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밖으로 나온 공주
마샤 그래드 지음, 김연수 옮김 / 뜨인돌 / 2002년 6월
평점 :
절판


왠지 섬뜩한 노래 가사가 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가사 뿐 아니라 노래 자체도 굉장 우울하다. 이 노래를 들을 때 생각났던 장면은 「에반게리온」에서 수많은 레이가 일제히 얼굴을 들던 장면이었다. 내 안에 있던 수많은 내가 고개를 들고서 또 다른 나에게 아우성을 치는 것만 같았으니까.

 사람은 누구나 다중적이다. 여러 역할을 수행하다보니 그렇게 여러 명의 자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내 안엔 너무도 나약한 어린 자아도 있고 누군가에게 잘난 체 하려는 거만한 자아도 있다. 이 외에도 많은 자아들이 들쭉날쭉하며 나라는 사람을 정의하게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다중성을 통합하여 '~한 나'라고 규정될 수 있는 단일한 나를 만드는 일은 가능할까?

「동화 밖으로 나온 공주」, 제목이 참 아이러니하다. '동화=공주'라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동화≠공주'라는 전혀 아리송한 표현이 되니까. 동화 속의 공주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공주란 타이틀만 있으면 평생 잠만 자더라도, 평생 순진한 얼굴을 한 체 세상사에 무관심하더라도 괜찮다. 오히려 그런 순수미와 백치미 때문에 핸섬한 왕자들이 다가와 구해주고 싶어질 테니까. 거기다가 좀 위험한 상황(악랄한 도적에게 잡혀간다거나 독이 든 사과를 먹는다거나)까지 연출할 수 있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뒷일은 전혀 걱정하지 마시라. 모든 건 왕자가 다 해결해줄 거니까. 공주는 그저 그 왕자를 따라 '그 후로 둘은 행복하게' 살아가기만 하면 된다. 이게 바로 동화 속에 그려진 공주의 전형적인 모습이며 그런 동화를 보고 자라온 아이들이 꿈꾸는 행복한 가정상이다. 지금도 내 주위엔 그런 영향 탓인지 '언젠가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날 거라 기대하는 친구들이 있다. 너무나 순진하거나 너무나 바보이거나.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책의 제목은 그런 일반적인 생각을 여지없이 깬다. 그건 이미 동화라는 유아적 상상의 공간에서 공주가 뛰쳐나왔다는 데서 알 수 있다. 제목만 보고서 이 책이 끌렸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선 왠지 코엘료의「연금술사」가 떠올랐다. 길을 걸으며 자신을 알아가는 모습이 비슷해보여서 였던 것 같다. 길 위에 놓인 존재, 수많은 사건들은 지금까지 누군가 만들어 놓은 길만을 맹목적으로 걸어가던 주인공을 각성시켜 자기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도록 돕는다. 예전엔 누군가의 의지에 따라 한 모습으로 통합된 나 자신을 만들려 노력했다면, 이젠 내 속에 감춰진 여러 모습들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만약 세상에 정답 같은 게 있다면, 그건 길 위의 예기치 않은 사건 속에 있을 것이다. 무언가 삶의 정답이 궁금해 미칠 것 같은 사람에게 이 책은 좋은 안내서가 될 것이다. 

 

공주도 처음엔 평범한 공주였다.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동화 속 공주'였다. 하지만 약간 다른 게 있었다면 아무 것도 안 하고 왕자만 기다리지는 않았다는 것. 품위 있는 공주가 되기 위해 자신의 욕망(함부로 울어선 안 되며, 왕성한 호기심이 있어도 안 된다. 그건 천박한 짓이니까)들을 거세해 나가야 했고 왕실규범에 따라 행동을 정형화해야 했다. 군에 들어가기 전엔 모두 자유분방하고 행동이 제각각이지만 훈련을 받고나선 하나의 기계처럼 정형화되듯 말이다. 처음부터 공주는 이중적인 자아를 가지고 있다. '비키'라고 불리는 어리고 감정적인 자아는 공주 안에 억압된 욕망들이 표현된 것이다. 이런 이중적인 자아를 인정하고 늘 같이 이야기하며 지내던 공주는 어느 순간부터 그걸 인정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건 아마도 감정에 치우친 자신의 모습보다 이성에 의해 왕실규범을 제대로 실천할 수 있는 공주가 되고 싶을 때부터 였을 것이다. 그 때 공주는 "언젠가 진짜 사랑이 빅토리아에게도 찾아올 것이다. 그 때는 이 세상 모든 게 다 잘될 것이다 (39p)"라고 말한다. 이 말을 통해 자신을 단일한 존재로 만들려 한 진짜 이유는 지금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언젠가' '누군가로 인해 찾아올' 행복을 위해서였음이 드러난다. 자기 스스로를 불행으로 내몰면서 언젠가 그런 불행한 나를 건져줄 왕자가 나타나기만을 바라는 것이다. 공주는 비키라는 자신의 다른 모습을 옷장에 가둬버린다. 이미 공주는 그 순간부터 돌이킬 수 없는 편견이 가지게 된다. '공주는 ~~하다'와 '왕자는 ~~하다'라는 동화 속에 흔히 등장하는 그런 편견들. 과연 그런 편견에서 벗어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공주는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그런 공주는 왕자를 만난다. 그런데 다행히도 왕자는 공주의 편견을 완벽하게 충족시켜주는 사람이었다. 사랑에 눈 먼 그녀, 공주! 아마 그 순간 공주의 눈엔 왕자의 편견에서 벗어나는 모습들은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랑에 눈이 멀면 그런 법이다^^ 그래서 둘은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한다.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할 거다. 왜냐? 동화책엔 '그 후로 오래 오래 행복했다'고 되어 있으니까. 그런데 이게 웬 걸? 행복은 잠시 뿐이고 또 다른 불행이 시작된 거다. 왕자는 두 얼굴의 사나이였으니까. 이건 무슨 '헐크'라는 영화도 아니고~ 공주의 편견을 완벽하게 충족시켜주는 '깔깔박사'의 모습과 신경질적이고 불평과 불만에 가득차 공주는 멸시하는 '하이드 박사'의 모습. 공주는 왕자의 본래 모습이 '깔깔박사'인데 누군가 몹쓸 저주를 걸어서 때론 '하이드박사'가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과연 왕자의 본 모습은 뭐란 말인가? 이런 상황에선 두 가지 해법이 있다. 왕자라는 편견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면 그는 더 이상 왕자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그 정의에 맞도록 바꾸던가, 아니면 자신의 이런 불행을 바꿔줄 수 있는 또 다른 왕자를 기다리던가. 공주가 택한 방법은 왕자의 저주가 풀릴 수 있도록 돕는 거였다. 하지만 그렇게 도우면 도울수록 둘의 관계는 멀어진다. 왜 둘의 관계는 자꾸 꼬여갔던 것일까? 그 해답은 이미 윗줄 어딘가에 나와 있다. 공주는 스스로 행복하게 살지 못한다. 누군가가 그 행복을 만들어 줄 거라 생각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건 곧 왕자에게 바라는 게 많다는 이야기다. 그 뿐인가 그녀는 '왕자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라는 편견이 있다 보니, 은연중에 왕자에게 그런 모습을 강요할 수밖에 없었다. 비극은 이런 데서 시작된다.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려할 때.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 모르긴 해도 한 번도 나를 사랑한 적이 없었어. 당신이 원하는 왕자라는 것도 당신이 꿈꾸었던 어떤 사람이지, 당신과 결혼한 이 사람이 아닌 거야 (125p)" 왕자의 절규다. 왕자는 공주가 바란 이상형의 인물일 순 없다. '하이드박사'의 모습 또한 왕자의 모습일 테니까. 공주는 왕자의 다중적인 모습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건 곧 자신의 다중적인 모습도 인정해야 함을 의미한다. '있는 모습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될 때 자신 안에 수많은 가능성이 드러나며, 행복도 그 안에 싹튼다.

 나의 다중성을 허하라. 그래서 때론 한없이 즐겁기도 하지만, 때론 언제 그렇게 쾌활했냐는 듯이 우울하고 외로움에 치를 떨기도 한다. 그게 바로 나의 모습일 뿐이다. 때론 엄숙주의로 조금의 미동도 없이 심각한 표정을 취할 때도 있지만, 때론 기분이 들뜨면 음악에 따라 몸을 흔들며 춤을 추기도 한다. 그게 모두 나의 모습이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상관없다. 어찌되었든 그들은 나를 하나의 관점으로만 평가하고 있을 테니까. 그게 진정한 내 모습이든 아니든 난 내 내면의 소리에 더 귀기울이며 나의 행복을 위해 살 것이다. 공주는 길을 떠나 많은 경험을 하며 자신이 얼마나 애초에 얼마나 완벽하고 독특한 사람이었는지 인정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행복을 만들 수 있는 것이며 자기를 사랑할 수도 있는 것이다. "공주는 살아가면서 왜 그토록 오랫동안 왕자를 갈망했는지 생각 했다. 실은 때로 왕자 없이는 무엇도 느낄 수 없었다. 공주에게는 자신을 사랑해줄 왕자가 필요했고, 자신이 아름답고 특별하고 사랑스럽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고 행복하게 만들어줄 왕자의 반짝이는 눈동자가 필요했다. 왕자니, 자신을 구해주느니, 사랑에 빠지느니 하면서 배운 것들을 떠올리니 그보다 잘못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주는 이제 여전히 자신이 살아가면서 왕자를 원하기는 하겠지만, 그것은 삶의 여러 요소 중의 하나가 될 뿐, 자신의 삶 자체가 되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또한 왕자가 있건 없건 간에 자신은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을 만큼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278p)" 공주의 변화에 동감했다면 이젠 내가 변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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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9 23: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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