함량이 높아 위장병, 피부병에 좋다. 발견된 지 얼마 안 된 ‘신약수’로 넘어가는 산길도 좋다. (033)336-3145

●허브나라: 평창군 봉평면 흥정리. 테마별 허브 정원을 갖추고 있다. 진입로가 좁고 길어, 주말이면 정체가 빚어지곤 한다. (033)335-2902, http://herbnara.com

●풍수원 성당: 1907년 완공된 로마네스크 양식. 산책하기 좋다.

●평가단 총평: 몸과 마음이 푹 쉴 수 있는 강원도 특유의 웰빙 체험 코스. 섬강에서 민물고기 잡기와 모래밭 휴식, 횡성호 드라이브, 한국자생식물원 방문, 상원사·월정사 답사나 금당계곡을 추가해도 좋다.

경상남도 합천·창녕군·김해시 찬란했던 불교 문화와 우포늪 생명탐구

● 우포늪 생태공원: 창녕군 유어면 대대리. 우포·목포·사지포·쪽지벌 등 4군데의 늪지로 구성돼 있다. 480여 종류의 식물이 서식하는 이곳에선 천연기념물인 노랑부리저어새도 만날 수 있다. 각종 체험 프로그램은 단체를 대상으로만 진행된다. (055)532-7856

● 김해 클레이아크 미술관: 김해시 진례면 송정리 도예마을. ‘흙(클레이)과 건축(아크)’의 만남. 4400장의 도자 타일로 꾸민 미술관이 관객을 맞는다. 산책로도 조성돼 있다. 직접 만든 작품을 구워 가는 비용이 1인 2만원으로 비싼 편이다. (055) 340-7000, www.clayarch.org

● 평가단 총평: 추천 코스에 합천 해인사뿐 아니라 관룡사나 은하사를 추가하면 좋을 듯 하다.

김해에는 이밖에도 신어산·무척산·동림사·한옥체험관·가야랜드 등 볼거리가 많다. 이밖에 홍류동 계곡과 황매산 등을 연계해도 된다.

이번 추천코스는 전반적으로 1박2일에 다 둘러보기는 무리다. 우포늪을 제외하고 합천, 김해지역 관광코스로 짜거나 김해와 함안군의 가야문화 둘러보기로 구성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l 조선일보 정리-정재연기자 whauden@chosun.com l 2007.02.08 11:31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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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7-02-08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아니..너무 아름다운 곳이 많아요..보성녹차밭은 이리보니 그림같습니다..초록 비닐 하우스같기도 하구요..
쭈욱쭉 뻗은 전나무길도 멋스럽구요..

짱꿀라 2007-02-08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 오대산 월정사 또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죠. 눈 호사 잘하고 갑니다.

외로운 발바닥 2007-02-09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꽃님/ 보성차밭은 항상 가보고 싶었는데 멀어서 항상 주저하다가 가까운 다른 곳으로 갔던 것 같아요. 전역하기 전에 꼭 한번 가볼 생각입니다. ^^
산타님/ 나중에 유적답사나 역사기행 테마로 여행가려면 산타님께 자문 꼭 구할께요.^^

우기부기 2007-02-25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갈래?
 

"내가 삼성맨이라고?"-"손 벌릴 곳은 삼성밖에 없다더니…"

[오마이뉴스 이민정 기자] "내가 중앙일보 출신이라고, 유추·확대 해석해서 '삼성맨'이라고까지 하는데, 그런 상상력을 발휘해서 삼성 그룹과 연관짓는 것은 언론의 도리가 아니다. 그동안 <시사저널>은 삼성을 비판하는 기사를 수없이 내보냈다. 나는 직업 언론인이다." (금창태 사장)

"금창태 사장은 공식석상인 편집회의에서 '언론사가 힘들 때 마지막으로 가서 손 벌릴 곳은 삼성밖에 없다, 나는 중앙일보 사장을 지냈기 때문에 삼성 그룹에 지분이 있다. 언제든지 삼성에 가서 돈을 끌어올 수 있다. 그러니 삼성에 대한 기사를 쓸 때는 제발 조심하라'고 말했다." (문정우 전 편집장)


창과 방패.

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 시간 차이를 두고 연이어 열린 두 곳의 기자회견은 해명과 반박의 연속이었다.

▲ 삼성그룹 관련 기사 삭제건으로 시사저널 노조가 '편집권 사수' 농성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직장폐쇄 조치로 맞섰던 금창태 사장 등 시사저널 경영진이 공식입장을 밝히기 위해 6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2007 오마이뉴스 남소연
▲ 6일 기자회견에서 금창태 시사저널 사장이 반박 자료로 제시한 '삼성'을 다룬 시사저널 커버스토리.

ⓒ2007 오마이뉴스 남소연


금창태 <시사저널> 사장은 이날 오후 2시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해 6월 삼성 그룹 관련 기사 삭제부터 직장폐쇄까지 231일간의 노사 갈등, 자신과 삼성 그룹과의 유착 의혹 등을 해명했다.

금 사장은 문제가 된 삼성 그룹 관련 기사에 대해 ▲소스의 신뢰성 ▲기사에서 거론되는 당사자들의 반론이 반영되지 않은 점 ▲사실의 왜곡 등의 이유를 들어 삭제의 배경을 밝혔다. 또한 "대표이사 겸 편집인에게 편집에 대한 권한은 핵심적인 것"이라며 노조의 편집권 독립 요구를 일축했다.

이에 <시사저널> 노동조합은 금 사장의 기자회견 직후 같은 건물 18층 전국언론노동조합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금 사장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안철흥 노조위원장은 금 사장의 기자회견에 대해 "기사 삭제에 대한 금 사장의 해명을 듣는 자리일 뿐이었다"며 실망감을 나타냈다.

두 진영은 문제가 된 기사 삭제 당시 정황을 두고 엇갈린 주장을 폈다. 금 사장은 "기사를 검토한 끝에 기사를 보류하고 철저한 검증을 거친 후 다시 논의하자고 했다"고 주장한 반면 기사를 작성한 이철현 기자는 "금 사장이 삼성 그룹 쪽의 전화만 받고는 '기사를 안 봐도 안다'며 내용을 묻지도 않은 채 삭제를 종용했다"고 반박했다.

'2인자 이학수의 힘, 너무 세졌다'는 기사를 쓴 이 기자는 "이학수 삼성 부회장이 주요 금융계열사 최고재무책임자(CFO) 인선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내용"이라며 "대단한 특종이거나 기가 막힌 기획도 아니고, 두 페이지 반짜리 기사라 논란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금창태 사장... "삼성 기사, 검증되지 않아 삭제"

 
▲ 삼성그룹 관련 기사 삭제건으로 시사저널 노조가 '편집권 사수' 농성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직장폐쇄 조치로 맞섰던 금창태 사장 등 시사저널 경영진이 6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07 오마이뉴스 남소연
금 사장은 이날 미리 준비한 기자회견문을 통해 "검증되지 않은 기사가 나갈 경우 기사에서 거론되는 사장들의 명예훼손소송 등이 예상됐다"며 "이런 사태를 예방하려고 (이윤삼 당시) 편집국장과 수차례 협의했으나, 편집국장은 기사를 인쇄소에 넘겨 버린 뒤 사장과 회장의 전화를 받지 않고 퇴근해 버렸다, 편집인의 직무상 권한으로 인쇄소에 연락해 기사를 빼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금 사장은 편집권에 대해 "편집에 대한 책임을 지는 편집인 겸 대표이사에게 그 책임은 핵심적인 것"이라며 "기자들의 주장대로 언론사의 대표이사 겸 편집인에게 편집에 관한 권한이 전혀 없다면, 경영인은 사무실 관리, 급여지급, 오보배상금 지급 등 행정처리만 해야 하는 것이냐"며 따져 물었다.

금 사장은 "노동조합은 단체교섭 도중 일방적으로 파업을 선포하고, 회사 사무실과 비품, 통신시설 등을 이용해 편집인과 편집장(직무대리), 비노조원들이 발간하는 <시사저널> 제작을 방해했다"며 "비노조 편집위원들과 경영진을 비방하고, 촛불시위 등 온갖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이어 "회사가 파업 후 2주일 이상 인내하며 수차례 불법행위 중지를 노조에 호소했지만, 불응해 부득이하게 노조원의 사무실 출입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금 사장은 이날 시사저널 사태 이후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연 것이었지만 기자들의 질문을 제한한 탓에 기자석에서는 "답변을 제대로 하지 않을 것이면 기자회견을 아예 열지 말라"고 쓴소리가 터져나왔다.

기자들은 "애초 삭제된 기사를 읽지 않았다고 했다", "삼성 그룹과 금 사장간 유착 관계가 있는 것이냐"고 질문했고, 금 사장은 "이번 사태의 본질이 아니다", "다른 질문을 해달라", "질문을 서너개만 받겠다"고 즉답을 피했다.

금 사장은 기사를 읽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 "잘못 알았다, 어떻게 편집인이 기사를 읽지도 않고 기자들을 만나겠느냐"며 "이 사태의 본질은 이 기사로 인해서 타인의 법익을 침해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라며 답변을 피했다.

또한 대체 편집위원이 제작한 900호 기사 중 영국 국영방송 BBC의 보도를 표절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편집위원이 기사를 쓰기 위해 BBC 본사와 이메일을 주고받았고, 본사가 기사를 잘 다뤄달라고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노동조합쪽 반박..."같은 취재원-다른 기사, 잘 썼다고 하시더니..."

금 사장의 기자회견 직후 열린 노조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금 사장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다음은 금 사장의 해명에 대해 이철현 기자, 안철흥 노조위원장 등이 반박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기사를 보류하고 철저한 검증을 거친 후 다시 논의하자고 했다?

이철현 기자 "기사 삭제 전 불러서 기사에 대해 한 마디 언급도 하지 않고, 내용도 묻지 않았다. '기사를 아시냐'고 물었더니 '삼성으로부터 들어서 안 봐도 기사를 안다'고 말했다. 익명성을 지적했는데, 그 전에 '삼성 구조본 대해부'라는 기사를 썼을 때 금 사장은 '기사 잘 썼다, 아슬아슬 잘 피해서 썼다'고 말했다. 당시 취재원과 이번 기사의 취재원이 동일하다. 거대자본을 취재하면서 취재원을 어떻게 다 공개할 수 있겠나. 현실을 이해해달라. 반론기회가 없었다고 하지만, 마감 전 삼성쪽에 전화를 해서 담당자 의견을 듣고 싶다고 했는데, (삼성쪽은) 논박이나 해명이 아닌 삭제를 위해 움직였다. 언론계 선배에게 배신감까지 느낀다."

▲ 6일 시사저널 노조의 금창태 사장 반박 기자회견에서 금 사장에 의해 삭제된 '삼성' 관련기사 1차 데스킹을 맡았던 장영희 기자가 "시사저널에서 '삼성'을 다룰 때마다 내부갈등을 빚어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 자료를 들고 있는 이가 "2인자 이학수의 힘, 너무 세졌다"라는 제목의 해당기사를 작성한 이철현 기자.
ⓒ2007 오마이뉴스 남소연
안철흥 노조위원장 "부적절한 항변이다. 금 사장은 삼성 그룹으로부터 전화를 받자마자 이윤삼 당시 편집국장을 불렀다. 관련 기사를 보기 전이었다. 이 편집국장은 '아직 기사를 보기 전이라 기사를 보고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금 사장은 이 기자를 불러 이학수 삼성 부회장과의 친분을 들어 기사를 쓰지 말라고 부탁했다. 취재 기자에게 사장 겸 편집인이 해당 기사를 보기 전에 기사를 쓰지 말라고 부탁한 것은, 금 사장 본인이 이미 인정한 사실이다."

-편집국장이 전화도 받지 않고 퇴근해버렸다?

반박자료 중 "기사 삭제를 결정한 회의가 열리던 그 시간, 이윤삼 편집국장은 평소대로 편집국에서 야근중이었다. 금 사장은 그를 회의에 부르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금 사장은 회의 후에도 이 편집국장에게 기사 삭제 사실을 통보하지 않았다."

-노조가 파업 이후 잡지 제작을 방해했다?

안철흥 노조위원장 "시사저널 편집국은 충정로 1가 청양빌딩이다. 대체 편집국은 용산 서울문화사 건물 별관이다. 우리는 청양빌딩 편집국에서 대화 촉구하면서 대기중이었고, 사측은 별도의 사무실을 구해서 잡지를 제작했다. 우리가 잡지 제작에 간섭하거나 제작을 방해한 적이 없다. 사무실 비품을 쓰지 말라고 했을 때 우리는 개인 노트북을 갖고 와서 썼다. 회사 업무 방해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평소 시사저널이 삼성 그룹에 대해 쓰지 못한 기사가 없다?

문정우 전 편집장 "금 사장은 공식석상인 편집회의에서 '언론사가 힘들 때 마지막으로 가서 손 벌릴 곳은 삼성밖에 없다, 나는 <중앙일보> 사장을 지냈기 때문에 삼성 그룹에 지분이 있다. 언제든지 삼성에 가서 돈을 끌어올 수 있다. 그러니 삼성에 대한 기사를 쓸 때는 제발 조심하라'고 말했다. 경영진이 그렇게 말하면 편집자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것 때문에 이윤삼 전 편집국장도 많이 힘들었다."

한편 MBC TV 시사프로그램 < PD수첩 >은 이날 밤 11시 <시사저널> 노사간 갈등, 삼성과 관련된 사안에 침묵하는 언론 등을 다룰 예정이다.

/이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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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7-02-07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전에 PD수첩을 봤다. 섬뜩하기도 하고, 가슴이 답답하기도 했다.
정치권력이 아닌 경제권력에 의한 사실상의 검열...
지금은 삼성이 이기는 듯 보이지만 결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을 것이다. 삼성이 가진 저력과 힘, 우리나라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걸맞는 가치관을 갖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삼성에도 더 이익일텐데 왜 그렇게 삼성에 대한 비판에 결벽증적인 증세를 보이는지 모르겠다.

PD수첩 끝부분에 나온 금사장의 인터뷰 부분은...정말 가관이었다...

초은하단과 행성 2007-02-07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크빌이 봉건 체제를 무너뜨리고 왕을 폐위시킨 민주주의가 상인과 자본가들에게 무릎꿇는 것을 의아했다고 하는데, 왕으로 대변되는 정치권력의 가시적 폭력보다 자본으로 대변되는 경제권력의 비가시적 폭력이 사람들의 자발적 복종을 유도함으로써 저항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민중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들은 당연히 민중의 통제 아래 놓여져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한국 최고의 권력이라 해도 틀리지 않아 보일 삼성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가능해질 때 한국민주주의도 진전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걸 보면 조금 암담하게 느껴지는군요.

외로운 발바닥 2007-02-08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D수첩을 보니 불가능한 것이 없어 보이는 삼성의 힘에 섬뜩함이 느껴지더군요. 그런 힘앞에 맞선 자들은 아직까지는 모두 비참하게 패배한 것 같네요. 삼성에 대한 민주적 통제...아직은 요원하지만, 결국은 그런 방향으로 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번 사태도 그 과정 중의 하나겠지요. 아무쪼록 시사저널이 짭퉁사태의 아픔을 딛고 새롭게 태어났으면 좋겠습니다.
 
프리즌 브레이크 시즌 1 박스 세트 (6disc) - 슬림케이스 + 아웃케이스
프레드 거버 감독, 도미닉 퍼셀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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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접하게 된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 살인누명을 쓰고 사형선고를 받은 형을 탈옥시키기 위하여 동생이 일부러 은행 강도를 저지르고 감옥에 들어가 형과 함께 탈옥을 노린다는 다소 엉뚱한 설정의 프리즌 브레이크는 처음 보는 순간부터 보는 이를 완전히 몰입하게 한다. 집에서 하루에 에피소드 4-5개씩을 볼 때마다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 새벽에야 잠자리에 들기가 일쑤였고, 계속해서 볼 수록 ‘이제 남은 에피소드가 얼마 없어 아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링컨이 살인 누명을 썼고, 그에게 누명을 씌운 집단 배후에 거대한 권력이 있다는 것, 그리고 스코필드가 그의 형과 함께 탈옥하기 위하여 치밀한 계획을 세워 감옥에 들어간 다음 하나씩 그의 계획을 실행해 나간다는 정도만 알고 자세한 것은 직접 보기 바란다. 절대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감시되는 감옥이라는 극한 상황, 악질 간수와 예측불가능한 동료 수감자들, 그리고 살인누명을 씌운 배후세력의 방해라는 온갖 상황을 극복하고 스코필드가 어떻게 그의 형 링컨과 불가능해 보이는 탈옥을 감행하게 되는지 기대하시라...

 


왼쪽부터 티백, 링컨아들;;,아부루찌, 새라 텐크레디, 링컨, 켈러먼 요원, 스코필드,

간수장 벨릭, 베로니카, 교도소장, 수크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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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2-07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재미 있나요. 탈옥 이야기면 상당히 긴박감이 있을 것 같은데....... 또한 재미도 있을 것 같구요.

외로운 발바닥 2007-02-08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강추!!!입니다. 감옥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아이들이 보기에는 바람직하지 않은 장면이 꽤 있지만, 두분이 같이 보시기에는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

짱꿀라 2007-02-08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서배 들어가겠습니다.
 
국가의 역할 - 장하준이 제시하는 '우리 모두를 위한 발전과 진보의 경제학'
장하준 지음, 황해선, 이종태 옮김 / 부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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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대략적으로 말할 때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갈등을 조절하고 국민 생활을 향상시켜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 국가는 다양한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국가의 역할은 작으면 작을수록 좋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정치인들은 선거공약으로 작은 정부를 내세우고 언론에서는 정부의 비대성을 공격한다. 이러한 작은 정부에 대한 믿음의 연장선에는 규제에 대한 거부감, 규제가 없이도 시장이 스스로 잘 굴러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소위 시장만능주의의 신자유주의적 국가관이다. 그러나 우리가 무비판적으로 어느새 진리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국가관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장하준 교수는 이 책을 통하여 전세계적으로 이론의 여지없이 진리처럼 받아들여지는 신자유주의적 세계관이 사실은 학문적으로도 허술하기 짝이 없는 잘못된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을 논증한다. 단적으로 신자유주의가 학문적으로 기초해 있는 ‘자유시장’, ‘국가의 개입’이라는 개념 자체가 현실과 동떨어진 가정에 불과하고, 그렇기 때문에 무수한 변수가 작용하는 현실을 신자유주의로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적 성공, 북유럽이나 프랑스의 사례, 그리고 신자유주의를 도입한 이후 저개발국가들의 경제파탄 등 신자유주의 이론이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사례가 존재한다. 아니, 신자유주의가 설명할 수 있는 사례는 오히려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게다가 지금 그토록 신자유주의를 부르짖는 미국이나 영국도 역사적으로는 신자유주의와 정반대되는 정책을 실시했다는 사실은 결국 무엇을 의미할까. 이론이 현실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고 현실의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은다면 그 이론은 잘못된 것이고 수정 내지 폐기가 필요하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은 말 그대로, ‘신화’에 불과한 것이다.


지적재산권을 경제학적으로 분석하여 현재의 제도가 지나치게 발명자에게 독점권을 인정해주고 있다고 비판한 부분도 무척 인상 깊었다. 발명자에게 당연한 대가가 주어져야 한다는, 절대적인 믿음 역시 지적재산권도 사회 제도의 하나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하나의 이론에 불과한 것이지 결코 절대적인 진리가 아님을 다시 한 번 인식할 수 있었다. 공기업에 관한 부분에서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공기업 부문이 비효율적인 것이 아니고, 특히 외국자본에 의한 민영화의 경우에는 공기업이 주인이 없어 방만하다는 지적에서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는데, 민영화된 포항제철과 관련하여 최근 인수합병 문제가 제기되고, 외국 자본에 넘어간 은행들이 국가경제에 기여하기 보다는 손쉬운 가계대출에 기대고 있다는 등의 현실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하겠다. 다만, 공기업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철밥통 내지는 낙하산인사라는 점에서 공기업에 대한 내적 규제나 중립적 인사도 함께 정비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 책은 장하준 교수가 그동안 주장해 온 것을 이론적으로 논증한 것이기에 전반적으로 조금 딱딱하게 느껴진다. 조금은 전문적이고, 경제학적 기본지식이 없으면 이해가 어려운 부분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허술함을 인식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역사적으로 볼 때는 신자유주의도 한 때의 경제학적 흐름에 불과하고 이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신자유주의의 신화...이제는 신화의 지위에서 내려올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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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은하단과 행성 2007-02-05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가가 시장에 개입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그들과 유착하는 기업들이 문제가 생길 때는 그 기업들을 위해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는 모순된 주장을 하는 것과, 신자유주의는 약소국의 주권을 약화시키는 것과는 반대로 강대국의 주권은 오히려 강화시키는 역할도 하는 등, 신자유주의는 자체로 모순덩어리인데도 이걸 떠받드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게 문제입니다.
자신들도 신자유주의의 희생자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신자유주의는 글로벌 스탠다드라느니 한국사회가 그 길로 가야 한다느니 하는 황당한 소리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읽으면 좋은 책일 것 같군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외로운 발바닥 2007-02-07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자유주의...정말 지금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화두인 것 같습니다. 행성님 말씀처럼 신자유주의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도 별 생각없이 신자유주의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신자유주의의 본질을 알면서도 이를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이익을 보는지 여부와 상관없이...개인적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지만...참 뻔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
 
우방과 제국, 한미관계의 두 신화 - 8.15에서 5.18까지
박태균 지음 / 창비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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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으로서의 미국

해방 이후 우리의 현대사에서 미국은 항상 정치, 경제, 사회 등 우리사회 전반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쳐왔다. 광복, 한반도의 분단, 그리고 이승만, 4. 19, 5. 16, 서울의 봄 등 정권 교체기마다 미국은 철저히 우리정부, 국내의 동향을 분석하여 한국의 정세가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여 국내 정치에 개입해왔다. 여기서 미국의 국익이란 북한에 대응하는 안정적인 국가를 유지하는 것이었고 그에 따라 미국은 반공정책을 위주로 하는 독재정치를 불안정한 민주정부보다 선호했다. 이와 같은 미국의 모습들은 이 책의 제목 중 ‘제국’에 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우방’으로서의 미국

다른 한편으로 미국은 ‘우방’의 모습도 갖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일본과 전쟁을 하여 승리한 것이 주요 원인이 되어 우리는 일제로부터 독립을 할 수 있었고, 그 이후 계속하여 주둔해온 미군은 6. 25. 전쟁 때 우리(여기서는 남한)와 함께 싸워 북한에 의한 통일을 막아 주었다.

휴전 이후 미국은 막대한 원조로 우리가 경제적으로 성장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그 이후 미군은 계속 한국에 주둔하여 북한의 전쟁도발을 억제해 주고 있다...

뭐, 이 정도가 우방으로서의 대표적인 미국의 이미지가 아닌가 싶다. 물론 이와 같은 우방으로서의 미국의 모습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와 같은 이미지들 때문에 우리 국민 중 많은 사람이 항상 미국에 빚진 듯한 느낌을 갖고, 미국이 우리의 굳건한 동맹이라는 생각을 한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이와 같은 두가지 양면적인 미국의 모습을 바탕으로 저자는 방대한 자료를 검토하여 해방이후 한미관계에서 우리 정부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전제하면서 몇 가지 점을 강조한다.

일방적이 아닌 불완전하지만 쌍방적인 한미관계

첫째로 미국은 압도적 힘으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항상 한국정부가 미국의 꼭두각시로 행동한 것은 아니었다. 한국 정부 나름대로 시대 상황을 이용하여 반작용을 했고, 때로는 한국의 정세와 정부의 의사결정이 미국의 정책 변화로 나타나기도 했다.

저자가 강조하듯이 한미관계에 있어서도 동태적 분석의 필요성을 느꼈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다르듯이 1950년대의 미국과 오늘의 미국이, 1970년대의 한국과 오늘의 한국은 분명히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반미를 부르짖을 충분한 역사적, 실증적 근거들이 있기는 하지만, 무조건적 반미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점을 간과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의 박정희 정권의 쿠테타 승인, 광주학살 묵인 등에 대한 책임논란은 아직도 정리되지 않았는데, 5. 16.당시 소위 우리나라를 움직이던 힘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들도 쿠테타에 그다지 반대하지 않았다는 이 책의 내용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민주정부는 무조건 국민의 지지를 받고 이를 뒤엎은 쿠테타는 국민들이 반대했을 것이라는 나의 상식적(?)인 통념에도 결국은 현시점에서의 가치판단이 개입되어 있었나 보다. 한편으로는 작전통제권이 미국에 있는 까닭에 미국의 승인 없이는 우리 정부 스스로 쿠테타도 진압하지 못한다는 어이없는 현실이 놀랍기도 하다. 노무현 정부의 막무가내식 정책추진은 분명 문제가 있지만, 그가 최근에 전직 국방부장관들을 상대로 전작권에 대한 문제의식도 없이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고 질타한 것에는 일응 수긍이 가는 것도 그러한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미관계에 대한 학습효과

두 번째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학습효과’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의 한미관계를 거울삼아 앞으로의 한미관계를 성공적으로 이끌자는 것이다. 우방이든 제국이든 미국은 엄연히 존재하는 실체이다. 그런 미국의 실체는 인정하고 이를 우리에게 유리하게 최대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물론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온 것처럼 한국의 반작용으로 미국의 정책이 변화한 경우가 없지 않은 것을 보면 능동적 대처가 불가능하지만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한민족 공조를 내세우며 무조건적으로 미국을 반대하는 식의 접근만으로는 미국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반대로 미국의 심기를 거스를 까봐 미국에 조그만 반대를 하는 것조차 금기시 하는 것도 그렇지 않아도 넓지 않은 우리 정부의 활동폭을 더욱 좁게 만든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도 않고 비이성적이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전시작전권이나 한미 FTA 문제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미국의 정책 기조상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여야 할 것이고, 반대로 우리나라에 결정권이 있는 문제는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요구하고, 아니다 싶으면 미국의 심기를 거스르면서도 ‘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미국은 분명히 하나의 실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미제국주의 타도를 외치는 무조건적 반미와 반핵반김을 구호로 혈맹사수를 외치는 무뇌적 숭미가 공존하는 것 같다. 이 또한 ‘제국’과 ‘우방’이 우리 사회에 투영된 모습이겠지만 저자의 말대로 학습을 통하여 우리에게 진정 도움이 되는 제3의 길을 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우방과 제국이 한미관계의 두 ‘신화’라는 제목에 이를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딴지걸기

이 책은 저자가 수많은 자료를 치밀하게 분석하여 완성하였기에 실증적이고, 당시 한미관계를 실제 움직이던 사람들이 직접 작성한 문서들을 통하여 생생하게 당시 상황을 들여다 볼 수 있어 좋았다. 또한 막연히 한미관계나 우리의 현대사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몇몇 편견을 깨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지만 역사를 전공하지 않는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는 지엽적인 내용에 너무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정작 종합적인 분석은 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풍부한 과거의 사례가 마지막 결론에 응축되어 있는 저자의 주장과 유기적으로 연계되지 않는 느낌이랄까. 개인적 배경지식의 부족과 집중력 부족의 소치이겠으나 전에 저자의 ‘한국전쟁’을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책을 읽고도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고 의문점만 더 많이 드는 것이, 저자와 내가 잘 궁합이 맞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음으로써 한미관계에 대하여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을 보면 읽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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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은하단과 행성 2007-02-05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조건적 반미파와 무뇌적 숭미파들은 서로 상대방을 비난하고 비웃지만, 그 사람들의 사고체계와 수준은 상당히 비슷한 것 같습니다. 역사적으로 숭미파들이 더 힘이 강했고 탄압하는 쪽에 주로 위치했다는 차이점은 있지만요. 두 부류 모두 한국 사회에서 줄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외로운 발바닥 2007-02-07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성님 댓글이 핵심을 정확하게 짚으신 것 같습니다. 아직도 숭미파가 훨씬 더 힘이 센 것은 부인할 수 없지요. 그나마 반미가 좀 세졌다고는 하지만 그 형식이나 주장이 좀 거친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전 반미주의자는 아니지만, 반미주의자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표현과 주장을 순화시키는 것이 더 이익일테네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