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점심시간 - 우리가 가장 열심이었던 날들
김선정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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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쓴 에세이를 그렇게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읽으면서 이렇게나 공감과 동료의식을 느낀 적은 없었다. 다 어쩐지 나와는 인간의 종류가 다른 듯 지나치게 훌륭하거나, 뼈를 갈아 최선을 다하거나, 어린이를 온 마음으로 사랑하는, 파파어웨이의 선생님들이고, 읽고나면 어쩐지 내가 좀 초라해지고 이렇게 살면 안될 것 같은 자괴감이 일었다. 사실은 뭐 나도 그닥 못난 선생은 아닌데 말이다. 보통은 된다고 자부한다.

아, 내가 동료의식을 느꼈다고 해서 저자 김선정 선생님이 보통 정도의 교사라는 건 절대 아니다. 선정 선생님은 훌륭하다. 그러니 어린이들과의 생활에서 이런 통찰을 뽑아내어 글을 쓴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는 선정 선생님이 그런 통찰을 얻기까지 겪었던 실수와 실패, 그 과정에서 느꼈던 낯뜨거움, 부끄러움 등이 과장없는 문체로 기록되어 있다. 뭐 대단히 부끄러워하며 쓰지도 않았다. 그냥 그랬다는 거다. 누구나 그랬을 테니까. 그런 자신을 담담히 돌아보며 선정쌤은 성장한다. 성장한 선정쌤은 으시대며 말한다.

ㅡ이것이 성장이라는 것이다. 보았느냐, 18년 전 5학년들아

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대목을 읽고 나는 폭소를 터뜨렸는데, 단순히 웃기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런 점이 선정쌤의 훌륭한 점이다. 유머 말이다. 아이들이랑 놀이를 하면서 '목숨을 걸자'고 하고, 결근한 날 선생님을 보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이를 '원수1호'로 지목하고, 집에 가는 아이에게 '대걸레에 걸려 넘어져라!고 저주를 걸고, 친구가 혼나면 기뻐하는 아이들에게 '너희들 생일에 생일인 사람 빼고 나머지를 모두 혼내줄게'라고 말하는 선생님. 정말 어이없고 이상한 선생님인 것 같지만, 잘 생각해 보세요. 저런 선생님의 교실에서 공부하고 싶지 않나요? 왠지 모르지만 그러고 싶잖아요? 내 자신이, 딱딱한 공교육의 교육과정과 책상과 의자와 지켜야 할 예의범절과 질서(나쁘다는 게 아닙니다)를,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주는 저런 기이한 언행의 역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이 대목에서 가장 동료의식을 깊이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이 책에는 아이들의 학교생활이 잘 드러나 있는데, 어떤 내용을 배우는가 하는 공식적인 교육과정 말고 학교생활 전반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며 어떻게 성장해 나가는지 즉, 잠재적 교육과정을 실감할 수가 있다. 내 아이가 학교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한 부모가 보면 정말 많이 참고가 될 책이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다가가 무슨 말을 거는지, 수업시간에 손을 들고 어떤 엉뚱한 말을 해대는지, 친구랑은 무슨 이유로 싸우는지, 1학년 코흘리개가 6학년 초등교양인으로 어떻게 성장해 나가는지, 막연히 걱정하면서 궁금해했던 교실 장면을 눈에 그리듯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모르면서 막연히 걱정했을 때의 불안감이 책을 읽으면 많이 줄어들 것이다. 아, 다들 애쓰고 있구나. 내 아이도, 선생님들도...

그렇게 안심한 마음으로 집에 오는 아이도 잘 다독여주고 고군분투하는 담임선생도 좀 이해해 줄 수 있지 않을까...ㅋㅋㅋㅋㅋㅋ (사심 가득한 리뷰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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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1-20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깍두기님이닷!!!
우리 완전 오랫만 맞죠? 다시 뵈니 반가워요. ^^ 리뷰로 다시 돌아오시니 더 반가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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