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안 좋은 평을 듣고 봐서인지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당연히 있다.

이 영화의 대위법이 맘에 들었다. 아마 처음엔 그게 대위법인지 몰라서 나중에 그걸 알고 나니 새로왔던 듯. 그걸 영화가 끝날 무렵에나 깨닫다니 나도 참 둔하긴 하다. 한석규-이은주-엄지원의 사랑과 사진관 여자의 사랑이 서로가 서로를 설명해 주고 있었다는 걸 끝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특히 마지막에 엄지원이 한석규와 이은주의 죽음(한석규는 살았다만)을 방치한 것, 한석규가 이은주의 죽음에 일조한 것과 사진관 여자가 자기 남편의 죽음에 일조한 것이 모두 용서되는 것과 마지막에 사진관 여자(성현아)가 "사랑했으면 다 괜찮은 건가요?"라고 묻는 것이 일맥상통해 보여 그 구조가 그럴듯해 보였다.

감독은 인간의 깊은 곳에 숨어있는 죄의식과 본능과 뭐 그런 걸 의미심장하게 표현해 보고자 한 것 같은데 그게 성공하기에는 2%(사실은 20%) 부족했다고 본다. 겉만 스치고 간 느낌이다. 그냥 미스터리를 즐기며 마지막 반전에 놀란 걸로 만족한다.

한석규는 멋있는 척 하지만 야비하면서도 소심한 인물로 나오는데 개인의 연기력이 못 미쳐서인지 아니면 시나리오의 인물 설정이 그것밖에 안 되어서인지 몰라도 악역이면서도 매력을 느끼고 우리가 거기 동조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그런 강한 임팩트가 안 느껴져서 좀 아쉬웠다. 그렇다고 한석규가 연기를 못했다는 건 아니다. 워낙 기대치가 크다 보니.

이은주는 세 여자 중 가장 만족스러웠고, 엄지원은 첼로 연습 열심히 했다는 거 외엔....너무 예쁜 새색시 같은 느낌만 있고 어두운 이미지가 부족했다는 느낌이다. 남편 몰래 남편의 애인을 사랑하는 여자라면 뭔가 비애가 느껴져야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아무 말없이 남편과 사랑하는 사람을 차 트렁크에 두고 사진과 휴대폰만 집어가지고 올 여자라면 말이다.(이거 내가 생각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엄지원이 죽음을 방조했다는 것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녀가 즉석 사진을 갖고 있을 수가 없으니 내 생각이 맞겠지?)

가장 성질나는 건 성현아. 예쁘면 다가 아니라고. 대사와 표정이 붕붕 떠 있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봤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성현아 때문에 이 영화의 재미가 반으로 감소했다.

그리고 마지막 트렁크 씬 때문에 그날 밤 잠을 못 잤다. 내가 원래 폐소공포증이 약간 있는데 20분은 되는 것 같은 그 트렁크 씬 내내 숨이 막혀 죽는 줄 알았다. 영화가 끝나고 불을 끄고 누웠는데 숨이 안 쉬어지는 거다. 그래서 내가 어제 아팠나.

의문점 : 차 트렁크는 원래 안에서 열리게 되어 있는데 왜 안 열렸던 것일까? 고장? 만일 고장이라면 권총 마지막 발까지 모두 자물쇠에 대고 발사해야지 죽으려고 남겨 놓다니? 바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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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5-01-14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깍두기님 .

로드무비님 이벤트에서 일등 하셨어요.축하축하^^

제가 먼저 선물 골랐어요.

sooninara 2005-01-14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아직 안봤는뎅...그래도 대충 줄거리를 알고 있어서..

언니 영화평 보면 영화가 더 보고 싶어져^^ 재미없다고 해두 말이지..

2005-01-14 15: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깍두기 2005-01-14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포일러 만땅이라고 제목에 썼으니 난 책임없어!!!(발뺌^^)

재미있으니 비디오로 빌려 보구려. 흥행에 실패했다고 하는데 그러기에는 좀 아까운 영화란 생각이 들어. 보고서 내가 생각한 의문점에 대해 우리 서로 토론해 보자구^^

2005-01-14 1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굉장히 충격적인 책이다. 아직 세권 중 한권밖에 안 읽어서 뭐라 말 할 수 없지만, 도대체 결말에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떨리는 마음으로 기대된다.

주인공인 쌍둥이 소년들은 전쟁으로 황폐해진 세상에서, 그들을 따뜻하게 돌보아줄 그 누구도 없이 자신만의 세계를 쌓고 거기에 맞는 윤리관을 스스로 세우고 있었다. 그들이 새로 만든 그들만의 도덕에서는 우리가 용서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용서되며 우리가 그냥 지나치는 비열함이나 잘못이 절대 용서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된다.

작가는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 다음 권을 빨리 읽어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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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5-01-11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4년 베스트 중 하나라니까요. ㅎㅎ

깍두기 2005-01-11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블루님의 베스트란 말이지요?^^

라주미힌 2005-01-11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보관해 놔야겠습니다..

stella.K 2005-01-11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잔인한 것 같아 어떨지 쫌...

깍두기 2005-01-11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잔인은 해요^^ 그러나 그 잔인 뒤에 무언가가 저를 아프게 하데요.

와와와, 라주미힌님, 오셨네요. 정말 반갑습니다. 오늘 님 서재에서 영화평을 쭈욱 읽어봤어요. 제가 본 걸로다가 골라서...님 페이퍼를 보고 이번 방학 비디오를 골라볼까봐요^^

그로밋 2005-01-11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독특함에 손을 댔던 소설입니다. 뭐가 거짓이고 뭐가 진실인지 읽고 나서도 내내 헷갈려 했다는....

깍두기 2005-01-11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로밋님과는 초면인듯^^ 반갑습니다. 방금 님의 서재에 가서 불쑥 댓글 남기고 왔답니다. 앞으로 자주 놀러 오세요^^

그로밋 2005-01-11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까지 남겨주시고 감사합니다. 자주 놀러 올께요. ^^

플레져 2005-01-11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해 제가 읽은 소설 중 베스트에 거뜬히 든 책이어요.

그 간결한 문장과 담담한 시선이 좋았습니다.

내 존재를 증명해 줄 수 있는 존재는 타인...

코코죠 2005-01-12 0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은 깍두기님도 그 책을 만나고 마셨군요. 그러게 일찌기 선견지명이 있는 오즈마가 저 책은 제목이 보이지 않게 거꾸로 꽂아두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 크학학학 -

저도 1권을 막 읽고 나서 그 두려움과 떨림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다음 권은 조금 조금 더디게 가지요.. 그래도 그래도 여전히 아프죠...녜, 세상이 그렇더라구요 녜녜...

깍두기 2005-01-12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들 이 책을 좋아하시는군요. 유명한 책인가 봅니다. 저만 몰랐나봐요^^

stella.K 2005-01-12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저리 말씀하시면 왠지 믿고 싶단 말이예요. 끌리는군요.^^
 
당신 인생의 이야기 ㅣ 행복한책읽기 작가선집 1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에다 줄 별이 다섯개 밖에 안되다니 참 아쉽다. 참 오랜만에 작가를 경배하며 책을 읽었다.

이 책이 국내에 출판되기 한참 전부터 SF커뮤니티 같은데 슬쩍 가서 글을 읽어보면 테드 창에 관한 이야기가 간혹 있었는데 항상 칭찬 일색이었다. 도대체 어떤 글을 쓴 작가이길래 이렇게 번역본이 나오기도 전에 야단들이란 말인가(하긴 그곳에 가면 원서를 읽는 사람이 워낙 많았으므로), 내 책이 나오면 꼭 사보고 냉정한 평가를 내려주리라 하고는 이 책이 나오자마자 주문을 해서 '자, 각오하시라. 지금부터 내가 이 책을 읽어주마' 이런 심정으로 책을 잡았건만.

결국은 나도 그 찬양하는 무리에 끼고 말았으니, 이 책은 정말 대단한 소설이며 어찌하여 10년동안 책 한권 분량의 중단편만 발표한 작가가 과학소설계의 최고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지 증명해 주는 소설이다.

그런데 미리 말해 두지만 이리 말하는 나는 이 책의 내용을 백퍼센트 이해하느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이 책은 언어학, 물리학, 수학, 종교학 등에 상당한 지식이 있어야 작가가 말하려 하는 것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는, 굉장히 사변적인 책이다. 학문과 담을 쌓은 내가 그런 지식이 있을리 만무하다. 그러나 감히 내가 이 책을 걸작이라 말하는 이유는, 초보적인 지식만 가지고도 이 책은 충분히 즐길 수 있으며, 내가 지금보다 좀 더 지식을 쌓는다면 이 책을 백만스물한배는 음미할 수 있으리란 걸 지금 이 상태에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정교하고, 수미일관되고, 군더더기 하나 없는 뭐 하나 더하거나 뺄 것 없는 이야기들. 반지의 제왕처럼 길고 긴 이야기로 현실에 없는 한 세계를 창조하는 것도 재주지만, 이렇게 짤막한 이야기로  논리적으로 완결된 한 세계를 창조하는 것도 너무나 존경스런 재주이다. 그리고 그가 창조한 세계는 현실세계가 있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세계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저절로 떠오르게 해 주며, 인간의 사고가 어디까지 뻗어갈 수 있는지 감탄을 금할 수 없게 하고, 우주적인 관점에서 지구와 인간을 보게 해 준다.

각 단편마다 구구절절히 감상을 쓰려고 했으나 읽은지가 오래되고 능력이 딸려서 도저히 못 쓰겠다. 나보다 먼저 쓰신 다른 님들의 리뷰가 너무 좋으니 내가 덧붙일 필요도 없겠고.

각 단편 모두 마음에 들었으나 그 중 표제작인 <네 인생의 이야기>가 가장 강렬했다. 어쨌든, 멋진 작품이다. 좀더 여러 방면의 책을 읽은 후, 다시 한번 도전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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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1-11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 장바구니에 넣을려고 했더니 일시품절이네요.. 보관함으로~~

2005-01-11 1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깍두기 2005-01-11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꼭 사서 보세요^^

속삭이신 님, 사놓고 안 읽고 있다니 그런 아까운 일이! 빨리 보세요^^

쓰다만 것 같은 리뷰에 추천이라니...이 책에 달린 다른 리뷰가 얼마나 훌륭한데요. 그 분들 글을 꼭 읽어 보세요. 독서에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하얀마녀 2005-01-11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런 강력한 뽐뿌질이... ^^

딸기 2005-01-11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 투.

깍두기 2005-01-11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님, 감사합니다^^(리뷰가 허접하여 민망하긴 하지만....라주미힌님의 리뷰를 참고하시면 더 도움이 될 거예요.그 밑에 다른 분들 리뷰도)

마녀님, 제가 너무 심했나요?^^

그로밋 2005-01-12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책이군요. 저도 보관함에 슬쩍 끼어 넣었답니다. ^^

플레져 2005-01-12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땡스투! 점점 이 책에 대한 열기가... 고조 되고 있습니다, 제게...


미세스리 2005-03-22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읽고 싶어요. 그러니까 SF죠? 보관함 슝슝- 그리고 땡스투!

비로그인 2005-04-13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일인것이.. 주위에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이야기하는데.. 저는 왜 이리 감흥이 없을까요? 제 맛에 책 읽는 것이라고 하지만.. 왠지 혼자 오답쓰는 것 같은 기분이..;;
 

평소에는 비디오를 거의 보지 않다가 방학이 되면 몰아서 본다. 낼 아침에 늦게 일어나도 된다는 부담없음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런다고 별나게 늦게 일어나는 것도 아니면서....

어제 새벽 두시반까지(그러니까 오늘인가?) 이 영화를 비디오로 보았다. <서울의 달>을 보면서 그 존재를 알았고, <쉬리>를 보면서 저 사람 인물이다 라고 느꼈으며(우리나라 첩보원인 한석규보다 간첩인 최민식이 훨 멋있으니 이 영화는 용공영화라는 농담도 했다)  <올드보이>를 보며 존경의 념을 느꼈던 배우 최민식. 아, 해피엔드도 있었지. 나는 최민식을 보기 위해 해피엔드를 봤다. 그리고 <꽃피는 봄이 오면>도 최민식 주연이라 하여 영화관에서 보려 했으나 어찌어찌 하다가 놓친 영화이다.

<꽃피는.....>의 현우는 어찌보면 지금까지 최민식이 맡았던 배역 중 가장 평범한 배역이다. 두눈을 부릅뜨고 카리스마를 활활 불태우며 나온 <쉬리>나 <올드보이>에 비해 현우는 우리가 길거리를 지나다가 혹은 우리 주변을 조금만 둘러보면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영화는 대단한 무언가를 보여 주지도 않는다. 현우가 도계중 관악부를 맡았다고 해서 갑자기 정열에 불타올라 얘네들이 전국대회에서 1등을 하지도 않는다. 예정된 대로 관악부는 없어지고 현우는 보따리를 싼다. 그러나 미묘하게 변한 무언가가 있다. 극의 처음에서 힘이 빡 들어가 있던(그래서 좀 신경질적으로 보였던) 현우는 극이 끝날 때 쯤 되면 하나의 화두를 스리슬쩍 해결한 듯이 보인다. 현실적으로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도 현우는 이제 좀 다르게 살 것이며 현우의 주변 사람들은 현우를 좀 더 편안하게 느낄 것이다.

이렇게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한 영화의 너무도 평범한 주인공이 만약에 최민식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얼마나 재미없었을까?  만약 주인공의 연기가 어설펐다면 이 영화는 절대 볼 수 없는 영화이다. 최민식은 절대로 대사를 그대로 내뱉지 않는다. 그는 어디서 뜸을 들여다 할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얄미울 정도로...거기다 그 표정이라니...누가 최민식더러 자기 얼굴의 주름까지도 연기로 만들어버리는 배우라고 했다던데, 실제로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안했는지 몰라도 그 말은 그에게 정말 어울린다.

어제 본 영화의 감흥이 남아서 인터넷에서 그의 인터뷰을 찾아 보았다. 그의 말하는 스타일도 참 맘에 든다.  비맞은 중이 웅얼웅얼 대는 영화라고.....^^

nkino | <꽃피는 봄이 오면>의 현우는 최근 출연작 중에서 가장 무난하고 평범한 캐릭터이다.
최민식 |
그래서 더 좋다. 사실 <꽃피는 봄이 오면>에 출연하게 된 것도 좀 쉬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올드보이> 하면서 너무 날카로워지고 거칠어진 감성들을 다듬어 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에 <꽃피는 봄이 오면> 시나리오를 받았다. 한편으로는 의아하더라. 왜 욘사마도 있고, 박해일도 있고, 유지태도 있고. 부드러움의 대명사로 통하는 배우들이 많지 않나? 도대체 왜 이런 시나리오를 내게 보냈나 싶었다. 류장하 감독이 그러더라. "형은 세고 터프해 보이지만, 사실은 바보 같은 면이 많다. 형 생각하면서 시나리오 작업했다". 그래서 두 말 않고 고맙다고 그랬다.(웃음)

큰사진으로 보기류장하 감독은 전적으로 최민식을 주연으로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고 하더라. 근데 이 말이 배우에게는 큰 부담이 되는 말이다.
그렇게까지 부담은 없었다. 근데 류 감독이 나 생각하고 시나리오 썼다고 했지만, 자기 이야기 한 거다. 다른 보조 작가들이나 연출부들이 관여하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영화의 느낌은 감독의 감성이 많이 녹아있다. 여리고 순수하고 그런 느낌이 딱 감독 자신이다.

시나리오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
자극적이지도 않고 원색적이지도 않은 그런 점이 좋았다. <꽃피는 봄이 오면>은 정통 드라마투르기에 근거한, 기승전결이 분명한 그런 드라마가 아니다. 늦가을부터 그 다음 해 봄까지 현우라는 한 남자의 시간적인 상황을 그린 이야기인데, 보통 우리가 그렇지 않나? 하루하루를 보내기는 하지만, 정작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는 잘 모른다. 특별히 한 일도 없고 뒤집어 질만한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말이다. <꽃피는 봄이 오면>은 그런 느낌을 주는 영화다. 특별한 사건도 없고, 등장하는 인물도 전혀 특별하지 않는데, 그런데 뭔가 있다. 그 평범하고 나른하고 답답한 일상에서 싹이 하나 돋는다. 엄동설한을 보내고 봄이 오면 이끼 속에서 피어나는 이름 모를 새로운 싹 말이다. 그게 <꽃피는 봄이 오면>의 참 매력이다. 요즘에는 거창한 이야기를 가지고 거창한 비주얼과 자극적인 스타일을 무기로 관객들과 소통하려고 하는 영화가 많다. 그에 비하면 <꽃피는 봄이 오면>은 마치 비 맞은 중이 '웅얼웅얼' 대는 그런 영화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기분이 좋아지고, 가슴이 따뜻해진다.

편안함이 제대로 묻어나는 것은 맞다. 솔직히 <꽃피는 봄이 오면> 포스터는 소주 광고 처럼 보일 정도니까 말이다.
맞다. 아, 그런데 나한테는 왜 소주 광고가 안 들어오는지 모르겠어. 사실 소주 광고는 이효리나 이영애같은 예쁜 여자들이 하면 안 된다. 나같이 술 좋아하는 사람이 해야지.(웃음). 광고 콘티까지 다 짜놓았다. 술 광고는 사람들의 소음과 불판 위에서 구워지는 삼겹살의 '지글지글' 소리가 생명이다. 한 남자가 술이 취해서 테이블에 엎어져 있으면, 내가 딱 등장해서 그런다. "괜찮아?'. 거기서 "** 소주"라는 비주얼이 뜨는 거다. 이번 영화 끝나고 혹시 소주 광고 들어오면 한 잔 사겠다.(웃음)

현우라는 캐릭터를 설정하는데 있어, 가장 주안점을 둔 것은 무엇인가?
처음에도 언급했지만, <꽃피는 봄이 오면>은 내게는 휴식 같은 영화다. 이전에는 "무언가를 보여줘야지, 일을 저질러 봐야지" 하는 그런 부담감이 강했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는 그런 부담이 들어가면 망한다.(웃음) 처음 캐릭터 설정할 때 모든 각과 에너지를 다 빼려고 했다. 그렇다고 에너지를 다 빼면 또 안 되는 거고, 에너지의 수위 조절 문제에 집중했다. 그런데 부드럽게 이야기하는 것도 사람마다 다르다. 만약 내가 욘사마 흉내낸다고 생각해봐라.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지. 그래서 그냥 내 식으로 표현하기로 마음 먹었다. 최민식 스러운 연민, 열정, 연기에 주안점을 두었다.

얼마 전 제작발표회에서 '현우는 참 짜증나는 인간'이라고 말했었다.
정말 개인적으로 이런 놈 안 좋아한다. 아, 짜증나.(웃음) 그런데 또 연민은 간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밥벌이를 못하는 놈이긴 하지만, 사랑하는 여자가 "나 결혼해"라고 말하는데 "잘 되었네, 축하해"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나. 속으로는 정말 사랑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봐라. 그날 저녁에 분명히 이 놈은 친한 친구 불러놓고 술 먹으면서 엉엉 울 거다. 이런 사람을 누가 미워할 수가 있겠냐고.

현우가 강원도 도계에서 겨울을 보내면서 달라진 것이 뭐가 있을까?
크게 달라진 것 없지. 그래서 우리 영화가 더 좋은 거다. 예들 들어 현우가 도계에서 천사 같은 아이들과 살았다고 해서, 머리에 무슨 빛을 '뜅' 두르고 날개가 달려서 하산하는 게 아니다. 무슨 해탈도 아니고.(웃음) 현우는 여전히 현우다. 답답한 현실도 여전히 진행 중인 거고. 이렇게 말하면 좋을 것 같다.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현우에게 생긴 거다. 예전에는 짜증으로 다가왔던 것들에 대해 이제는 그것들을 음미하고 끌어안을 수 있는 여유 말이다. 현우 스스로도 대단히 큰 정서적인 변화를 겪어서 마음에 큰 평온을 안은 것은 아니다. 그저 어머니나 사랑한다고 고백하지 못했던 연인, 사이 나빴던 친구 등 주변 사람들과 벚꽃, 봄내음 같은 그런 것들. 평소에는 삶에 허덕이느라 스쳐보냈던 그런 현상들을 다시 한번 느끼고 보게 되는 것 뿐이다. 아주 현실적이다. <꽃피는 봄이 오면> 하면서 바람은 거창한 것은 없다. 해외 영화제 가서 상 타야겠다 그런 생각도 전혀 없고. 관객들이 이 영화 보고 나서 어머니나 관계가 소원했던 친구들에게 안부 전화 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으면 오케이다. 그리고 하나 더 있다면 <꽃피는 봄이 오면>에 돈을 댄 투자가들이 떼돈은 못 벌더라도, 망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소원은 그렇게 딱 두 가지다.

큰사진으로 보기

트럼펫 배우느라 아주 힘들었다고 들었다.
정말 성질 다 버리게 하는 악기다. 석 달 동안 입에 달고 살았는데 소리가 안나. 진짜 환장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선가 소리가 탁 터진다. 그때 느낀 쾌감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지금은 트럼펫이랑 참 친해졌다. 그때는 '내가 죽네, 네가 죽네' 하는 심정이었는데, 지금은 어렴풋이 친구가 된 것 같다. 간단한 영화 음악이나 솔로 곡은 연주할 정도의 수준은 되었다. '올드랭사인'은 원래 트럼펫 곡은 아니지만, 송년회 같은 자리에서 모인 사람들 술 맛을 돋궈 줄 정도까지는 연주할 수 있다.

류장하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이 양반이 사람하고 쉽게 친해지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더라. 아주 내성적이고 답답하지만 안으로 생각 많이 하는 인간이다. 그래서 처음에 친해지려고 내 쪽에서 많이 접어주고 들어갔다. 근데 발이 넓고 친하다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한 명을 사귀더라도 진정하게 사귀는 게 더 중요한 것이다. 류장하 감독은 후자 쪽이다. 지금은 좋은 형 동생 사이다. 현장에서는 너무 '꼼꼼'하다. 물론 지휘 통솔자로서 현장에 비상사태가 발생했다거나 풀기 어려운 애로점이 발생하면 힘을 발휘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겠고. 단적으로 이렇게 표현하면 될 것 같다. 각 파트의 전문가들로 하여금 그들의 지식과 테크닉을 맘껏 발휘할 수 있도록 장을 열어준다. 조율을 잘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어떨 때 보면 "도대체 저 인간은 뭘 주장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더라. 민주적인 만만디 감독이다.(웃음)

큰사진으로 보기여름에 겨울 장면 찍느라고 고생 많이 했다고 하던데.
나는 여름이 제일 싫다. 여름이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을 정도니. 한 여름에 목 폴라에 두꺼운 파카 입고 촬영해 봐라. 아무 생각 없다. 추운 건 잘 견딘다. <취화선> 할 때 강원도 횡계에서 텐트가 날아갈 정도로 바람 쌩쌩 부는 곳에서도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쌩쌩했다. 근데 더워 버리면 완전히 '땡칠이'되는거다.(웃음) <남극일기>팀이 그렇게 부럽더라. 나는 여기서 이 고생하고 있는데, 그 인간들은 냉장고 같이 시원한 데서 얼마나 촬영 잘 했겠냔 말이다.

2004년 현재, 최민식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글쎄? 뭐가 있을까. 소중한 것은 엄청 많은데. 이 담배도 참 소중하다.(웃음) 난 술 없이는 살아도 담배 없이는 못산다. 아마 금연가 협회에서 나 같은 사람 엄청 싫어할 거다. <파이란>이 워낙 인상적으로 비춰져서 그렇긴 한데, 사실 극 중에서 담배 피는 장면이 많지는 않았다. <꽃피는 봄이 오면>은 거의 없다. 아, 근데 첫 장면이 담배구나.(웃음)

좋다. 담배 다음으로 소중한 것은?
제일 소중한 건 나 자신이다. 내가 나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나머지 다른 부분들도 소중하게 다가오는 거다. 만약 내가 나를 함부로 굴리고 경멸한다면, 그 마음에서 비춰지는 현상들이 소중하게 느껴지겠나. 절대 안 그렇다.

후속작 <주먹이 운다>는 어떤 영화인가?
이 나이에 복싱 하느라 살 빼고 운동하느라고 미치겠다. 올 초는 트럼펫이 날 못살게 굴더니, 이젠 권투가 날 괴롭힌다. <주먹이 운다>는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 정도 된다. 40대 초반의 한 남자와 20대 초반의 한 남자의 이야기인데, 공교롭게도 둘 다 실제 인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나는 일본 신주쿠 광장에서 매맞고 돈 버는 그런 인간이고, 류승범은 재소자 복서 출신 바닥 인생이다. 두 사람이 각각 조악한 삶을 살아오다가 삶의 전환점을 위해 다시 글러브를 낀다. 서로 다른 인생이 마치 평행선처럼 달려오다가, 마지막 신인왕 전 6라운드의 혈투로 만나게 된다. 기존 한국 영화에선 볼 수 없었던 실제 권투 경기처럼 보여질 거다. 특히 맨 마지막 15분 분량은 실제 경기하듯 찍을 거다. 어디 찢어지면 찢어지는 대로, 이빨 부러지면 부러지는 대로 말이다. 죽기 살기로 연습 열심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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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5-01-11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이란, 올드보이 근 10년동안 본 한국영화 중 최고라고 생각하는데 .. 연기에 혼이 실린 최고의 배우라는 수식어가 식상할 정도로... 깍두기님 자주 놀러오세요 볼건 없지만.. 전 가끔 놀러올게요 ^^; 좋은 인연 이어가요.

깍두기 2005-01-11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최민식에 이의를 달 사람은 아마 없다고 봅니다. 근데 저는 파이란을 아직 안 봤네요. 빨리 봐야지....

프레이야 2005-01-24 0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에서도 최민식 참 좋더군요.
 


이걸 먼저 보고,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봤다면 나는 하울의 평을 아주아주 좋게 써 주었을 것이다.

아이들 둘은 재밌게 보더라만(얘들도 하울이 더 낫다고 한다) 나와 남편은 영 맘 편히 영화를 즐길 수가 없었고, 특히 남편은 스트레스가 쌓인다며 영화를 보고 나와 머리를 내 저었다.

일단 너무도 시끄러웠고, 그들의 '영웅'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가 역겨웠으며, 악역을 조롱하는 태도가 비열해 보였다.

내 생각에 인크레더블맨은 좀 혼나도 된다. 자기를 도와주려는 순진한 어린이에게 집에 가서 발닦고 자라는 식으로 얘기한 사람은 좀 맞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크레더블맨을 못살게 구는 보험회사 사장은 딱 일본인 아니면 한국인의 얼굴이다. 내가 너무 인종적 편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지는 모르겠다만 상체 딱 벌어진 육중한 체구의 금발 서양인 옆에서 3분지 1도 안되는 체구의 검은 머리 동양인이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비웃어가며 봐줄만큼 너그럽지는 못하겠다.



영화의 완성도 이런 건 모르겠고 하여간 내내 불쾌하였다. 그 보험회사 사장과 인크레더블보이(신드롬이라 하던가) 때문에 말이다. 서부영화의 총잡이가 황야의 건맨이 아니라 인디언 학살자라는 걸 알아버린 때부터, 나는 미국영화의 악역과 나를 동일시하게 되어 버렸다. 이래서야 영화를 그 자체로 즐길 수가 있나 말이다.그래도 픽사의 니모나 토이스토리 등은 재미있게 본 것 같은데, 인크레더블의 향상된 3D 기술에 다들 탄복하는 모양이나 내용이 맘에 들지 않는데 머리카락 휘날리는 게 진짜 같다거나 뭐 이런게 눈에 들어와야 말이지.

미국영화의 수퍼히어로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를 이 영화에서 한 엑스트라가 해 주었다. 자살하려고 건물에서 뛰어내린 남자를 구해주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누가 구해 달랬냐고~"

제발 미국이 세계를 그만 구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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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5-01-03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이요. 정말... 추천입니다. 인디언 학살과 자신을 동일시할 수밖에요...

로드무비 2005-01-03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미국은 자기 나라나 걱정하라지. 주제넘게 나서지 말고......

추천하고 가요.^^

urblue 2005-01-03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추천임다. ^^

물만두 2005-01-03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곧 도착할 겁니다^^

chika 2005-01-03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깍두기 2005-01-03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사실 테크놀로지만 본다면 경탄할 만한 영화인데...그걸 마냥 즐길 수 없게 해 주더군요. 스토리가~

만두님, 벌써 도착했어요. 방명록에 인사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