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 27일 (화) 08:07   경향신문

美와 ‘FTA 줄다리기’ 너무 다른 두 나라

- 한국, 손해 나도…‘목매는 협상’ -

협상 개시 선언 후 1년여를 끌어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종착역을 눈앞에 두고 있다. 통상장관급 협상 결과에 따라 결렬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의 그간 태도로 미뤄 결국 타결에 이를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난 1년여 협상은 미국이 정한 협상 타결시한(4월2일)에 맞춰 협상타결을 지상 최대 목표로 내세운 정부가 철저히 미국이 정한 구도에 끌려다니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을 필두로 한 정부 협상단의 ‘나를 따르라’식 협상 추진에 국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따라갔다.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FTA 반대 목소리 속에서도 정부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는 계속되고 있다.

반덤핑 규제 완화 관련 무역구제 5개항, 전문직 비자쿼터 확보, 미 연안의 승객·화물 수송을 미국적 선박에만 허용하는 제도(존스 액트) 수정 등 우리측 핵심 요구는 미 의회 소관(법개정사항)이라는 이유로 번번이 막혔다. 그러나 미국은 투자자·국가소송제, 자동차 세제개편, 케이블TV 프로그램 공급업체(PP)의 외국인 지분 제한(49%) 완화 요구 등을 통해 국내법령의 제·개정을 촉구했다.

협상 타결에 ‘목맨’ 정부는 쟁점마다 양보에 양보를 거듭하며 미국의 성의를 기대했지만 그럴수록 미국의 요구수위는 더 높아갔다.

우리측의 자동차 세제개편 약속에도 미국의 자동차 관세 철폐 계획안은 오리무중이고, 협상 의제도 아닌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검역 문제가 쇠고기 관세(40%) 철폐와 연계되는 희한한 풍경이 빚어지기에 이르렀다.

관세는 관세대로 내리고, 국제수역사무국(OIE) 5월 총회 이후 뼛조각 쇠고기도 수입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린 게 우리의 현실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미 의회가 행정부에 부여한 무역촉진권한(TPA)에 따른 협상 시한에 덜미를 잡혀 제대로 반론을 펴보지도 못한 채 종착역을 향해 치닫고 있는 형국이다.

참여연대 이태호 협동사무처장은 “정부가 협상시한을 넘기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양 국민들을 공포로 몰아가고 있다”며 “조건이 안 맞으면 협상을 중단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나라의 명운이 걸린 협상에 나서면서 시한을 설정한 것 자체부터가 무모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고 비판했다.

〈권재현기자〉

말레이시아, 손해 나면…‘당당한 포기’ -

지난해 6월 공식협상을 시작한 미국과 말레이시아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과정에서 주도권을 쥔 쪽은 말레이시아였다.

말레이시아는 총리, 통상장관 등이 번갈아 가며 “판을 깰 수도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지난 1월18일 라피다 아지즈 통상장관은 “미국은 3월 말까지 협상을 끝내고자 하나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아 (그때까지) 타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미국이 자동차 및 금융시장 개방을 강하게 요구하자, 그는 “협상의 장래가 비관적”이라며 미국의 주장을 순순히 수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미국 의회에서 말레이시아가 이란에서 추진하고 있는 160억달러 수준의 대규모 가스전 개발을 중단하지 않으면 FTA 협상을 하지 말라는 권고가 나왔을 때는 압둘라 바다위 총리가 직접 나서 반격에 나섰다.

바다위 총리는 2월2일 “미국의 (내정간섭) 압력에 굴복하지 않겠다”며 “미국은 (무역 협상에) 정치적인 문제를 들고 오지 말라”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미국은 말레이시아의 강경 자세에는 별다른 유감 표명을 하지 않고 협상을 이어갔다. 말레이시아는 지난달 5차 협상 이후에도 미국 측의 요구안에 대해 “내부 합의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답변을 미뤄 결국 미국은 지난 23일 “3월내 타결은 불가능하다”는 발표를 하기에 이르렀다.

말레이시아가 강경 자세를 견지한 것은 ‘협상 타결’에 몸이 단 쪽은 미국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1993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파나마 등 경제 규모가 작은 일부 나라와 FTA를 체결했을 뿐 덩치 큰 통상협상은 이뤄내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지난해 5월 다자간 통상협상인 도하개발아젠다(DDA)가 무산됐다. 미국의 소극적인 자세가 결실을 못 본 주요 원인으로 지적됐다. 미국으로서는 번듯한 FTA를 이뤄내야만 DDA 무산에 따른 국제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반면, 말레이시아는 일본 등과의 FTA를 이미 성사시켜 느긋한 입장에서 당당하게 협상에 임할 수 있었다.

〈김용석기자 kimy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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