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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데이 ㅣ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로버트 하인라인 지음, 안정희 옮김 / 시공사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나는 이 책의 지은이인 로버트 하인라인이라는 아저씨의 머릿속이 너무도 궁금하다. 이미 돌아가신지 오래되셨으니 만나서 물어볼 수도 없고, 그의 책을 읽어서 짐작할 수 밖에 없는데, 이 분 진짜 중구난방이다. 난 그의 소설 중에서 <스타십 트루퍼스>를 가장 먼저 읽었다. 읽고서 얼마나 코웃음을 쳤던지 지금 작가에게 미안한 심정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책을 덮으며 내가 내린 평가. "이거 꼭 초등학교 보이스카웃 수준 아냐!"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이 아저씨는 그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어 '군대 안간 사람에게는 시민권이 없는' '나라를 지킨 자에게만 권리가 주어지는' 사회를 묘사하면서 나약한 인간들에게 팍팍 겁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발언을 읽으며 나는 그때 한참 한겨레 사옥에 모여 폭력사태를 연출하던 해병대 아저씨들을 떠올리고는(그때 왜 그랬지? 베트남전을 언급하다 그랬나?) 파시즘과 군국주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며 두려움에 떨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도 그를 하찮은 삼류작가 취급을 할 수 없었던 것은(삼류작가라니! 그는 SF계의 3대 거장 중의 한 명이다) 정말 실감나는 미래사회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와 생동감 넘치고 재기발랄한 대사,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스토리 등등 한마디로 '재미'는 완벽하게 보장한다는데 있었다. 소설이 재미있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그러다가 어디서 절판본인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을 구해 읽고는 나는 이 작가가 그 작가냐며 다시 한번 표지에서 지은이의 이름을 확인하였는데, 내 생각에는 도저히 군국주의적인 삶의 태도와는 양립할 없을 것 같은 성에 대한 엄청 개방적 태도를 <달은....>에서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마치 나치 당원이 히피와 사귄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 황당함이랄까.
어쨌든 국내에 출간된 하인라인의 소설은 거의 다 읽은 것 같지만 그의 그 무궁무진하고 산지사방을 넘나드는 정신세계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던 바, 이번에 이 책 <프라이데이>를 읽으면서 뭔가 조금 가닥이 잡히는 듯한 느낌이다. 지금부터 내가 이해한 바를 풀어놓아 보겠다. 이것은 물론 매우 주관적인 해석이다.
1. 완벽한 '몸'에 대한 지향
하인라인은 내 생각에 '완벽 바디'에 대한 동경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스타십 트루퍼스>에서는 '강화복'으로, <프라이데이>에서는 '인조인간'으로 표현된다. 안 그래도 육체적 능력이 뛰어난 우주의 전사들이 강화복을 입으면 그 능력이 몇십몇백배 강화된다. 힘, 순발력, 스피드 등등. 유전적으로 '강화'된 인조인간 프라이데이는 보통 사람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 1초 만에, 사람들이 자기가 당했다는 것을 미처 눈치채기도 전에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미적으로도 완벽하다. 프라이데이는 맞춤 설계된 인조인간이니 말할 것도 없고, <스타십...>의 주인공들도 빼어난 젊은이들이다.
아마 하인라인은 '완벽한 몸'을 무의식적으로라도 동경하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은 나도 그렇다. 그래서 나도 이런 소재가 땡기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거기다 더해서 나는 천살까지 살고 싶은 개인적인 소망이 있으므로 '불사'라는 소재가 나오면 환장하는 경향이 있다.(젤라즈니를 괜히 좋아하는 게 아니다....)
2. 엘리트주의
'군대 갔다온 사람에게만 시민권'은 참으로 모골이 송연한 주장인데 그럼 신체허약자나 부녀자(억울하면 니들도 군대가라...그러겠지?)들은 투표권도 없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신체적으로나 지적으로 일정 기준에 도달하는 자만이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세상을 원하는 듯한 소설 속의 표현들을 보면 그는 확실히 엘리트주의자이다.
"물론, 맑시즘 가치의 정의는 한마디로 어리석은 것이다. 인간이 얼마나 많은 노동을 쏟아붓건 간에 진흙 반죽을 애플 파이로 바꿀 수는 없다. 진흙 파이는 진흙 파이로 남고, 그 가치는 무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서투른 노동은 가치를 쉽게 감소시켜 버린다. 재능이 없는 요리사는 멀쩡한 밀가루 반죽과 신선한 파란 사과를 먹을 수도 없는 쓰레기로 바꿀 수 있다. 그 가치는 제로로 변하는 것이다. 반대로 훌륭한 요리사는, 보통 요리사가 보통 과자를 만들 때만큼의 노력만으로도, 같은 재료를 써서 보통 애플 파이보다 훨씬 더 높은 가치를 가진 과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스타십 트루퍼스 중)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이런 말을 하다니, 정말 너무해 ㅎㅎ.
<프라이데이>에서도 세상은 몇몇 거대기업국가의 손에 좌지우지되며 엄청난 테러와 폭력사태가 일어나도 일반 시민은 도대체 누가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조차 알 수 없다. 이 세상은 윗대가리 몇명의 손 안에서 놀아나고 있는 중이며 일반인은 알려고 하면 다친다. 이런 현상을 작가가 바람직하게 여기건 그렇지 않건 간에 작가는 대중을 '우민'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을 강력하게 받게 된다.
3. 그는 낭만적 자유주의자가 아닐까?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과 <프라이데이>에서는 미래사회의 엄청 개방적이고 다양한 결혼모델 및 남녀관계에 대한 묘사가 이어진다. 동성애 및 양성애에 대한 흔쾌한 인정, 일처다부제나 일부다처제를 넘어선 다부다처제, 물론 사랑은 하나 뿐이다, 이런 개념은 존재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동시에 여러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이 정신사나운 미래세계는 지금의 일부일처제가 인간본성과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나라는 사람에게조차 '너무 난잡한 거 아냐?'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파쇼와 히피의 결합이라니, 나로서는 상상도 못해본 일이었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내 주위에서 이 반대의 경우로 정치적으로는 진보이면서 문화적으로는 더할나위없는 보수인 사람들을 흔히 접해왔던 터라(진절머리난다) 정치적 보수에다 문화적 진보인 경우도 불가능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그가 꼭 정치적으로 보수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에서 그는 식민지 해방전쟁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혁명군을 지지하는 보수주의자도 있는가? 그는 그냥 자기자신의 자유의지대로 살고 싶어하며 우우 몰려다니는 대중(그의 생각에)을 우습게 아는 개인주의자, 낭만적인 자유주의자인지도 모른다.
이리저리 생각하다 보니 내 안에서 보수와 진보, 좌와 우의 개념이 뒤섞여 무진장 헷갈려 버린다. 하인라인 자체가 '민주주의의 반대는 공산주의'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프라이데이>는 재기발랄한 소설이며 암울한 디스토피아적인 시대배경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들은 유쾌하고 낙천적이며 신랄하다. 그러나 온 몸이 무기인 프라이데이도 결국 가장 간절한 소망이 '어디엔가 소속되는 것'이라는 결론을 볼 때 인간의 근본 문제는 변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몇백 광년을 여행하여 새 세계를 찾아가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이 '가족을 갖는 일'과 '농장에서 닭을 키우는 일'이라.......
유전적으로 조작된 '인조인간'이라는 측면에서 작품을 볼 때는 이런 의문을 갖게도 된다.
1. 유전자 조작을 통해 현인류보다 매우 '업그레이드된' 인조인간을 탄생시키는 것이 과연 이 책에서처럼 이렇게 별로 위험하지 않은 일일까?
2. 작품에서는 인류가 이 '인조인간'들을 경원시하며 사람취급을 안 해 주고 있는데 그런 공포심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책에서야 그들이 주인공이니까 독자인 우리가 동정심을 갖지만 사실상 현 인류를 열등종으로 밀어낼 수 있는 존재에 대해 인류는 위협을 느낄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인조인간을 소재로 한 SF는 무수히 많다. 그 중 이 소설은 그래도 문제를 가볍게 언급하고 넘어간 편이다.(필립 딕의 단편에 나온 그 전쟁기계에 대해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지금까지 SF에서 제기했던 문제제기에 대해, 이제 사회가 슬슬 답을 준비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인간 게놈지도도 해독되었고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