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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적 공범자들
임지현 지음 / 소나무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내용 중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국가주의를 해체하자는 것이 아닐까 한다. 임지현 교수의 기본 논지는 국가권력이 국가의 구성원들을 자발적으로 동원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기제들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 대표적인 것이 국사, 민족주의, 국민 주권주의 등등 이라는 것이다.
임교수가 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임교수의 ‘스스로 선택한 정신적 망명자의 시선’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게 되는 첫 느낌은 무척 불편하고 당황스런 것이었다. 국사나 국민윤리 자체에 국민들의 일체감과 애국심을 고취하려는 의도가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이었지만, 우리 국사가 일본 극우 민족주의의 역사관과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 없는 지적이나, 고구려사를 둘러싼 한중간의 논쟁에 대해 고구려사를 우리가 전유할 수 없다는 지적, 일제에 대한 저항의 정신적 토대로 인식하고 있던 민족주의에 대한 동원 기제적인 성격에 대한 지적 등을 접하면서 내 자신이 철저히 ‘국민화’되어 있어서 그런 것이겠지만, 마음 속 한구석에서 내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부정당하는 것 같아 불편함이 느껴졌던 것이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그런 느낌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임교수가 주장하는 국사의 해체나 민족주의를 극복에 대하여는 개인적으로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지만, 그 이후의 대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임교수 스스로도 답하고 있듯이 명확한 해답이 없다는 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나라만 국사와 민족주의를 해체하면 다른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우리만 무장해제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불안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다수가 모여 함께 사는 사회가 효율적으로 운영되려면 어느 도의 규율과 집단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를 위한 기제가 필요하고 사회 구성원간에 계층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임교수의 주장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면 무정부상태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밖에도 임교수의 국가주의 해체 주장은 여러 나라의 학자들의 지적 공감대 속에 공동으로 보조를 맞추어 추진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실질적 어려움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를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시작으로 민족주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역사청산문제, 미국의 신제국주의 등에 대한 기존 논의의 토대를 근본적으로 허물고 근대사회를 바라보는 사고와 인식의 폭을 확대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임교수의 논의는 무척 의미 있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실제 존재하는 현상과 그것에 대한 인식 간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사회의 현상은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권력은 권력의 유지를 위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현실을 왜곡하고 변형시킨다. 그러면 대다수 국민들은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또는 그러한 사실을 자각하고 있으면서도 뼈 속 깊숙이 박혀있는 국사 또는 민족주의의 패러다임의 영향력에 압도되어 왜곡된 사고의 틀로 현실을 인식하고 국가권력의 입맛에 따라 행동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사는 현실 그 자체는 결코 하나의 시각으로 설명되어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양한 사회현상을 주류적인 이데올로기나 이론에 의해 재단된 채로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들 개개인의 이념(?)을 자본주의나 공산주의 등으로 이분법으로 구분할 수 없듯이 진보나 보수,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도 모두 상대적이다. 우리의 삶은 무수한 스펙트럼으로 이루어진 ‘면’적인 것이지만 이를 인식할 때는 특정 위치의 ‘점’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자는 임교수의 주장에 대해 극단적인 상대주의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새로운 시각으로 사회현상을 특정 이념이나 기제의 틀을 초월하여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직도 우리는 특정한 틀 안에서 사회현상을 바라보고 있는 경우가 많고, 책에서 지적하듯이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현실이 아닌 현실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기 때문에 임교수와 같이 인식의 틀 자체를 뒤집어 보려는 시도가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그 밖에도 유럽 등 다른 나라의 역사적 경험과 비교를 통해 우리가 겪고 있는 여러 가지 상황이 우리만 겪고 있는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었고,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과거사 청산과 관련하여서도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동유럽 국가 등의 예를 통해 일회적인 사법적 처벌 - 특히 자주 사면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 보다는 사회 구성원 전체가 반성적 성찰의 기억으로 간직하자는 ‘기억의 정치학’ 주장은 무척 공감이 갔다. 과거사 청산과 관련하여 이런 목소리는 왜 공론화가 안되는 것인지...(아님 나만 모르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