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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점심시간 - 우리가 가장 열심이었던 날들
김선정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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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쓴 에세이를 그렇게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읽으면서 이렇게나 공감과 동료의식을 느낀 적은 없었다. 다 어쩐지 나와는 인간의 종류가 다른 듯 지나치게 훌륭하거나, 뼈를 갈아 최선을 다하거나, 어린이를 온 마음으로 사랑하는, 파파어웨이의 선생님들이고, 읽고나면 어쩐지 내가 좀 초라해지고 이렇게 살면 안될 것 같은 자괴감이 일었다. 사실은 뭐 나도 그닥 못난 선생은 아닌데 말이다. 보통은 된다고 자부한다.

아, 내가 동료의식을 느꼈다고 해서 저자 김선정 선생님이 보통 정도의 교사라는 건 절대 아니다. 선정 선생님은 훌륭하다. 그러니 어린이들과의 생활에서 이런 통찰을 뽑아내어 글을 쓴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는 선정 선생님이 그런 통찰을 얻기까지 겪었던 실수와 실패, 그 과정에서 느꼈던 낯뜨거움, 부끄러움 등이 과장없는 문체로 기록되어 있다. 뭐 대단히 부끄러워하며 쓰지도 않았다. 그냥 그랬다는 거다. 누구나 그랬을 테니까. 그런 자신을 담담히 돌아보며 선정쌤은 성장한다. 성장한 선정쌤은 으시대며 말한다.

ㅡ이것이 성장이라는 것이다. 보았느냐, 18년 전 5학년들아

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대목을 읽고 나는 폭소를 터뜨렸는데, 단순히 웃기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런 점이 선정쌤의 훌륭한 점이다. 유머 말이다. 아이들이랑 놀이를 하면서 '목숨을 걸자'고 하고, 결근한 날 선생님을 보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이를 '원수1호'로 지목하고, 집에 가는 아이에게 '대걸레에 걸려 넘어져라!고 저주를 걸고, 친구가 혼나면 기뻐하는 아이들에게 '너희들 생일에 생일인 사람 빼고 나머지를 모두 혼내줄게'라고 말하는 선생님. 정말 어이없고 이상한 선생님인 것 같지만, 잘 생각해 보세요. 저런 선생님의 교실에서 공부하고 싶지 않나요? 왠지 모르지만 그러고 싶잖아요? 내 자신이, 딱딱한 공교육의 교육과정과 책상과 의자와 지켜야 할 예의범절과 질서(나쁘다는 게 아닙니다)를,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주는 저런 기이한 언행의 역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이 대목에서 가장 동료의식을 깊이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이 책에는 아이들의 학교생활이 잘 드러나 있는데, 어떤 내용을 배우는가 하는 공식적인 교육과정 말고 학교생활 전반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며 어떻게 성장해 나가는지 즉, 잠재적 교육과정을 실감할 수가 있다. 내 아이가 학교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한 부모가 보면 정말 많이 참고가 될 책이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다가가 무슨 말을 거는지, 수업시간에 손을 들고 어떤 엉뚱한 말을 해대는지, 친구랑은 무슨 이유로 싸우는지, 1학년 코흘리개가 6학년 초등교양인으로 어떻게 성장해 나가는지, 막연히 걱정하면서 궁금해했던 교실 장면을 눈에 그리듯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모르면서 막연히 걱정했을 때의 불안감이 책을 읽으면 많이 줄어들 것이다. 아, 다들 애쓰고 있구나. 내 아이도, 선생님들도...

그렇게 안심한 마음으로 집에 오는 아이도 잘 다독여주고 고군분투하는 담임선생도 좀 이해해 줄 수 있지 않을까...ㅋㅋㅋㅋㅋㅋ (사심 가득한 리뷰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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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1-20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깍두기님이닷!!!
우리 완전 오랫만 맞죠? 다시 뵈니 반가워요. ^^ 리뷰로 다시 돌아오시니 더 반가워요. ^^
 
엄마의 마흔번째 생일 청년사 고학년 문고 5
최나미 지음, 정용연 그림 / 청년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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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셨고, 나를 알고 있는 분들이라면
이 책에 나오는 엄마가 나라는 것은 다 동의하실 것이고.
(무엇보다 나는 이 동화의 엄마와 나이도 같고, 자식들과 가정을 위해서만 살고 있지 않은 것도 같고,
그걸 그렇게 미안해 하지 않는 것도 같고, 또 뭐 아무튼 기타 등등)

이 책에는 또 하나의 '나'가 있는데.
이 집의 큰딸 '가희'다.
가희의 하는 짓과 성깔머리가 어렸을 때의 나와 얼마나 비슷하던지
전혀 웃긴 이야기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배꼽을 잡았다.
치매 걸린 할머니와 한방 쓰라는 말에 딱 잘라 거절하는 야멸찬,(그래서 결국 그건 만만한 동생몫이 된다)
엄마가 일하는 데 찬성하고 엄마의 고민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면서도
결국은 엄마가 자기 도시락 안 싸 줄까봐 그게 가장 걱정되는
이 싸가지 없고 이기적인 아이는
딱 어렸을 때의 내 모습이다.

나도 좋은 건 다 내 차지에다가 내 물건 동생들이 건들지도 못하게 했다.
책을 읽다 기억난 게 있다.
친척들이 놀러와 밥을 먹는데
따뜻한 밥이 모자라서 찬밥이 두 그릇이 나왔다.
하나는 당연한 듯이 엄마가 드시고, 한 그릇을 나를 줬는데
내가 '난 찬밥 안 먹어!'라고 말해서 그 찬밥은 결국 남동생 몫이 되었다.
내가 찬밥을 싫어했냐면 그건 아니다.
그냥 그 찬밥을 '내가' 먹어야 한다는 게 싫었을 뿐이다.

근데 가희가 어렸을 때의 내모습이랑 닮아서 그런지
나는 이 야멸차고 인정머리없는 아이가 싫지 않다.
착하디 착한 동생은 엄마가 치매 걸린 할머니를 돌보지 않고 자기 삶을 찾아나서는 걸 이해 못하는데 비해
가희는 비록 결국은 자기 도시락 걱정을 하긴 하지만 엄마의 심정을 아주 잘 이해한다.

우리 엄마도 드디어 마흔이 되었잖아. 엄마한테도 시간이란 게 있어. 더 늦으면 엄마가 뭘 할 수 있겠어? 참, 그런데 엄마가 일 나간다고 내 도시락 안싸주면 어떻게 하지? 다시 학교 급식 먹으라고 하지는 않겠지? 아, 몰라. 진짜 짜증 나.

엄마 아빠가 별거하는 건 아무렇지 않게 친구에게 말하고 다니면서도
살 빼려고 에어로빅 하는 건 절대 비밀인
얄미운 아이가 난 왜 좋은 거지?
나랑 닮아서?
그것도 그거지만
별거니, 이혼이니, 가정불화니 하는 유쾌하지 않은 문제를
질질 짜고, 우울하고, 축축하게 만들지 않는
그 건조함이 마음에 들어서인지도 모른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서인지도?


그건 그렇고
이 책에 나오는 아빠가 대한민국 평균적인 남편의 모습이라면
아직도 대한민국 여자들의 삶은 참 괴롭고 힘들겠다.
시부모가 치매 걸리면 당연히 며느리가 꼼짝 말고 집에서 봉양해야 하는 건가?
아들딸이 주루루인데도?
내 부모도 아닌데, 라고 생각하는 나는
영락없는 가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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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6-01-29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흐 너무나도 솔직한 깍두기님. 제 모습이랑도 맞을것 같네요~~ 뭐 나이는 제가 한살 어립니다만...호호호
전 시댁이 옆집인지라 낮에 시댁가서 일하고, 저녁 먹고 집으로 다시 왔으며, 내일 아침에 다시 가야할 몸이지만 깍두기님은 어케 이시간에???

게으름이 2006-01-30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그때 찬밥먹어서 지금 장이 안좋은가봐 ^^

숨은아이 2006-01-30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깍두기님, 올해도 두 남자 지휘하며 거뜬히 차례상 차리셨나요? ^^

깍두기 2006-02-01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명절은 잘 보내셨나요? 제 답글이 너무 늦었네요.
가희가 님의 모습은 아닐 것 같은데....제가 본 바에 의하면^^

게으름이님, 남 탓 하지 말고 술이나 줄이세요.

숨은아이님, 그거이.....^^;;; 님은?

2006-08-22 2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파의 왕따 일기 파랑새 사과문고 30
문선이 지음, 박철민 그림 / 주니어파랑새(파랑새어린이) / 2001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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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 동화는 놀라우리만치 아이들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담고 있다.
여기서 묘사하는 왕따 사건은 우리반, 내 옆반에서 올해, 또는 작년에 벌어졌을만한 일들이며
등장인물의 심리나 행동묘사는 감탄스러울 정도로 내가 만나는 아이들의 모습을 닮아 있다.

미희라는 아이가 슬슬 '파'를 만들고 중심인물이 되어가는 과정,
공부도 잘하고 패션감각도 있고, 카리스마가 있어서 주위에 항상 친구를 몰고 다니는 미희라는 아이는
초등학교 교실 어느 반에나 들어가 보면 비슷한 아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인 정화도 그렇다.
중심세력에 끼고는 싶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나서지도 못하고
조용히 속으로 동경만 하면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아이, 많이 본 모습이다.
미희의 주변 아이들도 그렇다.
반에서 영향력이 커진 아이 주변에서 친위대를 형성하는 아이들은 꼭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4학년인데
그 즈음부터 시작해서 여자애들이 패거리를 만들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한번 무슨 '파'가 형성이 되고 나면
담임교사는 골머리를 썩는다.
남자아이들의 보이는 데서 주먹 날리는 단순한 싸움과는 달리
이런 경우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암투가 장난이 아니다.

내가 특히 이 책에서 감탄한 것은 여자아이들의 화장실 문화에 대한 묘사이다.
여자애들은 화장실을 자신들만의 친교공간으로 사용하는데
친한 친구들끼리 할말 있으면 공부시간에 화장실 간다고 하고 나가는 작전을 쓰기도 한다.
심지어는 같은 칸에 같이 들어가는 것이 우정의 돗수를 나타낸다고 생각하는지
둘셋씩 짝지어 한칸에 한꺼번에 들어가기도 한다.
여자애들의 인간관계의 각종 시소게임 및 밀고 당기기가 아마 화장실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이 책에서도 '양파'들은 화장실에서 자기들의 우정을 확인하고
할 얘기가 있으면 화장실로 불러낸다.

'양파'들이 우정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다른 아이들을 배척하는 모습,
자기들끼리 유치한 의식을 치르는 모습,
대장격인 미희의 부당한 횡포에도 아무 말 못하고 비위 맞추는 모습,
부당함을 느끼면서도 소외될까 두려워 대항하지 못하는 모습 등은
아이들의 단체생활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장면이며
그럴 때마다 난감함과 서글픔을 느끼게 된다.

작가는 그 안에서 억울함과 두려움, 자기자신의 비겁함 때문에 괴로워하는
(미희의 말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 억울함,
나도 왕따되지 않을까 두려워 하는 마음,
왕따되는 친구를 변호하고 놀아주지 못하고 자기도 왕따의 대열에 합류하는 비겁함)
주인공 정화의 심리를 따라가는 작가의 정확한 시선이 감탄스러웠다.
마치 정화의 일기장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 외에 정화가
아빠를 자랑스럽게 여기지 못한 죄책감에 괴로워서
울면서 잠이 드는 장면의 묘사는 정말 훌륭했다.
아이들의 심리를 정말 잘 아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마지막을 해피엔딩으로 끝마치지 않는다.
왕따로 괴롭힘을 당하던 정선이는 전학을 가고
미희의 잘못을 아무도 묻지 않는다.
그러나 깨끗하고 깔끔하게 끝내는 것보다
그것이 더 생각할 거리를 책을 읽는 어린이들에게 제공하리라 생각한다.
내가 주인공이라면 앞으로 미희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내가 미희라면 이제 어떻게 하는게 옳을까?

이 책을 읽으며 아이들과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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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6-01-26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왕따가 중학교로 오면 폭력성까지 동반하게 됩니다. 참 난감하죠. 자기 반에 이런 경우가 생기면 담임은 그야말로 1년 내도록 이 아이들 뒤치닥거리에 시달리게 되고.... 그래도 미리 알경우에는 그나마 다행인데 그게 여학생들의 특성상 눈에 띄지 않고 은밀히 진행될때는 문제가 커지는 경우가 많아요.

깍두기 2006-01-26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등학교는 그래도 아직은 자잘하게 일을 벌이죠^^
그래도 반에서 사소하게라도 저런 일이 일어나면 괴로워요. 무엇보다 아이들이 안 이뻐 보여서....

반딧불,, 2006-01-26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전율을 느끼면서 읽었었어요.
...

깍두기 2006-01-26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반딧불님. 우리가 역시 눈이 일치하는군요.
좋은 작품을 보는 눈이 있달까.....^^

반딧불,, 2006-01-26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깍두기님 그게 아니라..
저희는 심리묘사와 아이들과 가까운 책에 열광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작품을 그닥 안좋아하더라구요..^^

깍두기 2006-01-26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님, 저는 현실과 동떨어진 거 아주 좋아해요. (판타지 앤드 sf 팬이잖아요^^)
근데, 현실적인 얘기를 썼는데 그게 어딘가 어색하고 잘 안 들어맞으면, 그건 또 엄청 싫어요^^

반딧불,, 2006-01-27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오해받게 글을 썼군요.
맞아요. 제말이 그거여요. 현실적인 얘기에서 동떨어진 작품은 아무리 좋다고 극찬을 해도 싫여요.

깍두기 2006-01-27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님, 별님.
우리 모두 비슷한 생각을 약간씩 다르게 표현하고 있는 듯.
하여간 이 책은...놀라웠어요^^
 
생쥐 기사 데스페로 비룡소 걸작선 39
케이트 디카밀로 지음, 티모시 바질 에링 그림, 김경미 옮김 / 비룡소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읽으면서 어쩐지 심상치가 않다고 했더니 내가 너무도 감명깊게 보았던 <내친구 윈딕시>의 작가였다. 그럼 그렇지~

얘들아, 너희들이 이런 질문을 할지도 모르겠구나. 사실 이렇게 물어야만 하지. 아주 자그마하고 약골이면서 커다란 귀를 가진 생쥐가 '피'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공주와 사랑에 빠지다니 얼마나 우스운 일이야 하고 말이야.
대답은......."그렇다"야. 물론 우스운 일이지.
사랑은 원래 우스꽝스러운 거야.
그러나 사랑은 멋지기도 하지. 그리고 강하고. 데스페로가 공주를 사랑하는 일이 이런 모든 사실을 곧 증명해 줄 거야. 사랑이란 게 강하고, 멋지며, 우습기도 하다는 것을 말이야.

엄청 약골로 태어나, 생긴 것도 평범하지 않아 부모에게 '절망(데스페로)'란 이름을 받은 우리의 주인공 데스페로는 어처구니없게도 공주님과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다. 그러니 동화는 이 둘이 '그후로도 오랫동안 행복하게' 해 주어야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보통은 생쥐기사 데스페로가 엄청난 지혜와 용기로 눈 앞에 나타나는 적들을 챙챙 물리치고 공주님과 키스를 해서 잘생긴 왕자가 된다......정도?

그런데 이 동화에서 생쥐기사의 '눈앞에 나타나는 적들'은 마냥 미워할 수가 없다. 작가가 그들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너희들은 시궁쥐가 마음이 없다고 생각했니? 그렇지 않단다.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마음이 있지. 살아 있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마음을 다칠 수가 있어.

이 동화의 주요 악역인 시궁쥐, 그 역겹고 더러운 시궁쥐의 마음 깊은 곳까지 쓰다듬는 작가의 손길 때문에 이 이야기는 식상한 선악이분법 구도를 훌쩍 넘어 어린이들에게 인생의 진실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해 주고, 그 진실이 쓰기도 하고 시기도 하지만 결국은 우리의 영혼을 달래주는 닭고기 수프라는 걸(이야기에서 수프는 아주 중요한 그 무엇이다) 조근조근 말해 주는 것처럼 여겨진다.

물론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이렇게 느낀 점을 콕 찝어내어 이야기하진 못할 것이다. 그러나 말로는 못해도 느낄 거라 생각한다. 뭔가 뭉클한 감정을.

이룰 수 없는 일이야. 내가 원했던 건 약간의 빛 뿐이었는데. 그래서 공주를 여기 데려온 건데. 정말로, 아름다움을 조금 가지려고...... 나만의 빛을 가지려 한 건데.

라고 말하는 시궁쥐에 대한 뭐라 말할 수 없는 연민을.

얘들아, 내가 보기에 용서는 사랑과 아주 비슷하단다. 강하고 멋진 거야.
그리고 우습기도 하지.
어쨌든 우습지 않니? 아들을 죽음으로 내몬 북을 두드린 바로 그 아빠가 아들에게 용서를 구하다니. 생쥐가 그런 배신자를 용서한다고 생각하면 우습지 않아?
하지만 데스페로 틸링은 아빠에게 이렇게 말했어.
"아빠, 아빠를 용서해요"
데스페로는 그 말을 하는 것이 가슴이 둘로 쪼개지지 않을 단 한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했단다. 얘들아, 데스페로는 자기 자신을 구하려고 그 말을 한 거야.

용서하는 자와 용서받는 자에 대한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공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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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바람 2006-01-10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요, 솔직이 요즘, 이렇게 따뜻한 이야기가 더 버거워요. 이걸 전달하는 것이 어쩐지 씁쓸하거든요. 아이들도 알거든요.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쯤은. 으음~~ 그래도 꾸준히 들려줘야겠지요... 참, 어려워요.

깍두기 2006-01-10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돌바람님. 현실은 척박하지요. 사람들도 점점 사나워지고요.
그래도 이 책은 현실을 마냥 외면하고 있진 않아요.
저는 그냥 이 책을 읽으면서....연민의 바다에 푹 빠졌다가 나온 느낌이랄까....
아이들은 또 신나는 모험으로 읽을 수도 있어요.
좋은 동화의 장점이죠. 누가 읽어도 재밌고, 각자에게 맞는 메시지를 주는 것^^

바람돌이 2006-01-10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멋진건지 아니면 깍두기님의 리뷰가 멋진건지.... ^^
깍두기님의 리뷰를 보면 이 책을 꼭 읽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솟구치네요. 요즘 뭐든지 보관함으로 일단 나르고 본다는 말씀... ^^

깍두기 2006-01-10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멋진 거죠 물론^^;;;(돌 던지지 마란 말이야!!!!)
이 작가 책 두권 봤는데
이 책과 <내 친구 윈딕시> 둘다 참 괜찮습니다.
애들은 좋아할지...감수성이 풍부한 애들은 표현하기 힘든 무엇인가를 느낄 것이구요.
문장이 쉽기 때문에 독서수준 높지 않아도 금방 읽을 것 같습니다.
4학년 이상 권장^^

돌바람 2006-01-10 0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돌이 어때서 던지고 그러세용^^*
역시 깍두기님한테 물어보길 잘했네요. 저도 그러려구요. 헤헤

ceylontea 2006-01-10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앙.. 제가 읽고 싶어지는데요..(아침부터 지름신이 오시네.. --;)

반딧불,, 2006-01-10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론티님과 막상막하 지름신..등록이옵니다. 질질질~~(그분에게로 끌려가는 중..)

깍두기 2006-01-10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바람님, 앗, 죄송합니다^^
근데 저한테 뭘 물어보셨지?^^;;;;

실론티님, 반딧불님. 그분께 반항하시면 안됩니다^^
 
나는 입으로 걷는다 웅진책마을 8
오카 슈조 지음, 다치바나 나오노스케 그림, 고향옥 옮김 / 웅진주니어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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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짧고 글씨도 큼직큼직한 책으로 1학년부터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감동은 나이제한이 없다.

혼자서는 일어날 수도 없는 다치바나.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자 아무 거리낌없이 '오늘은 우에노 집에나 가볼까?'라고 생각한다.
엄마는 다치바나를 집앞 인도에 침대 째로 내놓고 잘 다녀오라며 들어가 버리신다.
(이 대목에서 엄청 황당)
그러나 다치바나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는다.
입으로 걸으면 되니까.
지나가는 사람에게 가는 데까지만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그렇게 우에노 집에 갈 때까지 다치바나는 여러 사람과 만난다.
그 중에는 이해심 많고 따뜻한 사람도 있지만 너무도 편협한 사람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치바나의 침대차를 밀어준 사람들 모두는 위로와 치유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다.
어쩌면 인간이란 한명도 빼놓지 않고 그것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위로와 치유 말이다.
다치바나는 그들에게 그걸 준다.
그가 살아가는 모습 만으로 그들은 위로를 얻는 것이다.

장애인이란 '우리가 도와야 하는 불쌍한 사람'이 절대 아니다.
그들은 매우 존엄하며, 존경스럽게 시련을 이겨내고 있는 우리의 이웃이고
그 존재만으로도 우리에게 긍정의 힘을 이끌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가족들이 그 소년을 보살펴 주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가족들도 소년으로부터 힘을 얻었던 것입니다. 소년은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살아갈 힘을 주었다고 할 수 있겠죠.
신기하죠! 인간은 참 멋지죠!

바로 이렇게 말이다. 작가가 '신기하죠! 인간은 참 멋지죠!'라고 하는데 마음 속에서 어찌나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라오던지!  

이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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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6-01-01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책이네요. 존경스럽게 시련을 이겨내는 사람으로 장애우들을 볼 수 있는 시각. 새해에 사서 내년에 우리반 아이들한테 읽혀야겠네요. ^^

깍두기 2006-01-01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바람돌이님. 책은 아주 좋은데요. 중학생들에게 읽으라 하면 시시하다 할 지도 모릅니다. 아마 10분만에 읽을 수 있을 거예요. 같은 작가가 쓴 청소년용 책도 있는 것 같으니 참고하세요^^

바람돌이 2006-01-02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우리반 아이들의 반은 이 10분정도 분량의 책이 딱 맞을겁니다. 헤헤~~~

깍두기 2006-01-02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우리 딸도 그래요^^(중학생 큰딸)

조선인 2006-01-02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찌잉. 새해 아침에 듣기에 너무 멋진 말이에요. ㅠ.ㅠ

깍두기 2006-01-02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저도 다이어리 첫장에 저 말을 쓰니 너무 좋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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