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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의 고백
이덕일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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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도세자 사건은 내게 엄청난 울분과 분노로 점철된다. ‘누가 왕을 죽였는가?’에서 보았던 조선왕조의 역사 가운데 제왕의 길을 타고난 사도세자의 비극...

아버지 영조의 ‘삼종의 혈맥’이라는 명분과 ‘경종독살설의 콤플렉스’...

영조는 그 콤플렉스를 벗어나려고 노력했지만 벗어나기는커녕 자신의 외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이는 꼴이 되버렸다. 영조는 오랜 세월 집권하여 탕평을 시도하려 했지만 ‘나주벽서사건’이후 그는 완전히 노론의 허수아비에 불과했고 일종의 정신병적인 광기로 사도세자를 죽이게 만들었는데 이는 역시 영조의 complex였고 딜레마dilemma였다. 사회적으로 완전히 고립될 수 밖에 없었던 사도세자...그 옆에 혜경궁 홍씨라도 같이 했다면.

혜경궁 홍씨는 외척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남편을 죽음으로 몰았지만 정조만큼은 버리지 못한 것이 그녀의 딜레마였다. 사도세자가 일찍 즉위했더라면 조선의 방향은 많이 엇갈릴수 있었으리라. 제왕감이었던 그의 꿈은 북벌이었고 이는 물론 당시 조잡한 당파싸움의 정치판에서 시선을 뗄 수 있는 위대한 Kingwork였고 Keyword였다. 물론 조선은 당파와 당쟁의 나라이므로 쉽지만은 않았으리라. 정조 또한 제왕이었지만 결국 노론에 의해 독살 당한 혐의를 소재하고 있으니 말이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기품을 이어받아 참으로 빛나는 정치를 추구했지만 애석하게도 미완의 꿈일 뿐이었다.

조선의 파란만장한 역사는 정조 이후 순조부터 퇴색되어진다. 권력에 찌든 외척과 사대부들의 세도정치는 걷잡을 수 없게 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조선은 일제의 악어 같은 입에 삼키게 되고 만다.

영조...정조...그리고 그 가운데 사도세자...

참으로 많은 업적을 남긴 동시에 많은 뒷담화를 남긴 3代이다.

사도세자의 원혼을 위로하고 싶다.

문(文)과 무(武)를 동시에 겸하였고 자신의 적성엔 무가 더 적합했던 사도세자...
정조는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외치고서 시작했던 개혁revolution의 역사...

아쉬운 조선의 역사이다.

그 수많은 당쟁과 당파싸움은 그 시대에 팽배했듯이 그 피를 이어받아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다. 이 역겨운 정피와 권력의 역사여!

사도세자는 영웅이 될 수 있었는데...

Written By Karl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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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세계사 - 거꾸로읽는책 3 거꾸로 읽는 책 3
유시민 지음 / 푸른나무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왜 “거꾸로 읽는” 인가?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제목 그대로 거꾸로 읽는 세계사인가? 여기서 거꾸로는 내가 생각할 때 유시민이 이 책에서 14가지의 사건과 인물의 세계사 에피소드를 들추어내는데 그 취사선택한 것이 ‘거꾸로 읽는’ 관점이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억울하고 힘든, 다소 숨겨진 이야기Behind Story가 엿보인다. 

첩보와 혁명과 전쟁과 사건과 대공황과 사회주의를 발발케 했던 사건과 세계 대전과 억압과 울분과 눈물과 강대국과 약소국의 갈등과 대립과 인종차별과 역사왜곡과 힘의 논리 등....

그러기에 그의 책은 ‘거꾸로 읽는 세계사’인 것이다. 독자들은 그의 글을 대하면서 마치 예전에 알지 못했던 역사의 비밀단지의 뚜껑을 여는 호기심으로 가득차게 된다. 하지만 그 어둡고 유쾌하지 못한 역사의 면모들에 의도적으로 포커스를 두는 유시민의 관점 자체가 바로 ‘거꾸로’인 것이다. 

대학시절 학생운동으로 점철된 캠퍼스생활 속에서 그가 틈틈이 적었던 글이기에 더 그럴 것이다. 젊은 열정과 운동의 와중에 역사를 읽고 ‘거꾸로 읽는 역사’를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경제학도였지 역사학도는 아니었다. 꼭 그 분야에 전공을 해야 그 분야의 책을 쓸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곰브리치는 세계사 전공이 아니지만 세계사를 썼고, 슈바이츠는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했고, 수많은 위인들이 자신의 전공 이외의 분야를 연구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작품을 내놓지 않았는가?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정말 자기가 전공한 영역에서 수많은 업적을 남긴 사람도 많지만 반대로 자기의 전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연과 필연의 결과로 업적을 성취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는 것이다.

Ph. D는 예전에는 철학박사를 가리켰다(Doctor of Philosophy). 하지만 이제는 Ph. D란 말은 모든 박사에게 다 해당되는데 특히 Ph. D학위를 받은 사람은 다른 전공에 손을 대도 손색이 없을 만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학위인 것이다. 아무리 오늘날의 박사가 ‘파리 뒷다리만 연구해도 박사학위를 받는’ 시대이긴 하지만 ‘파리 뒷다리를 연구할 줄 아는 능력’이 아무에게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예술문화 뿐만 아니라 건축과 다른 분야에서도 팔방미인이 될 수 있는 것은 모든 학문과 지식은 갈구하는 자들에게 끊임없이 도전하고 자극하는 에너지원을 제공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부류의 책에 대해서 머라고 해야 할까? 참고도서도 없고 단지 몇 권의 책들을 아우르며 정리하여 출판하는 책 같은 느낌도 없지 않다. 그래도 이런 책이 나와서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읽힌다는 것은 뭔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야기 있는 책이다

세계사의 도서들을 찾다가 이 책도 읽게 되었는데, 이 책은 세계사의 전반적인 흐름이나 줄기를 보고자 하는 독자들은 피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세계사의 단편들을 모아 놓은 컬렉션 같은 것이다. 하지만 재미와 흥미는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 자주 찾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 책은 이야기가 있다. 요즘 문화는 전부 이야기가 있다. 광고CF조차 이야기가 있다. 뮤직비디오도 이야기가 있고 에피소드가 있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할머니에게 ‘재미난 이야기 해 주세요, 옛날 이야기 해 주세요’라고 칭얼댔다. 이런 기억은 인간이 원래부터 이야기를 좋아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런 인간의 습성에 대해 기대 부응하는 책이다.

나는 근래에 세계사에 대한 흥미로 말미암아 세계사의 책들을 섭렵하는 중에 있다. 그런데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는 애가 이야기하기를 세계사, 역사는 전체적인 흐름을 대하면 굉장히 흥미 있고 재미있지만 막상 그 구체적인 사건들, 디테일에 들어가면 머리가 아프고 복잡하다는 평을 했다. 그렇다. 역사는 사건이고 사실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건과 사고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에 의한 나름대로의 해석이 붙기 때문에 역사가 굴절될 수도 있고 왜곡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사건이 언제 일어났는지에 대한 년도까지 여러 가지 이론과 설이 존재하니 말이다. 하지만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전체적인 역사 조망은 힘들지만 부분적인 접근은 다소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게 글을 엮어나간다는 것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유시민을 ‘얼치기 역사가’라고도 하고 정치가로서의 유시민에 대해서 정색을 하는 이들도 있다. 정치의 문외한인 나로서는 그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잘 모르겠다. 역사를 쓴 작가로서의 판단도 보류하고 싶다.

다소의 독자들이 ‘자본주의를 혐오하고 사회주의를 은근히 찬양하는 이념적 편향성’을 지녔다며 노파심을 표현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소련 동유럽 사회주의체제 붕괴와 독일 통일>에 대한 글을 덧붙여서 개정판을 냈다. 20세기 인류역사에서 가지는 의미를 보여주고자 한 면도 있겠지만 자신의 다소 편중된 시각, 거꾸로 보는 역사관(?)을 다소 무마하기 위해 마지막 장(章)인 ‘20세기의 종언, 독일 통일. 통일된 나라 분열된 사회’라는 글이 추가한 것은 아닌지...바라보기 나름이겠다.

Epilogue...‘거꾸로 읽는’-‘신데렐라맨’의 제임스 브래독의 복싱 이야기

우리는 러셀 크로우와 르네 위젤거가 주연한 복싱영화, ‘신데렐라맨’을 감명 깊게 읽었다. 그 영화는 미국 대공황 시절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던 복서 제임스 브래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의 ‘검은 이카루스, 말콤 X-번영의 뒷골목 할렘의 암울한 미래 ’장에서 보면

‘1937년 6월 ’갈색 폭격기‘ 조 루이스가 백인 제임스 브래독을 KO시키고 헤비급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었을 때 모든 흑인은 기뻐 날뛰었다. 적어도 권투에 관한 한 이제 그 누구도 흑인이 ’열등하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라고 적고 있다.

우리는 관객의 입장에서 단순히 바라보았던 영화의 또 다른 측면을 들추어내는 ‘인종차별’의 문제. 단순한 복싱경기에서도 가난과 싸우며 복싱으로 일어서는 한 개인, 제임스 브래독(우리는 그가 흑인이건, 백인이건 그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 영화가 그랬다.

하지만 조 루이스가 제임스 브래독을 Ko시킴으로 백인들에게 늘 짓눌려 차별대우 받는 흑인들의 아픔과 애환을 위로하고 승화시킴으로 오히려 ‘흑인들도 할 수 있다’는(단순한 복싱경기, 스포츠경기지만 우리는 그런 것에 꿈과 희망을 얻기도 하고 때론 절망과 좌절을 하기도 하지 않는가?) 꿈을 심어주는 관점도 있다는 것이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가 보여주는 ‘거꾸로’의 관점은 바로 이런 관점이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머리말 

드레퓌스사건-진실의 승리와 더불어 영원한 이름



피의 일요일-혁명과 전쟁의 시대가 열렸다



사라예보 사건-총알 하나가 세계를 불사르다



러시아 10월 혁명-세계를 뒤흔든 붉은 깃발



대공황-보이지 않는 손의 파산



대장정-중화인민공화국을 낳은 현대의 신화



아돌프 히틀러-벌거벗은 현대 자본주의의 얼굴

 

거부하는 팔레스타인-피와 눈물이 흐르는 수난의 땅



미완의 혁명 4.19-자유의 비결은 용기일 뿐이다



베트남 전쟁-골리앗을 구원한 현대의 다윗



검은 이카루스, 말콤 X-번영의 뒷골목 할렘의 암울한 미래

 

일본의 역사왜곡-일본제국주의 부활 행진곡


과 인간-해방된 자연의 힘이 인간을 역습하다



20세기의 종언, 독일 통일-통일된 나라 분열된 사회

 

 

그림과 같이 제 글에 대한 감상을 보시려면,

http://blog.naver.com/karl21/150023173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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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현대사상
프란시스 A.쉐퍼 / 성광문화사 / 199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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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기독교신앙에 대한 철학적인 분석과 해부와 아울러 지적 체계를 세우는 초석을 마련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신앙은 일종의 '비약a leap'라고 말했던 유신론적 실존주의자 죄렌 키에르케고르의 비약적인 관점은 받아들일만한 것이 아니다. 신앙은 말 그대로 합리적인 것이며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은 과장하거나 축약하는 것도 절대 아니다. 신앙은 말 그대로 실제적인 것이며 쉐퍼의 의견에 따르면 믿음은 견고한 철학적인 체계이며 절대 비합리성이나 불합리성이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은 돌팔이 의사나 사기꾼으로 모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기꾼이냐? 돌팔이 의사인가?

 

 그렇지 않다. 쉐퍼의 '기독교와 현대사상'이란 책은 쉐퍼가 당대의 문화사와 철학사를 아우르며 정리하면서 철학자들과 예술가들을 포함하면서 시대적인 철학적 조류와 사상을 분석하고 해석하면서 기독교적인 시각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의 기독교 철학적 해부는 너무나 날카롭고 견고해서 정말 나의 상처받은 감수성과 상처입은 기독교적인 허물허물한 철학관을 보수해주었다.

 

나는 당시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을 읽고 깊은 신앙적인 회의와 감정적인 혼돈을 경험했었다. 이문열에 이어 '경마장 가는 길'의 하일지 소설을 읽고서도 문화적인 충격을 받았다. 갓고등학교 졸업한 내가 문학적인 여정을 통해 현대의 문화, 특히 성문화를 간접경험하는 것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요즈음은 매스미디어 자체가 굉장히 육감적이고 도발적이라서 웬만한 육체적인 '몸'문화에 대해서 청소년들도 익히 알고 있다. '사마리아'라는 영화에서 보면 여고생이 원조교제를 하지 않던가? 모든 청소년들이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내가 학창시절을 보낼 때보다 지금의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이 성적으로는 더 조숙한 것은 사실이다.

 

나는 무신론자가 쓴 소설을 읽고 깊은 신앙적인 혼란을 경험했더랬는데 프란시스 쉐퍼의 책을 통해 굉장히 위로를 받았다. 사람의 글이 이렇게 사람의 사상을 손보고 사람의 생각을 정립하게끔 하고 감정적인, 영혼의 상처까지도 치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다.

 

 조금 어렵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나는 대학1년 때 집으로 바로 오지 않고 도서관에서 사무엘 스텀프의 '서양철학사'를 붙들고 씨름했던 기억이 있다. 철학을 멋도 모르고 좋아해서 머리에 정리도 제대로 되지 않았지만 철학사를 붙들고 읽어댔다. 완독은 못했지만-완독을 못한 책들이 얼마나 많던가? ㅠㅠ- 후에 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를 정복하고자 했지만 결국 내 서재에 꽂혀있기만 하다.

 

우린 철학을 생각할 때,

철학이란 것은 굉장이 동떨어진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일상의 잔재, 말 그대로 일상 그 자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철학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전유물이긴 했으나 그 철학의 사상적인 줄기는 지금 인류를 지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세계관은 20세기가 다 될 때까지 깨어지지 않는 하나의 견고한 사상적인 기둥이었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도 당연히 오류가 있기 마련이고 실수가 있지 않겠는가? 철학은 단순한 사상의 차원을 넘어 문화와 예술과 모든 삶의 영역에 스며들게 되었다.

 

프란시스 쉐퍼는 이 책을 통해 현대의 문화와 예술의 리트머스 가운데 번진 철학적인 오염들을 분석, 진단하고 있다. 모더니즘의 세계관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오면서 얼마나 많은 철학자들의 사상과 저작이 예술가들의 뇌를 뚫고 자극했는지는 이 책을 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현 시대의 현상들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프란시스 쉐퍼가 어떤 인물인지, 그가 만든 공동체 라브리가 어떤 공동체인지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대학 1년 시절의 겨울방학 때 난 쉐퍼를 만나면서 신앙적인 둥지를 다시 손보게 되었고 쇄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은 너무나 고맙고 정겹게 느껴진다.

 

wRITTEN bY kARL21

 

20071006, 기억을 더듬으며 이 책에 대한 회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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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0-11-04 0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제가 요즘 신앙에 대한 고민이 많은데. 이책 한번 읽어봐야할 것 같아요.

카알벨루치 2020-11-04 08:54   좋아요 1 | URL
미국의 복음주의가 자유주의의 흐름에 밀려 표류하고 있을 때 프란시스 쉐퍼가 있었다는 말이 있죠 쉐퍼의 책은 그리스도인의 지성을 깨우는 그 무언가가 있습니다 이전책은 절판이고 쉐퍼 전집으로 나온 듯 한데 이 책은 기독교 철학이 마음에 위로를 주는 책이라 그 여운이 아직도 남아 있네요 본질을 제대로 알고 있으면 흔들릴 이유가 없지요 화이팅 han님!👏👏👏
 
인간의 길 1
이인화 지음 / 살림 / 199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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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기 전에...

  그의 글에 굶주렸던 무수한 시간들. 그 어두운 공백을 뚫고서 내 눈알에 들어와 박힌 이인화의 ‘인간의 길’. 돈의 궁함을 면죄부로 삼아 구입을 늦추다가 이제야 구입한다. 간헐적인 빗방울이 시내를 둘러싼 제일서적에서...98.10.21....

 

  읽고 난 후에...


이인화의 이 작품은 한 독재자가 3대에 걸쳐 밀려온 개인적인 사(史)와 함께 그가 끼고 있었던 시대적인 사(史)를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과거에 대한 무지한 나에게 소설은 조금이나마 ‘과거에 대한 눈’을 뜨게 해주는 착각을 일으켰다.

  소설 속에서 보인 작가의 주도면밀한 구성과 전개, 특히 뛰어난 표현력이 내 지성을 펌프질하게 했다. 소설의 끝이 여운의 다발이 되어 아쉬움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독서의 개울’에 발을 담구었다는 시원함이 있다.

  작가는 과거와 현재, 근대사와 현대사를 넘나들면서 나름대로의 해석을 시도하고 있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이인화의 글에 다소 농후한 성숙미가 보이긴 하지만 조금은 현학적인 표현들이 걸리긴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설 작품의 탁월함’에 누를 끼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오랜만에 ‘맛있는 소설읽기’를 먹어치웠기에 지적 포만감이 인다.

1998년 10월 22일, 목요일
Written By Karl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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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 교양 (컬러판)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디트리히 슈바니츠 지음, 인성기 옮김 / 들녘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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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대한 책, 700페이지 넘는 책에 대해 무엇을 쓸까?

  솔직히 책을 다 읽고 나서 책에 대한 느낌을 써야 한다는 강박obsession기제가 있었다. 내가 작가이거나 평론가는 아니더라도 책을 읽고 난 후 흔적을 남겨야 한다는 것은 철칙으로 삼는 부류의 인간들에 속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기억보다 펜이 강하다’는 격언의 의미를 어느 정도 알기 때문이다.
  무엇을 쓸까? 책에 나오는 많은 문장들과 이야기들을 들먹이면서 좀 더 밀도 있게 쓰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것은 책을 읽는 것보다 더 지독한(?) 다듬질이 필요하기 때문에 오히려 부담 없이 편하게 생각나는 대로 흔적을 한 번 남겨보고자 한다.

 

교양이 없다? 교양지식이 없다?-아찔소 시즌3를 보고서


  오늘 우연히 퇴근을 해서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 ‘아찔한 소개팅 시즌3’를 보게 되었다. 익히 다들 알겠지만 퀸가나 아니면 킹가 한 사람을 두고 여러 명의 남자 혹은 여자가 그 사람의 마음에 들도록, 선택당하도록 하는 서바이벌 게임이었다. 오늘은 퀸가가 등장했고 6명의 남자들이 등장했다. 거두절미하고 20대의 한 남자와 26살의 대학생이 등장한다. 첫인상을 보기에는 20대의 남자가 개인적으로 훨씬 호감이 갔다. 하지만 23살의 심리학을 전공한 퀸카는 특이한 2단계 테스트를 치뤘는데 이른바 ‘교양시험(?)’이라고 할까? 솔직히 그것은 교양도 아니었다. 고급적인 지식도 아니었고 아주 단순한 영어문장 해석과 FTA(Free Trade Agreement)의 약자는 무엇을 뜻하냐? 뭐 이런 정도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20살의 청년은 이런 것에 대해 진짜 무식했다. 영어와 공부와 기초지식과는 담을 쌓은 인물이었다. 한국의 수도 서울의 영어철자도 ‘soul’로 대답하는 무지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 친구는 성격적인 대담함으로 모든 경쟁자를 물리치고 퀸가의 마음에 들었다. 퀸카는 교양의 수준을 따지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성격과 매너와 인간관계의 자질이었다. 20살의 그 친구는 정말 교양에 대해선 너무나 무지한 친구였다. 학창시절동안 공부는 안하고 40번이나 되는 연애경험을 가졌고 무에타이 챔피언을 했다니...그 친구가 과연 어떤 인생의 여로를 가져왔는지 그림이 그려진다. 심하긴 심했지만 그 친구는 호감가는 성격으로 승부해서 결국 퀸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3살이나 많은 연상녀의 마음을 말이다. 결국 그 친구는 군대를 다음달이면 간다고 후에 밝히고는 퀸카가 아닌 ‘돈가방’을 선택했다. 돈가방? 그 안에는 100만원도 아니고, 10만원, 1만원도 아니고 ‘100원’이 들어 있었다! 정말 웃겼다.
 

  결국 Prologue는 텔레비전 이야기구나!


  디트리히 슈바니처는 ‘교양’이란 책에서 교양인이라면 텔레비전의 무수한 프로그램에 대해서 담을 쌓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람들의 가십과 이야깃거리의 주제가 되는 드라마나 프로그램에 묻어가는 삶은 그 사람이 과연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를 폭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난 어쩔 수 없이 젊은이들이 즐겨보는 TV프로그램 이야기를 하면서 이야기의 포문을 열게 되어 버렸다.

 

교양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다?

  20살의 이 청년, 정말 교양이 없다 정도가 아니라 ‘기초지식’조차도 없는 친구였다. 그 친구 그러나 매력이 넘쳤다. 교양은 이 친구처럼 ‘성격과 외모와 끼’로 여자친구와는 대충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교양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어느정도 필요충분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블루칼라의 노동자계층에 종사하진 않는다. 그런 업종에 종사한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교양은 있긴 하다. 직업에 비례하는 것이 교양은 아니지 않는가?

 

  교양 운운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인가?


  하지만 오늘날의 시대에 디트리히 슈바니처가 이야기하는 논점처럼 ‘교양’운운하면서 대화를 하는 사람들의 부류가 얼마나 있을까? 오늘날의 교양은 디트리히 슈바니처가 이야기하는 역사의 이해, 문학에 대한 앎, 철학, 예술, 정치, 경제, 언어 등의 포괄적인 접근 보다는 다소 협소적인 개념으로 이해되어질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저자는 19세기에 들어와서야 장편소설이 대중의 인정을 받으면서 예술형식으로 승격했고, 영화는 1960년대에 와서야 지성인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미국 문화산업의 산물의 그늘에서 벗어나 교양의 자리를 꿰찼다고 말한다. 

 

  텍스트에 의한 교양과 미디어에 의한 교양


오늘날의 현대인들, 젊은이들에게는 텍스트에 의한 문화보다는 미디어에 의한 문화로 인한 교양의 소양을 더 많이 쌓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 현세대들이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모든 미디어는 텍스트에 근거하여 출발한다는 것이다.
 

교양에 대한 재해석과 재구성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현대에 있어 어떤 사람이 교양이 있는가? 교양에 대한 재해석과 범주 설정이 재구성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뭐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과연 오늘날의 외모지상주의와 물질지상주의의 판을 치고 있는 지상에서 ‘교양’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나름대로 지성mind의 도구를 내팽개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발전을 해가는 사람들로 국한되어지는 것은 아닐까? 오늘날은 돈에 의해, 외모에 의해 그 사람이 ‘교양이 있다, 교양이 없다’로 판단되어질 수 있는 분위기의 사회이다. 그만큼 돈mammon은 시대의 우상으로, 시대의 커다란 자리를 매김하고 있다. 이것은 부인할래야 부인할 수가 없다.

돈으로 교양을 살 수 없다 

 

  돈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교양, 지성


  하지만 지성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겐 스승인 플라톤이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재정적인 여유와 금전적인 확보가 있었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아리스토텔레스가 자발적인 연구와 독서와 공부가 없었다면 과연 그가 우리의 지성사에 획을 그을 인물로 남았겠냐는 것이다.
  교양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외모지상주의와 물질지상주의 세상 가운데서도 교양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이 교양은 한 인간 개인의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지 간에 어느 정도의 지성의 연마와 개인적인 수고의 공력이 있어야 소유할 수 있는 소양임을 밝히고 싶다.

 

   Text가 말하는 교양


   이야기가 우리 현시대 즉 Context에 많이 국한되어 이야기를 하였는데 그럼 ‘교양’이란 책, 디트리히 슈바니츠가 쓴 Text에서 말하는 교양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해보자.
  디트리히 슈바니처는 1977년까지 함부르크 대학의 영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그는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란 표제를 내걸고 수많은 저작을 남겼다. 저자는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교양'에서 먼저 교양은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세계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조망해주고 있다. 



역사는 두 가지 기원을 가지고 있다. 사진은 천지창조 그림이다


  역사의 기원


  세계사의 기원을 헬레니즘과 히브리즘에서 즉 두 문화, 두 민족, 두 텍스트에 기초를 두고 출발한다. 그러면서 세계사를 훑고 있다. 인류의 수많은 텍스트들은 그리스로마의 신화와 성서로부터 수많은 아이디어와 source를 지금도 물려받고 있다. 이것은 인류의 끝까지 계속될 것이다. 저자가 독일인이기에 다소 편파적이긴 하지만 세계사를 유럽사에 국한시키지 않고 말 그대로 서양사 전체를 터치하려고 노력은 한다. 물론 동양사는 건드리지 못했다.



 

  교양은 성논쟁(여성)의 역사를 빼놓을 수 없다


  제 1부 지식에서는 이러한 서양사에 대한 방대한 조망과 아울러 유럽의 문학, 연극, 미술사, 음악사, 그리고 철학사와 과학적 세계상까지 다루어준다. 저자는 이러한 역사에 대한 이해와 수많은 분야에 대한 지식적인 면모도 아우르지만 특히 1부에서 ‘성논쟁의 역사’라는 주제의 글을 삽입하고 있다. 그는 교양을 이야기하면서 인류에 있어 ‘여성’에 대한 언급이 없이는 불가능함을 밝히고 있다. 그는
“...전체적으로 보면, 문화에 미치는 여성들의 강력한 영향력은 늘 사회에 문명 수준을 눈에 띄게 높여 놓았다는 점에선 의심할 여지가 없다.”

고 말한다.


여성의 성이 교양의 수준을 더없이 업그레이드 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제2부 능력에서는 ‘교양인들이 의사소통할 때 사용하는 규칙들: 절대로 건너뛰어서는 안 되는 장’이라고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제1부 지식은 540페이지 분량을 할애하고 제2부 능력은 그 나머지의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교양의 큰 장애물, 텔레비전


  저자는 앞에서 내가 잠시 이야기했던 텔레비전의 한계에 대해서 언급한다. 왜 텔레비전이 바보상자인가? 왜 오늘날 수많은 젊은이들이 약간의 지루함과 얼마되지 않는 순간들을 참지 못하고 조급해하는지에 대한 진단을 저자는 ‘미디어’에 두고 있다. 미디어의 핵인 텔레비전은 시청자들을 조금이라도 지루하게 해서는 아니되기 때문에 끊임없이 움직이는 역동성이 생명이다. 그러기에 인간과 인간 사이, 인간과 텍스트 사이에서 미디어에 익숙한 젊은이들은 거기서 오는 약간의 불편함도 감수하기를 꺼리는 것이다. 저자는 글과 말, 구어와 문어가 주는 의미가 또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교양은 템포늦추기 즉 서행의 훈련이 요구된다.


‘독서는 완전히 몸에 배기까기는 조깅처럼 매일 약간의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그 무엇이다.’


독서는 조깅과도 같다. 훈련이 요구된다. 

 


  흥미로운 대목은 저자가 ‘세계의 여성과 남성을 위한 지역학’의 장에서 유럽과 미국, 각 나라에 대한 지역적인 특성과 민족적인 차별성과 기질을 말하는데, 여기서 저자는 자신이 독일인이지만 다소 객관적인 시각으로 각 나라의 스타일을 이야기해준다. 나는 독일인, 독일민족이 세계대전에 대한 깊은 회한과 자성의 빛을 띠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실패의 그림자가 다소 깊다는 것에 놀랐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독일인들의 히틀리의 망령이 잔재해 있다는 데서 또 한 번 놀랐다. 

 

  교양의 또 다른 장애물들


  디트리히 슈바니처는 교양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을 ‘텔레비전(미디어)’라고 꼽았고 또한 남성들에게 있어 치명적인 ‘스포츠에 대한 관심’ 모든 성에 차이는 있겠지만 자동차를 비롯한 몰취미의 영역’이라고 말하고 있다. 

남성에게 있어 교양의 심각한 장애물은 바로 스포츠다. 

 

  교양은 의사소통을 풍성하게 하는 양식이다


  저자는 ‘교양의 포기할 수 없는 전제들 중의 하나는 현대사회에 대한 심도 있는 인식이다. 그 가장 좋은 방법은 현대사회를 산업 혁명 이전의 유럽사회와 비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교양은 이를테면 ‘자기 진단, 자가 진단’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벌거벗은 임금님’의 우화를 안다. 벌거벗은 임금님은 자신이 벌거벗었다는 상태를 자가 진단했어야 했다. 자가 진단의 능력이 또한 교양의 능력이기도 하다. 이것은 단순히 한 인간의 개인 안에서는 그치는 자가 진단의 능력을 넘어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의 차원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교양은 다른 이들과 대화를 단절시키는 고급스럽고 오만방자한 그 어떤 지식의 덩어리가 아니라 모든 관계-한 개인 안에서의 자아와 자아의 관계, 개인과 개인, 개인과 공동체(사회), 개인과 우주전체 등-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의사소통의 양식’인 셈이다.

교양은 대화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양식이다.

 

  마지막 대목에는 연대표와 문화표와 추천도서가 적혀 있다. 디트리히 슈바니처는 ‘세계를 변화시킨 책’들의 주제와 요약서를 독자들에게 만들어주고 있고 ‘더 읽으면 좋은 책’으로 몇십권의 책을 추가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 나온 책들은 전부 저자의 지역중심성이 강해서 인터넷에 검색해봐도 우리나라에서 번역되어 나온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나는 그 중에 곰브리치의 ‘세계사’를 한 번 읽어볼까 싶어 인터넷에 주문해 두었다. 기대된다. 


  교양, ‘Long Run’해도 결코 후회하지 않을 책이다. 나는 30대에 이 책을 읽었지만 20대에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부러울 뿐이다. 교양의 독자들이여, 롱런하시길!!!
 

여담...이 책은 내가 대구 상인동 롯데백화점에서 몇년전에 선을 보고 난 후 구입한 책이다.

맘에 대개 안 들었으니 이렇게 두껍고 비싸고 양장본의 책을 구입해서 대리만족을 얻을라고 했나? ㅋㅋ


Written By Karl21

이 글은 네이버 감성지수 36.5글에서도 게재된 글이기도 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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