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때였다
감수성이 제대로 영글기도 전이었다 난 한해 일찍 학교를 들어가기도 했지만 뭐든지 당시에는 서툴었다는 말이 다 어려운 아이였다 초등학교 때부터는 그림을 그렸고 중학때부터는 일기를 썼다 그래도 외부의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을 힘들어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사람들앞에서 밴드를 인도하고 멘트를 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업그레이드되어졌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에게 표현을 하고 감정을 노출하는 것에 미숙했다
대학1년때 썸을 타는 후배 여자에게 있었다 하지만 당시 내가 몸담고 있는 써클은 연애에 대해, 그것도 신입생이 연애를 하는 것에 대해 나름대로 금기(?)시하는 묵언이 존재했었다 연애같은 건 알아서 하는 일이지 누가 누구에게 지시하고 가르치고 그런 대목이 아니라고 다들 생각하지만 당시의 우리 학교의 써클은 그런 ‘절제(?)’를 강조했던 것 같다 그래도 남모르게 연애하는 애들도 있었지만 작은 사회인 써클내에서 그런 썸과 연애 그리고 더 중요한 깨짐(이별)이 주는 후유증은 써클의 분위기를 힘들게 했기 때문이다
써클의 인원이 50-60정도 된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기우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당시 이성교제의 강의의 한 문구가 떠오른다
“Puppy love leads to dog’s life”
그땐 그랬다 문학이나 소설에선 사랑과 연애감정은 끊임없이 혹하는 대로 훅하는 문화적인 세뇌로 인해 우리는 끌리는 대로 움직이는 시대로 자연스럽게 넘어왔고 그게 포스트모던의 마력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룰이나 법칙이나 그런게 뭐가 필요한가 그냥 원하는대로, 꼴리는대로 살면 되는거지 그런 시대의 분위기이다 그런데 우리 써클은 그런 것을 경계했고 절제의 미덕을 후원했고 독려했다
당시 내가 키큰(거의 내 키를 따라 올라했다! 참고로 내 키는 176이다)작곡과 후배놈과 썸을 타는 중에 같은 클라스의 내 친구에게 연애에 대한 이야길 잠깐 했을때 이 친구가 ‘여자를 만나는 것은 수많은 감정노동(낭비)이 필요하다’ 는 조언을 날렸다 나의 감정에 침을 뱉어주는 멋진(?)친구!!!! 그리고서 연애를 대해 부정적 감정을 내비쳤다 그 친구도 그랬지만 당시 나의 조장(그룹을 지어 일주일마다 study를 했다, 공산주의 뭐 이런거 아님)은 나의 썸타는 연애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젠장!!!
한달천하?
연애세포를 억지로 죽였고 나는 좋아하는 작곡가애와 부딪힐 때마다 얼굴표정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심해야 했다...아! 근데 이거 약간 소설 느낌 나는데...ㅎㅎ
나는 내게 “연애를 하는 것은 수많은 낭비가 수반된다” 는 감정낭비, 시간낭비, 돈낭비...등등. 나는 헤르만 헷세의 <지와 사랑>에 나오는 골드문트였고, 그 친구는 꼬옥 나르치스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친구가 이 책을 추천해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제대로 기억나는 건 그 친구는 내게 <서양철학사>를 공부해야 학문의 기초를 제대로 닦을 수 있다면서 내게 서양철학사를 권했다
나는 그 나르치스 덕에 연애는 거절하고(젠장~)수업마치고 나선 도서관에 직행했다 거기서 정말 머리 터질정도로 철학사를 보는데 그게 뭔말인지도 모르고 우걱우걱 씹어 삼켰다 정말 그땐 철학의 철이 아니라 “ㅊ”도 모를 정도였다 그 ‘울며 겨자먹기’식 철학사 독서 덕에 내 머리가 조금 나아진지도 모르겠다(갑작스런 자기합리화는 뭔!!!)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친구가 대학2년 마치고 군대갔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다 난 4학년 1학기 마치고 군댈 갔는데도 학교로 돌아왔는데 말이다...그 나르치스는 지금 대한민국 어느 도시의 어디매선가 의사 노릇을 하고 있겠지! ....아뜩하다!
그때 내가 그 애와 연애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ㅎㅎㅎ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20대를 훑고 갔던 헤르만 헷세의 이 책을 생각하면 그 친구가 생각이 난다...
![](https://image.aladin.co.kr/product/37/1/cover150/8937460661_3.jpg)
![](https://image.aladin.co.kr/img/noimg_150_b.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