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사회 - 우리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
김동춘 지음 / 돌베개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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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6.25.로 기억하고 있는 불과 50여년 전에 벌어진 전쟁에 대해 우리는 어떤 기억을 갖고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북한의 김일성이 소련의 사주를 받아 6.25.에 남침을 하고 이에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전쟁이 발발하였고, 미군을 주축으로 한 유엔군의 원조를 받아 평양까지 전진하여 통일을 눈앞에 두었다가 중국의 개입으로 3년여만에 38선에서 조금 북쪽에 휴전선이 성립된 전쟁 정도로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 6.25.전쟁에 대한 우리의 단편적인 기억과 이해에 대한 저자의 문제제기를 읽고 스스로 6.25.전쟁에 대한 이미지와 단편적인 지식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았다.

개인적으로 ‘6.25.전쟁’으로 연상되는 이미지는 북한군이 쳐들어와 남한 지역을 점령했을 때의 상황에 대한 두려움과 관련된 것이 가장 많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누런색 군복으로 상징되는 인민군이 동네에 쳐들어와 가족들을 잡아가고(실제로 나의 외증조할아버지께서는 피납되셨다), 내가 인민재판을 받아 죽창으로 찔려죽을지도 모른다는 식의 다소 과격한 생각이 어린시절부터 내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었고, 그런 생각의 연장선상으로 또다시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피난을 가야할 지에 대해 나름대로 고민을 했었던 것 같다.(어린 시절 나는 우리 집이 조금이라도 - 불과 몇 백미터라도 - 더 남쪽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거시적으로는 중국이 참전하지 않아서 그때 통일이 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도 많이 했던 것 같다.(그런 생각은 사실 지금도 한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린시절 내 머릿속에 6.25.가 그런 이미지로 자리잡게 된 것은 내가 알게 모르게 받아온 수많은 반공교육과 사회 전반적인 반공의식 때문임은 분명하다. 초등학교 때 본 반공영화(사실 단순한 전쟁영화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군복 색깔에 대한 호불호를 형성하는데 강력한 영향을 준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속의 몇몇 장면과 대략적인 줄거리를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어린 시절의 교육은 아직까지도 내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고 그에 반하는 새로운 지식에 끊임없는 의문을 제기하게끔 한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 책을 읽으면 한국전쟁을 6.25.로 부르면서 전쟁의 모든 책임을 김일성 정권에 돌리는 논리가 역대 대한민국 정부가 취약한 권력구조를 유지하기 위하여 조작해낸 논리라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 점령 하에서의 경험은 분명히 존재했던 일이지만, 그것은 한국전쟁의 일부분만을 보여주는 것이고 당시 농민들이 대다수였던 민중들은 남한이 우리나라라는 명확한 국가의식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전쟁속에서 생존의 문제가 가장 절실하였기 때문에 국군이든 인민군이든 무력을 가진 집단에 기회주의적으로 복종할 수밖에 없었고 전쟁의 승패가 이해관계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았다. 따라서 일반 민중들의 전쟁에 대한 인식과 경험은 분명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북한 점령하에서의 상황과는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승만 정권 이래 대한민국의 정권은 반공이데올로기의 연장선에서 북한 점령하에서 지식인 및 일부 계층에 국한된 사람들의 경험을 일반화시켜 한국전쟁의 본질을 흐려 놓았다.

이승만 정권이 전쟁 직전이나 전쟁발발 직후에 보인 비상식적인 행동들 - 전쟁징후를 포착하고 있었으면서도 그에 대한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았고, 전쟁발발 이후에도 침착한 태도를 보인점, 전세를 허위로 보도한 채 홀로 피난을 갔으며 주민들이 피난중이던 한강다리를 서둘러 폭발시킨 점, 전쟁발발 후 미국대사에게 미군의 개입을 촉구한 것이 이승만이 취한 조치의 대부분이었다는 점 등등 -에 대하여 저자는 당시 대한민국이 형식적으로는 국가로서 존재하였지만 실질적으로는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지켜주는 의미에서의 국가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으며 이승만 역시 근대적 의미에서의 국가지도자라기 보다는 전제군주로서의 기질과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저자의 지적과 함께 당시 우리나라가 지금의 이라크와 상황이 비슷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미국에 의해 강요된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지지기반이 취약한 이라크정부가 내전이 일어났을 때 보일 행동이 바로 당시 이승만 정부가 보인 행동과 유사하지 않을까?

여기서 저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미국과 소련의 전쟁책임론이 대두된다. 이승만 정권이나 김일성 정권 모두 독자적으로 국가를 꾸려갈 만한 여력이 없었고, 특히 소련의 도움을 받아 적극적으로 전쟁을 준비한 김일성과는 달리 이승만은 미군의 도움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보기에는 비상식적으로 무책임한 행동을 취한 것이다. 물론, 미국에의 절대적 의존도가 이승만 정권의 한국전쟁에서의 수많은 학살에의 책임을 감경시켜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정권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학살의 수단으로까지 삼은 이승만에게(물론 김일성도 마찬가지이다.) 제일 중대한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승만 또는 김일성이라는 정치지도자에게만 전쟁의 책임을 지우는 것은 더 큰 역사적 구조를 놓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한반도를 38선을 기준으로 나누어 점령하고 자국에 우호적인 정부를 수립하도록 힘을 발휘하여 한반도에 두 개의 정부가 구성되도록 하여 한민족간에 격렬한 분쟁을 낳았으며 서로 다른 사상을 가진 자에 대해 무자비한 탄압으로 분쟁을 더욱 심화시켜 결국은 남북한 간에 전쟁이 일어나게까지 한 원인제공자는 미국과 소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서 한단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가 조선을 강제로 합병하고 수탈한 것에서부터 동족상잔의 비극의 씨앗이 잉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한국전쟁은 대단히 복잡하고 다양한 원인과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로 인한 인적, 물적 피해가 막대함은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한국전쟁의 수혜자인 이승만과 김일성이 전쟁을 정권에 대한 반대자를 학살하고 취약한 지지기반을 만회하려는 정치적 술수의 희생량을 만들어내는 것에 악용하였고, 그때 확립된 빨갱이와 반동분자의 이분법적 구별이 50년도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사회에 음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한국현대사에 관한 책을 읽던 중 우연히 접하게 된 이 책을 통해 한국전쟁의 거시적 구조와 미시적 장면들에 대해 대략적인 생각의 틀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우리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좌파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저자가 이승만 정권만을 비난하지 않고(이승만 정권은 아무리 비난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북한의 김일성 정권에 대하여도 균형잡힌 분석과 비판을 하였다는 점에서 이 책의 내용에 더욱 공감할 수 있었다. 한국전쟁을 아직도 정권의 논리에 따라 단순하게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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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죽거리 잔혹사 [dts] - [할인행사], (2disc)
유하 감독, 이정진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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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배경은 내가 태어난 해인 1978년이다. 그리고 영화의 주 내용은 고등학생의 풋풋한 사랑과 학원폭력, 그리고 학교를 평정하는 주인공!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처럼 단순하지만, 유치해지지 않는 것이 이상한 내용을 그렇게 유치하지 않게 그렸다는 점에서 괜찮은 영화였던 것 같다.

내가 직접 겪지는 못했지만, 나의 어린 시절에도 약간의 흔적이 남아있던 학창시절의 모습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물론 대다수의 장면이 지금도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은 학교에서의 무자비한 인권유린에 관한 것이라서 씁쓸했지만.(그 당시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였을 군복입은 교련선생, 선생님의 무지막지한 폭력 및 모욕, 등교시 경례 등은 지금 보면 정말 어이가 없다. 군사정권 때문에 학교가 얼마나 군대문화로 얼룩졌는지 알 수 있다. 내 학창시절에는 그런 것이 많이 없어진 상태였고 지금은 더 그렇겠지만 아침조회나 기압,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 등 학교생활의 많은 부분이 군대문화에서 그대로 따온 것임을 생각하면 정말 섬뜩한 느낌이 든다.)

수줍음 많은 모범생과 학교의 전설로 남는 장면을 연출하는 ‘남자’의 두 모습을 잘 소화한 권상우의 연기도 괜찮았고(사실 모범생 연기가 조금 어색하기는 하다.), 학교의 선도부를 응징하는 남자의 로망을 그린 후반 액션신은 정말 통쾌했다.

최고의 대사: 권상우가 학교를 평정하고 피투성이가 된 채 내뱉는 ‘대한민국 학교 좆까라 그래’

권상우의 눈빛연기...착한연기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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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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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 앨봄의 책은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이후에 두번째이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도 주인공이 죽음을 맞는 스승과 대화를 하며 삶과 죽음, 인생의 의미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는데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에서도 기본적으로는 비슷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주인공인 에디는 83세에 놀이공원에서 놀이기구의 고장으로 인한 사고에서 어린 아이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다. 그가 평생을 정비공으로 일한 루비가든에서...

그리고, 그는 천국으로 가면서 도중에 5사람을 만나고 그의 삶 전반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 다섯 사람이 주는 가장 큰 메시지는 '우리의 삶은 그 자체로 의미 있고,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의 삶에 발자취를 남기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우리의 삶 모두는 결국 하나로 연결된다.' 정도가 아닐까...

솔직히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 비해서는 픽션이라서 그런지 감동이 덜했다.

하지만, 슬럼프에 빠지거나 자신의 삶에서 특별한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여 우울한 사람들에게는 좋은 약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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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기부기 2006-03-20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 비하면 감동이 덜했어.

외로운 발바닥 2006-05-19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나도 그래. 이 책은 사실 요즘 흔히 출판되는 '누가 내 치즈를 옮겼어.'류의 느낌이 나는 듯
 
아리랑 -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
님 웨일즈.김산 지음, 송영인 옮김 / 동녘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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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혁명가 김산. 일제가 우리 국권을 침탈하던 시기에 태어나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가 15세때 중국으로 혈혈단신 건너가 독립군 군관학교에 최연소로 입학한 그. 불행하고 혼란한 시기에 태어나 평생을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타오르다 간 그의 일생을 보고 있노라면 한편으로는 그 시기에 태어나지 않았다는 소박한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도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는 생각도 들었다. 김산이 요즘과 같은 때 태어났으면, 물론 훌륭한 사람이 되었겠지만 그토록 치열하고 순수한 삶을 살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물론 김산은 난세의 凡人이 결코 아니다. 난세에도 그처럼 티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이 믿는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강철과 같은 의지로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추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의 삶을 보면 난세에 인간 의지와 신념의 극단을 엿볼 수 있다는 느낌이다. 그는 그리 길지 않은 삶을 살다 갔지만, 누구보다도 치열하고 다양한 삶을 살았다. 지금 같으면 중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을 나이에 김산은 뜨거운 가슴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중국어사전 하나만을 낀 채 홀로 중국으로 건너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자신이 고백하듯이 민족주의자, 무정부주의자를 거쳐 공산주의자가 되어 자신의 신념에 온몸을 불사르는 그는, 그의 말처럼 평생을 잔인한 시대에 맞서 투쟁을 계속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모든 것에 패배했지만, 자기 자신에게만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산이 보통의 독립운동가들과 다른 점은 그가 단순히 조선의 독립만을 목표로 행동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중국에서의 혁명이 조선, 일본에서 민중의 혁명으로 이어져 궁극적으로는 조선의 독립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였겠지만, 그는 중국 대혁명에도 참가하고 대부분의 청춘을 중국에서의 혁명사업에 투신한다. 그가 결국에는 공산주의에서 자신의 신념을 추구할 수 있는 틀을 찾기는 했지만, 그는 결코 이데올로기 그 자체의 노예가 되지 않고 언제나 그 이상의 것을 추구했다. 그리고 그가 추구하는 그 이상의 것은 님웨일즈가 지적했듯이 억압과 박해를 받는 인간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런 억압이 없는 정의로운 사회가 아닐까 한다.

끊임없이 자신의 신념을 쫓아 삶을 불사르는 그의 삶을 읽으면서 김산이 체게바라와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의 우열을 견줄 수야 없겠지만, 우리나라에도 그처럼 멋진 혁명가가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김산은 중국에서 활동한 수많은 조선인 혁명가 중에도 자신에게 더욱 엄격하고 투철한 신념을 가진 편이었겠지만, 만주를 비롯한 중국에서 활동한 수많은 조선인 독립운동가, 혁명가들의 삶도 그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삶을 통해 우리가 단순히 붉은 색의, 지주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는 식의 이미지로 덧칠해진 공산주의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공산주의에 가담한 수많은 사람들은, 적어도 공산주의 발생 초기에는 대부분 그들이 믿는 신념에 따라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공산주의자가 된 것이며,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양립불가능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공산주의자 김산이 인간의 천부적 권리, 민주주의의 가치와 중요성을 강조할 때, 공산주의에 대한 닫힌 생각을 가진 내가 얼마나 놀랐던지...) 그리고 일제시대, 그리고 해방전후와 그 이후의 남북한의 상황이 단순하게 공산주의자는 빨갛고 나쁜 놈, 자본주의자는 좋은 놈, 혹은 그 반대로 정의될 수 없다는 것도 김산이 삶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내 인생에서 오직 한가지를 제외하고 나는 모든 것에서 패배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승리했다.’는 김산. 수많은 시련과 좌절, 고통을 겪으며 강철과 같이 단련된 그의 순수한 의지와 이를 온몸으로 실천한 그의 삶이 내 가슴속에서 메아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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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사 3 - 야스쿠니의 악몽에서 간첩의 추억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3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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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허물을 들추기보다 내 자신의 허물을 들추기가 훨씬 어려운 법이다. 그리고, 이제껏 수십년간 남의 허물을 캐내어 이를 과장하고 나의 허물을 감추고 이를 치장해 왔기 때문에 나의 허물을 들추어 내는 일이 더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의 허물을 캐는 것에만 지나치게 열중하면서 남의 허물에는 한없이 관대한 태도를 보이다보면 그 역시 균형을 잃은 태도가 아닐는지. 특히 지금처럼 남한 전체가 이념(?)적으로 둘로 나뉘어 거의 모든 사회적인 쟁점마다 극한적인 대립을 보이는 이 때, 남의 허물에는 눈을 감은 채 우리 자신의 허물만을 들추어 내는 일은 저자가 일깨우고자 하는 수많은 유동적인 보수층을 저자가 속해있는 진보로부터 멀어지게 하지는 않을는지.

나 개인적으로도 우리 자신의 허물을 캐 내는 일은 이제 겨우 시작단계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논란이 있더라도 과거사 문제는 어떤 형태로든 건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상대적으로 북한 사회의 부조리에 관대한다고 할지라도, 김일성, 김정일의 권력세습을 두고 ‘탐탁치는 않지만, 정치권력은 부자지간에도 공유할 수 없다는 상식을 깨고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함께 20년가량을 북을 다스린 사실을 상기하자.’(p265)는 식의 발상이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자기 아버지와 20년 동안 권력을 공유한 김정일이 갑자기 나타난 유신소녀보다 낫다는 말인가? 그리고 북한사회에서의 지배권력에 의해 학살되고, 굶주려 죽은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 이승만 시대나 군사정권 하에서 학살당한 사람들보다 가치가 덜하다는 말인지. 일단 통일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북한을 자극하지 않고 점진적으로 남과 북이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비판에 극히 신중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정치인들이 할 일이지, 역사학자인 저자마저 그렇게 조심할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다.

개인적으로도 박정희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의 독재시절 저질러진 온갖 만행은 지금에라도 더 까발려지고 비난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박정희 시대에 우리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가. 물론 박정희가 경제개발에 집착한 것이 부족한 민주적 정당성을 감추기 위해서 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박정희 시대의 경제정책으로 인해 지금도 우리 사회 전반에 심각한 문제가 산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이 박정희의 지도력에 얼마만큼 의존한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적어도 현재 대한민국 국민의 삶의 질이 북한 주민들보다 낫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아닌가. 각 나라 국민의 삶의 질이 절대적인 비교잣대가 될 수는 없겠지만, 자주성과 민족적 자존심을 지키는 것에 집착하여(사실 그런것인지도 약간은 의문이다.) 경제파탄을 초래하여 수많은 국민들을 아사시키고 있는 북한의 현상황이 부끄러운 과거를 가진 대한민국의 현상황보다 낫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북한이 건국당시 대한민국보다 정통성의 측면이나, 당시 민중들의 지지도 측면에서 우월했다는 사실이 그 이후 수십년간의 역사에 면제부를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03권에서도 국가인권위원회의 민주화운동 인정과 관련한 사건에 관한 글을 통해 관점을 전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의 군사정권이 반공주의를 얼마나 악랄하게 악용해 왔는가를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적지않은 소득이었다. 그런 면에서 저자의 편향된 태도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대한민국의 어두운 과거를 까발리는 것이 ‘정반합’에서의 ‘정’에 해당한다면 북한의 어두운 과거를 까발리는 것이 ‘반’이 될 것이고, 통일한국의 미래를 그려보는 것이 ‘합’정도가 될 것이다. ‘정’에 대해서는 저자의 노력이 어느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에제 ‘반’과 ‘합’에 대한 연구도 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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