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이 좋음 





1. 


이것은 동화,

도서관이 좋아서 쓴 동화다. 


열 세 살 중학생은 방학이면 새벽 같이 시립 도서관 입구에서 줄을 섰다. 

청년을 거쳐 장년, 중년에 이르기까지 도서관은 건재하다. 

좋은 자리를 노리는 저 기나긴 줄도 여전하다. 


2. 


도서관에 가면

책도 있고 신문 잡지도 있고

책상도 있고 컴퓨터도 있고

식당 매점도 있고 화장실도 있고

학생도 있고 아저씨 아줌마도 있고 

등나무 딸린 벤치도, 어르신도 있고 

없는 게 없더라, 그래서 좋더라. 


도서관에 가면 심지어 학교도 있더라.

도서관은 양파의 표피세포와 입안의 상피세포를, 

줄리앙 석고상과 해부대와 피아노 피리를 품었더라. 


아시다시피 학교의 시간은 열역학 엔트로피의 시간.

6학년은 1학년이, 고등학생은 중학생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도서관은 검은 구멍과 벌레 구멍을 허용한다.

광속도 초월하지, 대폭발쯤이야, 뭐.


열 세 살을 소환하는 도서관은 심리적 시간, 나아가 

우주 팽창의 시간, 4차원 5차원 무한대의 시간,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는 오묘한 테세렉트의 시간

시간 가는 줄, 시간 오는 줄 모르는 몽롱한 시간, 

도끼 자루 썩는 신선놀음 이천년 도깨비 빤스의 시간, 

갈릴레오와 뉴턴과 아인슈타인과 호킹이 만나는 

저 세상의 시간, 절대 궁극의 시간. 


저 악명 높은 보르헤스의 도서관에도

통풍구와 (아마 먹기에!) 싸고 자는 시공간은 있다.

인간은 책만으로 살 수 없다, 암 그렇고 말고.

보르헤스가 성탄절에 계단에서 구른 건 

허기와 시력 탓이었을 터.

도서관은 계단은 완만할 수 있지만

장서에 닿기 위한 사다리는 가파르다. 


중년의 사서는, 늙음과 불안에 현혹된 탓인지, 

지구가 멸망한 다음에도 도서관은 무한하리라, 생각한다. 

쓸모도 없고 귀중한, 썩지도 않는 책들을 잔뜩 장착한 채, 

미동도 없이 고독한 불을 환히 밝혀두고 질 나쁜 불멸을 누리리라.

무한한 정육각형 벌집 서고를 헤매는 우리는 

책의 꿀이나 빠는 게으른 한량. 그러게, 

도서관에는 싸고 자는 시공간이 꼭 필요하다. 

 


3. 


도서관 동화의 핵심은 구내 식당의 냄비 우동이다. 

우그러진 노란 냄비, 비 오는 날 지렁이처럼 굵은 면발, 

한 떨기 숨결처럼 드리워진 쑥갓 한 줄기,

왜소한 납작 어묵 두 세 조각. 


먹어야 읽는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다, 라는 말을

여전히 곧이곧대로 믿는가,

한심한 사피엔스여




















<바벨의 도서관>의 영역본을 접할 수 있다. 국역본도 물론 좋다.  

Full text of "The Library of Babel" (archive.org) "중년의 사서는 (...) 불멸을 누리리라"는 <바벨의 도서관> 마지막 부분을 변주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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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23-02-15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In omnibus requiem quaesivi, et nusquam inveni nisi in angulo cum libro(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