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땐가 4학년 때
우리집은 TV가 없었다.
내가 일곱살 때까지 있던 TV가 고장나고 난 후
학교 들어가면 공부해야 한다며 아빠가 새로 사질 않으셨던 것이다.
그땐 이미 대부분의 집이 TV를 들여놓고 살 때여서
학교 가면 아이들이 만화영화 얘기로 꽃을 피울 때
난 할 얘기가 없어서 대화에 못 낀 적도 많았다. 그러나 그 덕분에 난 독서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 되었으니 선견지명을 가지신 아버지께 감사할 뿐이다.
그 때 책 말고 우리 형제들의 유일한 즐거움은
라디오에서 5시부터 하는 어린이 프로였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동요도 틀어주고(그땐 애들이 순진해서 동요를 좋아했다), 20분 정도하는 라디오 드라마도 방송해 주었다. 그 중에 하나가 <물의 요정 운디네>이다.
졸졸졸 흐르는 옹달샘 속에/ 슬프게 웃는 얼굴 운디네 눈물/ 사람이 되고 싶어 세상에 왔다/ 슬픔만 배우고 간 운디네는/ 물속나라 공주님 요정이었네/ 아름다운 운디네 사랑의 천사
이 주제곡이 나오면 우리 3남매는 FM도 안나오는 고물 라디오에 들러붙어 혹시 대사 하나라도 놓칠까 하여 숨을 죽이곤 했다. 아빠와의 기싸움도 종종 했다. 아빠가 그때 한참 인기있던 고교야구가 방송되면 라디오를 빼앗아가셨던 것이다. 운디네 마지막 방송과 고교야구 결승전이 겹쳐 우리가 악을 쓰며 울어대어 주인 할머니가 라디오를 빌려주신 기억도 난다.
라디오로 방송되는 소리만 듣다보니 이런 일도 있었다. 우리는 이 드라마가 끝날 무렵까지 운디네를 <온디네>로 잘못 알고 있었는데 그건 우리만 그런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느날 진행자가 사연을 읽어주는데 "운디네가 맞아요? 온디네가 맞아요? 우린 그걸로 내기를 했어요."이런 내용의 글을 읽어주었고 우린 "당연히 온디네지~~~"하고 합창을 했다가 진행자가 "그건요, 운디네예요."라고 해서 세명이서 얼굴을 마주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리곤 이렇게 말했다. "온디네가 훨씬 이쁜데........"
<물의 요정 운디네>의 내용은 사실 어린이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슬프고 비극적이다. 거기다 유한한 인간의 어리석음과 아름다움이 동시에 흐르는 물결과 함께 소용돌이치는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작품인데 우리가 뭐 그걸 이해했을까, 그냥 슬프고 안타깝고 왕자가 바보같고, 이쁜 운디네를 버리다니 나쁜 놈이고, 그러면서 울고 웃었다.
커서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하곤 너무 반가워서 냉큼 사서 읽었다. 그리고 오늘 판다님의 서재에서 좋은 그림을 발견하여 이렇게 기념할만한 페이퍼를 꾸민다. 고마워요, 판다님!!

아름다운 물의 요정 운디네와 젊은 기사 훌트브란트는 사랑하는 사이다. 훌트브란트와 결혼한 운디네는 마침내 인간의 영혼을 얻게 되고 본질적인 변신을 한다. 자유롭고 변덕스러운 자연적 창조물에서 사랑하고 고통받는 여자로 다시 태어난다. 무의식적 자연 상태에서 의식적 인간 존재의 질곡으로 떨어진다. 그녀가 영혼을 얻는 대가는 이승의 고통이었으며 그에 대해 그녀가 지불해야 되는 대가는 불멸성이었다.
그녀의 행복은 베르탈다가 나타날 때까지 계속된다. 베르탈다는 그녀의 매력으로 훌트브란트를 사로잡고, 운디네는 고통의 세계 속에서 파멸의 길을 간다. 세 사람이 도나우를 항해하면서 훌트브란트가 물을 모욕하자 그녀는 거대한 물결 속으로 사라진다. 훌트브란트가 베르탈다와 결혼하려 하자 운디네는 다시 나타나 훌트브란트를 포옹하여 죽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