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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법불신, 왜?③]'권력의 시녀' 오명 씻으려면…
  2007-03-13 오후 5:47:00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s_menu=사회&article_num=60070308164252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는 말이 사법부의 태생적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라면,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은 사법부 성장과정의 한계로 꼽힌다. 특히 사법부가 '인권보장의 최후 보루'여야 한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입법·행정 권력에서 독립돼야만 하는 사법부가 과거 독재정권의 하수인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사법불신의 뿌리깊은 요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이후 사회 곳곳에서 과거사 청산 작업이 벌어지고 있으나 사법부는 매우 소극적인 자세를 보여 왔다. 사법부가 최근 형식적으로는 삼권분립 체제의 독립 권력으로 되살아났다 할지라도, 과거의 오명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이상, 그 권력의 정당성과 신뢰를 얻기는 힘들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2005년 9월 취임 당시 '사법부의 반성'을 언급했으나, 이후 구체적인 과거사 청산 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

  이용훈 대법원장 취임사로 부푼 기대, 1년 6개월 지났는데…

  
  그래서 지난 2005년 이용훈 대법원장의 취임사는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게 했다. 이 대법원장은 "독재와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면서 사법부는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인권보장의 최후 보루로서 소임을 다하지 못한 불행한 과거를 갖고 있다"고 반성했다.
  
  이 대법원장은 특히 "그동안 사법부가 행한 법의 선언에 오류가 없었는지, 외부의 영향으로 정의가 왜곡되지는 않았는지 돌이켜 봐야 하며 권위주의 시대에 국민 위에 군림하던 그릇된 유산을 청산하고, 국민의 권리를 지키는 본연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취임사를 듣고 느꼈던 '기대'는 취임 이후 1년 6개월이 지나는 동안 '실망'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취임사는 거창했지만, 이후 과거사 청산 방식에 대한 논란만 있을 뿐 눈에 띄는 후속작업이 없기 때문이다.
  
  '멀고도 험난한' 재심 통한 과거사 청산
  
  현재 제기되고 있는 과거사 청산 방식에 대한 논의는 크게 '사법부 내 과거사 청산위원회를 설치'(위원회), '과거 판결을 무효화하는 특별법 제정'(입법), '재심강화를 통한 판결 정정 및 판례 재정립'(재심) 등 크게 세 가지다.
  
  과거사 청산위원회를 설치하거나 특별법을 제정하는 방식에 대해 사법부는 "법률적 판단을 정치적 방식으로 해소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문제 등을 이유로 현실성이 없다면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사법부는 재심을 통한 과거사 청산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고 있으며, 그간 재심사건이 대법원에 상고되면 대법원 판결문에서 과거에 대한 반성 및 판례 변경을 통해 과거사 청산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 '인혁당 재건위' 재심사건에서 무죄를 선고 받고 오열하는 유족들. ⓒ연합뉴스

  하지만 재심을 통한 과거사 청산은 '멀고도 험난한 길'이다.
  
  지난 1월 재심 판결을 통해 '무죄'가 선고돼 큰 화제를 모았던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경우, 재심 신청(2002. 12)에서 재심 결정(2005.12), 1심 무죄판결(2007.1)이 내려질 때까지 무려 4년 2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러다보니 1심 무죄 판결 이후 검찰이 항소를 포기했다. 유가족을 더 이상 고통스럽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대법원 판결을 통한 과거사 청산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게다가 재심 사유가 까다로워 무혐의를 입증하거나 수사 과정에서 불법감금과 고문과 같은 불법행위를 받았다는 '새로운 증거'를 제출해야 하는데, 일반인들로서는 이를 찾아내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다. 실제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경우 재심이 이뤄지는 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나 국정원 진실위와 같은 공신력을 지닌 기관에서 밝혀낸 자료가 큰 역할을 했다.
  
  이번 인혁당 판결에 앞서 간첩혐의로 불법연행·감금돼 고문을 당한 뒤 15년형을 받아 15년을 꼬박 옥살이한 신귀영(71) 씨의 경우 2번이나 법원에 재심 청구를 했지만, 모두 상급심에서 좌절당한 것만 봐도 재심을 통한 과거사 청산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다.
  
  따라서 사법부가 '재심을 신청하면 그 때 보겠다'는 현 자세를 유지하는 한 "과거사 청산의 의지가 없다"는 비난을 들어 마땅하다.
  
  사법부는 '재심 특별재판부' 설치하고, 검찰도 진상규명 나서야
  
  따라서 사법부가 지난 과오를 진정 반성하고 있다면 '재심 특별부'를 설치해 재심 사건에 대한 집중 심리를 벌여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판사 1명이 1년에 3500여 건의 사건을 처리하는 현실에서 재심 사건을 집중 심리하는 '특별부'를 설치해 신속한 재판과 재심 사건에 대한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 특히 재심 대상으로 분류되는 사건이 대부분 20~40년이 지난 사건으로,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미 많은 '재심 대상' 사건 피해자들이 사망했고, 또 많은 피해자들이 고령이어서 시간이 많지 않다.
  
▲ 간첩사건에 연루돼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으나 두 번이나 거부당한 신귀영 씨. 최근 진실화해위에서 "신 씨에 대한 재심이 필요하다"고 법원에 권고했다. ⓒ프레시안

  또 재심의 실효성을 얻기 위해서는 검찰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재심이 정치적 판단이 아니라 법률적 판단이 되기 위해서는 철저한 증거조사가 필요한데, 법원의 직권조사 명령만으로는 강제성이 없어 조사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검찰이 나서야 한다.
  
  과거 '메모 재판'의 주범은 판사 뿐만 아니라 검사도 책임이 막중하기 때문이다. 검찰 역시 '정치적으로 독립적인 준사법기관'을 주창하고 있지만, 과거 검찰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공안기관원에게서 모진 고문을 받다 검사 앞에 불려가 '나를 보호해주겠지'라는 피해자들의 바램을 무참히 짓밟은 당사자들이 검사들이었다. '사법부 과거사 청산'이 담장넘어 법원만의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진실화해위 김갑배 상임위원(변호사)은 "피해 당사자들이 재심청구를 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며 "형사소송법상 재심청구의 자격이 있는 검찰이 사법부의 암울했던 과거에 책임이 있는 만큼, 재판에서의 승소에 집착하지 말고 공익의 대변자로서 재심 청구와 진상규명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력의 시녀' 된 구조 밝히는 것도 과거사 청산이다"
  
  결국 사법부는 "대법원에 올라오면 입장을 표명하겠다"는 소극적 자세가 아니라 "대법원에 사건이 올라오도록 시스템을 갖추겠다"는 적극적 자세가 필요하다. 특히 검찰의 협조가 필수적이긴 하지만 특별법을 만들거나 현행 법률을 개정하지 않아도 실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법원의 의지만으로 시행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법부가 '재심'이라는 법률적 행위로만 청산할 수 없는 과거사가 있다. 바로 과거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을 듣게 했던 권력 종속의 구조를 밝히는 일이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선 '과거사 청산위원회' 설치 등이 검토돼야 한다.
  
  한상희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건국대 법학과 교수)은 "진실을 밝혀내고 이 진실의 이면에 존재할 수 있었던 권력과 이익의 문제들을 규명해 이를 척결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과거사 청산의 또 다른 목표"라면서 "과거사를 생산해 낼 수 있었던 사법의 구조와 체계 혹은 이를 둘러싼 정치구조 그 자체의 왜곡지점을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소장은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질 때 비로소 우리 사법의 정치성은 청산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과 신뢰의 회복은 민주화 과정에서 '무혈 입성'한 법원의 최소한의 역사에 대한 책무이고, 앞으로 사법부가 진정한 '국민을 위한' 법원으로 거듭나기 위한 미래적 의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실현 가능한 방법마저 외면한다면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회복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김하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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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7-03-25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단락이 정말 사법부의 현 상황에 대한 핵심적인 진단같다...
 

  [사법불신, 왜?②]"판사도 '비판' 감내할 맷집 키워야"
 

2007-03-09 오후 5:25:25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s_menu=사회&article_num=60070307164747

사법부를 비난하는 주 레파토리 중 하나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는 말이다. 혹자는 "거리에서 수많은 피를 흘리며 정치적 민주화를 이뤘지만, '권력의 시녀'였던 사법부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민주화의 과실을 따먹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사실 우리나라 사법부의 역사적 맥락을 보면 현재 급격히 커진 사법부의 역할과 위상이나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와 영향력에 비해 그 형성 과정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신뢰할 만한 것인지에 대한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이런 '태생적 한계'가 사법불신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첫번째 기사(☞사법부, 한국사회의 중심에 서다)에서 언급했던 지난 2004년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은 역사적 화두를 던진 사건이었다. 헌재의 탄핵심판은 헌법에 명시된 것이지만, 과연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선출된 권력을 심판해도 되는 것이냐'는 질문이 헌법이나 정치학 강의실이 아니라 현실에서 제기된 것이다.
  
  "민주주의 vs 법치주의"
  
  홍윤기 동국대 철학과 교수는 <헌법다시보기>(함께하는시민행동 엮음)라는 책에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과 행정수도이전 위헌소송 사건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은 자신들이 뽑지 않았으며, 그 이름이나 경력도 생소한 인물들이 단지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법원이나 검찰에 오래 근무했다는 이유로 대통령 직선과 국가 선거의 절차를 밟은 국가정책을 일순간에 뒤집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한 해에 두 번이나 체험해야 했다"며 사법부 구성의 한계를 지적했다. 사법부의 판단이 과연 민주적 정당성을 갖느냐는 문제제기였다.
  
  

▲ 홍윤기, 박명림 교수 등 학자들과 사회운동가들이 펴낸 책 '헌법다시보기.' 이 책에는 "현재 헌법이 87년 정치 엘리트들의 합의의 결과일 뿐 현재의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반영하지 않고 있다"며 "이제 헌법의 전면적인 개정을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같은 책에서 박명림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법적 판결이란 본질적으로 승리와 패배, 정의와 불의, 옳음과 그름을 가름해 법률적 승자와 패자를 판정해내는 속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원칙인 균형과 타협, 공존(의 영역)을 축소시킨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헌법)재판관들이 시민·인민의 집합의사에 우선할 수 있는가, 법치는 민주주의를 보장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 대안이 '선거'는 아니다
  
  그러나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는 비판이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을 '선거'로 선출해야 한다는 명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법관 등을 선거로 선출하면 민주주의의 원리를 구현할 수 있으나, 입법(국회) 행정(대통령)부에 이어 사법부까지 '다수파 지배' 하에 놓인다는 치명적 한계에 봉착한다. 특히 사법부가 '인권 최후의 보루'라는 사명을 가진 권력기관으로 소수자 보호의 임무가 있음을 감안하면 선거의 의한 선출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저해할 수 있다.
  
  실제로 최고사법기관의 법관이 일반적인 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나라는 거의 없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국회의 동의에 의해 대통령이 임명하고, 독일의 헌법재판소는 연방의회와 연방참의원이 절반씩 선출해 대통령이 임명하며, 프랑스의 헌법원은 대통령과 국민회의 의장, 상원의장이 각 3명씩 임명을 한다.
  
  우리나라도 대법원장 및 대법관은 국회의 동의절차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고, 헌법재판관은 유럽과 같이 국회와 대통령, 대법원장이 각 3명씩 선출하는 등 민주적 견제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 독재정권 시절 사법부가 '권력의 시녀'라고 조롱당할 만큼 본래의 기능을 하지 못했고, 현재도 대통령과 의회 권력이 일치(여대야소)하는 경우가 많아 결과적으로 대법원장이나 대법관이 거의 대통령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대법관의 성향이 보수 획일화 돼 있어 시민사회의 거센 비판을 받아왔다. 또 대법원장이 대법관을 제청하는 제도 등은 시민사회의 대법관 추천을 가로막고, 대법원장과 대법관 사이에 계급적 관계를 불러와 사법부 내 민주화를 저해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사법부의 독립을 위해 '다수 지배'라는 민주주의 구성원리에서 사법부가 제외돼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크지 않다. 그렇다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보완하는 방법이 '선거'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라는 문제와 맞닥뜨리게 된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나라들이 배심제나 참심제와 같은 국민의 사법참여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사법 민주화'의 과제로 '배심·참심제', '법조 일원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완전무결하다는 아집 버려야"
  
  하지만 이러한 제도적 개혁은 이미 많은 논의를 거쳤으나 사법부나 판사 개인의 의식 개혁에 대한 논의는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지금까지 우리 사법부는 '판결 무결점주의' 등 권위주의·엘리트주의적 관점을 고수하며 시민사회와 소통하는 데 게을렀던 것이 사실이다. 사법부에서는 "사법부의 판결이 사회 갈등의 '종점'이 돼야 한다"는 관점을 갖고 있다. 이는 충분한 심리를 통해 설득력 있는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는 '자기 다짐'이 담긴 말이지만, 모두를 만족시키겠다는 것 자체가 신기루일 수 있다.
  
  박명림 교수는 "최고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헌법적 판결이 '최고'(supreme)이자 '최종'(final)이며 '무오류'(infallible) 결정이라는 오랜 관념은 오류"라며 "특정 시점의 판결이 항상 보편타당한 최종 판결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이어 "실제로 헌법적 가치들은 법원과 헌법재판소를 포함한 사법적 행위자들과 의회, 시민단체, 행정부 등 비사법적 행위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의 결과이지 사법 행위자들에 의해 배타적으로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호주제,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한 판결 등의 변화가 그 증거인 셈이다. 또 한편으로 우리 사법부는 구조적 한계에 의해 '시민사회'와의 상호작용이 충분치 않았다.
  
  특히 최근 사실관계 판단에 그치지 않고 이념적 사건이나 정책판단에 관한 사건이 늘어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사법부와 시민사회의 소통은 '사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한 방식으로 여겨지며 더욱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 참여연대는 2005년부터 '사법감시' 활동의 일환으로 '판결비평'을 해오고 있다.

  사법부, 광장으로 나와야…"판결은 국민에게 '수용'돼야 하는 것"

  
  이런 측면에서 의미있는 시도가 2005년부터 실시돼 온 참여연대의 '판결비평'이다. 한상희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건국대 법학과 교수)은 '판결비평'에 대해 "판결문은 국민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고 국민들의 승인을 받아야 되는 것"이라며 "법적으로는 끝이 났을지 몰라도 민주적인 측면에서는 국민들에게 수용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관련기사 보기)
  
  이를 의식한 듯 최근 법원에서도 과거에 비해 판결문 공개에 적극적인 편이다. 불과 2~3년 전 만해도 '요청을 해야' 판결문을 제공했으나, 헌법재판소는 결정문 전체를 공개하고 있고 일반 각급 법원도 사회적 의미가 있는 '주요 판결'을 공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법원의 '판결 공개'가 갖는 사회적 파급력이 얼마나 크고, 판결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얼마나 확장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사건이 김명호 전 교수의 '석궁사건'이었다.
  
  지난 1월15일 '석궁사건'이 발생한 후 이틀 뒤인 17일, 김 전 교수 사건 항소심의 주심 판사였던 이정렬 판사는 법원 내부게시판에 "김 전 교수가 판결문 내용도 보지 않고 재판 결과만으로 테러를 감행한 것을 보고 당사자 설득을 위한 판결서 작성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에 관해 깊은 회의에 빠져 든다"고 말했다. 이 때까지만해도 판결문은 공개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다음 날인 18일 법원 홈페이지에는 김 전 교수에 대한 항소심 판결문 전문이 공개됐고, 전문이 언론을 통해 그대로 소개(☞관련기사 보기)되면서 인터넷에서 이 판결문에 대한 시민들의 갑론을박이 뜨겁게 펼쳐졌다. 판결문이 확산되고 논쟁이 일어나며 시민사회에서 '수용'되는 과정을 거친 것이다.
  
▲ 김명호 전 교수의 '해직 사건' 항소심 판결문 전문을 소개한 기사에 달린 댓글들.

  판사들도 '비판' 수용하고 맷집 키워야
  
  물론 이런 '판결 공개'에 대한 비판 여론도 만만치 않다. 확정 판결 전에 판결문이 공개돼 논란이 일어나면 항소심, 상고심 등에 영향을 미쳐 법관의 독립적인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결 공개가 가져오는 '순기능'이 더 크다. 이미 언급했던 '판결 무결점 주의', '사법부와 국민과의 괴리' 등을 극복하기 위해 판결 공개 확대와 판결 비평 활성화는 매우 중요하다는 것.
  
  한 법조계 인사는 "언론을 통해 소개되는 판결은 극히 제한적이고 전달 방식도 지면 제한 등에 의해 판결의 핵심이나 진의가 와전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며 "판결문 공개는 국민들이 사법부를 직접,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장기적으로는 신뢰형성으로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석궁 사건은) 법관이 자신 있게 쓴 판결문이더라도, 법관의 관점과 일반인들의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사건 아니겠느냐"며 "이제 법관들도 자신의 '판단'이 최선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법관들도 이런 논란을 감내할 수 있는 맷집과 판결에 대한 책임감을 지금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관계자도 "현재 법원이 추구하고 있는 재판 결과의 공개는 사법권력에 대한 불신과 권위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 배심제 모의 재판에 참여해 선서하고 있는 일반 시민들. ⓒ연합뉴스

  배심·참심제,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

  
  제도적 '사법 민주화'의 방안들 가운데 현재 가장 진전된 것은 배심·참심제를 통한 '국민의 사법참여'다. 배심제는 '배심원단'을 이룬 일반 시민들이 유ㆍ무죄 등의 판단을 내리는 것이고, 참심제는 일반 국민이 법관과 동등한 위치에서 재판에 참여하는 방식을 말한다.
  
  물론 배심제, 참심제에 대한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과연 한국적 풍토에서 국민들이 배심이나 참심으로 활발하게 재판에 참여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고,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외국에서도 과도한 비용, 배심·참심원의 전문성과 신뢰성 등이 문제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배심·참심제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배심·참심제를 통해 국민들이 사법부에 관심을 갖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동안 사법부가 국민들과 괴리돼 있어 사법부는 국민들 눈 높이를 모르며, 결국 국민들은 사법부를 불신하고 무관심하게 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이 재판에 참여할 때 이러한 괴리가 사라지고 재판이 투명해지며, '법의 시민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현재 '국민 참여 재판'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나라는 네덜란드, 일본, 한국,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등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일본도 2009년부터 참심제가 실시된다. 우리나라도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배심·참심제 도입을 위한 법률안이 2005년 국회에 제출됐지만, 지금까지 국회에 '계류 중'이다.
   
 
  김하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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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7-03-25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무결하다는 아집을 버려야 한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사법불신, 왜?①]"인정 못해? 법원에 묻자"
  2007-03-07 오후 7:15:48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s_menu=사회&article_num=60070307153859

 "이 정도면 굿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최근 사법부를 둘러싼 '잡음'을 두고 법원에 출입했던 한 기자는 "밖에서 보니 지난 1년 동안 사법부가 '뭇매'를 맞더라"라며 이같이 말했다. 현직 부장판사가 사법부의 수장인 이용훈 대법원장을 '사법불신의 축'으로 지목하는가 하면, 진실화해위원회의 긴급조치 판결 분석 공개,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의 '석궁사건' 등을 통해 사법불신이 주요 사회현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 현직 판사는 "석궁사건 자체보다, 석궁사건 이후 보여진 국민들의 반응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며 "원래 인터넷 댓글이 곧 여론이라고 믿지는 않지만, 같은 판사로서 법원을 비난하는 댓글이 압도적인 것을 보고 사법불신의 실체가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착잡했다"고 말했다.
  
  이는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석궁사건' 직후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760명 중 77.3%가 '김 전 교수에 대한 판결문에 동의 못 한다'고 답했고, 59.5%는 '법원의 판결이 공정하지 않아 신뢰 못 한다'고 답했다. '석궁사건' 직후라는 시기적 특성이 개입된 조사결과이지만, '사법불신' 수준이 50%를 넘는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사법불신은 원래 높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원에 가면 승자와 패자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절반의 패자는 감정적인 '불신'을 품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1년에 소송 사건이 100만 건이면, 법원은 항상 50만 명의 적을 만들고 있다는 것. 그는 다만 "패자에게는 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제대로 설명해야 하는데, 우리 법원이 그 부분에서 좀 미숙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그 원인으로 '관료주의·권위주의적 법원 문화', '문서중심 재판진행의 관행' 등을 꼽았다.
  
  이런 설명으로도 최근 도드라지는 '사법불신' 풍조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프레시안>은 현재 나타나고 있는 '사법불신'의 원인을 다각도로 조명해보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논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 사법부의 상징 대법원. ⓒ프레시안

  
'법조비리',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온정주의', '미온적인 과거사 청산' 등 사법불신을 초래한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지만,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것 중 하나가 '사법 중심화' 혹은, '사법 정치화', '사회의 사법화'이다. 언제부터인가 사법부가 한국사회의 정치·경제·사회·문화 거의 모든 분야의 주요 갈등이 대립하는 전쟁터가 됐고, 그러다보니 개인적 소송 당사자가 아닌, 일반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고, 높아진 관심만큼 '사법불신'의 절대적 외연이 확장됐다는 분석이다.
  
  공교롭게도 이러한 '사법 중심화가 시작된 시점은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과 일치한다.
  
  은근슬쩍 사법부에 넘어간 정치권력…대통령 탄핵 사건으로 '권력 완성'
  
  우선 노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실시된 '대북송금 특검.' 피고인은 박지원 전 문화부 장관, 임동원 전 국정원장 등 '실무자'에 불과했지만, 사실상 대북송금 특검의 피고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이 행한 국가적인 고도의 통치행위라도 '사법적 정당성'을 얻지 않으면 당연히 사법처벌의 대상이 된다는 '사법 정치화'의 신호탄을 올렸다.
  
  이어 터진 '대선자금' 사건. 과거 사회적 관행으로 받아들여져 온 '불법 정치자금'이라는 공공연한 비밀이 검찰의 수사를 통해 국민 앞에 낱낱이 공개됐다. '차떼기'라는 말이 등장하며 정치권력이 희화화됐고 정치권 세대교체라는 결과를 낳았다. 십수 명의 국회의원들이 법원에 금배지를 반납한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사법부가 정치인의 수명을 좌우하게 된 상징적 사건 중의 하나이다.
  
  사법 권력화의 정점은 '헌법재판소'에서 완성됐다. 국민의 투표로 선출된 대통령을 역시 국민의 투표로 선출한 국회의원들이 탄핵을 하였으나,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헌재 재판관들이 재판을 통해 대통령을 복귀시켰다. 2004년 총선 뒤 내려진 판결은 '정답을 보고 사후에 쓴 답안지'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헌재 판단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우리나라 법체계가 대통령 직(職)마저도 법원이 결정할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을 현실로 보여준 셈이고, 처음으로 그 위력을 발휘한 사건이다.
  
  이어 헌재에서 또 다시 '대박'을 날렸다. 노 대통령의 최대 공약이었던 '행정수도 이전'을 좌초시킨 것. 헌재는 '관습헌법'이라는 이유를 들어 행정수도 이전을 위해서는 국민투표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번에도 헌재 판단에 대한 근거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주요 '정치적', 혹은 '정책적' 사안이더라도 "일단 헌재에 묻고 본다"는 풍토가 생겨났다. 이는 정치권력이 스스로 권력을 사법부에 갖다 바친 꼴이 됐다.
  
  
▲ 지난 2004년 대통령 탄핵 당시 탄핵심판이 벌어진 헌법재판소에 몰려와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민들. ⓒ연합뉴스

  대통령 권력도 무력화할 수 있는 헌재의 힘

  
  홍윤기 동국대 철학과 교수는 최근 발간된 책 <헌법 다시 보기>(함께하는시민행동 엮음)에서 "2004년은 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헌법이 전례 없이 국가 활동의 중심에서 권력정치와 민생을 좌우할 정도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직접적으로 체험한 해"라고 규정했다.
  
  홍 교수는 "헌법을 근거로 한 그 무대의 주역들은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었다"며 "그들은 당시 16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의 찬성으로 통과한 대통령 탄핵안을 최종적으로 심판하는 위치에 서서 국민이 뽑은 현직 대통령의 명운을 장악했으며, 대통령선거의 공약으로 제시돼 유권자의 지지를 받았고 여야가 합의해 통과시킨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의 법적 효력을 무효화할 수 있는 권력을 넘겨받았다"고 평가했다.
  
  이밖에도 국가보안법 개폐, 이라크·아프가니스탄 파병, 주한미군기지 이전, 양심적 병역거부 등 진보진영의 이슈는 물론, 개정 사학법 등 보수진영의 이슈까지 모두 헌재로 모여드는 현상이 가속화됐다. 박명림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같은 책에서 "정치·사회·인권·대외관계 핵심 의제들은 거의 전부 헌법적 결정의 문제로 귀결됐다"며 이를 두고 "'정치의 사법화' 내지는 '사회의 법률화' 경향의 심화"라고 표현했다.
  
  
▲ 새만금사업에 대한 공개심리를 벌이고 있는 대법원 대법정 모습. ⓒ연합뉴스


  국책사업 결정자는 사법부…이젠 4000만 국민이 재판 당사자

  
  사법부가 내린 '중차대한 결정'은 정치 갈등뿐만이 아니었다. '단군 이래 최대의 토목사업이'라는 새만금 간척사업의 진행 여부가 법원에서 판가름 났고, 지율스님의 100일 단식으로 사회적 이슈가 된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 구간 공사 여부도 법원에서 결정됐다.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조작' 논란과 같은 과학적 이슈도 결국 검찰에서 진위가 가려졌다. 사실 줄기세포 사건에서 검찰의 본래 역할은 '업무방해', '횡령'과 같은 법률적 판단이었지만, 과학적 이슈의 심판자로 나섰고, 국민들이 이를 원했다.
  
  또 민감한 내용이 담긴 영화나 출판물이 상영되거나 발간될 때는 당사자들이 사법부에 '가처분 신청'을 하는 것이 관례화될 정도로 '사법'은 문화ㆍ언론의 영역까지 파고들고 있다.
  
  일반 국민들의 관심을 끌 만한 굵직한 경제사건도 많았다. 현재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계승을 좌우할 '에버랜드 사건'이 수년 째 진행 중이고, SK그룹, 두산그룹, 현대차그룹은 비자금 사건으로 사법부로부터 철퇴를 맞았다. 재벌들에 대한 법원의 온정주의 판결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국민들의 전통적 '사법불신 코드'를 확대 재생산했다. '대선자금 수사'로 기소된 경제인들이 모두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고, 두산그룹 비리 사건도 집행유예 처벌로 끝나는 등 국민들의 눈높이를 벗어난 판결이 많았다.
  
  이처럼 사법부가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친 주요 이슈에 대한 최종 판단자 역할을 하게 되면서 법원의 재판 당사자가 100만 명의 소송 관계인들을 넘어서 4000만 국민 대부분이 '당사자'가 된 셈이다.
  
  이전 시대와 근본적으로 다른 '사법불신'의 차원
  
  결국 사법부가 개개인 국민들의 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되자 국민들의 관심도는 정치 영역에 버금가거나 오히려 정치에 대한 관심을 능가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호주제', '양심적 병역거부', '동성애자 호적 성별전환', '국가보안법 사건' 등 사회 소수자에 대한 판단이나 이념적으로 대립하는 이슈에 사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됨에 따라 국민적 관심이 '무력해진 정치의 영역'에서 국민들 삶에 즉각적 효력을 나타내는 사법부의 영역으로 전이되는 현상을 낳았다.
  
  권력 전이 현상과 함께 전통적인 정치적 갈등이었던 국민들의 이념·세대·계층적 갈등의 무대가 사법부로 옮겨진 셈이다.
  
  게다가 '합의'가 통하는 정치영역과는 달리 사법부는 법적 승자와 패자를 가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만큼 사법부에 대한 적극적 찬성 혹은 적극적 반대 의사를 나타내는 층이 늘어난 것이다.

김하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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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3-24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법을 믿지 못하는 거야 당연한 것 아닐런지요. 부패의 온상이자 대통령 눈치만 살피뿐 본래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거라 생각이 듭니다. 입법 사법 행정 이라는 삼권분립이라 말을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마 일권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통령과 여당에 의해 정치가 이끌어져 가니 어찌 이들이 제대로 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할 수있다고 보겠습니까? 사법부의 본래의 역할과 국민을 대표하는 나라의 한 기관으로 제대로 된 기능이 발휘되었으면 하네요.

외로운 발바닥 2007-03-25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법조인의 한사람으로서 부끄럽네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사법불신의 원인은 사법부가 대통령이나 행정부로부터 독립하지 못해서라기보다는 사법적 판단을 법관 개인의 양심에만 맡기게 되어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또 사법부 내부의 독립 문제도 있고요. 아무튼 산타님 말씀처럼 사법부가 본래의 역할과 제대로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저도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
 

[심층진단] 단독개업은 ‘멀고도 험난한 길’ [조인스]
부와 명예의 상징은 ‘옛말’ 전문성 없으면 밥그릇 챙기기도 어렵다
[달라진 위상! 한국의 노블리스 직업연구 ①] 변호사 上
월간중앙

■ 하늘의 별이 된 ‘로펌 변호사’
■ 사무실 유지비 월 평균 1,000만 원 마련 급급
■ 변호사 세계도 심한 양극화
■ 브로커 유혹 뿌리치기 어려운 구조가 문제
■ 대기업 사내 변호사제도 늘고 채용도 급증


우리 사회의 변화 속도는 가히 초고속이다. 직업의 세계도 변화의 물결로 요동치고 있다. 전통적인 우리 사회 主流 직업의 현재는 과거와 현저히 달라졌다. 그 외양과 속내를 샅샅이 해부하는 시리즈를 시작한다. 그 첫 번째, 변호사!
“내가 이러고 있을 때인가?”

T(40) 변호사는 가슴까지 답답해졌다. 검사로 근무하던 2006년 9월 어느 날의 일이다. 날마다 일에 파묻혀 있다 모처럼 집에서 쉬어 보는 휴일 오전이었다. 느지막하게 일어났지만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머릿속은 마치 실타래가 제멋대로 뒤엉켜 있는 느낌이었다. 검사를 계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 밤새 뒤척인 까닭이다.

고민의 근원은 돈 문제였다. T검사의 월급은 300만 원대. 검사 경력 10년이 다 돼가지만 그 수준이었다. 가족 생활비로도 빠듯했다. 중학생인 딸과 초등학교 고학년인 아이 둘이 크는 만큼 과외비가 늘었다. 가계부에는 점차 빨간색이 짙어졌다.

그는 아직 집이 없다. 법원·검찰청이 가까운 서울 서초동 32평형 아파트를 보증금 2억5,000만 원에 전세를 얻어 살고 있다. 다 알려진 대로 최근 몇 년 동안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검사 월급으로는 지금 사는 동네에서 도저히 집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이 더욱 절망스럽다.

T검사는 그로부터 한 달쯤 뒤인 10월 중순께 결국 옷을 벗었다. 돈 걱정에서 해방되려면 그 길밖에 없었다. 그리고 직전까지 근무하던 서울 시내 한 지원 앞에 곧 변호사 간판을 내걸었다. 변호사로 성공하려면 유능한 사무장이 꼭 필요하다는 충고를 여러 선배 변호사로부터 들었지만 변호사 업계에서 소문난 ‘베테랑’은 쓰지 못했다. 월급이 예상보다 ‘셌기’ 때문이었다.

▶8,400여 명에 달하는 한국 변호사들의 심장부인 서울 서초동 대한변호사협회.

2006년 11월 초 ‘영업 준비’는 그런대로 마쳤지만 여전히 걱정이 태산이다. 이제부터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한 달에 최소 2,000만 원은 벌어야 한다. 20평대 사무실 월세에 사무장과 여직원 인건비, 기타 잡비를 합해 한 달 사무실 유지비만 대략 1,000만 원 선이다. 생활비와 자신의 용돈까지 합치면 또 그만한 액수의 돈이 필요하다.

개업 후 1주일여 동안 T변호사는 그야말로 책상을 지키고 앉아 파리만 날렸다. 주변의 선배 변호사들이 이런 모습을 보기가 안 됐던지 가끔 위로 겸 덕담(?)을 건넨다. 대체로 “검사 출신이어서 ‘전관예우’를 기대하는 의뢰인이 적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조금 겁나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전관예우도 같이 근무하는 검사가 남아 있을 때 통한다. 그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 평생 먹고살 돈을 벌어야 한다. 그것도 현직 판·검사가 뒤따라 옷을 벗지 않았을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T변호사는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다. 관할 법원과 검찰에서 부장급 이상 판사 1명과 검사 2명이 ‘더 이상 승진을 기대하기 어려워’ 옷을 벗는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어서다. 그것이 현실화하면 평검사 출신인 T변호사는 그들에게 ‘끗발’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검사 옷 벗어던진 T변호사의 고뇌

T변호사는 사건 수임을 위해 사무장의 조언을 얻어 직접 발로 뛰고 있다. 명색이 범죄를 다스리던 검사 출신으로서 ‘브로커 활용’이라는 불법은 저지르고 싶지 않아서다. 개업 후 한 달여 동안 브로커로 보이는 네댓 명이 제 발로 찾아왔지만 일단은 다 물리쳤다. 자신의 능력으로 버틸 때까지는 버텨 보자는 심산이다.

그러나 짧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결코 만만찮은’ 변호사시장의 냉엄한 현실을 깨닫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브로커의 유혹에 넘어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점점 커지고 있다. T변호사는 지금 검사 시절보다 더 깊은 고뇌의 바다에 빠져 있다.

T변호사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5년 전에만 변호사 개업을 했어도 현재 하고 있는 고민은 거의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막상 세상 밖으로 나와 보니 청사 안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변호사를 해서 돈을 번다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기왕 벗을 검사 옷이었다면 왜 이렇게 늦었는지 지금은 후회가 된다. 한마디로 현재 우리나라 변호사시장은 수요와 공급 모두 포화 상태다.”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 인근 지하철 교대역 4거리를 중심으로 변호사 사무실이 밀집해 있다. 사진 속의 변호사 이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계 없음.

그의 말대로 우리나라의 변호사는 최근 들어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현재 한국의 변호사는 총 8,402명이다. 2006년 6월9일 현재 대한변호사협회에 회원으로 등록된 수가 그것이다. 국내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려면 반드시 대한변협에 회원 등록을 해야 하므로 국내 전체 변호사 현황이라고 봐도 좋다.

대부분 개인회원(7,623명)이고 준회원(779명)이 이 안에 포함돼 있다. 준회원은 변호사 자격은 있으나 일시 휴업 중이거나 판·검사 등 공직에 근무 중이어서 변호사 업무를 수행하지 않는 경우다.

또 실제 변호사 활동을 하는 개인회원 중에는 법무법인 구성원(2,255명)이나 소속 변호사(951명)로, 또는 공증·합동법률사무소 구성원(306명)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46%로 거의 절반에 육박한다. 그 나머지(4,111명)가 혼자 사무실을 운영하는 ‘단독개업’ 또는 ‘고용’ 형태로 변호사 활동을 하고 있다.

변호사의 급증은 2001년 시작된 사법시험 합격자 1,000명 시대와 함께 본격화했다. 2006년 994명을 포함해 지난 6년 동안 사시 합격자만 5,899명에 달한다. 2년 동안의 사법연수원 수료 후 곧바로 변호사 활동을 시작한 수가 해마다 400~500명에 이른다. 한마디로 최근 들어 변호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변호사가 많다 보니 진로를 놓고 사법연수원 시절부터 경쟁이 시작된다. 진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성적이다. 특히 사법시험 성적에 2학기 기말고사 성적, 4학기 기말고사 성적을 합산한 결과가 사법연수원생들의 진로를 결정한다.

‘단독개업 싫어!’ 예비 변호사 Q씨의 도전

사법연수원 김종민(부장검사) 교수는 최근 수료생들의 진로 선택에 대한 새로운 경향을 이렇게 설명했다.

“공공기관·기업체와 같은 비법조 직역에 대한 진출자와 진출 기관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대형 로펌으로 진로를 선택하는 성적 상위권자가 늘어난 것도 달라진 현상이다. 2007년 2월 제대를 앞둔 군 법무관들도 대부분 판·검사를 지망했던 과거 경향과 달리 대형 로펌 진출을 선호하고 있다. 최근 사법시험 합격자가 늘면서 법률 전문가 저변이 확대되고, 그 결과 법률 서비스 영역이 다변화하는 현상의 반영으로 본다.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변화로 생각한다.”


2007년 2월 사법연수원 수료를 앞둔 예비 변호사 Q(여·26)씨. 그가 요즘 벌이고 있는 취업 도전기는 신참 변호사들의 달라진 생각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는 2006년 10월 말 사법연수원 4학기 기말시험이 끝난 후 자신의 성적이 판·검사를 지원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신입 변호사를 뽑는 이른바 ‘대형’ 법무법인 13곳을 취업 목표로 삼아 모두 지원서를 냈다. “일을 많이 배울 수 있는 큰 로펌에 가는 것이 길게 볼 때 변호사로서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12월 중순까지 모두 7곳으로부터 ‘거절’ 응답을 이메일로 받았다. 그때까지 단 1곳에서 면접시험을 봤지만 취업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그가 지원했던 나머지 법무법인에서는 지금껏 아무런 연락이 없어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성적이 로펌에서 원하는 기준에 못 미치고, 영어도 내세울 만큼 능통하지 못한 보통 수준이어서 불합격한 것 같다”고 나름대로 진단하고 있다.

그 뒤로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회계법인을 상대로 취업 도전을 하고 있다. 그는 2006년 12월 말부터 오는 3월 말 사이에 변호사를 뽑는 공공기관 취업에 더 큰 희망을 걸고 있다. 사법연수원생들 사이에서는 공공기관 중에서는 헌법재판소·감사원·재정경제부·금융감독원·공정거래위원회 등이 인기 직장이다. “일의 전문성이 높고, 어디에서나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으며, 지방 근무가 없다는 점이 매력으로 꼽힌다”고 그는 말했다.

단독개업에 대해 그는 “지금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경험이 부족해 성공에 자신이 없는데다 아직 더 배워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그것을 “지금 생각으로는 가능하다면 가장 피하고 싶은 진로”로 여긴다.


변호사의 활동 형태는 크게 단독개업·법무법인·고용 등으로 나뉜다. ‘단독개업’은 말 그대로 변호사 혼자 사무실을 열고 혼자 활동하는 것이다. 흔히 로펌으로 불리는 ‘법무법인’은 말 그대로 회사다. 소속 변호사는 회사 내 지위와 하는 일에 따라 일정한 보수를 받고 회사를 위해 일한다.

‘고용’은 단독개업 변호사로부터 월급을 받는 변호사로, 업계에서는 흔히 ‘새끼 변호사’로 불린다. 합동법률사무소는 여러 명의 변호사가 비용 절감, 정보 공유 등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사무실을 함께 쓰는 것일 뿐 변호사들의 활동은 단독개업과 다를 바 없다.

하늘의 별이 된 로펌 변호사

Q씨의 도전기에서도 나타나듯 요즘 변호사들에게 로펌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사법연수원 수료자 중 2006년(35기) 181명, 2005년(34기)에는 178명이 로펌으로 향했다. 특히 2006년에는 단독개업보다 69명이 많은 역전 현상을 나타내 그 인기를 실감케 하고 있다. 이는 젊은 변호사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이른바 전관예우를 받을 위치에 있는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은 줄줄이 로펌행을 택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변호사가 20명 이상인 16개 대형 로펌에 소속된 판·검사 출신 변호사는 무려 347명에 이른다. 그중 국내 최대 법률사무소로 꼽히는 ‘김&장’에만 가장 많은 79명이 포진해 있고, 화우(45명)·태평양(34명)·바른(34명)이 그 뒤를 이었다. 이는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2006년 11월21일 발표한 ‘로펌의 지배와 사법감시’ 자료에서 드러난 것이다.

이에 따르면 로펌행 판·검사 출신 변호사는 16명(2004년), 44명(2005년), 48명(2006년 8월 현재) 등으로 해를 거듭하며 급증해 최근 5년 사이에만 161명에 달했다. 그들의 재조 시절 직급도 무척 화려한 편이다. 법관 출신 변호사 98명 중 대법관급 이상 8명, 법원장급 12명, 고법 부장급 5명, 지법 부장급 31명이었고 일반 판사급은 41명이었다. 검사 출신 변호사도 마찬가지로 42명 중 검사장급 이상 13명, 고등검사급 25명, 평검사급 26명 등으로 집계됐다.

한마디로 ‘잘나가는 변호사’는 대부분 로펌에 모여 있는 셈이다. 로펌에서 그들에 대한 예우는 연봉으로 따져 6억~27억 원 수준으로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2006년 국회 법사위원인 김동철(열린우리당 광주 광산) 의원이 국정감사 과정에서 공개한 것이다. 그들의 월평균 급여는 구체적으로 대법관 출신은 8,000만~2억 원, 법원장급 7,000여 만 원, 부장판사급 6,500여 만 원, 일반 판사급 5,000여 만 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대체 로펌이 어떤 곳이기에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한국에서 성공적인 로펌 변호사로서 한 전형을 보여주는 법무법인 태평양의 이형석(40) 변호사를 통해 그 내부를 한번 들여다보자.

▶예비 법조인들의 산실인 경기도 일산 사법연수원. 2001년 사시 합격자 1,000명 시대 이후 1년에 400~500명의 변호사가 양산되고 있다.


그는 현재 태평양 내에서 ‘구성원(파트너) 변호사’다. 태평양에서 구성원은 회사 내 거의 모든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소득도 구성원들의 합의에 의거해 나눠 갖는 로펌의 주인이다. 반면 ‘소속(어소시에이트) 변호사’는 구성원 변호사에게 고용된 월급쟁이다.

그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이듬해인 1988년 사법시험(제31회)에 합격했다. 공군 법무관을 제대하던 해인 1995년 태평양에 입사했다. 그는 애초에 판사를 희망했고, 성적도 판사로 임용될 수 있을 만큼 우수했다. 그러나 그는 공군 법무관으로 근무하면서 생각이 바뀌어 진로를 로펌으로 급선회했다. 그때 ‘바뀐 생각’을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법조 직업도 전문가가 돼야 살아남을 수 있는데, 로펌으로 가야 내가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사회의 지배체제가 관에서 민으로 전환하는 현실에서 로펌 변호사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업무와 교육으로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좋은 방법으로 여겨졌다. 태평양은 판·검사로 임용될 수 있는 성적과 능력을 요구하는데, 그 관문을 통과해 입사했다.”

사내 변호사도 인기 짱!

태평양에는 현재 업무영역별로 20개 팀이 있다. 입사 1년차와 2년차 때 자신이 원하는 2개 부서를 경험하게 한 후 자신의 전문 영역을 결정하도록 한다. 그 역시 그 과정을 거쳐 기업 전문가로 성장해 기업 일반, 기업 인수합병 분야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그는 또 태평양의 해외연수제도를 한껏 활용해 2001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 기회에 그는 미 캘리포니아주 웨스턴대 대학원에서 법학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동시에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을 따내 전문성을 높였다.

“로펌에서 성공하려면 업무 능력이 뛰어나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태평양에서는 클라이언트를 만족시킬 수 있도록 일을 잘해야 한다. 로펌이 윤리나 애국심을 저버리고 돈만 좇는다는 비판이 있지만, 클라이언트의 정당한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태평양에서 업무는 혼자가 아니라 팀을 이뤄 추진한다. 그래서 태평양에서는 내부 구성원 간 ‘인화’를 중시한다. 그리고 구성원 변호사가 되려면 소속 변호사의 업무 능력 제고를 위해 교육할 수 있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로펌은 업무 강도가 높기로도 유명하다. 이 변호사는 태평양을 예로 들어 “밤 12시를 넘기는 것이 다반사일 만큼 일이 많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가정에 소홀하지 않도록 배려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대형 로펌이 변호사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이유를 이 변호사의 말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최근 들어 변호사의 기업체 진출 또한 급속히 늘어나는 추세다. 사내 변호사제도가 그것이다. 사내 변호사는 기업체에서 직원으로 상근하는 변호사를 말한다. 사내 변호사제도는 국내에서는 삼성그룹이 1990년대 말에 처음 도입했고, 그 영향으로 2000년대 들어 여러 기업체에서 경쟁적으로 이 제도를 받아들였다는 것이 변호사 사회의 정설이다.

사내 변호사는 법률만능사회인 미국에서 발달한 제도다. 미국 씨티그룹은 1,500여 명, 제너럴일렉트릭(GE)은 1,000여 명에 이를 만큼 미국에서는 사내 변호사제도가 거의 일반화돼 있다. 미국사회에서는 사내 변호사가 ‘회사 권리 보호의 최후 보루’라는 인식이 강하고 그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 국내 기업체에서도 법무실·법무팀·법제팀 등의 이름으로 사내 변호사 조직을 공식적으로 설치·운영하는 것이 낯설지 않은 현상이 됐다.

물론 삼성그룹을 비롯한 사내 변호사의 주력은 판·검사를 역임한 이른바 재조(在曹) 출신들이다. 이종왕 법률고문 겸 법무실장으로 대표되는 삼성그룹 법무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1999년 2월 사법연수원 수료자(28기)를 대상으로 처음 공채를 실시해 사내 변호사 7명을 뽑은 곳도 삼성그룹이었다. 그 이후 삼성그룹은 연수원 수료 변호사를 한 해도 거르지 않고 2~9명씩 뽑고 있다.

사법연수원 수료자 중 기업체 진출자가 35기(2006년 2월 수료)만 하더라도 895명 중 총 47명에 이른다. 사법연수원 집계에 따르면 기업체 진출자가 2002년 2월 수료생인 31기 때는 17명이었지만 25명(32기), 38명(33기), 52명(34기) 등 해마다 단위가 달라질 만큼 많이 증가하고 있다. 진출 기업체도 13개(31기), 15개(32기), 23개(33기), 41개(34기), 33개(35기) 등으로 대폭 확산하는 추세는 마찬가지다.

이 통계에서 보듯 사내 변호사제도가 진로를 고민하던 신참 변호사들에게 새로운 활로를 열어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변호사들은 자신들의 활동 무대가 기업체로까지 넓어졌다는 점에서 이 현상을 ‘직역 확대’로 받아들이고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것은 분명 변호사 사회의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다.

기업체 입장에서는 “투명경영 시대에 법률을 잘 몰라 회사가 떠안지 않아도 될 부담을 사전에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예방 강화 차원에서 사내 변호사를 받아들이는 데 매우 적극적이다. 과거 기업의 변호사 활용은 고문 변호사나 로펌 변호사들에게 사건이 발생한 후 뒤처리를 위임하는 수준에 그쳤다.

사내 변호사는 단순히 각종 수사나 소송에 대응하는 송무 업무를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CEO가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법률적 조언자’ 역할을 하거나 핵심 사업의 경우 추진 초기 단계부터 관여해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 사내 변호사들의 주장이다.

한화그룹 구조조정본부 정상식 변호사는 사내 변호사의 임무를 “회사의 제반 경영과 관련한 법적 위험을 방지하거나 최소화하고, 상업적 기회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명쾌하게 정리했다.

“단순한 법률 서비스는 외부 변호사들이 더 잘할 수 있다. 그러나 사내 변호사는 소속 기업의 일반 현황과 생리 등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훨씬 효율적이고 구체적인 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점이 장점이다.”

변호사에 대한 기업체의 대우는 판·검사 경험 유무, 변호사 경력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기업체의 변호사 대우는 그 전문성을 인정해 대체로 후한 편이다. 갓 연수원을 마친 변호사도 대기업에 입사하면 최소한 과장 대우는 받는다. 앞에서 말한 정상식 변호사는 2005년 9월 한화그룹에 입사해 현재 직급이 상무이사다. 1993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정 변호사는 1996년부터 만 10년간 검사로 근무한 경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계속>

윤석진 월간중앙 기자 [gra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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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7-01-14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시패스로 신분이 바뀐다는 것은 점점 옛말이 되고 있다...물론 아직도 시험 하나 통과한 것 치고는 많은 혜택이 있지만, 이제는 정말 더 큰 가능성을 열어주는 하나의 관문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고] 법-검 영장갈등을 보면서 / 채동배
[한겨레 2006-11-28 18:12]    

[한겨레] 최근 검찰이 론스타의 수뇌부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한 데 대하여 법원이 영장실질심사에서 계속하여 세번이나 영장을 기각한 사건이 있었다. 검찰은 증거 포착이 어려운 이 사건을 심도있게 수사하여 기소유지를 해야 할 뿐 아니라 다른 사건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할 때 론스타 간부진의 구속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었고, 법원은 그들을 체포할 만한 충분한 증거가 없으니 먼저 충분한 증거를 제시하라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최근 사법개혁과 형사소송법 개정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불구속기소 원칙을 도입한 형사소송법 개정의 정신은 피의자의 인권을 보장하고 수사를 투명하게 함으로서 민주주의적 사법제도를 확립하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에서는 영장발부와 불구속기소라는 두 원칙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가? 미국의 판사가 체포영장을 발부할 때 기준으로 삼는 척도는 연방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대로 “체포할 필요가 있다고 믿을 만한 이유”이다. 약간 막연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검찰(경찰)은 어느 정도의 수사를 진행한 결과 혹은 수사관이 현장에서 목격한 사건을 수사한 결과 “범죄행위가 있(었)다고 믿을 만한 증거가 있고 그 범죄행위의 혐의자가 있다”는 전제 아래 혐의자에 대한 영장 발부를 청구한다. 영장 발부의 근본 목적은 일단 피의자의 신병을 확보하고 그에게 혐의 내용을 고지함과 동시에 앞으로 있을 재판에 성실히 출두하겠다는 약속을 받는 것이다. 그런 다음 피의자가 보석금을 영치하면 즉시 구속상태를 풀어준다.

검찰은 피의자를 일단 체포해놓고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수사를 진행하기 위하여 영장을 청구한다는 마음가짐을 버려야 한다. 막강한 국가 권력을 등에 업고 있는 검찰엔 항상 힘 없는 피의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설혹 구속상태에서 수사를 진행하더라도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와 증언거부권을 반드시 보장해 주어야 한다.

미국의 형사재판에서 피의자의 유무죄를 판정할 때는 적어도 “합리적인 의심을 가질 수 없을 정도의 명백한 증거”가 있어야 비로소 유죄로 평결할 수가 있다. 이렇게 비교해보면 한국의 영장심사는 “체포할 필요가 있다고 믿을 만한 이유”를 훨씬 넘어 “합리적인 의심을 가질 수 없을 정도의 명백한 증거”의 척도를 가지고 피의자의 체포 여부를 결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검찰에 대한 지나친 요구인 것처럼 생각된다.

미국의 판사는 하루에 20~30건에 이르는 영장청구를 심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국의 영장심사처럼 사건 하나에 10시간 이상씩 많은 시간을 배정할 여유가 없다. 영장 심사는 피의자의 출두 혹은 변호사의 변론없이 판사단독으로 판사실에서 서류검토만으로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검사(경찰관)이 제출한 영장청구서에 “체포할 필요가 있다고 믿을만한 이유”가 있다고 판정하면 즉시 영장을 발부한다.

검찰은 형사소송의 목적이 결코 피의자에 대한 징벌이나 복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진리를 발견하여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라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 판사는 피의자에게 형사소송법상의 모든 보호조처를 보장해 주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검찰을 적대적인 자세에서 대할 것이 아니다. 판사는 오직 공정하고 불편부당한 중립자의 형편에서 영장을 검토해야 한다. 판사가 영장심사할 때에는 지나친 증거를 요구할 것이 아니고 “체포할 필요가 있다고 믿을 만한 이유”의 척도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채동배/미국 달라스시 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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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천자문 2006-11-28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떡찰놈들은 몸통은 건드리지도 못하고 깃털 몇 명 잡아넣는 걸로 체면치레나 하려는 모양이고, 판새놈들은 그나마도 팍팍 기각해버리고 한마디로 3류 고스톱 대회를 보는 것 같네요.

외로운 발바닥 2006-11-28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루이드 님은 법조인에 대한 상당히 안좋은 감정을 가지고 계신 것 같네요. ^^;;
론스타 사태를 보면 좀 아쉬운 점이 많지만, 그래도 열심히 자기 몫 다하는 법조인도 많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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