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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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알고 있다. 내가 죽음에 관하여 얼마나 약한지. 겉으로는 강한 척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척 연기하지만, 속에서 끓어오르는 혼란과 공허감을 얼마나 견디지 힘들어하는지 너는 안다. 혹여 그 죽음에 좁쌀만큼의 희망이나 행복이 비칠 때 나는 미치기 직전에 이른다는 사실을 너는 안다. 입술을 깨물고 두 눈을 부릅뜨며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너는 수없이 보아 왔다. 너는 내 등을 다독이거나 어깨를 붙잡거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거나 떨리는 목소리로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는다. 너는 묵묵히 내 옆에 앉아 있다. 내가 손을 뻗어 너의 허리를 감싸 안고 엉엉 울 때까지 너는 망연히 앞만 바라보고 있다. 무심히 너는 내 팔을 잡아 네 몸쪽으로 밀착시킨다. 나는 너의 손길이 따뜻해서 너에게서 몸을 떨어뜨린다. 나는 눈물을 훔치며 너의 행동을 따라 한다. 앞을 본다. 우리의 시야를 가로막은 높은 건물을 응시한다.

너는 강하다. 세상의 질감을 만져가며 느리게 걸어가는 너는 두려움이 없어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네가 의연하다고 한다. 나는 그들의 천진한 문장을 분쇄하여 흩뜨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른다. 내가 틀렸다. 그들도 틀렸다. 너는 강하지도 의연하지도, 그렇다고 초연하지도 않다. 너는 나보다도 그들보다도 여리다. 너는 나보다도 그들보다도 약하다. 너를 강해 보이게 만드는 것은 난도질당하여 피가 철철 흐르는 네 작은 심장을 감싸고 내려앉은 수 겹의 딱지이다. 너의 눈물과 피가 더는 보기 싫었던 시간이 내린 단단한 더께이다. 너는 무수한 깊은 상처가 무디어진 결과이다. 너의 심장을 건드리는 고통은 더는 없다. 


네가 우는 것을 나는 보지 못했다. 너는 불평하거나 투정부리지 않는다. 너는 내게(어쩌면 다른 이들에게도) 기대지 않는다. 의지하려 하지 않고 네 감정을 철저히 숨긴다. 너는 늘 받아주는 쪽이었다. 반듯이 한자리에 서서 나의 고통을 너는 말끔히 흡수하여주곤 했다. 나는 네게 미안하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으면서도 고통을 덜어내고 싶었기에 나를 네 앞에 모조리 뱉어내 왔다. 너의 시선은 내 말을, 단어들을 지켜보듯 우리 사이의 공간에 머물러 있었다. 하루는, 말이 없던 네가 입을 열었다. 공간이 젖어 있어. 나는 그 후로 네게서 떨어지는 눈물을 읽을 수 있었다. 네가 길을 걸어갈 때마다, 숟가락을 들어 밥을 퍼 입에 욱여넣을 때마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때마다 운다는 것을 발견했다. 너는 조용히 네 감정을 배출하고 있던 것이다. 무엇이 너를 이토록 은밀히 울게 하나. 어린 너를 장악하고 완전히 바꾸어버린 그 봄인가. 네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시리디시린 그 봄인가.


네게 너를 가장 괴롭게 하는 것이 무어냐고 물어보았을 때 너는 허기라고 답했다. 그 봄 이후로 너는 먹는다는 것에 치욕을 느꼈다. 음식을 앞에 두고 손을 바삐 움직여 주린 배를 채워야 하는 의무가 역겨웠다. 너는 굶을 수 없었으므로 죽지 않을 정도로만 밥을 먹었다. 그마저도 목을 넘기기 전에 뱉어내기 일쑤였다. 쌀알은 모래 같았고 김치는 최루탄 같았다. 너는 수척해졌고 깡말라갔다.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있다. 죽음에 결부된 슬픔을 끝까지 견뎌보자고 마음먹은 나를 번번이 굴복시킨 것이 허기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익숙해진 장례식장에서, 어린 나는 새빨간 기름이 둥둥 떠 있는 육개장을 함부로 퍼먹으며 엉엉 울었다. 속에 생긴 빈자리에 토란 줄기와 퉁퉁 불은 쌀알이 박혀 영영 소화되지 않고 내 신체를 이룰 것 같아서 구역질이 났다. 나 자신에게서 욕지기가 났다. 먹는다는 것은 너무도 일상적인 행위이기에,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도 그만둘 수 없다는 사실이 싫었다. 진심으로 애도하는 것 같지가 않아서, 죽음이 일상이 되는 것 같아서 밥숟가락을 들기 힘들었다. 

 

아무것도 읽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허기가 느껴졌다. 어머니가 부쳐준 올배쌀을 공기에 담아와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묵묵히 쌀알을 씹으며 그녀는 생각했다. 치욕스러운 데가 있다, 먹는다는 것엔. 익숙한 치욕 속에서 그녀는 죽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배가 고프지 않을 것이다, 삶이 없으니까. 그러나 그녀에게는 삶이 있었고 배가 고팠다. 지난 오년 동안 끈질기게 그녀를 괴롭혀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허기를 느끼며 음식 앞에서 입맛이 도는 것.

네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가끔 죽은 이들을 생각한다고.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입에 무언가를 넣고 씹고 있다. 음식물의 즙이 입천장으로, 혀로 배어들 때 나는 죽은 이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피가 모조리 빠져나가 쪽빛으로 푸르렀던 주검의 얼굴, 뇌가 멈추었지만 아직 심장만은 남아서 뛰고 있는 평온한 얼굴, 중력으로 늘어난 피부 위에 아로새겨진 주름이 가득한 얼굴. 얼굴에 놓인 표정은 모두가 어둡다. 찡그려져 있다. 마치 나는 힐책하듯. 나는 입에 든 것을 뱉고 싶어진다. 토하고 싶어진다. 죄의식을 내게서 떨쳐내고 싶어진다.

악취미…… 라고 너는 말을 하려다 말았다.

나는 너를 언제나 아파한다. 나는 너를 염려한다. 네가 세상을 등지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으려 하면 나는 가슴에 무언가 마치는 것이 느껴진다. 너를 어떻게든 돌려놓고 싶지만 그렇게 하는 게 너를 더욱 상처입히는 일 같아서, 사실 그것은 너를 위한 행동이 아닌 나를 위한 행동인 것 같아서 나는 매번 포기한다. 너는 내 이야기를 전부 듣고 나서 한마디씩 너를 꺼낸다. 너의 봄을 내게 한 덩어리씩 꺼내 놓는다. 너의 목소리는 나직하다. 떨림이 없다. 시를 낭송하듯 무감각하게 너를 읊는 네 모습은 결기로 둘러싸여 있다. 나는 그 순간이 아프다. 너를 알고 싶으면서도 너를 아는 것이 두렵다. 무섭다. 너의 목소리가, 너의 단어들이 활처럼 내 심장에 와서 박히므로 나는 너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피를 흘리는 셈이 된다. 생각한다. 내가 흘리는 피의 양은 네게 비하면 얼마나 적은가. 내가 너의 이야기를 들으며 느끼는 고통은 네게 비하면 얼마나 하찮은가.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이 옳은 일인가 회의한다.

나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범죄자를 구타하고 불태워 종내 죽이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끔찍한 영상이라며 무심코 네게 보여주었다. 영상이 중반쯤까지 재생되었을 때, 각목에 맞아 튀어나온 자신의 눈알을 보고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사내가 구타하는 자의 다리를 힘겹게 붙드는 장면이 눈에 비치었을 때에야 나는 깨달았다. 너에게 이걸 보여주다니.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너를 돌아다보았다. 너는 담담히 영상을 보고 있었다. 너의 시선은 맞는 자에게도 구타하는 자에게도 향해 있지 않았다. 너는 눈알을 보고 있었다. 사내 옆에 떨어져 흙이 잔뜩 묻은 눈알. 이제 제구실을 더는 하지 못하게 된 그것을 너는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영상을 종료하지 못했다. 사내는 그사이 자신의 마지막 힘을 다해 눈알을 쥐었다. 사내의 숨이 외마디 신음과 함께 끊어지고 나서야 너는 몸을 움직였다. 너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너의 눈은 공허했다. 너의 뇌가 들여다보이는 듯 텅 비어 있었다. 너의 눈은 빨갰다. 어찌나 힘을 주었으면 실핏줄이 터졌다.

그리고, 쏟아지는 말들.

나는 그것을 잊었다. 잊지 않고선 견딜 수 없었다. 너의 고통, 그네들의 고통, 나와 비견할 수 없는 그것을…….

 

나는 떠오르는 죽은 이들의 이름을 부르곤 한다. 아무도 들을 수 없을 작은 목소리로 나직이 그들의 이름을 한 글자 한 글자 읊조린다. 죽은 이의 이름을 부르는 건 일종의 초혼(招魂) 의식이기에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혹여 그가 왔을까. 기척이 느껴질까. 너의 어머니가 네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었다. 네가 그곳을 떠난 뒤였을 것이다. 네 어머니는 구부러진 허리를 지팡이로 지탱한 채 대문을 나왔다. 그녀로선 최고 속력이었다. 느릿하게 대문을 나온 뒤 네가 걸어갔을 땅의 자취를 눈으로 훑었다. 네가 남기고 지나간 체취를 감지한다. 그녀는 쉰 목소리를 내뱉는다. 그녀는 외로우시다. 그녀는 매일 자기를 책망한다. 너는 네가 변한 것처럼 그녀 또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다. 네가 잘못했단 말은 아니다.

 

네 중학교 학생증에서 사진만 오려갖고 지갑 속에 넣어놨다이. 낮이나 밤이나 텅 빈 집이지마는 아무도 찾아올 일 없는 새벽에, 하얀 습자지로 여러번 접어 싸놓은 네 얼굴을 펼쳐본다이. 아무도 엿들을 사람이 없지마는 가만가만 부른다이. ……동호야.

 

나는 위로하는 법을 모른다. 우는 사람 곁에 있으면 나는 얼어붙는다. 그래서 나는 애초에 포기한다. 어설픈 말을 건네기보다 너를 흉내 내 가만히 있기로 한다. 우는 네 곁에 함께 있어주기로 한다. 언젠가 네 상처가 모두 아물고 딱지가 떨어지고 새 살이 돋는 그 날까지 동행하기로 한다. 네 이름을 자꾸 부르며 너를 머릿속에서 지우지 않기로 한다. 네가 나를 돌아보면 봄의 시린 풀빛을 지울 수 있는 따듯한 미소를 너에게 건네주기로 한다. 내게 사원이 된 네 속에 나의 촛불이 아른거리면 나는 그제야 걷는 것을 멈추기로 한다. 다짐한다.

 

나는 강둑에 앉아 있다. 내 시야를 가로막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 눈앞에 강이 흐른다. 촉촉한 소리를 내며 강이 흐른다. 자유롭다. 자유다. 자각하지 못했던 자유다.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는다.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운다. 슬픔이 아니다. 양심. 그렇다, 양심이다. 고개를 들고 입술을 깨물고 다시 운다. 네 손길이 내 어깨에 닿는다. 너 또한 언제까지나 나와 함께 있다. 너는 위대하다. 너는 숭고하다. 너는…… 너를 지킨 사람이다.

 

군인들의 힘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누구도 너의 앞에 무릎 꿇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기도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눈을 감고 묵념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너를 지킨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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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14-06-23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말고사 좀 있으면 시작이죠? 잘 보세요.화튕

루쉰P 2014-06-27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공부 잘하고 계시죠. ㅋ
저도 서재에 왔어요 침묵을 깨고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