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의 민주화 - 법과사회 13
박홍규 / 역사비평사 / 199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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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우선 놀랐던 점은 지금에도 겨우 논의되고 있는 수준인 대법관회의 및 판사회의, 법원행정처에서의 독자적 예산 편성권이 해방직후 일시적이나마 실현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사법제도는 50여년 전에 비해 얼마나 구시대적인 것인지...

이 책의 기본적인 구조는 사법의 기본적 원리를 설명한 다음 우리 사법의 역사를 본 뒤, 외국의 사례에 비추어 우리 사법의 민주화를 달성하기 위한 저자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외국의 사법제도를 소개할 때, 정확한 인용자료 없이 단순히 법조인의 수 등을 수치적으로 비교한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고, 저자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일방적인 사례만 열거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분명히 우리 사법이 귀담아 들어야 할 뼈있는 말들을 많이 담고 있다.

저자의 가장 주된 주장은 민중의 사법참여를 통한 사법의 민주화이다. 사법에의 민중참여라는 측면에서 우리 사법은 완전히 낙후되어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고, 사법부는 아직도 시민이 재판에 참여하여 판단하는 것을 불신하며 그것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의 예에 비추어보면 재판의 질적 저하 등은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으며 오히려 경미한 사건에 시민법관을 적극 활용한다면 전문법관의 업무를 분담시킬 수 있어 재판의 질적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법개혁에 대한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저자의 주장이 당장 사법부에서 받아들이기에는 무척 급진적인 것이지만 사법부 내부적으로도 인사제도, 삼심제도의 형해화, 법관의 재임용제도 등 많은 문제가 있음이 지적되고 있음에 비추어 볼 때, 저자의 주장에 분명히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자료가 오래된 것이어서 지금은 타당성을 잃은 것도 많이 있다는 점이다. 최신 자료를 반영한 개정판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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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
올더스 헉슬리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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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역설적이면서 소설 전체의 장면을 압축적으로 나타내주는 제목인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가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대사의 한 구절이었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야만인이 그가 읽은 유일한 책인 셰익스피어 전집속에 나오는 인물들의 대사로 자신이 생각을 표현해내는 장면에서 나는 스스로 셰익스피어 전집을 읽고 싶다는 충동까지 느끼게 되었다.

우리는 소설 첫 장면부터, 지금은 어떤의미에서는 조금씩 사실로 실현되고 있는 인간복제공장의 세세한 공정과 온갖 인공적인 조작과정을 접하게 된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알파, 베타, 감마, 델타 등의 계급으로 나뉘어지고 각 계급에 알맞은 조건반사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하게 된다. 심지어 외모마저도 수정란에 일정한 조작을 가해 계급이 낮아질수록 열등하게 만들어진다. 인간이 공장에서 생산되기에 부모라는 개념은 없고, 인간은 한 사람과 특별한 관계를 맺지 않고 남녀관계도 수많은 사람과의 육체적 관계가 장려된다. 인간은 늙지도 않으며 힘든 일이 있으면 ‘소마’란 것만 먹으면 곧바로 행복에 빠져든다. 사회의 모든 사람이 ‘행복’하고 안정적인 사회, 그것이 바로 ‘멋진 신세계’인 것이다.

그런데, 그토록 완벽한 사회안에서 고독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그들의 불행과 야만인보호구역에서 문명국으로 온 야만인을 통해 헉슬리는 비로소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시작한다. ‘멋진 신세계’는 결국 극단적인 반이상향이라는 것을. 헉슬리는 총통의 입을 통해 소설속의 세계는 안정과 행복을 위해 과학과 예술과 종교를 희생한 사회라고 말한다. 또한 그 사회는 사회의 안정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이다. 개개인은 행복하지만 스스로 삶의 주인이 아니다. 누군가가 미리 짜놓은 삶을, 단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는 물론 헉슬리가 그린 ‘멋진 신세계’와는 전혀 다르다. 그러나 비록 헉슬리가 그린 세계가 상상력과 과장의 산물일지라도 전적으로 우리사회와는 동떨어진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빈부격차와 부의 세습으로 인한 사회계급의 고착화와 물질적인 쾌락을 추구하고 삶에 대한 고민을 경시하는 모습은 헉슬리가 그린 사회와 놀랄 만큼 닮아있지 않은가? 물론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소마’가 없고 우리는 수면시학습법과 같은 과정을 거치지 않아서 우리모두가 ‘행복’하지는 않으며 사회가 안정적이지 않고 다양한 분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이 완벽하고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는 없다. 인간은 무한한 욕망을 갖고 있으며 모든 인간의 욕망이 충족될 수는 없는 것이다. 심지어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마저도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다. 노화가 되지 않는 대신 수명이 줄고 소마가 모든 고민을 잊게 해주지만 인간은 점점 소마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는 없지만 세상은 대체로 공평하다고 믿고싶다. 편안함이나 행복함을 맛보려면 그에따른 희생이 필요하고, 지독한 시련을 겪지 않은 사람은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반대로 시련이 있으면 언젠가는 좋은 일도 생기게 마련이다. 결국 좋은 일이 있으면 항상 감사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좌절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면 되는 것 아닐까?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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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의 한국
Don Oberdorfer 지음, 이종길 옮김 / 길산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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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수십년간 기자생활을 하면서 광복이후 한반도의 긴장관계를 누구보다도(대다수의 한국사람보다도 훨씬 더) 생생하게 겪은 저자의 수년간에 걸친 성과물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저자가 한국사람이 아닌 미국인이고 그가 한국, 나아가 한반도와 국제정세에 대해 무척 잘 알고 있는 전문가이자 한국통이란 점에서 기존의 분단이후 현대사에 대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듯한 역사서들에 대한 좋은 보완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기자란 특수한 직업으로 말미암아 저자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제외한 한국의 역대 대통령을 모두 직접 면담한 바 있고 북한도 여러번 방문했었고 이 점은 이 책에 대한 상당한 신빙성을 부여해준다. 실제로 책 내용중에는 실제로 남, 북한 정상을 만나보면서 개인적으로 필자가 받은 인상이라든지 다른 외교관들을 통해서 전해지는 지도자들의 개인적인 면까지도 세세히 드러나 있다.

특히 기존의 현대사와 관련된 책들에서는 전혀 접할 수 없었던 한반도의 수많은 긴장상황들에 대한 미국정부나 외교관들의 심리나 속마음, 미국정부의 정책방향등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일례로, 카터 행정부 당시 대다수의 미국정부 관리들은 대통령과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고 카터가 홀로 고립되는 상황에 처해있었다든지, 김영삼 대통령이 실무관리들간에 남한과 미국 간에 합의된 사항을 갑자기 뒤집어서 미국관리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든지 하는 내용은 이 책을 기존의 역사서와는 차별화시킨다.

요즘은 한미관계가 예전처럼 우호적이지는 않다. 반미감정이 전국민적으로 퍼지고 있고, 미국도 그런 남한에 대해 고운 시선을 보낼 리가 없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비록 이 책의 저자가 미국인이기는 하지만-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미국을 단순히 신제국주의적인 목적으로 남북한의 통일을 가로막고 있는 민족의 적으로 규정할 수는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미국이 한반도에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합치하기 때문이고 미국의 국익에 반한다면 언제라도 한반도 문제에서 손을 띠겠지만 남,북한과 미국의 관계는 그처럼 단순히 정의하기에는 너무나도 복잡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북한과의 전쟁가능성이 일부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물론 남한 정권에서 이를 과장하여 악용한 경우가 많지만-전혀 근거없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미국의 외교관들이 남한내의 미국인들을 일본으로 소개시키려 했을정도로 긴박했던 상황이 엄연히 존재했던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 책을 읽고 나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기는 쉽지 않으리란 느낌을 받았고, 북한을 궁지로 몰지 않고 시장 경제체제로 이끄는 것이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에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도 현대사에 대한 명확한 역사관을 정립하지는 못했지만, 이데올로기적 역사관과는 다른 새로운 시각에서 반세기 동안의 한반도의 다이나믹한 긴장관계를 조명하여 현대사에 대한 풍부한 시각을 갖출 수 있도록 해 준다는 점에서 이 책을 꼭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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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살 인생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위기철 지음 / 청년사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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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비교적 풍족하게 자란 나에게 아홉 살인생은 이질적이고도 신기한 이야기였다. 아버지가 부산에서 잘 나가는 깡패이고, 어머니는 전쟁과부의 딸, 찢어지게 가난하여 9살이 되어서야 산동네 꼭대기에 비가 새는 판자집을 얻는 주인공네 집. 그런 가정환경 때문에 9살 여민이는 소위 밑바닥 인생들을 보며 자란다. 그러나 항상 적극적이고 남을 배려해주는 아버지와 고운 마음씨를 가진 어머니 덕분에 여민이는 성격이 삐뚤어지지 않고 자신이 가난함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9살이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기에는 조금 어린 나이여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아홉 살인생에는 산동네에서의 다양한 인간상이 등장한다. 누나와 단둘이 사는 지저분한 기종이, 골방철학자, 토굴할매, 검은제비 등등. 이들은 처음에는 각기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보여준다. 말도 안되는 거짓말이라든지, 자기 아버지를 죽여버리겠다든지 하는 행동등은 그 자체만으로 보면 이해하기 힘들지만 조금 깊이 들여다보면 그들이 그런 행동을 취하게 만든 원인들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여민은 9살의 나이에도 그것을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여민이 숲에서 뛰노는 장면들은 비록 도시에서 자란 나에게도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백마를 타고 왕자가 되어 내가 좋아하던 여자애를 구하러 가는 상상을 하는 것이나, 어린시절에 갖는 자신이나 가족의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등이 아홉 살인생에는 너무나도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살짝 엿보이는 사랑에 대한 감정, 성장함에 따라 자기의 환경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 힘든 삶의 단편들에 대한 아이나름의 이해 등이 소설전체에 골고루 그려지고 있다. 또한 세상에 막 눈을 뜨기 시작하는 9살짜리 꼬마가 추잡하고도 험한 어른들의 삶을 조금씩 엿보고 의문을 가지며 이해해가는 과정이 아기자기하면서도 가볍지 않게 그려진다. 아직 세상에 완전히 찌들었다고 하기에는 나이를 덜 먹었지만, 어느정도 순수함을 잃어버린 지금, 아홉 살인생에서 느껴지는 9살짜리의 풋풋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린시절의 순수함을 되새기게 한다. 29살이 되어서 9살때의 기억과 생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작가가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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겅호!
켄 블랜차드,셀든 보울즈 지음, 조천제 외 옮김 / 21세기북스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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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겅호가 경호나 다른 단어의 오타인줄 알았다. 그리고 겅호란 말이 미국에서 비교적 넓게 쓰인다는 사실조차 전혀 알지 못했다. 머리말에서 나오듯이 겅호란 ‘화이팅’이란 말과 유사하게 투지와 열정을 불어넣는 구호나 인사로 사용되며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다. 겅호 정신, 겅호조직, 겅호...

이 책은 실화를 바탕으로 보복적인 인사조치로 말미암아 폐쇄직전의 공장에 발령받은 한 여 공장장이 신비하고 유능한 인디언 직원을 만나 그로부터 겅호정신을 배움으로써 함께 공장을 혁신적으로 변화시켜 기적을 일구어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말이나 사고방식이 무척 신비로운 인디언인 앤디(서양인에게는 더욱 그렇게 느껴질 것이다.)는 조각가인 할아버지로부터 겅호를 배운다. 구체적으로 겅호는 다람쥐의 정신, 비버의 방식, 기러기의 선물로 구성되어 있고, 앤디는 여 공장장인 페기에게 직접 자연에서의 다람쥐, 비버, 기러기를 보여줌으로써 그녀가 진정한 겅호정신을 깨닫게 하고 이를 공장의 경영에 접목시키게 도와준다.

이 이야기가 실화이고 페기의 공장이 너무나도 기적적인 성과를 이루어내 그녀가 백악관에까지 초대되고 그녀의 성공담이 유명해진 것을 보면 분명 겅호에는 모두가 이미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음에 틀림없다. 다만 이 책을 읽고 나서도 겅호를 느끼는 것보다 팀원 개개인에 그것을 심어주고 생활의 일부분으로 승화시키게 하는 것이 더욱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는 직접 다람쥐와 비버와 기러기를 보고 느끼지 못했고, 직접 그들을 보고 느낀 페기는 달랐으리란 생각도 든다.

겅호가 누구나 알고 있고 어찌보면 당연한 가치를 나열해 놓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르며 그런 면에서 앤디와 페기는, 특히 앤디는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너무 겅호 그 자체의 의미 전달에 치중하다 보니 직원들이 변해과는 과정이나 겅호가 정착되는 과정에 대한 묘사가 생략되어 있어 책을 읽으면서도 겅호에 대해 추상적인 이미지밖에 형성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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