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 27일 (화) 08:07   경향신문

美와 ‘FTA 줄다리기’ 너무 다른 두 나라

- 한국, 손해 나도…‘목매는 협상’ -

협상 개시 선언 후 1년여를 끌어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종착역을 눈앞에 두고 있다. 통상장관급 협상 결과에 따라 결렬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의 그간 태도로 미뤄 결국 타결에 이를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난 1년여 협상은 미국이 정한 협상 타결시한(4월2일)에 맞춰 협상타결을 지상 최대 목표로 내세운 정부가 철저히 미국이 정한 구도에 끌려다니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을 필두로 한 정부 협상단의 ‘나를 따르라’식 협상 추진에 국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따라갔다.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FTA 반대 목소리 속에서도 정부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는 계속되고 있다.

반덤핑 규제 완화 관련 무역구제 5개항, 전문직 비자쿼터 확보, 미 연안의 승객·화물 수송을 미국적 선박에만 허용하는 제도(존스 액트) 수정 등 우리측 핵심 요구는 미 의회 소관(법개정사항)이라는 이유로 번번이 막혔다. 그러나 미국은 투자자·국가소송제, 자동차 세제개편, 케이블TV 프로그램 공급업체(PP)의 외국인 지분 제한(49%) 완화 요구 등을 통해 국내법령의 제·개정을 촉구했다.

협상 타결에 ‘목맨’ 정부는 쟁점마다 양보에 양보를 거듭하며 미국의 성의를 기대했지만 그럴수록 미국의 요구수위는 더 높아갔다.

우리측의 자동차 세제개편 약속에도 미국의 자동차 관세 철폐 계획안은 오리무중이고, 협상 의제도 아닌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검역 문제가 쇠고기 관세(40%) 철폐와 연계되는 희한한 풍경이 빚어지기에 이르렀다.

관세는 관세대로 내리고, 국제수역사무국(OIE) 5월 총회 이후 뼛조각 쇠고기도 수입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린 게 우리의 현실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미 의회가 행정부에 부여한 무역촉진권한(TPA)에 따른 협상 시한에 덜미를 잡혀 제대로 반론을 펴보지도 못한 채 종착역을 향해 치닫고 있는 형국이다.

참여연대 이태호 협동사무처장은 “정부가 협상시한을 넘기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양 국민들을 공포로 몰아가고 있다”며 “조건이 안 맞으면 협상을 중단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나라의 명운이 걸린 협상에 나서면서 시한을 설정한 것 자체부터가 무모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고 비판했다.

〈권재현기자〉

말레이시아, 손해 나면…‘당당한 포기’ -

지난해 6월 공식협상을 시작한 미국과 말레이시아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과정에서 주도권을 쥔 쪽은 말레이시아였다.

말레이시아는 총리, 통상장관 등이 번갈아 가며 “판을 깰 수도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지난 1월18일 라피다 아지즈 통상장관은 “미국은 3월 말까지 협상을 끝내고자 하나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아 (그때까지) 타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미국이 자동차 및 금융시장 개방을 강하게 요구하자, 그는 “협상의 장래가 비관적”이라며 미국의 주장을 순순히 수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미국 의회에서 말레이시아가 이란에서 추진하고 있는 160억달러 수준의 대규모 가스전 개발을 중단하지 않으면 FTA 협상을 하지 말라는 권고가 나왔을 때는 압둘라 바다위 총리가 직접 나서 반격에 나섰다.

바다위 총리는 2월2일 “미국의 (내정간섭) 압력에 굴복하지 않겠다”며 “미국은 (무역 협상에) 정치적인 문제를 들고 오지 말라”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미국은 말레이시아의 강경 자세에는 별다른 유감 표명을 하지 않고 협상을 이어갔다. 말레이시아는 지난달 5차 협상 이후에도 미국 측의 요구안에 대해 “내부 합의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답변을 미뤄 결국 미국은 지난 23일 “3월내 타결은 불가능하다”는 발표를 하기에 이르렀다.

말레이시아가 강경 자세를 견지한 것은 ‘협상 타결’에 몸이 단 쪽은 미국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1993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파나마 등 경제 규모가 작은 일부 나라와 FTA를 체결했을 뿐 덩치 큰 통상협상은 이뤄내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지난해 5월 다자간 통상협상인 도하개발아젠다(DDA)가 무산됐다. 미국의 소극적인 자세가 결실을 못 본 주요 원인으로 지적됐다. 미국으로서는 번듯한 FTA를 이뤄내야만 DDA 무산에 따른 국제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반면, 말레이시아는 일본 등과의 FTA를 이미 성사시켜 느긋한 입장에서 당당하게 협상에 임할 수 있었다.

〈김용석기자 kimy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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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막바지, 여의도와 워싱턴은 사뭇 다르다. 한국 국회의 한·미 FTA 특위 회의장은 늘 비어있다시피 한다. 소신파 의원 몇몇만 고군분투할 뿐, 정치권 대부분은 오불관언이다. 고작 의원들의 관심을 끈 것은 FTA 관련 대외비 문서 유출이었다. 미국 하원은 자국 협상단에 “더 세게 나가라”고 조직적으로 밀어붙인다. 내년 11월로 다가온 대통령선거도 FTA에 비하면 뒷전이다. “미국은 의회에 FTA 협상권이 있고 정보공개도 더 활발하다”며 한국 의원들은 ‘면피’하기 바쁘다. 의지는 있는데 권한이 없는가. 의지조차 없는 건가.

- 美 의회에선 청문회 개최 ‘벌떼 공세’ -

20일(현지시간) 미국 하원 세출위원회 무역소위가 개최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청문회는 막바지 협상 국면에서 지역구 주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의원들의 노력이 유감없이 과시된 자리였다.

미 자동차 산업의 메카 미시간주 출신 샌더 레빈 위원장은 “한국은 (협상) 처음부터 미국산 제품에 대해 관세와 세금, 규제를 합한 ‘경제적 철의 장막’을 쳐왔다”면서 자동차시장의 완전개방을 촉구했다. 13선의 관록을 자랑하는 레빈 위원장이 한·미 FTA가 미국경제에 미치는 함의를 모르지는 않을 터. 하지만 국회의원이 누구의 대표이며, 무엇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미 무역대표부(USTR) 캐런 바티아 부대표는 협정이 체결되면 미국이 얻을 잠재적 이익이 170억~430억달러에 달한다고 경제적 효과를 강조했지만, 보다 강한 협상을 요구하는 의원들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묻혔다.

벤 넬슨 상원의원(민주·네브라스카)은 최근 이태식 주미대사를 만나 “쇠고기 없으면 FTA는 없다”면서 엄포를 놓기도 했다. FTA 협정 비준권을 휘두르며 자국 산업의 이익을 엄호하기 위한 노력들이다. 일부 미 의원들은 8차까지 벌여온 협상 과정에서 서울의 미국측 협상단에 전화를 넣어 핵심 쟁점에서 “절대로 양보하면 안된다”는 압력을 넣는 등 적극 개입하고 있다.

미국 역시 내년 대선을 앞두고 힐러리 클린턴, 배럭 오바마 등 유력 대권주자들의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하지만 적어도 한·미 FTA 쟁점 산업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상·하 의원들에게 대통령 선거는 뒷전이다.

〈워싱턴|김진호특파원〉

- 한국 국회는 들러리 행위 ‘천하 태평’ -

국회 한·미 FTA 전체회의가 열린 지난 16일. 정부측의 8차협상 결과 보고가 있었지만 특위 위원 30명 중 14명이 참석했다. 의결 정족수 15명도 채우지 못한 것이다. 그나마 질의를 한 의원은 11명에 그쳤다. 지난달 26일 7차협상 보고 때는 11명만이 참석했다. 게다가 툭하면 개인적 관심사안만 질의하고 회의장을 비우기 일쑤다.

‘부실 보고’ 언쟁도 단골 쟁점이다. 7차협상 때 정부 협상전략을 담은 대외비 문건이 언론에 공개된 후 얼굴을 붉히는 횟수가 더 많아졌다.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가 사안의 핵심을 ‘알 권리’보다 ‘기밀유출’ 쪽으로 본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생정치모임 최재천 의원은 “특위는 보고만 받고, 심사·의결은 통일외교통상위에서 하도록 한 게 맹점”이라며 “미 의회와 달리 국회의 전문적인 도움은 없고, 의원들의 개인기에 맡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국회 특위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 협상과정을 감시·통제하고, 국익의 마지노선이 돼야 할 특별기구의 역할과 신뢰를 잃은 것이다. 한·미 FTA가 대선 정국에서 각 정파의 방치로 인해 ‘시한폭탄’ 성격만 짙어지고 있다.

관심은 미 행정부의 무역촉진권한(TPA) 마감시한인 4월2일 이후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미 의회가 4월부터 철저한 검증에 돌입하지만, 국내에선 협정문을 그 이후에 보고한다고 한다”며 “들러리 역할에 머물고 있는 특위를 해체하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실질적 검증·자문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가이드라인도, 구체적 정보도 없는 국회는 주요 협정 내용을 미 의회에 의존할 상황이라는 자조가 일고 있다.

〈이기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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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결 임박한 한-미 FTA] 주고 또 주고…한국 보따리 ‘바닥’


[한겨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수석대표간 고위급 회의를 마치고 다음주 서울에서 최종 장관급 회의만 남겨놓은 상태지만 주요 쟁점에서 합의 내용이 미국 쪽으로 계속 쏠리고 있다. 막판 초읽기에 접어든 만큼 미국이 양보하는 것도 보여야 하는데 눈에 띄는 것은 한국의 양보 뿐이다.

양보의 불균형 갈수록 심화=정부가 공식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미국 쪽에 안겨준 ‘전리품’인 스크린쿼터가 타결 임박 시점에 다시 ‘미끼’로 전락했다. 우리 협상단이 국산영화의 의무 상영일을 더 늘리지 않도록 못박아줄테니 미국의 요구사항 가운데 뭔가를 접어달라며, 밀고 당기기가 진행중이다.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 여부도 협정 체결 뒤 협의하기로 물러섰다. 지난해 말에는 협상력을 집중하겠다고 공언했던 반덤핑 제재의 비합산조처(덤핑피해 판정 때 더 싼 중국산 등과 분리해 조사) 등 미국의 통상보복 제도 개선을 위한 핵심 요구는 협정문 반영을 포기했다. 미국의 특허권 연장 요구도 사실상 합의해줬다. 우리 쪽의 강력한 요구사항인 전문직 비자쿼터는 에프티에이의 의제에서 빼기로 했다.

농산물이나 식품의 ‘위생검역절차’나 ‘기술장벽’ 관련 분야에서는 “협정 이행을 감독할 상설 위원회를 두자”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앞으로 정부는 국민 식생활 안전조처나 산업정책을 펼 때 미국 정부나 업자들과 사전에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

자동차에서도 국내 배기량 기준 세제 개편은 물론, 자동차위원회와 표준작업반 설치 등 미쪽 요구를 대폭 들어줬다. 섬유 협상에서도 우리 업체의 의무적이고 정기적인 경영 정보 제출과 미 세관당국의 한국 업체 현장조사 보장 등 미국 요구를 원칙적으로 수용했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이 협상 막바지에 집중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자동차 관세 철폐에 대해 아직까지 묵묵부답이다. 또 이번 고위급 회의에서 미국이 내놓은 섬유의 수정 양허안(개방안) 또한 “진전시켜야 될 여지가 굉장히 많다”고, 협상 대표였던 이재훈 산업자원부 2차관은 밝혔다.

허울만 따낸 한국=한국이 고위급 회의에서 얻은 것도 더러 있다. 하지만 ‘종이 호랑이’가 많다. 협정문에 명시는 되는데 상당수가 의무 규정이 아니어서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무역구제협력위원회’ 설립 합의이다. 비합산 조처 등 한국의 무역구제 관련 핵심 요구를 미국 쪽이 “법 개정 사항”이라는 이유로 버텨 협정문 반영은 포기하고 얻은 차선책이다. 비합산조처 도입 등을 협정 체결 뒤 이 위원회에서 다시 다루자고 한국이 요구하면 미국은 협의해야 한다. 그러나 수용할 필요는 없다.

미국의 다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발동 때 한국산 상품은 제외해달라는 우리 요구도 ‘제외해야 한다’가 아니라 ‘제외할 수 있다’로 합의됐다. 부동산·조세정책은 투자자-국가 소송제도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는 문구를 어쨌든 협정문에 반영되는 쪽으로 의견이 좁혀지고 있다. 그러나 협상단 관계자는 “미국이 이를 무시해도 되는 임의조항은 아니지만 100% 의무조항이라고 말하긴 어렵다”고 애매하게 설명했다.

워싱턴/송창석 기자 number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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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장관급회담] 요구사항 숫자, 美가 한국의 2배


주고받기보다 방어적 ‘딜’ 될 가능성
정부 “농업은 다른 분야와 연계 안해”

미국은 전방위로 공격하고, 한국은 막는 데 급급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최종 담판장이 될 양국 통상장관급 회담 테이블에 올려질 협상의 대차대조표는 미국의 일방적인 공세를 반영하고 있다.

10여 개 분야에서 미국은 15가지 이상의 요구사항을 가지고 있는 반면, 한국은 9가지 안팎에 불과해 양적으로만 보더라도 두 배 정도 차이가 난다. 한국이 공세적인 분야는 자동차, 섬유, 존스 액트(Jones Actㆍ미 연안의 승객ㆍ화물 수송을 미국 국적 선박에만 허용하는 제도) 정도다. 나머지는 주로 예외 인정과 같은 방어적인 성격의 요구 사항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미국은 농산물과 쇠고기, 방송ㆍ통신, 지적재산권, 의약품 분야 등 굵직한 사안에서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본격적인 주고받기가 이뤄질 최종 회담에서 한국이 얼마나 힘의 균형을 이룰 수 있을지 우려되는 이유다.

우리 정부는 이미 민감한 농업부문은 다른 분야와 연계 없이 농업 내부에서‘빅딜’를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즉, 쇠고기 문제의 경우, 40% 관세철폐와 뼈있는 쇠고기의 수입재개와 같은 검역문제를 주고받는 방안이 고려되고 있다.

광우병 위험 등으로 국민건강을 해칠 수 있는 뼈 수입을 보류하는 대신, 쇠고기 관세를 낮춰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종훈 한미FTA 수석대표는 “미 쇠고기는 40% 관세가 부과되어도 가격 경쟁력이 있다”며 “쇠고기 관세는 큰 문제가 아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미 쇠고기는 어차피 싸기 때문에 관세를 더 철폐해 좀더 싸지더라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쇠고기 문제에 있어서 미국은 뼈가 포함된 LA갈비 등의 수출을 위해 검역문제에 더 집착하고 있어, 양국의 입장차가 얼마나 좁혀질지 예측하기 어렵다.

돼지고기, 오렌지(감귤), 닭고기, 낙농품, 고추, 마늘, 양파, 인삼, 사과, 포도, 배, 견과류, 보리, 옥수수 등 한국이 골라놓은 개방 제외 품목들의 운명도 낙관하기 어렵다.

미국의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이들 민감 품목 중 어떤 것을 버리고 어떤 것을 선택할지 고통스러운 절충을 시도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 입장과 달리 미국이 농업 품목과 다른 분야를 연계하는 ‘빅딜’을 제안, 농업의 희생을 압박할 가능성도 크다.

미국이 막판에 들고나온 쌀 개방 문제는 다분히 전략적인 측면이 있어 농업의 다른 품목과 연계되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쌀은 존스 액트와 같은 미국의 아킬레스 건과 연계해 양쪽 모두 개방을 유보하는 선에서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와 섬유도 여러 쟁점들이 남아 있어 다른 사안과 연계되기보다는 내부 ‘딜’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지적재산권, 의약품, 방송ㆍ통신, 무역구제 등은 서로 연계 처리돼 ‘빅딜’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요구할 것이 많지 않은 한국으로선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즉, 미국에게 A를 받는 조건으로 B를 내주는 식의 ‘빅딜’이 아니라, A는 내주는 대신 B는 내줄 수 없다는 방어적인 ‘딜’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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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법불신, 왜?③]'권력의 시녀' 오명 씻으려면…
  2007-03-13 오후 5:47:00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s_menu=사회&article_num=60070308164252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는 말이 사법부의 태생적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라면,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은 사법부 성장과정의 한계로 꼽힌다. 특히 사법부가 '인권보장의 최후 보루'여야 한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입법·행정 권력에서 독립돼야만 하는 사법부가 과거 독재정권의 하수인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사법불신의 뿌리깊은 요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이후 사회 곳곳에서 과거사 청산 작업이 벌어지고 있으나 사법부는 매우 소극적인 자세를 보여 왔다. 사법부가 최근 형식적으로는 삼권분립 체제의 독립 권력으로 되살아났다 할지라도, 과거의 오명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이상, 그 권력의 정당성과 신뢰를 얻기는 힘들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2005년 9월 취임 당시 '사법부의 반성'을 언급했으나, 이후 구체적인 과거사 청산 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

  이용훈 대법원장 취임사로 부푼 기대, 1년 6개월 지났는데…

  
  그래서 지난 2005년 이용훈 대법원장의 취임사는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게 했다. 이 대법원장은 "독재와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면서 사법부는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인권보장의 최후 보루로서 소임을 다하지 못한 불행한 과거를 갖고 있다"고 반성했다.
  
  이 대법원장은 특히 "그동안 사법부가 행한 법의 선언에 오류가 없었는지, 외부의 영향으로 정의가 왜곡되지는 않았는지 돌이켜 봐야 하며 권위주의 시대에 국민 위에 군림하던 그릇된 유산을 청산하고, 국민의 권리를 지키는 본연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취임사를 듣고 느꼈던 '기대'는 취임 이후 1년 6개월이 지나는 동안 '실망'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취임사는 거창했지만, 이후 과거사 청산 방식에 대한 논란만 있을 뿐 눈에 띄는 후속작업이 없기 때문이다.
  
  '멀고도 험난한' 재심 통한 과거사 청산
  
  현재 제기되고 있는 과거사 청산 방식에 대한 논의는 크게 '사법부 내 과거사 청산위원회를 설치'(위원회), '과거 판결을 무효화하는 특별법 제정'(입법), '재심강화를 통한 판결 정정 및 판례 재정립'(재심) 등 크게 세 가지다.
  
  과거사 청산위원회를 설치하거나 특별법을 제정하는 방식에 대해 사법부는 "법률적 판단을 정치적 방식으로 해소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문제 등을 이유로 현실성이 없다면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사법부는 재심을 통한 과거사 청산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고 있으며, 그간 재심사건이 대법원에 상고되면 대법원 판결문에서 과거에 대한 반성 및 판례 변경을 통해 과거사 청산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 '인혁당 재건위' 재심사건에서 무죄를 선고 받고 오열하는 유족들. ⓒ연합뉴스

  하지만 재심을 통한 과거사 청산은 '멀고도 험난한 길'이다.
  
  지난 1월 재심 판결을 통해 '무죄'가 선고돼 큰 화제를 모았던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경우, 재심 신청(2002. 12)에서 재심 결정(2005.12), 1심 무죄판결(2007.1)이 내려질 때까지 무려 4년 2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러다보니 1심 무죄 판결 이후 검찰이 항소를 포기했다. 유가족을 더 이상 고통스럽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대법원 판결을 통한 과거사 청산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게다가 재심 사유가 까다로워 무혐의를 입증하거나 수사 과정에서 불법감금과 고문과 같은 불법행위를 받았다는 '새로운 증거'를 제출해야 하는데, 일반인들로서는 이를 찾아내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다. 실제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경우 재심이 이뤄지는 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나 국정원 진실위와 같은 공신력을 지닌 기관에서 밝혀낸 자료가 큰 역할을 했다.
  
  이번 인혁당 판결에 앞서 간첩혐의로 불법연행·감금돼 고문을 당한 뒤 15년형을 받아 15년을 꼬박 옥살이한 신귀영(71) 씨의 경우 2번이나 법원에 재심 청구를 했지만, 모두 상급심에서 좌절당한 것만 봐도 재심을 통한 과거사 청산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다.
  
  따라서 사법부가 '재심을 신청하면 그 때 보겠다'는 현 자세를 유지하는 한 "과거사 청산의 의지가 없다"는 비난을 들어 마땅하다.
  
  사법부는 '재심 특별재판부' 설치하고, 검찰도 진상규명 나서야
  
  따라서 사법부가 지난 과오를 진정 반성하고 있다면 '재심 특별부'를 설치해 재심 사건에 대한 집중 심리를 벌여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판사 1명이 1년에 3500여 건의 사건을 처리하는 현실에서 재심 사건을 집중 심리하는 '특별부'를 설치해 신속한 재판과 재심 사건에 대한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 특히 재심 대상으로 분류되는 사건이 대부분 20~40년이 지난 사건으로,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미 많은 '재심 대상' 사건 피해자들이 사망했고, 또 많은 피해자들이 고령이어서 시간이 많지 않다.
  
▲ 간첩사건에 연루돼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으나 두 번이나 거부당한 신귀영 씨. 최근 진실화해위에서 "신 씨에 대한 재심이 필요하다"고 법원에 권고했다. ⓒ프레시안

  또 재심의 실효성을 얻기 위해서는 검찰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재심이 정치적 판단이 아니라 법률적 판단이 되기 위해서는 철저한 증거조사가 필요한데, 법원의 직권조사 명령만으로는 강제성이 없어 조사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검찰이 나서야 한다.
  
  과거 '메모 재판'의 주범은 판사 뿐만 아니라 검사도 책임이 막중하기 때문이다. 검찰 역시 '정치적으로 독립적인 준사법기관'을 주창하고 있지만, 과거 검찰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공안기관원에게서 모진 고문을 받다 검사 앞에 불려가 '나를 보호해주겠지'라는 피해자들의 바램을 무참히 짓밟은 당사자들이 검사들이었다. '사법부 과거사 청산'이 담장넘어 법원만의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진실화해위 김갑배 상임위원(변호사)은 "피해 당사자들이 재심청구를 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며 "형사소송법상 재심청구의 자격이 있는 검찰이 사법부의 암울했던 과거에 책임이 있는 만큼, 재판에서의 승소에 집착하지 말고 공익의 대변자로서 재심 청구와 진상규명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력의 시녀' 된 구조 밝히는 것도 과거사 청산이다"
  
  결국 사법부는 "대법원에 올라오면 입장을 표명하겠다"는 소극적 자세가 아니라 "대법원에 사건이 올라오도록 시스템을 갖추겠다"는 적극적 자세가 필요하다. 특히 검찰의 협조가 필수적이긴 하지만 특별법을 만들거나 현행 법률을 개정하지 않아도 실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법원의 의지만으로 시행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법부가 '재심'이라는 법률적 행위로만 청산할 수 없는 과거사가 있다. 바로 과거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을 듣게 했던 권력 종속의 구조를 밝히는 일이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선 '과거사 청산위원회' 설치 등이 검토돼야 한다.
  
  한상희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건국대 법학과 교수)은 "진실을 밝혀내고 이 진실의 이면에 존재할 수 있었던 권력과 이익의 문제들을 규명해 이를 척결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과거사 청산의 또 다른 목표"라면서 "과거사를 생산해 낼 수 있었던 사법의 구조와 체계 혹은 이를 둘러싼 정치구조 그 자체의 왜곡지점을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소장은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질 때 비로소 우리 사법의 정치성은 청산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과 신뢰의 회복은 민주화 과정에서 '무혈 입성'한 법원의 최소한의 역사에 대한 책무이고, 앞으로 사법부가 진정한 '국민을 위한' 법원으로 거듭나기 위한 미래적 의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실현 가능한 방법마저 외면한다면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회복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김하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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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7-03-25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단락이 정말 사법부의 현 상황에 대한 핵심적인 진단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