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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서 소설로

 

김연경(소설가)

 

어떤 이야기가 나를 찾아올까.

 

*

 

지난 5월 말, 주말에 아이와 함께 연례행사처럼 동물원에 갔다. 홍학부터 기린, 고릴라, 원숭이 등을 둘러보고 코끼리에 이른다. 진짜 코끼리를 구경하고 작은 나무 코끼리 위에 앉아 보고 큰 나무 코끼리를 만져본 다음 넓은 정자에 자리를 잡으니 12시 반이다. 김밥과 샌드위치, 과일을 먹는다. 주변의 대부분이 이런 가족들이다. 점심을 거의 다 먹었을 무렵, 한 중년 남자가 여자애를 데리고 나타난다. 손녀를 정자에 눕히는가 싶은데, 손녀는 벌써 곯아떨어진 상태다. 한 서너 살? 할아버지는 바지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녀의 머리를 받혀준다. 고전적인 체크무늬가 들어간 짙은 베이지색 닥스이고 다림질도 잘 되어 있다. 손녀는 문자 그대로 큰 대자로 누워 있다. 배를 덮어주었으면 싶지만, 날이 더워 다행이다. 갑자기 자리에 앉지도 않고 약간 불안한 기색을 띠던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온다.

저어, 휴대폰 좀 잠깐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공손하고 조심스러운 어르신의 부탁에 남편의 표정이 굳어진다. 원래도 상냥한 인상이 아니거니와 아침에 면도도 하지 않고 묵묵부답, 무뚝뚝하니 더 살벌하다. 내가 옆에서 쿡쿡 찌른다.

잠시 빌려드려, 그거 뭐라고.”

휴대폰을 아이 유모차 뒤에 넣어두고 와서요전화 한 통만 부탁드립니다.”

마지못해라는 단어를 온 얼굴에 써 붙인 표정으로 남편은 휴대폰을 건넨다. 할아버지가 전화를 건다. 받지 않는다. 다른 번호로 한 번 더 건다. 남편의 삼엄한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점잖은 설명을 덧붙인다.

부인이 안 받아서, 제 휴대폰으로 해봤습니다.”

그 사이, 식사를 끝낸 아이와 나는 화장실을 다녀온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호랑이나 곰을 보러 가지 않고 하마 쪽으로 내려간다. 우리가 걸음을 뗀 지 한참 지났음에도 남편은 계속 정자에서 뭉그적댄다. 내가 전화를 한 다음에야 머뭇머뭇 내려온다.

아까 그 할아버지, 영 기분 나쁘단 말이야.”

, ?”

그제야 남편은 지하철을 비롯한 공공장소에서 횡행하는 휴대폰 사기를 줄줄이 나열한다.

, 그럼 빌려주지 말지!”

아니, 네가 빌려주라고 했잖아!”

나는 그런 사기가 있는 줄 몰랐지!”

심지어 남편은 그동안 할아버지와 손녀의 동영상까지 찍어두었다. 자기 휴대폰에 찍힌 두 전화번호는 각각 동물원 할배’, ‘동물원 할매라는 이름으로 저장되었다. 지금껏 기다린 것은 그 할머니를 두 눈으로 보기 위해서였다.

딱 봐도 사람 점잖아 보이고 어린애까지 있고, 결국 할머니랑 만났다며?”

사기꾼치고 험악하게 생긴 사람이 어디 있냐? 애도 어디서 잡아 왔을 수도 있고, 전화번호도 이상해. 물론 돈 주고 이런 쉬운 번호를 사는 사람도 있지만, 두 개 다 그렇다고. 할머니 말로는, 할아버지 핸드폰도 유모차가 아니라 집에 두고 왔대. 서로 말을 잘못 맞춘 거지.”

원래 겁이 많은지라 남편의 얘기에 나도 귀가 솔깃하다. 세상에! 그래, 진짜 할아버지라면 손수건으로 아이의 배를 덮어주었을 거야. 무엇보다도, 그는 내 남편의 휴대폰 번호를 알고 내 아이의 얼굴을 안다. 하지만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 이건 말하자면, 쓰이지 않은 소설이다. 상상력은 우리를 불안의 도가니로 안내한다.

다시 한 주가 시작된다. 월요일도, 화요일도 아무 일 없다. ‘동물원 할배동물원 할매는 완전히 지워진다. 한 보름쯤 뒤 남편이 먼저 그의 존재를 상기해준다.

그 할아버지 있잖아, 그냥 멀쩡한 사람인 거 같아. 업체 하나 갖고 있고 카톡에 사진도 자주 올리고

그게 멀쩡의 증거가 돼?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면?”

다시 시작된 의심의 상상력은 그 촉수가 더 끈질기다. 설마 장기밀매업자? 소설 쓰고 있네, 정말.

 

*

 

프로필을 써야 할 때면 자문한다. 과연 나는 소설가인가. 전업 소설가는 아니지만, 나의 첫 책은 1997년에 나온 소설집이다. 이후 내가 쓴 책과 번역한 책을 쭉 세 보니 권수가 아닌 종수로 따진다면, 그래도 소설책이 제일 많다. 올여름에는 여러 지면에 연재한 세계문학 관련 글을 묶은 책(󰡔살다, 읽다, 쓰다: 세계문학 읽기 길잡이󰡕, 민음사)이 나온다. 그동안에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을 교과서 형식으로 편집, 정리한 19세기 러시아문학 연구서도 내년 초에는 출간될 예정이다. 이런 식의 소위 비평적 글쓰기 역시 대학원에 들어간 1997년부터 꾸준히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은 것이다. 소설에 대한 욕심은 더 크다. 우리의 모든 활동처럼 글쓰기도 이력이 쌓일수록 한동안은 좋아지는 양상을 보이지만 분명히 임계점이 있다. 소설 쓰기는 특히 그렇다. 40대도 절반만 남겨놓은 현재, 왜 나는 20대 초반보다 소설 쓰기가 더 힘든가.

20161학기부터 서울대 국문과에서 개설된 소설창작 강좌를 맡고 있다. ‘후생가외라는 말을 실감하는 수업이다. ‘읽기수업에서는 대개 내가 학생들보다 위에, 적어도 앞에 있지만 쓰기수업은 절대 그렇지 않다. 과연 문예창작’(창작으로서의 문학)학문’(학문으로서의 문학)의 영역일 수 있는가. 비슷하게, 소설작법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가. 실상 작법을 따로 배우지 않은 내가 당장 강의실에서 실천 중인 그 해법이란 아주 원초적이다. 바로, 읽기와 쓰기다. 전반부에는 고전을 읽고 후반부에는 요즘 우리 소설을 읽는다. 전자는 카프카, 보르헤스, 멜빌, 류노스케, 김승옥, 이청준 등으로 거의 고정되어 있고 후자는 매 학기 절반 이상 바뀌되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문학동네)은 꼭 읽는다.

읽기와 나란히 쓴다. 나는 학생들이 쓰는 것을 꾸준히 읽고 수업 시간에 공유한다. 이미 완성된 채 왔으되 앞으로는 쓰지 않을 것 같은 학생도 있고, 반대로, 아주 잘 쓰지는 않지만 앞으로 계속 쓸 것 같은 학생도 있다. 이들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소설가의 길은 결코 권장 사항이 아니다. 소설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결국 버티는 놈이 이긴다. 한두 쪽, 한두 편 잘 쓰긴 쉽되 끝까지 밀고 나가기는 힘들다. 그다음, 많은 학생이 한 학기 내도록 특정한 소재를 예의 그 자신의 문체로 소설화한다. 그런데 소재와 문체의 측면에서 같은 작가임을 인지하지 못할 만큼 다양하고 넓은 스펙트럼의 소설을 쓰는 학생이 있다. 어떤 이야기를 만나는가가 그만큼 중요함을 증명한다. 그 이야기를 소설로 만드는 과정에서 무한한 방법론적 고민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요컨대, 어떤 이야기가 나를 찾아올까. 다른 한편, 뛰어난 작가일수록 스스로 이야기를 찾아가고(탐구) 찾아내는(상상) 능력이 뛰어나다. 말이 쉬워 상상력이지, 그 저변에 도사린 건 역시나 피나는 노력이다. 톨스토이는 평생 자기 얘기만 썼던 반면, 도스토예프스키는 남의 얘기를 썼다. 주로 사회적 사건을 다루었는데 특정 이야기에 꽂힌 순간, 자기 안의 수많은 가 주인공의 형상으로 살아난다. 청년 김승옥의 소설은 온통 그 자신의 얘기이다. 청년 이청준의 소설 역시 그렇지만, 중장년 이청준은 다소 다르다. 그는 이야기를 찾아다니는, 그런 수고와 고생을 하는 작가이다. 그렇게 찾아낸 이야기 속에서 무수한 의 페르소나를 창조한다. 흔히 성실’, 좀 더 무겁게는 장인정신이라고 부르는 그 고리타분한 자질이 천재성과 동의어임을 알겠다. 소설 쓰기에는 우아한 게으름과 촌스러운 학구열이 다 필요하다.

이 순간에도 기다린다, 나를 찾아올 이야기를.

동시에, 눈을 불을 켜고 찾는다, 그 이야기를.

 

*

 

어제 아침 아이가 갑자기 짜증을 낸다.

가방 메기 싫어!”

가방은 내가 들고 살살 달래며 집을 나선다학교가 보일 무렵 가방을 메 주려고 하자 또 짜증이다.

가방 안 메! 안 멘다고!”

정말이지 너무 속상하고 부끄럽다. 그래도 꾹 참고 간신히 얼러서 학교 안으로 들여보낸다. 다행히 별 탈 없이 하루가 지나간다.

오늘 아침에는 내가 갑자기 짜증을 낸다. 아니, 짜증이 난다, 라고 하는 편이 맞겠다. 잠을 깬 아이가 요 위에서 뒹굴뒹굴하는 것이 오늘만의 일도 아니다. 밥을 빨리 안 먹는 것, 계속 종알대는 거, 엘리베이터 놓치는 것, 다 일상사지만 짜증이 난다. 학교 주변이 조용하니 아이도 긴장하는 눈치다. 학교 안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서는데 또 짜증이 확 뻗친다. 닫힌 교문 앞에서 할머니 한 분이 서성이신다. 4학년 손자가 필통을 두고 갔다며 손수 들고 오신 거다. 보안관이 교실로 전화를 건다. 막 뛰어나온 학생의 얼굴에는 창피함이 역력하다. 필통, 그거 뭐라고.

학교 주변, 여전히 명실상부한, 명명백백한 지각생이 더러 있다. 저 여유 있는 표정들! 지각, 그거 뭐라고. 학교, 그거 뭐라고. 인생, 그거 뭐라고.

아이가 학교에 있는 동안 나는 내 할 일을 한다. , 맞다, 모래놀이도구! 하지만 어쩌랴. 손자 필통 들고 뛰어온 할머니처럼 하긴 싫다. 필통, 그거 뭐라고. 사실 할머니 욕심이지. 점심시간쯤 되니 아침의 짜증도 그냥 가시고 없다.

오후 3, 교문에서 아이와 만난다.

“10개를 포함해서 10개 이상 맞힌 사람은 모두 4단원 통과예요! 나도 통과했어!”

단원평가 시험지를 받아보니 75. 반 평균을 웃도는 점수라지만 엄마는 계속 구시렁거린다.

한두 개만 더 맞히지, 하긴 네가 더 아쉬울 텐데 엄마가 자꾸 떠드네.”

나는 하나도 안 아쉬워. 75점이든 80점이든 남이 안 풀고 내가 풀어서 100점이나 다름없거든?”

시험, 그거 뭐라고. 인생, 그거 뭐라고.

아홉 살인 아이는 발달이 장애 수준으로 지체되어 있다. 다행히 학교 잘 다니고 4cm5cm도 잴 줄 알지만 손이 떨려서 마지막 1cm 정도는 구불구불하다. 그런데도 엄마인 나는, 44년 평생 나 자신을 잡아 왔듯, 아이를 잡는다. 내 안에는 여전히 짜증 뻗치는 아홉 살 꼬마가 숨어 있는데, 내 앞에 그런 꼬마가 실제로 존재하고 내 아들이다. , 엄마, 그거 뭐라고.

 

*

 

이야기란 내 머릿속의 관념이라기보다는 내 배 속의 아이 같다. 과연 어떤 아이가 나에게로 올까. 영화 케빈에 대하여로 잘 알려진 소설은 이런 두려움에서 쓰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케빈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소설과 영화의 출발점이기도 하지만, 케빈의 엄마인 에바에 대한 이야기도 한 번 더 할 필요가 있다. 출산이 고()의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요즘은 더 절감한다. 아이는 어떤 인간으로 자랄 것인가. 이미 첫 문장, 첫 문단이 쓰인 이야기, 그것은 어떤 소설로 자랄 것인가.

 

*

 

<쓺>에서 청탁이 와서 쓴 글이다. <문학실험실>에서 단행본도 나오고 있다. 물론 주옥(^^;) 같은 작품이 많지만 어느 정도나 반응을 얻고 있는지, 내가 다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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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고독 속으로 도피하라

 

 

 

최근에 사망한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의 사진 속에서 가로로 꽂힌 어마어마한 규모의 장서만큼이나 흥미로운 것이 고양이였다. 유학을 러시아에서 했던 나에게 고양이는 개만큼이나 친근한 동물이다. 20012월 말, 전화번호와 주소 한 줄만 달랑 적힌 쪽지를 들고 눈 언덕이 된 모스크바 거리를 걸어, 함박눈을 맞으며 노교수의 아파트에 도착했다. 러시아의 교수들은 개인 연구실 없이 집이나 도서관에서 연구한다. 현관, 이어 복도 같은 공간을 지나(러시아는 아파트가 우리 같은 거실 형이 아니다) 안으로 들어갔다. 맨 안쪽, 햇볕이 잘 드는 고즈넉한 연구실, 넓은 나무 책상 위에 큼직한 줄무늬 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는 소파로 옮겨갔다. 울음소리는커녕 사부작대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가구, 카펫, 책 같은 무생물과 늙은 호모 사피엔스 한 쌍의 사이 어디에 위치한 경계적이고 중간적인 존재랄까. 비단 인문학자뿐만 아니라 고도의 집중력과 창의력을 요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고양이만큼 같이 살기 좋은 존재는 없는 것 같았다.

 

 

 

 

 

 

 

 

 

 

 

 

 

 

 

기숙사 생활이 좀 안정되었을 때 고양이 한 마리를 샀다. 그 무렵 내 삶의 벗은 이렇게 둘, 담배와 고양이였다. 칼 라거펠트의 고양이와 비슷한 종인 샴 고양이 계열이었다. 발끝보다 약간 위쪽에 거무스름한 무늬가 있고 도톰한 앞발 끄트머리는 새하얀 털장갑을 낀 모양새였다. 또 눈 주변이 짙은 회색빛이어서 너구리를 닮은 구석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눈이 무척 아름다웠다. 샴 고양이 특유의 보랏빛과 갈색이 감도는 동그란 눈동자 주위로 터키옥을 섞어놓은 것 같으면서도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푸른빛이었다. 3킬로그램 정도 되는 이 부드럽고 따뜻한 생명체에게 꼬찍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를 죽이다(<내 아내의 모든 것>, 문학과지성사, 2005)에 그와의 인연을 제법 길게 써보기도 했다. “놈은 나의 취침 시간과는 무관하게 제가 자고 싶은 시간에, 자기가 웅크리고 싶은 장소 아무 곳에서나 잘도 잤지만 밤이면 어김없이 침대로 올라왔다. 주로 내 베개 위나 이불 위에서 잠을 청했는데, 간혹 내 다리 사이로 기어 들어오거나, 새우처럼 웅크린 내 몸의 안쪽으로 들어와 엉덩이로 나를 살짝 밀면서 자리를 잡는 경우도 있었다.”(222)

 

내가 집에 없는 동안에도 꼬찍은 허전해하기는커녕 별로 심심해하지도 않는 눈치였다. 내가 돌아오면 몸을 비비거나 더러 안기기도 했지만 주로 배가 고파서였다. 그런 최소치의 욕구만 충족되면 절대 나를 방해하지 않았다. 간혹 논문이나 신문을 찢어놓거나 방안 산책을 즐기다 창턱 위의 책을 떨어뜨리는 정도의 사고가 전부였다. 꼬찍 특유의 우아한 심드렁함 내지는 무심함은 좀처럼 길들여지지 않는 고양이 특유의 야생성과 무관하지 않을 법하다. 그 점이 나는 좋았는지도, 적어도 편했는지도 모르겠다.

 

러시아를 떠나며 꼬찍과는 헤어졌지만 담배는 그대로 가져왔고 그 때 만난 사람과 십년의 연애 끝에 결혼했다. 이듬해, 서른일곱 살에 아이를 낳으면서 세상이 바뀌었다. 꼬찍과 함께한 삶에서 꼬찍은 스스로 자연스레 지워졌지만, 아이가 무대의 전면에 등장한 삶에서 이 존재를 지운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천인공로할 일이었다. 요컨대, 아이는 다르다. 그 다름의 핵심이 무거움이자 촌스러움이다. 2010121, 아이가 생긴 것을 알고서 담배를 끊었고 그 이후 쭉 비흡연자로 살고 있다. 지금처럼 비교적 명징한 정신으로 읽고 쓸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언젠가는 기필코 죽는다는 점에서 우리는 모두 시한부 인생이다. 조만간 출간될 독서 에세이 묶음 책의 서문에 그래서, 이런 사족 한마디를 달아본다. 내가 가끔 아이보다 책을 더 사랑한다고 해서 엄마가 아닌 건 아니다. 밤낮을 잊고 몇날며칠을 담배와 단둘이 골방에 틀어박혀 있던, 아이 이전의 황금시대가 너무 그립다.” 무릇 공부를 하려는 자, ‘부엌을 멀리하고 자신의 고독속으로 도피하라고 했거늘. 그 고독 속에서 담배와 제2의 꼬찍과 함께하는 삶은 정녕 영원한 노스탤지어가 돼 버린 것인가.

 

<민음사, ?? 봄>

 

*

 

점심 먹고 나서 소설을 좀 더 써-고쳐 보려다가 막혀서 몇 초간 망연자실했다가, 갑자기 청탁 받은 원고가 있음을 깨닫고 부리나케 써보기 시작했다. 아니, 겨우 2-30매만 채우면 되는데 이걸 왜 안 쓰고 있었지? 뭘 써도 소설 보다는 쓰기 쉽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 참에 지난 봄에 쓴 원고가 생각나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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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스크바 북쪽, <베덴엔하> 역 주변의 햇볕이 따사로웠다. 한 시간이 넘도록 음습한 지하를 질주하는 동안 11월의 지독한 습설이 수그러들었다. 이곳에는 역의 명칭 그대로 소비에트연방 시절의 부귀영화를 보여주는 거대한 박람회장이 있었지만 나의 목적지는 반대쪽이었다. 고가 도로를 옆으로 낀 채 눈길을 쭉 걸어가니 아름다운 교회가 보였고 한참 뒤에 야트막한 주택가가 나왔다. 조금 더 걸어가자 P대학의 자연대 건물이 나왔다. 담배부터 피우려고 건물의 후문을 찾아갔다. 후미진 곳,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엮어놓은 울타리 옆에서 담배를 꺼내는데 손놀림이 영 둔했다. 햇볕이 아무리 그윽해졌어도 장갑을 벗기가 겁날 정도로 쌀쌀한 날씨였다.

공터 한가운데에 한 중년 남자가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의 손에는 싸구려 보드카 병이 들려 있었다. 내가 담배를 한 모금 빨았을 때 그는 울타리에 어설프게 기대다시피 하며 일어났다. 그러고는 이미 반쯤 벗겨진 바지를 마저 내린 뒤 엉거주춤 선 자세로 엉덩이를 뒤로 쭉 뺐다. 싯누렇고 두툼한 똥 덩어리가 모락모락 김을 풍기며 중력의 법칙에 따라 무던히, 서서히 눈 덮인 땅 위로 떨어졌다. 그는 뒤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몸을 대충 바로 세우고 배를 약간 앞으로 내밀었다. 두 다리 사이에 헐렁하게 달려 있는 조그만 생식기에서 싯누런 오줌 줄기가 흘러 나왔다. 그대로 땅바닥에 떨어져버릴까 봐 전전긍긍하며 그는 벌벌 떨리는 두 손을 그리로 가져갔다. 햇볕을 가르는 이 고마운 오줌에 꽁꽁 언 두 손을 싹싹 비비며 혹한의 고통을 달래는 그의 표정이 천진난만하고 행복해보였다.

울타리 안 벤치에는 여학생들이 전깃줄의 참새들처럼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젊은 담배 연기들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정신없이 수다를 떠는 와중에도 흡연하는 동양인 여자에게 잠깐 호기심을 보였다.

에잇, 쳐다보지 마세요! 항상 저러는 걸요.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거기서도 여자애들이 담배 피워요?”

 

서류 하나를 처리하고 나니 오후였다. 한층 더 그윽해진 초겨울의 햇살이 얼굴을 간질였다. 고픈 배를 움켜쥐고 거북이처럼 걷다보니 아침에 본 교회가 나왔다. 근처 벤치에 몇 겹의 누더기를 두른 카자크 노파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나에게 손짓을 했다.

이봐요, 아가씨, 조만간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데? 내 말 맞지? 아이쿠, 하지만 이를 어째, 마가 끼였어, 마가! 액땜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는걸?”

논문 심사를 앞둔 나는 낯선 노파의 꾐에 넘어가고 말았다. 노파는 내 두 손을 잡고 주문을 외우더니 조그만 실몽당이를 꺼내 손안에 꼭 쥐어주었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말고 소중히 간직하다가 사흘 뒤에 역시나 아무도 모르게 불로 태우라고 덧붙였다. 이어 복채를 요구하는 노파의 표정이 살벌했다.

안 그러면 아가씨 인생에 큰 재앙이 닥친다! 내놓으면 복 받을 거야. 좋은 신랑감도 나타나고 아들도 낳고. 많이 내놓으면 큰 복 받고 적게 내놓으면 작은 복만 받는 거야.”

노파의 말이 군데군데 썩고 빠진 잇새로 새나오는 바람과 함께 기괴한 주문이 되어 살가운 겨울 공기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나는 노파에게 100루블짜리 지폐 한 장을 주고 지하철역을 향해 걸어갔다. 그때만 해도 다시 이곳에 오게 될 줄은 몰랐다.

 

*

 

모스크바의 남쪽, <유고-자파드> , 다시 습설이 퍼붓고 있었다. 기숙사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802호로 올라갔다. ‘은 지난달에 일본인 룸메이트가 이사를 간 다음 31실에 조카뻘 되는 대학생 과 둘이 살고 있었다. 빈 침대를 보며 불안 섞인 자유의 쾌감을 맛보는 것도 잠시,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새 룸메이트는 중국인이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방안에는 중국 대륙처럼 거대한 그림자가 깔렸다. 190센티미터는 족히 될 것 같은 키에 둥그렇고 넙적한 배가 한 눈에 들어왔다. 각종 소가 가득 든 중국식 왕만두를 서너 배 부풀려 놓은 것 같은 얼굴, 조막만한 입과 얇은 입술, 끝이 둥글둥글한 조그맣고 나지막한 코, 새카만 검은 까까머리, 그리고 검은 깨 가루처럼 작은 두 눈에는 두툼한 오목렌즈가 끼워진 안경을 쓰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도피유학을 온 아이였다. 아이의 첫 번째 트렁크 안에서 화구가 와르르 쏟아졌다. 두 번째, 세 번째 트렁크, 몇 개의 가방도 속을 드러냈다. 10인용 전기밥솥, 믹서, 프라이팬, 식기국자주걱뒤집개 등 주방 용품이 마룻바닥과 비어 있던 침대를 가득 채웠다. 국수 뽑는 기계, 어묵 만드는 기계, 전자레인지까지 튀어나왔다. 각종 향신료와 양념, 밑반찬, 납작하고 쫄깃한 두부 전병과 육포, 죽순을 비롯한 밀봉된 나물 등 먹거리의 틈새에서 화구가 초라해졌다.

훙은 반쯤 혀를 끌끌 차며 이름을 물었다.

, , 리첸첸, --.”

중국 아이는 커다랗고 넙적한 얼굴 가득 웃음을 띠우며 한자도 또박또박 써주었다.

李沈沈. 이 침침한 아이는 겨우 열여섯이었다.

(...)

 

(- 2015년 ??호 <문학나무>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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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읽다, 쓰다

 

 

 

 

* ‘얕고 넓음에서 좁고 깊음으로: 학자의 책읽기

 

올해 출간될 독서에세이집의 서문을 구상하던 중 나의 44년 인생을 요약해보았다.

 

19751, 태어났다.

10, 공부했고, 자랐고, (부모) 집 떠났다.

20, 공부했고, 소설 썼고, 담배 피웠고, 연애했고, 번역했다.

30, 공부했고, 강의했고, 논문 썼고, 소설 썼고, 번역했고, 결혼했고, 담배 끊었고, 아이 낳았다.

40, 공부하고, 강의하고, 논문 쓰고, 소설 쓰고, 번역하고, 책 내고, 아이 키우고,

암과 치매와 실명 없는 노년을 꿈꾼다.

 

십대부터 지금까지 빠지지 않는 것이 공부였다. 공부가 진척될수록 그 대상은 문학에 집중되었다. 누군가에게는 하강일 수 있는 문학이, 경상남도 거창군의 으슥한 산골에서 의무 교육만 간신히 받은 농부의 장녀로 태어난 나에게는 시종일관 상승이었다. 여섯 살이 되던 해 여름, 부산에 사는 삼촌의 결혼식에 가던 길에 아빠의 손을 잡고 조만간 내가 다닐 학교를 구경 갔던 일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해 겨울 우리 가족은 고향을 떠나 부산의 어느 산동네에 단칸방을 얻었다. 이듬해 봄, 나는 학교에 들어갔다. 이 역사적인 1981년에 읽고 쓰는 법을 배웠고 책의 세계에 진입했다. 질 나쁜 종이에 조잡한 그림이 들어간 교과서가 전부였음에도 그것은 문학의 형식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 문학은 놀이가 아니라 공부였지만, 신통방통하게도, 공부가 곧 놀이이기도 했다.

이른바 책읽기는 대략 중학교 시절 문고판으로 시작되었다. 장학금과 과외비 덕분에 현금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된 대학 시절에는, 과장하건대, 읽고 쓰는 일만 했다. 고전에 한정되었던 독서에서 이청준, 김승옥, 최인훈, 박완서 등 현대 작가로 영역을 넓혔다. 각종 사회과학 서적은 물론 명화집과 사진집도 많이 사보았다. ‘얕고 넓은독서의 절정이었다.

19973,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독서의 양상이 달라졌다. 3년에 걸친 유학 기간 동안에는 일부러 우리말 책을 보지 않으려고 했다. 러시아의 도서관은 대부분 폐가제인데, 최대한 일찍 기숙사를 나서서 하루 종일 도서관에 틀어박혔다. 빛바랜 원서를 읽고 요약하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독서의 범위는 더 한정되었다. 러시아문학, 19세기 소설,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분신혹은 분신 테마. 2001, 레닌 도서관 귀퉁이에 앉아 서지를 훑어보는 데만도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좁고 깊은책읽기의 쾌락을 최대한 만끽하던 시절이다.

20043, 처음으로 모교의 강단에 섰다. 이후 15년 동안 러시아문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선생으로, 그것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번역가로 살았다. 여전히 비정규직 신분임에도 어느덧 스무 살 이상 차이가 나는 아이들 앞에서 강의하고 그들의 마음에 들고 싶어 하는 나의 모습을 사랑한다. 스물다섯 살에 <악령>을 시작으로 <죄와 벌>,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등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번역한 것에 대한 자부심도 크다. 년 초에 출간된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 번역 역시 이 소설을 아끼는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리라 생각한다.

 

* ‘좁고 깊음에서 얕고 넓음으로: 소설가의 책읽기

 

나름대로 아카데미즘을 고집하던 내가 대학 밖의 공간에서 틈틈이 강의를 시작한 것이 2010년쯤이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카프카의 변신, 이광수의 <무정>과 염상섭의 <삼대>까지 다시 읽었다. 이런 식으로 좁고 깊은독서에서 얕고 넓은독서로의 회귀를 시도해보았다.

2016년부터는 서울대 국문과에서 개설하는 소설 창작 강좌를 맡게 되었다. 커리큘럼의 절반 이상이 동서양의 고전 중단편인지라 여중고시절 같은 세계문학 공부의 쾌감을 다시 맛본다. 더불어, 대학 시절에는 방학 때 강의실 밖에서 읽었던 요즘 소설들을 강의실 안에서 학생들과 함께 읽는 호사를 누린다. 보르헤스 말마따나 읽기는 쓰기 후에 일어나는 행위”, “보다 체념적이고, 보다 문화적이고, 보다 지적인 행위이다. 요컨대 읽기가 지적노동이라면 쓰기는 육체노동이다. 대학교 4학년이었던 1996년 소설가로 등단, 곧바로 첫 소설집(<고양이의, 고양이에 의한, 고양이를 위한 소설>)을 낼 무렵에는 몰랐던 사실이다.

작품의 수준을 떠나 일단 쓰고 보는 학생을 보면 이십여 년 마흔을 넘기면 소설이 한 줄도 쓰이지 않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라던 스승의 말이 떠오른다. 나 역시 마흔을 넘긴지 오래, 한 문청을 통해 내 꿈을 환기해본다. “꿈을 꿀 무렵의 나, 꿈속의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꿈꾼 것은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다.(<다시, 스침들>(2018, )) 어쨌든 사람은 원래 자기가 원하던, 그래서 걸어가던 그 길의 끝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성취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자기가 원하던 모습을 하고 있다. 소설가로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죽을 때는 소설가로 죽고 싶다.

 

* 동물-인간에서 사람-인간으로: 아이 엄마의 책읽기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가자. 2010121일을 맞이하는 새벽,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에 관한 글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담배냐, 아이냐.’ 열아홉 살부터 15여년을 하루 두 갑, 명실상부한 골초로 살아온 나에게는 사느냐 죽느냐수준의 문제였다. 결국 아이를 선택했으나 솔직히 담배가 피우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문제는 출산 이후였다. 담배를 안 피워도 나는 사람이지만 책을 읽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새끼를 낳아 젖을 먹이는 포유류의 암컷일 뿐이었다. 물론 이 역시 숭고한 실존이지만 그 와중에 책의 삶이 또한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스레 깨달았다. 조리원에서 미시마 유키오의 <가면의 고백>을 읽었다. 9월부터는 강의 준비 차 러시아명작을 다시 훑었다. 2학년이 될 아이 역시 책을 읽기 시작한지 오래다. 동물-인간에서 사람-인간으로 진화한 것이다.

지금껏 공부는 내 인생의 거의 전부였다. 이제 와서 뭘 어쩌겠는가. 우리는 언제까지나, 여전히 모범생일 필요가 있다.

 

https://blog.naver.com/todayslibrary

 

지면이 좁아 많이 못 썼다. 나중에 책 나올 때 마저 써야지, 했는데 지금 보니 딱히 더 안 써도 되겠구먼. 그게 말의 본성이기도 한지.

원고료가 설 연휴 전에 들어왔다. 20만원 넘었다, 캬아! 너무 오랜만에 받아보는 것이라 무척 기뻤다.

 

*

  

 

 ландыш покупаем. 은방울 꽃. 할머니들이 근처 숲, 들에서 꺾어와 시장에서 들고 다니며(가만히 서서) 판다. 너무 약해 보여 산 적은 없는데, 지나고 나니 그립다.  들꽃을 많이 꺾어본, 그래서 집안까지 많이 가져와 본 경험상, 들꽃은 그렇게 피어 있을 때(만) 아름답다. 정말 금방 시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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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서사의 매혹>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략(1812년 대조국전쟁)을 다룬 역사소설인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는 로스토프 집안과 볼콘스키 집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두 집안은 각각 작가의 친가, 외가로서 그의 입장에서는 가 어떻게 생겨나 성장했는지를 추적하는 과정이 곧 소설 집필 과정이었다. 이 압도적인 분량의 책이 주목하는 것도 실은 남성적 서사인 전쟁’(국가의 역사)보다는 여성적 서사인 평화’(‘개인의 이야기’)이다. 특히, 열세 살 소녀에서 시작하여 네 아이의 엄마, 아줌마가 되는 여주인공 나타샤 로스토바는 톨스토이의 인간관과 세계관을 오롯이 보여준다. 로스토프 백작 집안의 이 귀염둥이는 볼콘스키 공작의 두 번째 아내가 될 뻔했으나 결국 모스크바의 대부호인 베주호프 집안의 안주인이 된다. 볼콘스키 공작 집안과 혼인관계를 맺는 자는 그녀의 오빠인 니콜라이 로스토프 백작이다. 그로써 나타샤는 남편(안드레이 볼콘스키)의 여동생이 될 뻔한 마리야 볼콘스카야와, 정반대로, 오빠의 아내로 다시 만난다. 이런 개인()의 성장의 이야기가 곧 일국의 역사이기도 한바, 개인사와 보편사의 총합에 관한 파노라마는 대하소설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반면, 제목만 놓고 보면 가족서사의 전범처럼 보이는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작가의 독특한 시간 사용법이 돋보인다. 그는 대하처럼 흐르는 시간의 총체가 아니라 그러한 시간의 한 순간을 포착하여 그 단면을 확대한다. 주인공들의 성장은 한 순간에 완성된다. 드미트리는 하루아침에 아비 죽은 패륜아로 전락하고 이반은 그로 인해 광인이 되고 스메르쟈코프는 자살하고 알료샤는 이 모든 것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모두 하루아침에 망하거나 흥한다. 톨스토이의 교과서와 비교하면 성장 없는 성장소설, 가족 없는 가족소설에 가깝다. 그럼에도 세계문학사에서 단연코 돋보이는 것은 바로 이 이 독특한 서사 구조 덕분이다.

 

 

 

 

 

 

 

 

 

 

 

 

 

 

 

우리 문학의 근대소설사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성취인 염상섭의 <삼대> 역시 잘 쓴 가족소설의 전범이다. 조의관, 조상훈, 조덕기 등 조 씨 집안 삼대를 대표하는 세 남자들의 흥망성쇠, 성장에 관한 기록은 동시에 그들이 속한 세계의 백과사전이기도 하다. 최서희의 성장소설인 󰡔토지󰡕 역시 그녀 주변의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가족서사이자 역사대하소설로서 앞으로도 추월을 허용하지 않을 법하다. 물론, 가치평가 여부를 떠나, 이미 이런 규모의 소설이 읽히지도, 쓰이지도 않는 시대가 왔음도 기정사실이다.

 

어릴 때부터 성장소설을 쓰려는, 나아가 가족서사를 축조하려는 꿈이 있었다. 대학교 4학년 때 등단한 이래 일곱 권의 소설책을 냈다. 지난 9월에는 작은 장편 <다시, 스침들>이 나왔다. 그동안 러시아문학 전공자로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비롯하여 작년 말에 출간된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까지 굵직한 러시아 소설을 번역해왔다. 올해는 러시아문학 연구서와 독서에세이집이 출간될 예정이다. 한 달만 있으면 마흔 다섯 살이다.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렵다. 최근에 이 말을 곧잘 되뇌는 것은 가족 구도 속에서 나의 생물학적, 사회적 입지를 비로소 실감한 탓인 듯하다. 나에게 가족은 양친과 두 동생, 이렇게 다섯이었다. 서른여섯, 결혼한 뒤에도 그랬다. 서른일곱, 아이를 낳았을 때도 그랬다. 20183,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나보다 먼저 결혼한 두 동생도 아이()의 부모가 된 지 오래다. 지금 나의 가족은 남편과 아이다. 과거의 가족은 문학적 현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우리 삼남매의 고향은 경상남도 거창군 수내 마을이다. 내가 태어난 것은 19751월이다. 여동생은 2년 뒤 한창 바쁜 모내기철에 태어났다. 막내인 남동생이 태어난 이듬해인 19811, 우리 가족은 부산으로 이사 갔다. 11월생인 막내 동생은 문자 그대로 핏덩어리였다. 우리의 첫 정착지는 부산진구 전포동 기찻길 위 산동네의 단칸방이었다. 1920년생인 할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해인 2007, 당시는 육십 대였던 아버지와 함께 우리가 살았던 곳을 답사하며 쓴 소설 초고의 1장은 이렇듯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 거창과 부산을 배경으로 한다. 과거는 우주보다 더 멀고 낯설다. 성장소설은 그 시간을 상대해야 한다. 다시금 문제는 새로운 시간 사용법의 발견이다.

 (<월간에세이> 2월호: http://www.essayon.co.kr/kr/)  

 

*

    

어제 잡지 한 권이 배달되었다. 나는 "할 일 없는 사람"이라서 이 에세이 역시 언제 나오나 열심히 기다렸다. 원고료 10만원. 이렇게 '원고'에 대한 '료'를 받으면(아직 안 들어왔지만!) 작가(글쟁이, 혹은 매설(문)가)로서의 정체성을 실감한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도 기분이 좋은 것이다.

'책'(=판매상품)과는 엄연히 다르다. 원고료는 진짜 한 자, 한 자 쓴 글에 대한 대가이다. 저 글은, 지난 학기 시간표가 애매한 탓에, 학교 커피숍과 도서관을 오가며 쓰고 다듬은 것이다.

솔직히 청탁 받을 때는 귀찮았다. 아, 이런 대책 없는 거드름, 좋아, 너무 글쟁이스러워, 잃을 것은 하나도 없고 얻을 것은 온 세상인 프롤레타리아-작가의 본성!

하지만 막상 쓰다 보면 또 글을 쓰는 그 행위 자체가 너무 좋은 것이다. 그 다음, 이렇게 잡지에 실린 내 글을 보면(실은 안 보는데) 또 기분이 묘하다.

종이가 재생지. 그 느낌도 좋았다. 요즘도 나오는지, <좋은 생각> 같은 잡지.

 

'에세이' 아닌 '수필'. 이 단어 역시, 어딘가 아늑한 데가 있다.  

하지만 저 글은 좀 많이 매정하다. - 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아닌가.

 

   *

 

게티이미지 뱅크에서 하나 찾아왔다. 모양새는 튤립과 비슷한데, 들꽃이고 왜 이름이 할미꽃인지. 아무튼 좋아하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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