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로 안 좋은 평을 듣고 봐서인지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당연히 있다.
이 영화의 대위법이 맘에 들었다. 아마 처음엔 그게 대위법인지 몰라서 나중에 그걸 알고 나니 새로왔던 듯. 그걸 영화가 끝날 무렵에나 깨닫다니 나도 참 둔하긴 하다. 한석규-이은주-엄지원의 사랑과 사진관 여자의 사랑이 서로가 서로를 설명해 주고 있었다는 걸 끝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특히 마지막에 엄지원이 한석규와 이은주의 죽음(한석규는 살았다만)을 방치한 것, 한석규가 이은주의 죽음에 일조한 것과 사진관 여자가 자기 남편의 죽음에 일조한 것이 모두 용서되는 것과 마지막에 사진관 여자(성현아)가 "사랑했으면 다 괜찮은 건가요?"라고 묻는 것이 일맥상통해 보여 그 구조가 그럴듯해 보였다.
감독은 인간의 깊은 곳에 숨어있는 죄의식과 본능과 뭐 그런 걸 의미심장하게 표현해 보고자 한 것 같은데 그게 성공하기에는 2%(사실은 20%) 부족했다고 본다. 겉만 스치고 간 느낌이다. 그냥 미스터리를 즐기며 마지막 반전에 놀란 걸로 만족한다.
한석규는 멋있는 척 하지만 야비하면서도 소심한 인물로 나오는데 개인의 연기력이 못 미쳐서인지 아니면 시나리오의 인물 설정이 그것밖에 안 되어서인지 몰라도 악역이면서도 매력을 느끼고 우리가 거기 동조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그런 강한 임팩트가 안 느껴져서 좀 아쉬웠다. 그렇다고 한석규가 연기를 못했다는 건 아니다. 워낙 기대치가 크다 보니.
이은주는 세 여자 중 가장 만족스러웠고, 엄지원은 첼로 연습 열심히 했다는 거 외엔....너무 예쁜 새색시 같은 느낌만 있고 어두운 이미지가 부족했다는 느낌이다. 남편 몰래 남편의 애인을 사랑하는 여자라면 뭔가 비애가 느껴져야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아무 말없이 남편과 사랑하는 사람을 차 트렁크에 두고 사진과 휴대폰만 집어가지고 올 여자라면 말이다.(이거 내가 생각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엄지원이 죽음을 방조했다는 것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녀가 즉석 사진을 갖고 있을 수가 없으니 내 생각이 맞겠지?)
가장 성질나는 건 성현아. 예쁘면 다가 아니라고. 대사와 표정이 붕붕 떠 있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봤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성현아 때문에 이 영화의 재미가 반으로 감소했다.
그리고 마지막 트렁크 씬 때문에 그날 밤 잠을 못 잤다. 내가 원래 폐소공포증이 약간 있는데 20분은 되는 것 같은 그 트렁크 씬 내내 숨이 막혀 죽는 줄 알았다. 영화가 끝나고 불을 끄고 누웠는데 숨이 안 쉬어지는 거다. 그래서 내가 어제 아팠나.
의문점 : 차 트렁크는 원래 안에서 열리게 되어 있는데 왜 안 열렸던 것일까? 고장? 만일 고장이라면 권총 마지막 발까지 모두 자물쇠에 대고 발사해야지 죽으려고 남겨 놓다니? 바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