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플레이
강준만 / 풀빛 / 199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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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교수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김대중 죽이기의 저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였다. 그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강준만 교수가 소위 말하는 좌파에 속하는 진보적인 지식인이라는 느낌을 어렴풋이 갖게 되었다. 이념적인 문제나 그의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사회에서 금기시하는 것을 꺼리낌없이 들추어낼 수 있는 그의 용기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책에서 강준만 교수는 소제목 하에 2-3쪽 분량으로 언론의 허와 실, 다양한 언론플레이의 예, 언론의 속성 등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언론, 더 나아가 한국 언론의 어두운 면을 속속들이 알 수 있었다. 말로만 들었던 기자들의 행태가 이 책을 읽으면 상당한 정도 사실임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는 단순히 한국 언론의 치부만 들추어내는 데 멈추지 않고 나름대로의 대안이나 언론을 이용하기 어려운 사회적 약자들에게 효율적인 언론플레이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정치인이나 재벌기업 총수들이 언론에 비추어지는 모습도 이 책을 읽고 나면 치밀하게 조작된 언론플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히려 이 책을 읽고 나서 모든 것을 삐뚤어진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생길 정도이다. 아무튼 순진하게 신문이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이 모두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물론 언론플레이라는 개념을 어느정도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도 강준만 교수가 들고 있는 구체적인 예들을 통해 언론에 드러나는 이미지 이면에 숨어 있는 의도를 엿볼 수 있는 혜안을 갖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나온 시기는 강준만 교수가 비판하는 대상 세력이 집권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지난 국민의 정부와 지금의 참여정부는 어느정도 강준만 교수가 지지하는 세력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 정부나 현정부의 언론플레이에 대해서도 강준만 교수가 날카롭게 그 치부를 드러낼 수 있을 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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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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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노교수가 루게릭 병에 걸려 죽어가면서 자신의 애제자에게 마지막 수업의 형식으로 삶에 대한 여러 지혜를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루게릭 병에 걸려 숨을 쉬기도 힘들어하고 급기야는 자신의 뒤마저 다른 사람이 닦아주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러서도 모리 교수는 너무나도 매력적이다. 그는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에게 남은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최대한 가치있게 보내고자 한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모리교수는 제자인 미치에게 우리의 사람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한 것인지, 우리가 어떻게 의미없는 일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면서 정작 가장 소중한 것에는 마음을 많이 쓰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지적한다.

책을 읽으면서 모리교수의 한마디 한마디가 내 마음을 뒤흔드는 것을 느꼈다. 대표적으로 기억에 남는 말로 '마음 속에서 우러나는 일들을 하라구. 그런 일들을 하게 되면 절대 실망하지 않아.'는 말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하고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일 수도 있지만, 인생에 달관한 듯한 모리교수의 입에서 나온 말에 나는 크게 공감하고 있었다. 내가 왜 힘들어 하고 마음이 편치 못했는지 알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모리교수가 새로운 진리나 대단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다만 죽음을 앞둔 사람으로서 그가 가진 삶에 대한 성찰을 소박하게 자신의 제자에게 이야기하는 것 뿐이다. 하지만 어떤 사실을 아는 것과 마음으로 느끼고 그렇게 행하는 것은 다르다. 모리교수의 말에 공감을 하고 감명을 받는 것도 그가 자신의 신념대로 삶을 살기 때문이 아닐까.

세상에는 무엇이 소중한 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알고도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더욱 많다. 자신의 삶을 의미있게, 자신이 진정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추구하면서 사는 것은, 물론 말처럼 쉽진 않지만, 결국 각자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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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의 유골 캐드펠 시리즈 1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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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영국, 그 중에서도 수도원을 중심으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우리의 어리숙하면서도 예리한 주인공 캐드펠 수사는 직관과 관찰을 토대로 진실을 파헤친다. 수도원과 교회가 사람들의 생활과 의식을 절대적으로 지배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한 성녀의 유골은 시대 배경이 중세여서 과학적인 범죄 수사가 가능하지 않고 비합리적인 일들도 신의 기적으로 설명 또는 위장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이다. 또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웨일즈 지방 사람들의 지역감정(?)도 은근히 엿볼 수 있어 영국하면 잉글랜드만 떠올리는 우리에게 엮으로 영국의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도 소득이다.

주인공 캐드펠 수사는 십자군 전쟁에 참전하는 등 다양한 인생 경험을 가진, 조용하지만 영민한 노수사이다. 그는 현학적이지도 않고 외모가 출중하다거나 싸움을 잘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작가는 그를 통해 인간의 따뜻한 심성에 대한 믿음을 보여준다. 기도 시간에 교묘하게 잠들 줄 알면서도 기지와 용기로 위기를 해결해 가는 캐드펠 수사에게서 인간미와 함께 카리스마를 동시에 느끼게 된다. 시종일관 박진감 있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스토리, 매력적인 등장인물들, 마지막의 충격적이면서도 미소를 지어내게 하는 반전은 충분히 기대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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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그
은희경 지음 / 창비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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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40대 중반이 되어 있는 한국사회의 마이너리거들. 그들을 통해 작가는 학창시절부터 문제를 일으키던 4인방이 세월이 흐르면서 겪는 시대적, 비주류적 아픔을 그리고
있다.

화자인 형준은 친구들보다는 약간의 유식함을 갖추었지만 그 또한 주목받지 못하는, 20대 80의 사회에서 80에 속하는 사람이다. 그는 특유의 냉소적 태도로 다른 친구들과는 자신이 다른 부류의 사람인양 방관자적 태도를 취한다.

마치 그 스스로가 말하고 있듯이 메이저리거가 될 수 없어서 마이너리거로 있는 것이 아니고 굳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아서 그런 것처럼. 형준을 통해 나는 내 자신의 일면을 보는 것 같았다. 자신은 무언가 특별한 존재라고 믿지만 현실에서 그러한 환상이 거부당할 때, 스스로에 대한 위안이 바로 형준이 취하는 냉소적 태도와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다양한 부류의 인간상- 각박하고 급변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특출난 능력이나 연줄 없이 태어난 사회 대다수의 마이너리거들이 발버둥치는 모습-을 통해 부모님세대의 어두운 자화상을 본다.

내가 직접 그 시대를 겪지는 못했지만 그 시대를 살아온 남성 세대의 개연성 있는 한 단면을 접할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소설을 읽고 난 후 접한 그 단면에서 느껴지는 씁슬한 뒷맛은 쉬이 가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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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 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황보석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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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접한 남미문학은 나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 책은 시종일관 빠른 전개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재, 독특한 소설적 구조 등을 통해 한 번 손에 잡히면 책을 놓기 어렵게 만든다. 쥐를 잡는 사나이, 재판정에서 자신의 성기를 자르는 광신도를 재판하는 판사 등 페드로 카마쵸라는 천재적인 드라마 작가가 쓴 라디오 드라마가 주인공의 훌리아 아주머니와의 연애이야기와 병렬적으로 진행된다.

페드로 카마쵸가 쓴 드라마는 짤막한 단편들인데 거의가 비극으로 끝나고 소설이 진행될수록 드라마속의 등장인물들이 뒤섞이면서 앞뒤가 맞지 않게 되며 드라마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이 모두 사망하는 등의 극단적인 비극으로 끝마치게 된다. 하지만 전 드라마에서 죽었던 등장인물을 새 드라마에서 부활시키면서도 기본적인 특징-직업이라든지 친척관계, 종교-등은 유지시키는 새로운 기법은 페드로 카마쵸의 손을 빌려 작가가 독창적인 문학적 기법을 시도하고 있는 듯했다. 그 밖에도 짧은 드라마속에 우습고도 온갖 비극을 함축시킬 수 있다는 작가의 만담꾼적인 재질을 페드로 카마쵸의 드라마를 통해 한껏 뽐내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소설속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단편적이지만 남미지역의 생활상, 시민들의 연애관, 가족관 등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어느 동네에 가서나 형식적으로나마 결혼을 주관할 권한이 있는 사람을 통해 결혼식을 해야 하는 웃지 못할 풍경이라든지, 자유분방한 애정표현, 주인공의 훌리아와의 연애에 대처하는 가족들의 모습 등이 우리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또한 가족의 일에 간섭하기도 하지만 성년이 되면 엄격하게 스스로의 판단에 맡기고 부모에게서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스스로 벌어야 하는 모습도 인상깊었다. 우리나라에서 이와 같은 일이 있었다면 어찌되었을까? 도저히 결혼에 성공하지 못했으리란 생각이 든다. 물론 주인공과 같은 추진력과 열정이 있었다면 반드시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사회적인 편견과 주변 가족들의 끊임없는 간섭으로 결국은 불행해지지 않았을까? 우리 사회에서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그 구성원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너무나도 큰 부담을 본인에게 안겨주어 결국은 그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는지, 요즘 부쩍 늘어난 이혼과 가정해체를 생각하며 자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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