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막바지, 여의도와 워싱턴은 사뭇 다르다. 한국 국회의 한·미 FTA 특위 회의장은 늘 비어있다시피 한다. 소신파 의원 몇몇만 고군분투할 뿐, 정치권 대부분은 오불관언이다. 고작 의원들의 관심을 끈 것은 FTA 관련 대외비 문서 유출이었다. 미국 하원은 자국 협상단에 “더 세게 나가라”고 조직적으로 밀어붙인다. 내년 11월로 다가온 대통령선거도 FTA에 비하면 뒷전이다. “미국은 의회에 FTA 협상권이 있고 정보공개도 더 활발하다”며 한국 의원들은 ‘면피’하기 바쁘다. 의지는 있는데 권한이 없는가. 의지조차 없는 건가.

- 美 의회에선 청문회 개최 ‘벌떼 공세’ -

20일(현지시간) 미국 하원 세출위원회 무역소위가 개최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청문회는 막바지 협상 국면에서 지역구 주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의원들의 노력이 유감없이 과시된 자리였다.

미 자동차 산업의 메카 미시간주 출신 샌더 레빈 위원장은 “한국은 (협상) 처음부터 미국산 제품에 대해 관세와 세금, 규제를 합한 ‘경제적 철의 장막’을 쳐왔다”면서 자동차시장의 완전개방을 촉구했다. 13선의 관록을 자랑하는 레빈 위원장이 한·미 FTA가 미국경제에 미치는 함의를 모르지는 않을 터. 하지만 국회의원이 누구의 대표이며, 무엇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미 무역대표부(USTR) 캐런 바티아 부대표는 협정이 체결되면 미국이 얻을 잠재적 이익이 170억~430억달러에 달한다고 경제적 효과를 강조했지만, 보다 강한 협상을 요구하는 의원들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묻혔다.

벤 넬슨 상원의원(민주·네브라스카)은 최근 이태식 주미대사를 만나 “쇠고기 없으면 FTA는 없다”면서 엄포를 놓기도 했다. FTA 협정 비준권을 휘두르며 자국 산업의 이익을 엄호하기 위한 노력들이다. 일부 미 의원들은 8차까지 벌여온 협상 과정에서 서울의 미국측 협상단에 전화를 넣어 핵심 쟁점에서 “절대로 양보하면 안된다”는 압력을 넣는 등 적극 개입하고 있다.

미국 역시 내년 대선을 앞두고 힐러리 클린턴, 배럭 오바마 등 유력 대권주자들의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하지만 적어도 한·미 FTA 쟁점 산업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상·하 의원들에게 대통령 선거는 뒷전이다.

〈워싱턴|김진호특파원〉

- 한국 국회는 들러리 행위 ‘천하 태평’ -

국회 한·미 FTA 전체회의가 열린 지난 16일. 정부측의 8차협상 결과 보고가 있었지만 특위 위원 30명 중 14명이 참석했다. 의결 정족수 15명도 채우지 못한 것이다. 그나마 질의를 한 의원은 11명에 그쳤다. 지난달 26일 7차협상 보고 때는 11명만이 참석했다. 게다가 툭하면 개인적 관심사안만 질의하고 회의장을 비우기 일쑤다.

‘부실 보고’ 언쟁도 단골 쟁점이다. 7차협상 때 정부 협상전략을 담은 대외비 문건이 언론에 공개된 후 얼굴을 붉히는 횟수가 더 많아졌다.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가 사안의 핵심을 ‘알 권리’보다 ‘기밀유출’ 쪽으로 본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생정치모임 최재천 의원은 “특위는 보고만 받고, 심사·의결은 통일외교통상위에서 하도록 한 게 맹점”이라며 “미 의회와 달리 국회의 전문적인 도움은 없고, 의원들의 개인기에 맡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국회 특위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 협상과정을 감시·통제하고, 국익의 마지노선이 돼야 할 특별기구의 역할과 신뢰를 잃은 것이다. 한·미 FTA가 대선 정국에서 각 정파의 방치로 인해 ‘시한폭탄’ 성격만 짙어지고 있다.

관심은 미 행정부의 무역촉진권한(TPA) 마감시한인 4월2일 이후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미 의회가 4월부터 철저한 검증에 돌입하지만, 국내에선 협정문을 그 이후에 보고한다고 한다”며 “들러리 역할에 머물고 있는 특위를 해체하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실질적 검증·자문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가이드라인도, 구체적 정보도 없는 국회는 주요 협정 내용을 미 의회에 의존할 상황이라는 자조가 일고 있다.

〈이기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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