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보다 낯설고 먼

 

 

 

 

오늘 아침은 오소리감투와 염통이었다

샘통이다, 아침으로 이런 걸 먹다니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또한 지나가서 우주보다 낯설고 먼

그런 시공간이 되리라, 지나갈 것은 언제나 아름다운 법

동물스럽게 쑥쑥 자라는 식물의 성장을 막을 수 없다

세상에서 제일 오래 사는 직업은 성직자라지

나는야 관악구 비구니, 알코올에 전 소설을 쓰며

교회든 절이든 아무 데나 가리라 

 

오늘 점심은 커피 한 잔과 크루와상, 우아하지

오늘 저녁은 꿈틀꿈틀 큼직한 낙지, 징그럽지

팔팔 끓는 물에 데쳐서 잘근잘근 씹어줄 테다

 

오늘의 삼시세끼, 이 또한 지나가서

오, 주여, 우주보다 낯설고 먼

그런 시공간이 되게 하소서!

 

 

*

 

 

 

 

 

5월에서 6월로 힘들게 와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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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도 반고비

 

 

 

 

어느덧 5월도 반고비

지난 겨울의 그 장미는 질나쁜 장수와 불미스러운 불멸을 누리며  

신록 속에, 녹음 속에 멍하니 어리숙하게 엉거주춤 섞여 있다

세상은 장미에 찔레꽃에 수국에 온통 꽃 잔치

 

할머니, 그런데 엄마는 언제 와요?

 

달콤한 초당 옥수수를 먹으며

달콤 쌉싸름한 인생 맛을 곱씹는다

초당 옥수수는 잇새에 너무 잘 껴

늙어가는 치아에는 적합하지 않아

 

5월도 어느덧 반고비 길에 접어들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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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의 문장

 

 

 

 

 

아이가 펄펄 끓는 동안에도 강낭콩은 쑥쑥 자랐다

태양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천연덕스레 떠오르고   

소싯적 떡잎은 세상 미련 없다는 듯 쪼그라들고

본잎은 살판 난 듯 푸르러지고 꽃이라도 피울 기세다

 

중세 사람들이 가장 자살을 많이 한 시각은 자정 이후 새벽이라고 한다

 

책상 앞에 구겨지듯 앉는 아이를 보며 강낭콩 줄기를 움켜쥐고

뿌리째 뽑으려다가, 더한 천벌 받을까 무서워 마음을 고쳐 먹은

지금은 정오 

 

물끄러미

정오의 문장이 쓰였고 나는

이제 막 의욕을 가질 참이다

 

 

 

 

 

 

 

 

 

 

 

 

 

 

 

 

 

 

 

물끄러미 / 자정의 문장을 썼다. // 나는 의욕을 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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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모종 사러

 

 

 

 

모종 사러 가는 길

자작나무 심는 장면을 보았다

원래 있던 건요?

죽었어요, 죽어서 다시 심는 거예요,

라고 대답하는 늙수그레한 남자, 당신은 

나무 심는 사람, 살아 있고 건강해서 좋겠다

 

모종 사는 동안

러시아 자작나무처럼 두툼하고 하얀 중년 남자

작게 혼잣말하고 눈은 멍하고 손끝은 떨린다

어른의 몸에 아이의 정신, 당신도 좋겠다

햇살이 투명한 비처럼 내리는 날 모종 산책이라니

 

모종 사서 오는 길

오이 깻잎 상추 모종을 보자마자 아이가 절규한다

엄마, 이건 우리가 심은 게 아니잖아!

텃밭에 쪼그리고 앉아 모종을 옮겨 심는 심사란

 

역시 4월은 잔인한 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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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나무의 색깔

 

 

 

 

 

개나리 노란, 따라가며 같이 놀고 싶은 색깔

진달래 분홍, 살금 다가가 따먹고 싶은 색깔

백목련 하얀, 멀찍이 올려다 보고 싶은 색깔

조팝나무 흰, 몰래 들어가 숨고 싶은 색깔

 

봄 나무 가지마다 돋아나는 초록 순

살짝 데쳐서 조물조물 무쳐야지, 맛있겠다

신록이 녹음이 되기 전에 부지런히 봄옷을 입자

이러다 곧 여름 오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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