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한-미
자유무역협정(
FTA) 협상이 수석대표간 고위급 회의를 마치고 다음주 서울에서 최종 장관급 회의만 남겨놓은 상태지만 주요 쟁점에서 합의 내용이 미국 쪽으로 계속 쏠리고 있다. 막판 초읽기에 접어든 만큼 미국이 양보하는 것도 보여야 하는데 눈에 띄는 것은 한국의 양보 뿐이다.
양보의 불균형 갈수록 심화=정부가 공식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미국 쪽에 안겨준 ‘전리품’인
스크린쿼터가 타결 임박 시점에 다시 ‘미끼’로 전락했다. 우리 협상단이 국산영화의 의무 상영일을 더 늘리지 않도록 못박아줄테니 미국의 요구사항 가운데 뭔가를 접어달라며, 밀고 당기기가 진행중이다.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 여부도 협정 체결 뒤 협의하기로 물러섰다. 지난해 말에는 협상력을 집중하겠다고 공언했던 반덤핑 제재의 비합산조처(덤핑피해 판정 때 더 싼 중국산 등과 분리해 조사) 등 미국의 통상보복 제도 개선을 위한 핵심 요구는 협정문 반영을 포기했다. 미국의 특허권 연장 요구도 사실상 합의해줬다. 우리 쪽의 강력한 요구사항인 전문직 비자쿼터는 에프티에이의 의제에서 빼기로 했다.
농산물이나 식품의 ‘위생검역절차’나 ‘기술장벽’ 관련 분야에서는 “협정 이행을 감독할 상설 위원회를 두자”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앞으로 정부는 국민 식생활 안전조처나 산업정책을 펼 때 미국 정부나 업자들과 사전에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
자동차에서도 국내 배기량 기준 세제 개편은 물론, 자동차위원회와 표준작업반 설치 등 미쪽 요구를 대폭 들어줬다. 섬유 협상에서도 우리 업체의 의무적이고 정기적인 경영 정보 제출과 미 세관당국의 한국 업체 현장조사 보장 등 미국 요구를 원칙적으로 수용했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이 협상 막바지에 집중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자동차 관세 철폐에 대해 아직까지 묵묵부답이다. 또 이번 고위급 회의에서 미국이 내놓은 섬유의 수정 양허안(개방안) 또한 “진전시켜야 될 여지가 굉장히 많다”고, 협상 대표였던
이재훈 산업자원부 2차관은 밝혔다.
허울만 따낸 한국=한국이 고위급 회의에서 얻은 것도 더러 있다. 하지만 ‘종이 호랑이’가 많다. 협정문에 명시는 되는데 상당수가 의무 규정이 아니어서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무역구제협력위원회’ 설립 합의이다. 비합산 조처 등 한국의 무역구제 관련 핵심 요구를 미국 쪽이 “법 개정 사항”이라는 이유로 버텨 협정문 반영은 포기하고 얻은 차선책이다. 비합산조처 도입 등을 협정 체결 뒤 이 위원회에서 다시 다루자고 한국이 요구하면 미국은 협의해야 한다. 그러나 수용할 필요는 없다.
미국의 다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발동 때 한국산 상품은 제외해달라는 우리 요구도 ‘제외해야 한다’가 아니라 ‘제외할 수 있다’로 합의됐다. 부동산·조세정책은 투자자-국가 소송제도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는 문구를 어쨌든 협정문에 반영되는 쪽으로 의견이 좁혀지고 있다. 그러나 협상단 관계자는 “미국이 이를 무시해도 되는
임의조항은 아니지만 100% 의무조항이라고 말하긴 어렵다”고 애매하게 설명했다.
워싱턴/송창석 기자 number3@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