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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김혜자 지음 / 오래된미래 / 2004년 3월
평점 :
처음에 이 책을 직접 읽기 전까지는 탤런트 김혜자가 명성을 이용해 책을 한권 냈구나 라고 막연하게만 생각했었다. 김혜자가 전세계적으로 난민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가끔씩이나마 방송과 신문을 통해 접해왔었기에 그동안의 봉사활동을 선전하려는 것인가라는 무의식적인 냉소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내가 이 책을 접하게 된 것은 어머니께서 누군가로부터 이 책을 선물로 받으셨고 집에 놀러갔다가 새 책에 대한 욕심에서 이 책을 들고 왔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나도 모르게 냉소적인 편견에 사로잡혀 김혜자를 바라보았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졌다. 방송인이나 유명인이 어떤 일을 하면 그 목적의 순수성에 대해 의심을 하는, 그런 종류의 무의식이 내게도 있었나 보다. 책을 읽으면서 김혜자가 정말로 10년간 열심히 전세계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유명 연기자인 자신의 지위를 최대한 활용하여 나 같은 일반인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해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인간 김혜자의 삶의 철학이자원봉사기구의 홍보대사를 하여 1-2번이라도 직접 고통받는 이들을 방문하여 이들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만으로도 방송이나 신문을 통해 전해지는 그들의 소식에 대해 끌끌 혀나 한번 차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대다수의 우리보다는 훨씬 큰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남들의 선행에 대해 냉소적 시각을 가질만큼 선행을 베풀어왔던가?
책의 지면으로 세계 곳곳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는 것과 실제로 방문하여 그들과 소통하고 그들과 며칠이라도 지내보는 것, 그리고 실제로 그런 고통을 겪으며 삶을 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일이다. 그렇지만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나는 마음이 불편해졌다. 김혜자가 실제로 그들을 방문하여 그들의 실상을 접하고 나서 이 세상의 불공평함과 지옥같은 세상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여 수많은 죄없는 이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에 며칠 동안이나 잠을 설치고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이 미약하나마 공감이 갔다.
세계 인구를 100 명으로 보았을 때 50명은 영양부족, 20명은 영양실조, 1명은 굶어죽기 직전인데 15명은 비만이라는 사실은(p21) 우리를 슬프게 한다. 10,000원이면 한 아이에게 1달 동안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을만큼 먹일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적은 돈으로 그렇게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지만, 그런 비용이 없어서 사람들을 굶어죽게 놓아두는 것이 아니고 훨씬 더 많은 비용과 사람들의 정력이 본질적이지 않은 일에 허비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이 더욱 비극적이다.
나 역시 이제껏 나만을 위한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얼마나 남을 위해 살 것인지 자신할 수 없지만, 요즘 방송을 보면 세상이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가끔씩 든다. 케이블을 통해서 가끔씩 시청하는 미국의 연예 프로그램을 보면 유명 스타가 파티를 하고, 명품을 입으며, 누구누구를 사귀었다 헤어지면서 바람기를 과시하는지에 관해 상세하게 보도를 하고 심지어는 유명 스타의 삶을 분석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나 그들의 애견을 돌봐주는 전문가까지 등장을 한다. 돈이 많은 유명스타가 자기 돈을 마음껏 쓰는 것은 그리 탓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자기가 노력해서 번 돈,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반드시 남을 위해 쓰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하지만, 한쪽에서는 수천만명의 사람들이 굶어죽고 전쟁과 추위와 살상의 위험속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는데 유명 연예인의 화려한 연애전력과 그들이 어떤 옷을 입는지가 더욱 큰 관심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수많은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사실상 거의 없지 않나, 내가 한두 명에게 도움을 준다한들 더욱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을 것이고 상황은 전혀 달라질 것이 없지 않나 하는 패배주의적인 생각에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해보지 않고 그런 생각이나 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어린이들과 여인들. 상상할 수도 없을만큼 가혹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삶을 이어가는 그들을 보면 반드시 남을 돕지는 않더라도 하루하루를 허송세월하는 것 자체가 죄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 만일 냉장고에 먹을 것이 있고, 몸에는 옷을 걸쳤고, 머리 위에는 지붕이 있는 데다 잘 곳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이 세상 75%의 사람들보다 잘 살고 있는 것이다.(p109)
▫ 이제는 더 이상 사람들을 도울 힘이 내게 없다고 생각할 때에도,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볼 때면 여전히 그들을 도울 힘이 내게 있음을 나는 안다.(p179)
▫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p223)
▫ 임종의 순간에 이르러 인간은 얼마나 소유했고 성공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놓고 심판받는다.(p229)
누가 했는지는 모르지만 참 옳은 말이다. 위 말들을 가슴에 담고 보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자명해지지 않나 싶다. 알고 있으되 항상 잊고 지냈던 진실을 다시 일깨워준 김혜자씨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