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생의 친구
유미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열림원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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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 쓰인 원조교제란 말에 혹해서 읽은 독자라면 실망을 할 지도 모르겠다. 여학생의 친구는 크게 원조교제를 다룬 여학생의 친구와 소년들의 성충동을 그린 소년클럽의 두 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여학생의 친구는 원조교제라는 비교적 자극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소설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고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원조교제에 대해 날카롭게 해부하였다고 본다. 가정의 해체와 경제적 어려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지 않는 소비수준. 여중생이 수입은 없는데 지출은 일정수준을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면?(물론 지출 자체를 절대시 하는 것은 일본-우리나라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크게 차이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소녀들의 빗나간 과시욕때문이겠지만) 결론은 원조교제인 것이다. 가장 손쉽게 돈을 벌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소녀들은 물론 사회 일반을 대변한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녀들은 실제 사회에도 분명히 존재하고 그 수는 그리 적지 않을 것이다. 그녀들은 서로 마음을 터놓지도 못하는 친구들과 의미없는 이야기를 떠들며 각종 소비생활에서 느끼는 만족감으로 하루하루를 겨우 버텨나간다. 그만큼 세상이 그녀들에게는 힘든 것이다. 그 배경에는 완전히 해체되어버린 가정이 있다.

어린 시절 가족을 버리고 딴 살림을 차린 아버지와 그 아버지가 사업이 망하자 생명보험을 들고 스스로 죽기를 바라는 어머니, 그리고 자기가 아버지를 죽여도 보험금을 받을 수 있냐고 물어보는 아들. 도저히 말이 안되는 이러한 극단적인 상황이 우리 사회에 반드시 없다고 할 수 없고 그런 상황이 그녀들을 원조교제로 내모는 것이다. 그녀들은 삶에서 더 이상 크게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므로 원조교제를 하는 것을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물론 미나가 원조교제를 하면 자기 미래에 악영향을 끼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 약간 드러나듯이 그런 생각은 틀린 것이다.

주인공 겐이치로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겐이치로는 은퇴한 홀아비의 일반적인 모습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물론 그는 하루하루가 무료해서 죽을 지경이고 스스로 자살도 수없이 생각하고 실행하기까지 하였다는 점은 일반화시키기는 어렵겠지만 비교적 일반화가 가능한 겐이치로도 미나를 만나면서 결국은 아들을 원조교제로 유혹하여 돈을 뜯어내는 일까지 하고 만다. 그가 그런 일을 저지르는 과정에서 극적인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유미리는 결국 현 시대의 어두운 한 단면을 통해서 일어날 수 있는, 또 실제로 일어났을 수도 있는, 극단적이지만 사실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무언가 이 사회가 잘못되고 있다는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제기는 우리로서도 가볍게 보아 넘길 수 없는 무게로 우리의 머릿속에 던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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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의 사회
장 보드리야르 지음, 이상률 옮김 / 문예출판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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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무려 30년 전에 집필한 이 책은 지금 읽어보아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척 크다. 지금의 경제정책은 각 국가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전체적으로는 성장위주의 정책이다. 사람들은 경제성장을 통해 사회전체에 분배할 빵이 커지면 약자에게도 더 많은 빵조각이 돌아갈 것이라는 환상을 주입받으면서 오늘도 열심히 경제성장을 위해 뛰고 있다. 그러나 증가된 잉여분은 결국 강자에게 돌아가고 사회전체적인 부는 증가했지만 빈부격차와 삶의 질은 더욱 저하되고 있다.

이러한 현대 사회의 모순점을 작가는 '소비'라는 개념에서 찾고 있다. 작가가 말하는 소비의 개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광고를 통해 사람들의 구매욕구가 창출되고 전에는 소비되지 않고 당연히 누릴 수 있었던 맑고 깨끗한 물과 공기마저도 이제는 소비해야 하며, 각자의 여가 시간마저도 소비된다는 지적을 통해서 작가는 '소비'는 각 개인에게 소비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어 후기자본주의 사회가 잘 굴러갈 수 있도록 하는 핵심 개념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성장 자체가 불평등에 의존하고 있다.', '자본주의 체계의 진보에 불과한 것을 객관적인 사회적 진보로 받아들여서는 안될 것이다.'라는 등의 작가의 주장은 참으로 마음에 와닿았다. 이 사회가 무언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해답을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읽기가 그리 쉽지는 않지만 일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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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임레 케르테스 지음, 박종대, 모명숙 옮김 / 다른우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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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운명>은 유태인 수용소에 끌려갔다가 1년만에 살아서 귀환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유태인 대학살에 관한 이야기는 그들이 차지하는 위상과 지위때문에 영화나 책으로도 많이 소개되고 있지만 최근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에서 그들이 보여주고 있는 작태를 보면 유태인들이 과연 과거 유태인 대학살에서 역사적 교훈을 얻었는지, 오히려 과거의 경험을 잘못 되새기고 있지는 않은지 하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냉소적인 반응을 얻기가 쉽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운명>은 참으로 독특한 소설이다. 읽으면서 누구나 느끼겠지만 그렇게 끔직한 상황을 겪으면서도 주인공은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주어진 상황에 적응해 나가는 것이다. 마치 그것이 '운명'이라는 듯이.

옆에서 누가 죽거나 자신이 구타를 당해도 주인공은 이를 다큐멘터리 촬영하듯 간결하게 서술할 뿐이다. 아버지가 끌려가도 자신의 몸이 망가져 거의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렇듯 지나치게 담담한 문체로 소설은 진행되지만 주인공은 그것이 결코 글로 쓰듯이 쉽고 견딜만한 일은 아니었음을 실토한다. 감정적인 면이 완전히 배제되었음에도 독자에게 주인공이 겪는 온갖 고통과 어려움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바로 그 점이 이 소설의 놀라운 면이다. 마치 화선지에 먹물이 서서히 스며드는 것과 같이 주인공의 처지를 서서히, 그러나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결국 살아남는다. 수용소에서의 1년여간의 경험이 그의 일생 전체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그는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그 상황에 자신을 적응시키며 운명이 될 수도 있었던 상황을 이겨낸 것이다. 이 소설의 원제가 '운명없음(?)'이라는 말을 얼핏 들었는데 그것도 결국 이러한 점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주인공은 수용소에서 나온 뒤 모든 순간순간이 단계들로 이루어져 있고 자신은 그 단계에 따라 생활해 갔다는 말을 한다. 어찌 들으면 실성한 사람의 말처럼 들리는 그 말은 결국 그때그때 주어지는 상황의 각 단계에서 그 상황을 부정하려 하지 말고 그것을 인정하되 가능한 최선을 다혀면 결국 '운명'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각자가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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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우리가 사랑한 만큼 아름답다
박범신 외 지음 / 고려문화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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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여유를 갖고 있고 무엇이 소중한 지 알고 있으며 적어도 그에 때라 살려고 노력하는 문인들의 글을 모아 놓은 모음집이다. 책 디자인도 무척 이쁘고 글 중간중간에 섞에 있는 멋진 사진들도 글의 내용과 잘 부합한다.

이 책에 실린 모든 글에 공감이 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체험에서 나온 지혜와 신념에서 배울 점이 참 많았다. 인간은 편안함 가운데에서는 '업그레이드'될 가능성이 적다는 말이나 너무나도 하찮은 일들로 인해 상처받고 신경을 써서 정작 소중한 것들을 경시한 데 대한 후회 등은 정말 공감이 갔다. 그런 감정을 마음 속 깊이 어렴풋하게 느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이처럼 읽는 사람의 마음을 때리는 글로 표현하는 것은 역시 문인들의 탁월한 재주 덕분이 아닌가 싶다.

끝으로 마음 속 깊이 새기고 싶은 책의 한 귀절을 인용해 본다.
'바쁘게 달려가는 일상의 관성에 눌려 있는 본질적인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라. '이게 아닌데...' 라고 말하는 무의식 속의 그가 바로 본질적인 우리 자신이다. (중략) 아무리 많은 걸 소유한다고 하더라도 본래의 나, 본래의 내 그리움, 본래의 내 사랑이 썩어간다면 무엇으로 우리가 행복해 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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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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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생모를 사형시키게 만드는 무취의 그루누이. 주인공의 탄생장면도 신기하지만 소설의 소재자체가 너무나도 새롭고 충격적이었다. 모두가 반할 만한 외모를 지닌 주인공이 아니라 모든 냄새를 구분해 내고 천상의 향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냄새의 악마가 주인공이라니.

어렸을 때 세상 누가 맡아도 바로 행복해지는 그런 향기가 존재하지 않을까하는 상상을 해본 적은 있었다. 그러나 그런 향수를 만들어 내는 능력 - 세상의 모든 향기를 구분해내고 그 냄새를 기억하며 수 KM 떨어진 곳에서 풍겨오는 미세한 향기의 조각만으로도 그진원지를 찾아갈 수 있는 능력 - 을 이처럼 자세하게 묘사하고 그러한 향수를 만들기 위해 아름다운 소녀들을 죽여 완벽하게 그녀들의 체취를 빼앗아 낸다는 발상을 하며, 그런 체취를 빼앗는 기술을 습득하고 직접 이를 실행하는 과정을 눈에 보이는 것처럼 서술하는 것은 정말 내 상상 밖이었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작가의 독특한 상상력과 이를 글로 표현해 내는 작가의 능력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가 변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이름을 붙이자면 향기변태 랄까. 하지만 완벽한 체취의 소유자는 왜 항상 아름다운 소녀여야만 하는지 - 물론 나도 그런 완벽한 향기가 있다면 그 체취를 가진 사람은 아름다운 소녀일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 소년이나 중년의 사람은 악취만 풍기는지 하는 의문이 든다. 작가의 변태적 상상력의 한계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아름다운 소녀를 벌거벗겨 냄새를 빼앗는 것이 소설적인 호과를 내는 데 더 낫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냄새에 관한 새로운 체험을 하게 해 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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