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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만화 전2권 세트 강풀 순정만화 5
강도영 지음 / 문학세계사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순정' 만화라면 말이야, 샬랄라 샤방샤방하는 드레스를 휘날리며 초롱초롱 반짝반짝하는 눈망울에 눈물을 그득담고 그윽한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보며........정도는 아니어도, 일단 예쁜 여주인공(물론 설정상으로는 안 예쁘다고 해도 그림으로는 여전히 예쁜)과 초절정 꽃미남과의 가슴 설레는 로맨스 정도는 기대해도 되지 않는가 하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일 것이다.

이 만화는 그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머리는 부스스하고 넥타이도 제대로 맬 줄 모르는 숏다리 평범 회사원 남자주인공. 거기다 심통가득한 표정의 고등학생인 여주인공의 첫 대사는

"아이 씨발 조땐네"

게다가 이 남녀는 맺어지기에는 너무 껄적지근한 커플이 아닌가 말이다. 30살의 회사원과 18살의 여고생. 뭐라? 그것이 바로 원조교제 아니더냐? 게다가 또 한 커플은 18살의 남자고등학생과 20대 후반은 되어보이는 아가씨이다. 이거 뭐하자는 시츄에이션? 

그러나 이 모든 난관에도 불구하고
이 만화는 그야말로
초절정 완벽 '순정' 만화이다.
얼마나 순정스러운지
웬만한 순정에는 코웃음을 치는 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물론 이 만화는 통속적이며, 적당히 판타지적인 요소로 우리를 달래주는,
인간관계도 서로 지나치게 얽히고 설켜 이 사람의 전 애인이 저 사람의 친구고
내가 알고 있던 남자애가 나중에 알고보니 저 언니의 남자친구고 하며
자연스럽지만은 않은 상황을 연출하지만
이제 그런 통속성을 거부하기엔
난 이제 나이도 들고, 적당히 통속적이고, 적당히 달관한 그런 존재가 되어 버렸거든.
(그리고 그런 나 자신이 아주 마음에 든다)
어쨌든 그 얽히고 설킨 인간관계의 하이라이트는
주인공 남자(연우)의 히스테리컬한 직장상사와
주인공 여자애(수영)의 마찬가지로 히스테리컬한 담임선생님이
한 이불 속에 누워 서로의 부하직원과 제자를 걱정하는 장면이었다.(푸하하)
그때 나는 진정으로 이 만화의 작위적인 인간관계를 깨끗이 용서할 수 있었으니......

몇년 전부터 인터넷에서 강풀강풀 할 때에
나는 사실 전혀 관심이 없었다.
인터넷으로 책이나 만화를 보는 건 나에게는 아직 낯설다.
그리고 강풀의 그림체는 첫눈에 사람을 휙 잡아끌진 않는다.
어수룩하고 안 예쁜 사람들하며 웬지 산만한 것 같은 구도하며
그러나 다섯장만 넘어가면 그 다음엔 밥먹는 것도 잊게 만드는 힘이 있다.
수시로 터지는 폭소와 따뜻한 눈물을 동시에 선사하는 참 드문 만화다.
(강풀은....약간 천재가 아닐까? 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역시 만화는 스토리.....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이 만화를 큰딸내미에게 보여주었다.
만화를 그리고 있는 딸내미가 그림체 말고 스토리에도 신경 쓰길 바라며....  

수영...용기있게 먼저 한발 다가설 수 있는 아이, 욕을 입에 달고 살아도 생각은 예쁜 아이, 자기 마음을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는 아이.
연우....나이는 먹었으나 소년같은 남자. 여고생을 사귀면서 끝까지 존대를 하는 남자, 자신이 외로워도 남을 먼저 챙기는 남자.

이 둘의 사랑에, 또 이 이야기에 나온 다른 이들의 사랑에 내가 위로받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댓글(9) 먼댓글(0) 좋아요(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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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5-11-16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강풀의 순정만화'가 뭔지도 모르고 여태 지냈어요. 흑흑.
이거, 꼭 봐야겠군요.

깍두기 2005-11-16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참 괜찮았어요.
제 주변 모두의 평이 그래요. 우리 딸들도....^^

mong 2005-11-16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제목이 신선합니다
^^

깍두기 2005-11-16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님, 너무 충격적인가요?^^

로드무비 2005-11-16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제목도 내용도 마음에 쏙 드네요.^^

글샘 2005-11-16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똑같은 욕이라도 여고생이 하면 '상큼했죠?'
그런 통찰력을 가진 작가가 강풀이죠. ^^

날개 2005-11-16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제가 한참 전 옛날에 이벤트로 내놓았을때 타가지 그러셨어요!! 재밌다니깐~^^

하루(春) 2005-11-16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정말 재밌죠? 전 날개님이 주신 거 갖고 있어요. 1권 마지막 읽을 때는 눈물도 찔끔 흘렸다는... ^^

깍두기 2005-11-17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저도 어느 장면에선가 눈시울이....^^
날개님, 흑흑.....ㅠ.ㅠ(그걸 하루님이 타셨구만요^^)
글샘님, 만화에서는 상큼하던데, 실제로 보면 전혀 상큼하지 않던걸요^^
로드무비님, 저도 제목이 맘에 들어요. 좀 망설이긴 했지만...^^
 
백귀야행 1~13 세트
이마 이치코 지음 / 시공사(만화) / 1999년 3월
평점 :
품절


백귀야행, 온갖가지 귀신들이 한밤중에 돌아다닌다는 이 만화에서 귀신들은 밤 뿐 아니라 낮에도 서슴없이 돌아다닌다. 그 요괴들을 우리가 보지 못할 뿐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볼 수 없는 사람에게는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특별한 눈이 있어 그들을 볼 수 있거나, 아니면 미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그들은 보이고, 영향을 끼친다. 강건한 사람에게 귀신은 없거나 있어도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그래서 이 만화에는 수십 수백 종류의 요괴와 혼령과 귀신이 나오지만 결국 이야기하는 것은 사람이다. 어떤 미련을 못 버려 성불하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가, 어떤 좋지 못한 집착이 그런 혼령을 불러들여 사건을 일으키는가, 주로 이런 이야기들이 한편 한편 에피소드로 이어져 12권의 길고 긴 만화가 되었다.(그리고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인간의 아집과 독선과 미련과 집착은 한도 끝도 없으니 이 만화도 아마 한없이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

자칫 어둡고 무섭기만 할 수 있는 이야기에 생기와 유머를 불어넣는 것은 작가가 창조한 특이한 캐릭터들이다. 어려서부터 남에게는 안보이는 것이 눈에 보여 괴로웠던 주인공 리쓰는 주변의 그 산란한 것들 때문에 정신이 사나워 공부도, 인간관계도 제대로 맺지 못한다. 그래도 귀신의 도움으로 대학은 간다. 비슷한 능력이 있으나 스스로를 컨트롤하지 못하고 본 것이 무언지도 파악 못하는 리쓰의 사촌누이는 게다가 술고래다. 그 누이의 술친구는 평소에는 새의 모습을 하고 있는 나무의 수호령이다. 리쓰의 아버지는 리쓰가 어릴 적 돌아가셨는데 혼은 저 세상에 가셨지만 그 아버지의 껍데기(육신)은 웬 요괴가 차지하고 들어앉아 있다. 그 요괴는 다른 요괴들로부터 리쓰를 지켜준다. 오래된 집에 이 이상한 식구들이 사방에 드글드글한 요괴들과 공생공존한다.

이 어이없는 비현실적인 설정을 별 거부감없이, 마치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을 것처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등장인물들이 귀신과 얽히면서 전개되는 사건이 인간의 나약함, 추함, 고귀함 등을 너무도 리얼하게 드러내어 주기 때문이다. 시기, 질투, 욕심, 애증 등 사기(邪氣)를 불러들일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번뇌와 그 속에서 찰나의 빛을 발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각 에피소드마다 모습을 달리하여 우리를 찾아온다.

삶이란, 또 죽음의 모습이란 너무도 다양하여 아마 이 만화는 끝도 없이 계속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끝이 나겠지. 그때 주인공들이 각각 어떤 인연을 맺을지 그것도 궁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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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5-07-28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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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5-07-28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한영키가 먹통이 되어서 저런 이상한 댓글을 달았다^^
제목도 .......으로. 바꿔야지.

chika 2005-07-28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한글이 안되어요 ㅠ.ㅠ (라고 깍두기님이 쓰셨어요...ㅡ.ㅡ)

chika 2005-07-28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이젠 되는군요?
저도 이 책읽고 그랬어요. ^^

깍두기 2005-07-28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카님, 장난꾸러기!^^

깍두기 2005-07-28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가 그랬다는 거여요? 설마 이 책 읽고 나니 한영키가 먹통이 되더라는 이야기는 아니겠지?^^

날개 2005-07-28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깍두기님 댓글때매 막 웃어버렸네..^^
리뷰 넘 멋져요!! ^^*

깍두기 2005-07-28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워요, 날개님!^^

moonnight 2005-07-28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읽고 싶게 만드는 리뷰입니다. ^^ 소문은 참 많이 들었는데 아직 못 읽었어요. 재미있겠당

숨은아이 2005-07-28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카님 댓글 번역 고마워요. 치카님이 안 해줬으면 나도 해볼 뻔했잖아요. ㅎㅎ

숨은아이 2005-07-28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찰나의 빛을 발하는 아름다운 마음"이란 구절에 추천 날려요. 바로 그것 때문에 이 시리즈를 계속 읽게 돼요.

로드무비 2005-07-28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근사한 리뷰입니다.
추천!^^

깍두기 2005-07-28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로드무비님이 간만에 추천을 해 주시니 괜히 제가 리뷰를 잘 쓴 것처럼 느껴져요^^
숨은아이님,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 구절이 갑자기 빛나 보이네요. 감사^^

산사춘 2005-07-28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추천! 반가오요, 깍두기님.
제목에 너무 공감합니다. 참 많은 걸 생각하게 해줬어요.

깍두기 2005-07-29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산사춘님이 제 리뷰를 읽고 추천을....영광이어요 호호호

비로그인 2005-07-29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에 깍두기 언니의 [데쓰 노트] 리뷰를 보고 읽기 시작했는데, 이것도 아주 재밌겠어요. 어떤 캐릭터들이 나올까 기대되기도 하고.
 
만화 21세기 키워드 - 전3권 - 비빔툰 가족과 함께 떠나는 미래 과학 여행
이인식 원작, 홍승우 글, 그림 / 애니북스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21세기가 궁금한 중학생, 21세기 과학지식을 알고 싶은 고등학생, 미래를 설계하는 이들을 위한 만화 21세기 가이드북!

책표지에 있는 광고문구 그대로다. 거기다 플러스 알파를 한다면, 우리집 막내 초등학교 3학년짜리 딸아이도 재미있게 보고 있다. 그리고 어른인 내가 봐도 재밌다. 너무 시시하지 않느냐고? 교양과학도서를 많이 읽고 신과학개념에 대해 도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땅의 평범한 보통 사람이라면 여기 나온 개념들에 대해 '어디서 많이 들어 보긴 했고, 뉴스에도 자주 나오는 말인데 정확히 뭔 말인지는....?' 하며 고개를 갸웃거릴 사람이 대부분이다. 나만 해도 <창발성>이 정확히 뭔지 몰랐다. 창의성, 창조성과 비슷한 단어인데 잘난 척하는 사람들이 괜히 어렵게 하는 말이라고만 생각했으니.....

그렇다고 해서 그 개념들을 다 자세히 알려고 해당 과학 도서를 찾아 읽다간 365일 날이 새고도 모자랄텐데 한시간에 한권씩 세시간만 투자하면 어느 정도 감은 잡고 그에 대한 화제가 나오면 아는 척할 것도 좀 생기니, 이 책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의 입에도 잘 맞는 종합선물세트와도 같다. 나노기술, 내분비계 장애물질, 데이터스모그, 배아줄기세포, 튜링테스트, 트랜스제닉, 프랙탈 등등등 들어는 본 말인데 설명하라면 말이 막히는 갖가지 신과학용어들을 한권에 40개씩 설명해 놓았으니 총 120개의 과자가 든 종합선물세트가 되겠지?^^

그리고 원작 이인식에 그림 홍승우라면 대충 만든 책은 전혀 아니다. 똑같이 공부가 된다 하여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사 주는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나 <마법 천자문>등은 편집기획의 승리이지 사실 그림은 영 조잡한 것 같아서 나는 좀 불만이다. 이 책은 그런 불만 없이 즐길 수 있다. 물론 공부도 많이 된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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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6-09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벌써 몇 권째 장바구니에 담나 모르겠어요...ㅠ.ㅠ

깍두기 2005-06-09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랑 사세요 호호호~

그로밋 2005-06-10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홍~ 괜찮은 책이군요. 전 좀 허접한 책 아닐까 싶었는데...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사기엔 좀 부담스럽구요, 도서관에서 신청해서 봐야겠어요. ^^

깍두기 2005-06-10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로밋님 오랜만입니다. 학습만화가 요즘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데 그 중 아주 우수작이란 생각이 드는 책이랍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1~7 세트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스포일러 있음)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에서 발생한 산업문명은 수백년 동안 전 세계로 퍼져, 거대 산업사회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대지의 비옥함을 앗아가고 공기를 더럽히며 생명체마저 마음대로 바꾸어 버리는 거대 산업문명은 1000년 후에 절정기에 이르렀다가 이윽고 급격한 쇠퇴를 맞게 되었다. <불의 7일간>이라 불리는 전쟁에 의해 도시들은 유독 물질을 뿌리며 붕괴했고, 복잡하고 고도화한 기술체계는 소실되었으며 지표의 대부분은 불모의 땅으로 변해 버렸다. 그 후 산업문명은 재건되지 않았고, 인류는 영원한 황혼의 시대를 살아가게 되었다.

이야기는 이런 배경을 깔아두고 시작한다. 그러니까 나우시카가 사는 세계는 지금보다 천년도 더 나중의, 인류의 산업문명이 스스로 자멸하고 난 뒤에, 지구가 산업문명의 무덤이 되고 난 뒤에, 그 무덤 위에 세워진 세계이다. 그 세계는 땅 속의 오염물질 때문에 독기를 내뿜는 숲, 부해가 있다.

 
                                 <부해에 사는 식물(왼쪽)과 이야기의 배경 지도(오른쪽)>

부해는 엄청난 속도로 세상을 덮으려 하며 사람들은 독기를 피해 마스크를 쓰고 가까스로 살아간다. 부해에는 또 엄청나게 커진 곤충들과 '오무'가 있다. 사람들은 그것들을 피하고 그것들과 싸워가며 살아야 한다. 그 와중에 또 두 나라간의 전쟁이 벌어진다.

여기까지 읽다보면 이 이야기는 물질문명을 맹신하고 서로간에 전쟁을 일삼는 인간에 대한 경고로 읽힌다. 물론 그렇기도 하다. 두 나라는 전쟁의 와중에 전대의 문명이 봉인해 놓았던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안그래도 황폐한 지구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서로를 죽이고 또 죽인다. 그 속에서 나우시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특별한 아이다. 그애에게는 적과 나의 구분이 없다. 그애는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느낀다. 곤충도, 오무도, 적군도, 아군도 그에게는 생명이다. 숲사람 세름에게 나우시카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생명의 흐름 속에 몸을 두고 있어요. 나는 하나하나의 생명에 연연하고 말지만.....나는 이쪽 세계 사람들을 너무 사랑하고 있어요. 인간이 더럽힌 황혼의 세계에서 나는 살아가겠어요.

설령 어떤 계기로 태어났다 해도 생명은 다 같아요. 아마 히드라조차도....정신의 위대함은 고뇌의 깊이에 의해 결정되는 거예요. 점균의 변이체조차도 마음이 있어요. 생명은 아무리 작아도 그 밖에 우주를, 그 안에 우주를 갖고 있어요.

 

그러나 이렇게 하나하나의 생명을 사랑하는 나우시카가 내린 결론은 어찌보면 의외이다. 그는 전 문명이 세워놓은 원대한 계획을 거부한다. 지구를 정화하고, 인간을 고결하고 우아한 존재로 만들려는 계획을.....

아니! 그건 당연하다. 어찌 생긴 존재이건 생명은 그 자체로 자유의지를 가진다. 높은 자의 계획 따위에 맞춰 살 존재는 아니다.

소녀여, 너는 재생으로의 노력을 포기하고 인류가 멸망하도록 내버려 두겠다는 것인가?

어리석은 질문이군. 우리는 부해와 함께 살아왔다. 멸망은 우리 삶의 일부로 자리하고 있어.

종으로서의 인간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태어나는 아이는 점점 줄어들고....너희들에게 미래는 없다.인류는 내가 없으면 멸망한다. 너희들은 부활의 아침을 넘어설 수 없어.....너희는 위험한 어둠이다. 생명은 빛이야!

아니, 생명은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빛이다! 모든 것은 어둠에서 태어나서 어둠으로 돌아간다! 너희들도 어둠으로 돌아가라!

이야기는 여기서 물질문명에 대한 경고의 수준을 넘어선다. 이제 이야기는 생명의 의미, 인간존재에 대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생명은 그냥 빛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빛'이라고, 생명은 누군가의 의도에 따라 존재할 수 없는 그 자체로 신이 깃든 존재라고 나우시카는 말한다. 그것이 대답이 아닌 '질문'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내가 나우시카에게 동의할 것인지 아직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뱉어놓은 온갖 오물을 뒤집어쓰고, 인간은 그렇게 나아가야만 하는가?

나우시카가 청정한 세계가 돌아왔을 때 쓰여질 새로운 인간의 알을 파괴하며 "제가 지은 죄에 몸서리가 쳐집니다. 우리처럼 흉폭하지 않은, 온화하고 현명한 인간이 되었을 알이에요"라고 하자 옆에 있던 왕이 한 말.

"그런 건 인간이라고 할 수 없지....응?"

슬프지만 긍정할 수 밖에 없는 저 대목을 보면서, 결국은 나도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인간은, 오물을 뒤집어쓰고, 나아갈 수 밖에 없다고.


폐허가 된 땅을 허무가 담긴 긍정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나우시카의 마음이 우리에게도 있기에, 인간은 긍정할 만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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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5-14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이미 오염된 환경에 적응해버렸다는 대목이 참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리뷰 멋지게 잘 쓰셨네요~

깍두기 2005-05-14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면서 참 슬펐어요. 인간이란 존재가....마치 바퀴벌레가 자기가 더러운 존재란 걸 깨달았을 때 같았다고나 할까...
 
데스 노트 Death Note 1
오바 츠구미 지음, 오바타 다케시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렇게 자극적인 소재도 흔치 않을 것이다. 데스 노트. 내가 거기다 이름만 쓰면 그놈은 죽는다. 그런 노트가 내 앞에 턱! 하고 떨어졌다. 자, 이세상 사람들아, 어쩌시려는지?

한참 전 이 만화의 소개를 어느 님 페이퍼에서 보고 그 노트가 내 손에 들어오면 악의 축 부시를......하고 입맛을 다셨던 기억이 나지만 이는 그런 노트가 내 손에 절.대. 들어올 리가 없음을 알고 하는 농담에 지나지 않는다.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런 노트를 만일 손에 쥐게 된다면 이 세상 사람들은 그걸 어떻게 써먹을 것인가?

1. 살면서 나에게 딴지거는 놈들을 처치한다. 예를 들면 직장에서 갈군다, 주차시비가 붙는다, 내 돈을 띠어먹었다, 하는 개인적인 원한을 갚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2. 정의구현을 실현한다. 아까 내가 한 농담처럼 악의 축 부시나, 아님 희대의 흉악범, 성폭행범, 정의의 심판을 아직 받지 못한 독재자 등등을 일소시켜 이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든다.(그러고 나면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인지는 다음 기회에 논의하기로 한다)

3. 차마 두려워 사용하지 않는다. 죄에 대한 심판은 법원과 신의 몫이다.

이 세상 사람들이 무엇을 더 많이 선택할지는 잘 모르겠다. 우선 나조차도 잘 모르겠으니. 그러나 이 만화의 주인공인 고등학생 남자애(어제 읽은 책인데 이름 벌써 모름. 나는 이것이 병이다)는 별 망설임 없이 2번을 선택한다. 전 세계의 흉악범들만을 골라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 노트의 원 주인인 사신이 나오고(무지무지 특이하고 매력적인 모습이다. 외국의 락커들 중 일부러 악마틱하게 하고 나오는 이들과 닮았다) 범세계적으로 연합하여 주인공의 정체를 쫓는 와중에 또 정체를 알 수 없는 탐정 L의 등장.....

아직 1권 밖에 안 읽고 리뷰를 쓰려니 좀 모자란 느낌도 들지만 1권만 읽고도 할말은 많다. 일단 앞으로의 전개과정은 주인공과 L의 두뇌플레이가 될 것 같고, 만일 저런 식으로 해서 범죄가 줄어든다면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이성적으로는 안된다고 외치고 있으나, 권선징악과 인과응보가 한낱 농담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한구석에 주인공을 응원하는 마음이 꼬물락꼬물락 기어나오고 있는 것이 현재 스코어), 졸지에 인간을 심판하는 자리에 올라가버린 주인공, 고등학생 밖에 안된 주인공이 과연 그 짐을 지고 어떻게 변해갈까 하는 것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그 짐은 스스로를 미치게 하는 독이 될 것이나, 이 만화의 고등학생, 너무도 똑똑하고 치밀하다. 과연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나보다 중1짜리 딸내미가 더 열광하고 있어서 괜히 2권 사기가 망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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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굼 2005-05-05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야 하실 걸요^^;; 아마 쭈욱;;

날개 2005-05-05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사세요..! ^^ 둘의 두뇌싸움이 장난이 아닙니다..ㅎㅎ

그로밋 2005-05-05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는 만화를 손에 넣으셨군요. ^^ 한동안은 쭉~ 그속에 빠져있으실듯... ^^

깍두기 2005-05-06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굼님, 날개님, 역시 그래야겠지요?^^
그로밋님, 님도 이걸 읽으셨나요? 뒷얘기가 궁금해 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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