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첫 소설집이 나왔을 때 어느 일간지의 기자가 보르헤스를 좋아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때 그를 읽었지만, 심지어 그의 전집을 대략 다 봤지만, 그렇다고 말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도무지, 보르헤스는 너무 어려웠다! 정말이지, 너무 어려웠다!  

 

 

 

 

 

 

 

 

 

 

 

 

 

학생들의 기말고사 답안을 읽다가,,  한 학생이 나보코프의 <절망>과 분신테마 관련 얘기를 써나가던 중 보르헤스의 <원형의 폐허>를 언급한다. 아뿔사! 이런 소설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방학이 되자마자, 부산의 부모님 집의 창고에서 썩기 직전에(너무 많은 책이 습기와 벌레의 희생양이 됐다ㅠ.ㅠ) 구원(!)한, 손때 묻은 보르헤스 전집을 다시 꺼냈다. 자, 그렇게 미뤄 두었던 작가를 다시 한 번 본다.

 

 

 

 

 

 

 

 

 

 

 

 

 

 

무척 날렵하고 세련된 표지의 이미지가 여전히 좋다.(시인 박상순이 디자인한 걸로 안다.) 암튼. 얘기하기 편한, 즉 읽기 편한 작품들은 <픽션들>에 실린 대표 단편들([피에르 메나르~],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 [원형의 폐허] 등)이지만, 그에 관한 얘기는 지금 쓰는 원고에서 하게 될 테고,  한데 덩달아 같이 읽은 작품들이 그냥 묻어버리기엔 너무 아까워, 게다가 메모 해놓은 것도 너무 많아서, 좀 긁어오려고 한다.

 

 

 

 

 

 

 

 

 

 

 

 

 

 

 

 

대체로 보르헤스는 '반복'(그러니까 '차이와 반복')에 예민했던 듯한데, '쓰기보다 읽기'라는 말에 포함된 것이 결국 그런 얘기일 듯하다. 그게 소설적 형식의 빌자면, 결국 분신 테마이다. <원형의 폐허>가 그 중 제일 잘 쓴, 거의 충격적인 소설인 것 같고. 소설적인 형상성은 좀 떨어지지만, 이런 것들도 있다.

 

 “그의 안에는 아무도 없다. 그의 얼굴(그 당시의 형편없는 그림들을 보아도 그 어떤 사람과도 닮지 않은), 방대하고 환상적이고 자극적인 말들 뒤에도 단지 약간의 냉기, 그 어떤 사람에 의해서도 꾸어지지 않은 꿈만이 있었을 뿐이었다.”(56)

죽은(혹은 죽기 직전) 셰익스피어와 신의 대화:

오랜 세월 동안 헛되이 그토록 많은 사람이었던 저는 이제 한 사람, 즉 나 자신이 되고 싶습니다.” 회오리 바람 속에서 하느님의 음성이 그에게 대답했다.나의 셰익스피어여, 나 또한 나 자신이 아닌 걸. 나는 마치 네가 너의 작품을 꿈꾸었던 것처럼 세계를 꿈꾸었지. 그리고 내 꿈의 형상들 속에 마치 나처럼 수많은 존재이기도 하고 동시에 아무도 아닌 네가 존재하고 있는 거지.”(59) (전체와 무()」, <칼잡이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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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쉽게 장자의 호접몽을 연상시키지만 그건 비교적 장치(=기교)에 가까운 것 같고, 그 기저에 깔린 것은 아무래도, '역사와 악몽은 반복된다'라는 암울한 세계관인 것 같다. 요컨대, 피에르 메나르의,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똑같은(!!!) 소설을 쓰려는, '완전한 일치'의 이념을 실현하는, 그런 무익하고 암담한 글쓰기와 같은 시도. 그는 이걸 '지적인 행위'라 부른다. 원래, 지적이라는 것은 이런 것, 쓸모없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게 결국은 자기복제, 를 낳는다. 이런 작품도 좋다.

 

“(그렇게 함으로써) 보르헤스는 자산의 문학을 만들어갈 수 있을 거고, 바로 그 문학이 나의 존재를 정당화시켜 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몇 페이지의 좋은 글을 썼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그 글들이 나를 구원해 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좋은 것은 이미 그 누구의 것도 아니고, 그의 것도 아니고, 단지 언어 또는 전통의 소유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명백하게 소멸할 운명을 가지고 있고, 단지 내 자신의 어떤 순간들만이 남의 기억 속에 남게 될 것이잖는가.”(66)

나는 우리 둘 중에서 누가 이 글을 쓰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66)(보르헤스와 나. )

 

 

늙은 보르헤스가 아침 10, 영국, 템스 강(?) 거리의 한 벤치에서 젊은 보르헤스를 만나는 설정으로 시작되는 소설은 또 어떠냐.

 

불가능한 것에 대한 본질적 공포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를 경악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비록 나는 자식을 가진 아버지였던 적이 없었지만 내 살과 피로 만들어진 자식보다 더 친밀하게 느껴지는 그 가련한 청년에게 물밀듯 밀려오는 사랑을 느꼈다.”(15).([타자])

 

겸사겸사, 그가 갖고 있는 책은 도... 키의 <악령>이다. 그 러시아의 대가는 슬라브 민족 정신의 미로를 가장 깊게 파고 들어갔던 사람이에요.”(15) 라는 찬사도 곁들여진다.

 

비슷한 주제로 역시나 충격을 주는 단편은 1983825. '보르헤스'가 자살을 하려고 여관방을 찾아갔는데, 숙박계를 보니 이미 내 이름이 있다. 내 이름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이미 씌어 있고, 잉크는 아직 말라 있지도 않은 채가 아닌가.”(147) 주인과 짧은 대화를 나눈 다음 그가 묵고 있는 319호실로 간다. 그리하여, 나보다 좀 늙은 그와 대면. “기이한 일이군 - 그가 말했다 - 우리는 둘이면서 하나로군. 그렇다 해도 이게 꿈에서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지.”(148)

 

 그것은 자네 기억의 저 깊은 곳, 꿈들의 조수 아래에 머물게 될 걸세. 자네가 그것을 글로 쓰게 된다면 자네는 자신이 환상적인 단편 하나를 쓰려 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될 거야. 그것도 내일이 아니라 여러 해가 지난 후에

그가 말을 멈추었고, 나는 그가 죽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보면 나 또한 그와 함께 죽은 것이었다. 나는 맥이 풀린 채로 베개 위로 몸을 구부렸으나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방에서 도망쳐 나왔다. (...) 

밖에서는 또 다른 꿈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155) ( 1983825일)

 

 

보르헤스는 아마 세계문학에서 가장 지적인 작가, 따라서 가장 염세적인 작가가 아닌가 싶다. 도무지 그의 소설에는 사람 얘기가, 세상 얘기가 전혀 없다!  책에서 시작해 책으로 끝나는 소설. 그나마도 너무 짧아, 잠시 졸거나 딴 생각하면 그냥 끝이다..-_-;; 달리 말하면, 그런 식으로 읽어도 번득이는 문장이나 장면에 눈이 따끔, 해진다. 이런 것. 

 

 

돈키호테는 결코 자신이 환상적인 이야기들의 광적인 독자였던 알론소 끼하노의 반영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39) (어떤 수수께끼」)

 

-- 몇 세기 동안의 망명 끝에 돌아온 신들(cf. 니체.)과 그들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모든 것은 그 신들이 말을 할 줄 모른다는 의구심(아마 과장되었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수세기에 걸친 몰락과 망명의 삶은 그들에게서 인간적인 요소들을 거의 탈취시켜 버렸던 것이다. (...) 불현듯 우리는 그들이 자신들의 마지막 패를 돌리고 있고, 그들은 교활하고, 무지하고, 그리고 마치 갇혀 있는 늙은 짐승들처럼 잔인하고, 그리고 만일 우리가 두려움이나 동정에 사로잡히게 된다면 그들은 급기야 우리들을 파멸시켜 버리게 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육중한 권총들을 끄집어냈고(우리들은 그 꿈 속에서 돌연 권총을 가지고 있었고) 즐겁게 신들을 쏘아죽였다.”(61-62) ([꿈]

 

 위에 적힌 쪽수는 모두 황병하 번역본이고, 이번 기회에 새 번역본으로 <픽션들>을 다시 읽었다. 송병선 번역도  좋다. 참조한 전기도 기대 이상이었다.(어지간한 논문들보다 낫더라는...-_-;; 내가 이런 말 할 처지는 못 되지만, 스페인어권 문학 연구자들이 좀 분발했으면 한다..-_-;;)

 

 

 

 

 

 

 

 

 

  

 

 

 

 

 

 

 

 

공부를 아주 잘 하고 싶었던 때가 있었고, 내게 공부는 책을 아주 많이 읽고 또 아주 좋은 책을 쓰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니까 소설(문학) 창작과 소설(문학) 연구가 딱히 다른 일이 아니었는데, 좀 더 뒤, 너무 다른 종류의 활동임을 알게 된다. 좀 더 뒤, 그럼에도 계속 두 가지 일을 어영부영, 엉거주춤 같이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다른 대안도 없음을 또한 발견한다. 더 젊어질 수도 없고, 또 공부만이, 읽고 쓰는 것만이 살 길이다. 모선배의 자조섞인 농담대로 "이 나이에 내가 뭘 어쩌겠니?"...-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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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행동, 삶과 죽음 사이 - “있음이냐 없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셰익스피어(1564-1616), <햄릿>(1601)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초연 년도는 1601년으로 추정된다. 그로부터 400여년이 거뜬히 지났음에도 이 작품은 여전히 살아있는 고전으로 추앙받고 있다. 작품의 골조를 이루는 중세 덴마크 왕정의 비극(물론 셰익스피어의 순수 창작물은 아니다) 속에는 각종 서사 장르의 단골 메뉴(유령, 복수, 정쟁, 연애, 광기, 살인, 자살, 결투 등)가 총동원되어 있다. 인물들도 주인공뿐만 부차적 인물과 단역에 이르기까지 또렷한 형상과 성격을 자랑하고 대사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시구나 철학적 아포리즘에 맞먹을 만큼 도발적이고도 함축적이다. 아버지의 복수를 미루는 햄릿의 우유부단함, 행동이 아닌 행동 없음이 희곡의 플롯을 이끌고 가는 것도 흥미롭다. 부왕-유령이 즉각적인 복수를 명령했음에도, 이어 그 스스로 올린 연극을 통해 숙부(클로어디스)의 죄를 확인했음에도 햄릿은 쉽사리 그를 죽이지 못한다. 유혈 복수가 장려, 심지어 요구되는(“살인에는 정말 성역이 있어선 안 되고, 복수에 한계는 없어야지.”(169) 시대였고 햄릿이야말로 용맹한 다혈질의 전사였음을(폴로니어스 살해 장면을 보라) 상기한다면 더더욱 놀라운 대목이다. 5막 내내 복수-행동은 없고 그것에 대한 , , ”(70)뿐이다. 이는 짐승 같은 망각인가, 아니면 결과를 너무 꼼꼼하게 생각하는 비겁한 망설임”(149)인가.

 

 

 

 

 

 

 

 

 

 

 

 

 

 

 

 

 

햄릿에 대해 괴테는 지극히 도덕적인 한 인물이 자기가 도저히 감당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던져버릴 수도 없는 무거운 짐에 짓눌려 파멸한다고(괴테,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말했다. , 영웅이 되는 데 필요한 억센 감각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훗날 프로이트가 내놓은 해석은 주지하다시피 무척 당돌하고 발칙하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햄릿이지만 자신의 아버지를 제거하고 아버지 대신 어머니를 차지한 남자”, 즉 억압돼 있던 자신의 무의식적인 욕망을 실현한 남자에게 복수하는 일만은 양심상(!) 할 수 없었다(프로이트, <꿈의 해석>)는 것이다. 햄릿을 근친상간과 친부살해의 틀로 읽어내려는 유혹은 여전하지만(어니스트 존스, <햄릿과 오이디푸스>) 그렇다고 수수께끼가 온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햄릿>(<맥베스>와는 달리) 인물의 내적 정황을 담아낼 수단, 객관적 상관물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소위 실패작이라고 보는 견해(T. S. 엘리엇, 햄릿과 그의 문제들)도 있다. 한편, 투르게네프를 비롯한 19세기 러시아 작가들은 햄릿을 (행동의 대명사인 돈키호테와 비교하여) 비대한 자의식과 사유에 얽매인 인텔리겐치아의 전형(‘잉여 인간’)으로 이해했다.

 

 

 

 

 

 

 

 

 

 

 

 

 

 

 

 

 

실상 햄릿의 가장 큰 매력은, 작품 자체가 그렇거니와, 그 성격상의 모호함과 흐릿함인 것 같다. 가령, 유령의 출현은 객관적인 사실이지만 햄릿과 그의 대화는 호레이쇼와 마셀러스가 도착하기 직전까지, 즉 단 둘만 있는 상황에서 이루어진다. 어머니의 내실에서도 그는 유령을 보고 심지어 말도 주고받는데, 거트루드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부왕-유령은 곧 햄릿(‘-지식인’)의 내면에 깃든 또 다른 자아(‘행동-전사’)의 극대화된 표현이 아닐까. 다른 인물들도 애매한 측면이 있다. 시동생과 결혼한 거트루드는 아들의 날선 비난에 시달리지만, 당시 여성의 입지를 생각하면 별 다른 선택지가 없었을 것이다. 그녀를 향한 클로어디스의 감정도 단순히 정치적 야욕과 육욕의 발로로 보이지는 않는다. “, 내 죄 썩은 내가 하늘까지 나는구나. 난 인류 최초의 형제를 죽인 저주를 받고 있다.”(123) 회한에 사로잡힌 이 카인의 후예에게는 분명 복잡한 전사(前事)가 있었을 것이다. 오필리어의 광기와 자살을 비롯, 모두 상서롭지 못한 결말을 맞는 폴로니어스 집안도 그 나름의 얘깃거리를 제공한다.

 

결국 문제는 삶과 죽음 사이의 길항이다. “있음이냐 없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94-95)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이라는 문장은 살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김정환 번역, <햄릿>)로 번역되기도 한다. 이 말과 관련하여 가장 주의를 끄는 인물은 묘지 인부이다. 그는 오랜 세월 시신을 다루어온 까닭에 생로병사에 무감각한데, 오필리어의 시신을 묻을 무덤을 파다가 나온 해골 중 하나가 선왕의 어릿광대 요릭의 것임을 금방 알아본다. 그것을 손에 든 채 햄릿이 호레이쇼 앞에서 늘어놓는 말이 새삼스럽다. “안됐다, 불쌍한 요릭. 그를 안다네, 호레이쇼. 재담은 끝이 없고, 상상력이 아주 탁월한 친구였지. 자기 등에 나를 수도 없이 업었는데, 지금은 () 알렉산더 대왕도 땅 속에선 이런 모습일 거라고 생각하나?”(183-184)

 

 

 

 

셰익스피어라는 작가에 대해 어떤 표상을 갖기가 힘들다. 그는 너무 많이, 그리고 너무 잘 썼고, 과장하자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주제와 모든 인간형을 두루 섭렵한 유일한 작가였다. 그가 엄연한 영국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민족(지역) 문학이 아니라 보편적인 세계문학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것도 이 때문인 듯하다. 극작가였을 뿐더러 연출가이자 극장 소유주이기도 했던 그는 살아생전에 물질적인 풍요를 누렸으며 여덟 살 연상의 부인과도 백년해로했다. 작품 창작에 많은 사람들이 관여했을 테지만 이 역시 오늘 날의 영화 작업처럼 흠이 아니라 그의 인화력을 방증하는 것이다. “뒤틀린 세월. , 저주스런 낭패로다, 그걸 바로잡으려고 내가 태어나다니.”(52) 15장에서 이렇게 한탄하는 햄릿과 달리, 셰익스피어는 엘리자베스 1세 치하 황금시대의 주역, 즉 시대와도 호응한 작가였다. 과연 천재란 하늘이 내리는 것이다.

 

-- <책앤>7월호.

 

-- <햄릿>을 좋아해본 적이 없다. 이번에도 (투르게네프의 <돈키호테와 햄릿>을 읽던 참에) 일종의 의무감에서 읽었고, 여전히 좋아하는 마음은 생기지 않더라(나는 오히려 <맥베스>를 좋아한다). 반면, <햄릿>에 대해 쓰려고 이런저런 참고서를 뒤지던 중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정말 십수년만에(!) 다시 봤는데, 반가워서 가슴이 다 콩당거리더라. 취향이란 참, 이런 것이다!

 

 

 

 

 

 

 

 

 

 

 

 

 

 

 

 

 

 

-- 겸사겸사 <오셀로>와 <리어왕>을, 역시나 십수년만에(!), 슬쩍 다시 봤다. <오셀로>는 사랑(질투)보다는 오히려 (오셀로의)  계급의식이 더 돋보이고, 주인공들 보다는 이아고가 좀 수상쩍게, 즉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리어왕>은... 재산이 얼마가 되든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는 꼭 쥐고 있어야 함을 보여주는(^^;;), 노후 생활 지침서로 꼭 읽어야 하는 명작임을 새삼 확인했다..^^;;  글구, 딸도 소용없다는, 잘 키운 아들 하나, 세 딸 안 부러워...~~ -_-;;

-- 덧붙여, 가장 훌륭한 <리어왕> 중 하나는 구로사와 아키라가 만든 이 영화! <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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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바고의 기억 속에서 라라는 그가 톨스토이의 크로이처 소나타를 읽으며 토냐, 미샤와 함께 금욕과 순수를 논하던 시절 음란한 욕망과 타락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다른 세계에서 온 소녀로서 신비스러움을 갖춘 존재였다. 이후, 1차 세계 대전은 군의관 지바고와 간호병 라라의 정신세계를, 소비에트 혁명은 두 사람의 삶 자체를 아름답고 절실한 사랑으로 묶어 놓게 된다. 그리고 지바고의 시 속에서 라라는 어린 시절부터 가혹하기만 했던 운명에 맞서면서 그녀가 익혀온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며 때로는 자기희생적인 삶, 코마로프스키와의 관계에서 나타났던 탕녀의 이미지 등을 복합적으로 구현하면서 궁극적으로는 막달라 마리아의 형상과 등치된다. 탈출에 성공하여 유라친, 이어 바르이키노로 돌아온 지바고를 간호하고 돌보는 라라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발을 씻기던, 타락과 구원을 동시에 담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의 또 다른 모습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혁명의 격동 속에서도 사랑과 삶을 창조하고자 했던 라라의 의지, 그리고 그녀의 비극적인 종말은 20세기 전반기에 어느 나라보다 여성의 활약이 두드러졌던 러시아-소비에트 시대의 아름답고 현명한 여성의 초상화의 일변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붉은 마가목 열매가 혁명과 사랑의 상징이라면,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인 파벨 안치포프야말로 가장 직접적인 예가 되겠다. 그는 1905년 혁명 당시 철도 파업을 주동하여 투옥되었다가 1917년 혁명 이후에는 가족도 내팽개친 무자비한 관료적 혁명가가 된 안치포프의 아들이다. 아버지와는 달리 섬세하고 여린 성정을 지녔던 그의 순수한 열정은 라라에 대한 사랑과 이것을 매개로 한 지식욕으로 구체화된다. 하지만 그 사랑은 타협을 모를 만큼 철저하고 맹목적이었기 때문에 결혼 직후 밝혀진 라라의 때 이른 순결의 상실과 육체적 타락을 그는 받아들일 수 없었으며, 라라의 표현대로,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악-불행을 시대정신, 즉 보편적인 악으로 환원시켜 버린다. 이 점에서 안치포프의 1차 세계 대전 참전은 결혼 생활로부터의 일시적인 도피이기도 했지만 무수한 코마로프스키들, 즉 구시대 러시아의 악의 대변자들에 대한 복수극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파벨 안치포프의 복수극은, 그가 종전 후 자신의 이름이 사망자 명단에 오른 것을 이용하여 스트렐리니코프라는 이름으로 부활한 뒤 혁명에 적극적으로 가담함으로써 극에 다다른다. ‘스트렐리니코프라는 이름이 암시하듯(‘학살자’, ‘총살자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라라에 대한 열정으로 나타났던 그의 순수는 이제 어떤 추상적인 것, 즉 이데올로기와 혁명과 결합된다. 지바고의 경우와는 정반대로, 역사의 흐름을 한 인간의 의지로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이 의지의 화신의 내부에 뿌리를 내리자, 그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어떤 잔혹한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혁명이 완성되자마자 정식 당원이 아니면서도 수뇌부와 너무 가까웠기 때문에 최고형을 선고받게 되는 그의 운명은, 앞서 언급했듯, 낭만적인 혁명과 현실적인 정치가 서로 결합되었다가 분열되는 역사의 보편적인 현상을 잔혹할 정도로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것이다. 혁명을 위해 사랑하는 가족과의 만남조차 미루었던 이 비운의 인물은 라라가 떠나버린 지바고의 은신처 바르이키노로 숨어들었다가 자신의 아내와 한 시절을 보냈던 지바고와의 대화로 지새운 밤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결국 자살하고 만다. 그러니까 아침녘 지바고의 눈에 비친, 하얀 눈밭 위에 붉게 번져 있는 안치포프-스트렐리니코프의 피는 빨간 마가목 열매의 또 다른 구현인 것이다. 나아가, 이것은 파스테르나크의 조금 어린 벗 마야코프스키처럼 너무도 순수하고 열정적이었기 때문에 혁명 이후 관료화되어가는 사회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었던 진정한 혁명가들, 영원한 혁명가들의 비극적인 죽음에 바치는 파스테르나크의 애정과 경의의 표현일 수 있겠다.

 

 

 

 

 

 

0. : 영원한 혁명의 시대

 

대러시아제국이 소비에트 연방이라는 이름 하에 거의 한 세기에 걸쳐 진행시켜온 사회주의 실험을 실패로 인정하고 다시 러시아로 돌아간 지 이미 10년이 넘었다. 이제 마르크스주의 자체,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와 트로츠키의 영구 혁명론 따위는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처럼 되었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라는 <공산당 선언>의 마지막 문구도 한 때는 우리의 모든 젊은 지성을 흥분시킬 만큼 강력한 것이었으나 이제는 잊혀진 지 오래며, 러시아 본토에서도 마르크스엥겔스 전집 따위는 좀처럼 읽히지 않는 고서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새로운 사건과 새로운 변혁의 꿈틀거림은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어떤 식으로든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은 망각되지 말아야 될 것이다. 앞으로 수세기가 지난 이후, 현재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이 시대를 미래의 역사학자나 사회학자는 혁명의 시대로 기록할 지도 모를 일이다. 이와 맞물려 근시안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정치나 경제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무기력하고 나약한 문학 및 예술의 소명에 대한 물음이 제기될 수 있다. 최소한 <닥터 지바고>에만 한정시켜 말한다면, 그리고 혁명이라는 것이 우리의 삶, 나아가 역사 자체와 동의어일 수 있다면, 문학과 예술은 지금도 진행 중이며 영원히 계속될 혁명에 대한 충실한 기록이 되어야 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작가의 의지 여부와는 무관하게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 터이다. <닥터 지바고>의 주인공과 작가 파스테르나크의 삶이 보여주듯, 작가-인간의 운명은 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특정 시대의 운명과 어떤 식으로든 그 흐름을 같이 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동년배여야 하는데 부녀, 심지어 할아버지와 손녀 같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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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죽음과 불멸 - 의사와 시인

 

죽음은 어린 시절부터 지바고에게 낯설지 않은 것이었다. 소설은 어린 지바고인 유라의 어머니의 장례식으로 시작된다. “지바고(부인)의 장례식을 치루는 겁니다라는 문장은 그 중의적인 의미 산 자를 매장한다’(‘지바고Zhivago’산 자의 목적격이기도 하다)로 인해 삶과 죽음의 복합적 관계를 암시하고 있다. 곧이어, 조만간 유라의 벗이 될 미샤 고르돈과 그의 아버지가 동승한 기차에서 지바고의 아버지가 투신자살하는 장면이 묘사된다. 부모의 때 이른 죽음을 겪으면서 지바고는 삶과 죽음에 대해 남달리 초연한 태도를 갖게 된다. 그의 외숙이자 대학자인 니콜라이의 영향도 일정 부분 작용하는 바, 비단 종교적인 차원의 논의를 떠나서 죽음의 대극에 서 있는 것은 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불멸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에게 연일 죽음과 대면하는 의사라는 정체성 외에, 부활과 불멸을 향한 욕망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공간인 문학과 시인이라는 정체성이 필요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문학마저도 혁명과 정치에 봉사하도록 강요되었던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지바고와 그의 시 및 산문(일기)는 가히, 작가 파스테르나크에게 붙여졌던 퇴폐적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었을 터이다. 한 인간으로서의 유리 지바고도 다분히 기회주의적이며 그것이 아니라면 최소한 무기력하고 나약한 인물로 읽힐 수 있겠다. 1차 세계 대전에 군의관으로 참전했으나 그에게 어떤 거국적 이념이나 명분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혁명 이후 내란 중 파르티잔들 틈에서 활동하게 된 것도 이미 그의 애인이 된 라라를 만나러 가던 도중 납치되었기 때문이었다. 전쟁과 혁명에 대한 그의 태도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여인에 대한 사랑에서도 그는 능동적인 행동의 주체로서의 면모를 거의 보여주지 못했다. 지바고가 자신의 삶의 주체로서 활동한 유일한 영역은 그러니까, 문학-시였다.

 

 

 

 

 

 

 

 

 

 

 

 

 

 

 

 

 

<닥터 지바고>의 마지막 장인 17장에 수록된 유리 지바고의 시들은 혁명의 가두리에 머물고 있다가 불가피하게 그 물결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던 귀족 태생 지식인의 역사와 문학, 자신의 소명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가령 첫 번째 시 햄릿을 보자. 러시아문학사에서 물론 양가적인 의미를 띠긴 하지만 대체로 행동하기보다는 사유하는 인물로 받아들여졌던 햄릿은 파괴를 통한 재건을 슬로건을 내세운 혁명기의 러시아-소비에트에서는 결단코 긍정적인 인물상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지바고는 여러 다른 시에서도 보이듯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햄릿의 형상을 결합시키되, 이 문학적이고 종교적인 형상을 궁극적으로는 혁명과 마주한 시인의 이상적인 표상으로 제시하고 있다. 혁명이 아니었다면 그는 의사와 시인으로서의 직분에 충실하면서 평온한 삶을 살았을 것이며, 그에게는 어떤 순간적인 충격으로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을 수 없으며 요동치는 역사 위에 존재하는 뭔가 더 높고 더 숭고한 원칙이 있었다. 최소한 그러한 믿음이 있었다. 따라서 아버지, 나의 아버지 만일 할 수만 있으시다면, /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주소서 () 그러나 연극의 순서는 이미 짜여져 있고, / 길 끝은 피할 수가 없다라는 시구는 역사의 테러를 무조건 회피하거나 무기력하게 수용하는 것으로 읽혀서는 안 된다. 햄릿-그리스도의 처절한 고백은 차라리, 인간 개인의 힘으로는 어떻게 뒤바꾸어 놓을 수 없는 절대 법칙에 대한 작가 지바고-파스테르나크의 심오한 통찰과 고뇌의 산물이며 그의 일견 우유부단해 보이는 삶 역시도 이 법칙에 맞서 그가 취할 수 있었던 가장 적극적인 대응책이었던 것이다.

 

3. 붉은 마가목 열매 - 사랑과 혁명

 

유리 지바고가 성장기를 보낸 그로메코 집안의 파티에서는 빨간 마가목 열매로 담근 보드카를 선보이곤 했다. 마가목 열매는 아직은 대러시아제국이 존재했던 그 시절, 유년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뭔가였던 것이다. 하지만 󰡔닥터 지바고󰡕의 주인공들이 성장하고 이와 맞물려 역사의 흐름이 거세질수록 마가목 열매의 의미역은 혁명 전반으로까지 확대된다. 특히 12눈 속의 마가목의 첫 장면에서 파르티잔 부대의 주둔지 근처 눈 밭 위에 홀로 우뚝 솟은 산마가목 나무에 달려 있는 빨간 열매들은 혁명으로 인해 희생된 피들, 그들의 선혈의 직접적인 상징으로 기능한다. 러시아의 하얀 설원을 배경으로 한 붉은 산마가목 열매는, 또한 그 눈부신 아름다움과 신비스러움에 있어서 라라와 합치되기도 한다. 파르티잔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살육과 광기를 견디다 못해 탈출을 결심하고 방황하던 중 지바고의 눈에 들어온 눈밭의 또 다른 산마가목 나무는 나의 마가목 아가씨라라의 다른 이름이었던 것이다.

 

(계속...)

 

-- 왜 우리는 계속 이 소설을 읽는가. 영화화되는 것 포함.

 

 

 

눈 덮인 설원을 달리는 썰매. 데이비드 린의 <닥터 지바고>는 어린 시절 러시아문학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는데, 실제 영화 속 배경은 러시아가 아니었다는..-_-;; 최근 BBC에서 만든 <닥터 지바고>. 키이라 나이틀리가 라라 역을 맡았는데, 어떨지 궁금하다. 이미지만 봐서는 너무 안 어울리는 캐스팅..ㅠ.ㅠ

 

 

 

물론 더 잘 만든 건 (끝까지는 못 봤지만)  러시아 판 <지바고>이다. 단, 올렉 멘쉬코프가 아무리 훌륭한 배우라도, 중년의 나이로 이십대 유리 지바고(유라)를 감당하는 건 아무래도 역부족. 특히, 라라 역을 맡은 젊고(어리고!) 예쁜 여배우와 너무 대조되어 몰입이 잘 안 될 정도였다..ㅠ.ㅠ 

 

 

 

-- 마가목(Рябина)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신지. 러시아 가면 한 번 보고 싶었는데, 떠날 즈음에 알았다, 기숙사 건물 옆에 줄창(!) 서 있던 바로 그 나무가 마가목이었음을...-_-;; 

<지바고>의 이미지대로 하얀 눈을 묻히고(^^;;) 있는 사진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눈과 함께 있으면 진짜 '선혈'이라는 단어를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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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혁명의 시:

- 파스테르나크(1890-1960)의 <닥터 지바고>(1957)

 

 

 

 

0. 들어가며: 문학과 이데올로기

 

20세기 러시아-소비에트 문학사를 논할 때 독자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코,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가 되겠다. 특히 우리나라 독자들의 머릿속에는 데이비드 린의 영화 닥터 지바고(1965)까지 더해져서 소설가로서의 파스테르나크가 20세기 러시아문학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런데 그는 소설가이기보다는 시인이었으며 <닥터 지바고>는 그의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그 때문에 이 소설은 문학사적 관점에서 이것과 자주 비교되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와 달리 소설적 문법보다는 서정시적 문법에 충실한 작품이며, 다소 과장해서 말하자면 아름답고 세련된 산문으로 쓰인 한 편의 긴 서정시라고 할 수 있다.

 

 

 

 

 

 

 

 

 

 

 

 

익히 알려진바, 1955년에 완성된 이 작품은 혁명의 이데올로기를 전격 부정하고 있다는 이유로 국내에서 출판이 거부되어 1957년 이탈리아에서 먼저 출판되었다. 작가가 노벨상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른바 사회주의 리얼리즘(socialist realism)의 원칙 하에 문학과 이데올로기 간의 위계질서가 확고하게 굳어져버린 정치적 정황과 밀접하게 닿아 있었다. 어쩌면 스캔들과도 같은 일련의 사건 때문에 <닥터 지바고>는 지나치게 폄하되거나 혹은 반대로 지나치게 과대평가되는 경향도 없지 않다.

 

실상 파스테르나크는 문학과 예술과 학문 외적인 어떤 것, 즉 정치나 혁명에는 원칙적으로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소비에트 혁명을 전후하여 많은 작가들이 소비에트의 탄압을 견디지 못하고 망명하는 일이 적지 않았지만(<롤리타>의 작가 나보코프(1899년생)가 대표적인 예이다) 소위 반체제 작가들에게 있어 추방 명령을 이겨가면서까지 고국에 남아 소비에트-러시아를 살아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따라서 내적 망명 문학’, ‘유배 문학이라고 불릴 수 있는 <닥터 지바고>를 이해함에 있어서 문학과 정치, 예술과 이데올로기 간의 역학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출발점이자 종결점이 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1. 파스테르나크와 지바고: 대러시아제국에서 소비에트 연방으로

 

파스테르나크는 1890년생으로서 <닥터 지바고>의 주인공 지바고와 마찬가지로 1905<피의 일요일 사건>, 1차 세계 대전, 19172월 혁명과 10월 혁명, 백위군과 적위군 간의 전쟁, 즉 내란에 이르기까지 천년의 울림을 자랑하는 대러시아제국이 하루 아침에 소비에트 연방으로 바뀌는 과정을 살아 있는 역사로 체험했다.

 

이 역사의 격동 속에서 파스테르나크 연배의 작가들 대부분이 부닥쳤던 딜레마는 문학과 이데올로기 간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였다. 혁명 전야, 젊은 작가들은 혁명을 새로운 세계의 도래로 생각하면서 환영했다. 세기말과 세기초 러시아문학에서 혁명이 거의 종교적이고 비의적인 색채마저 띠면서 신비화되는 것은 봉건적 러시아에 대한 이들의 환멸과 새로운 것에 대한 이들의 갈망이 얼마나 도저했는지를 보여준다. 20세기로 접어들면서 대문호 체호프가 사망하고(1904) 톨스토이가 이미 문학 활동을 접고 종교적 교시자로 나섰던 만큼, 러시아 특유의 메시아주의는 이제 젊은 작가들의 손으로 넘겨졌던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를 거의 신화화하면서 새로운 미학을 구축하고자 했던 상징주의자 그룹은 대표적인 예이다. 소비에트 비평가들의 범주에 의할 때 부르주아 문학으로 명명된 상징주의자 그룹보다 조금 늦게 등장한 미래파라는 이 점에서 훨씬 더 과격했다. 미래파가 레프(LEF: 예술좌익전선), 나아가 레프(REF: 예술혁명전선)로 바뀌는 지점은, 곧 문학이 다분히 낭만적인 개념인 혁명이 아닌 극히 사실주적 개념인 정치와 뒤섞였다가 결렬되는 지점이기도 했다. 이 과정의 중심에 섰던 혁명의 시인마야코프스키의 자살이 보여주듯, 이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자체가 아니라 혁명이라는 개념이 담고 있는 세계 창조의 기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러시아의 이런 떠들썩한 분위기는 온화하고 조용한 성품의 소유자였던 파스테르나크에는 생경한 것일 수도 있겠다. 톨스토이의 <부활>의 삽화를 그리기도 한 저명한 화가와 저명한 피아니스트였던 부모 밑에서 귀족문화를 충분히 향유하면서 성장한 그는, 일련의 전기적 사실들이 보여주듯, 대러시아제국의 귀족주의와 엘리트주의를 문학 속에 담아낼 수 있는 자양분을 지닌, 수용력이 넓은 자였다. 어쩌면 그러했기 때문에 상징주의의 두 거두인 시인 알렉산드르 블록과 안드레이 벨르이를 좋아했으며, 동시에 상징주의와는 정반대되는 미학적, 시학적 전략을 표방했던 미래파와 가깝게 지낼 수도 있었으며 심지어 미래파, 나아가 레프의 일원이 되기도 했다.

 

파스테르나크의 이러한 문학적, 정치적 활동에는 마야코프스키에 대한 그의 각별한 애정이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닥터 지바고>에도 마야코프스키의 이름이 직접 언급되는데, 유리 지바고는 (마야코프스키)는 모든 점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계승자라고 할 수 있으며 그의 시는 라스콜리니코프를 포함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젊은 주인공들이 쓴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 말한다. 이는 정치 전반에 냉담한 태도를 취했으며 볼셰비키 혁명과는 무관한 삶을 살았거나 최소한 그러고자 했던 그가 혁명에 투신한 자들에 대해 가졌던 동정적인태도와 연결되어 있다. 마야코프스키가 적극적으로 혁명에 가담했으며 결국엔 혁명에 대한 환멸과 좌절로 인해 자살했다면, ‘동반자 작가파스테르나크는 차라리 혁명과 무수한 마야코프스키들의 형상을 문학 속에 남기는 쪽을 택한 것이며 그 산물이 자전적 소설’ <닥터 지바고>였다. 여기에는 그 시대와 그 시대의 순수한 희생자들에 대한 파스테르나크의 부채의식이나 죄의식도 적잖이 개입되었을 것이다. 작가 파스테르나크의 의심의 여지없는 분신인 지바고가 작가와는 달리, 군의관으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볼셰비키 혁명 및 내란 과정에서 파르티잔으로 활동하도록 그려진 것은 이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터이다.

 

(계속.)

 

-- 아주 오래 전에 쓴(더욱이, 좀 많이 못 쓴 것 같다..ㅠ.ㅠ), 저 책에 수록된 원고인데, 왜 꺼냈느냐.

 

-- <죄와 벌>에 이어, <닥터 지바고>를 번역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척 하기 싫다! 모든 번역을 나는 다 하기 싫은데 억지로, 마지 못해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럼 왜 하냐. (어느 원로 시인의 말마따나) 다른 일보다는 덜 하기 싫기 때문이다 운운.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번역이야말로 최근 내 존재(혹은 부재?)의 알리바이인 것 같다.

-- <닥터 지바고>를 상대로 열애를 했던 밤이 물론, 있었다. 중학교 때. '구덩이 오막살이' 단칸 월세방에서 두 칸 짜리 방으로 이사 간 다음. 햇볕이 들어오는 방이라 너무 좋았다. 아무튼 그때 내가 읽은 번역은 오재국 것.  한데 머리가 굵어지면서 이 작품을  좀 얕잡아 보게 됐다. 몇년 전부터는 아주 대놓고(!) 그리했다. (강의 커리큘럼에서도 뺐다.)  한데 나이가 더 드니, 다른 식의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 왜 우리는 계속 이 소설을 읽는가. 그러니까 잘 쓴 여타 러시아 소설에 비하면 못 쓴 소설인데 왜 계속 읽느냔 말이다. 요컨대, 러시아문학 연구자(^^;;)로서의 나는 이 질문에 답할 필요가 있다.

-- 번역가로서는? 여러 말 할 것도 없다. 무조건 쉼 없이, 열심히, 잘, 옮겨야 한다.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 그것이 거기 있는 건 다 이유가 있음을, 심지어 구둣점이나 행간에도 작가의 (때론 무의식적인!) 의도가  들어 있음을 명심하면서.   

-- 소설가로서는? ... 역시, 번역은 너무 하기 싫은 일이고나!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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