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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결혼식을 보고 다녀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벨훅스의 사랑은사치일까를 읽으면서 밑줄을 긋는다. 

내 분열의 어딘가를 매만지는 글씨들 속에서 위로받고 있는 데, 옆자리의 시선이 느껴진다. 티비를 보다가, 창밖을 보다가, 가방을 뒤적이다가, 사실은 읽는 나에게 무언가 말걸고 싶어하는 눈치의 스마트 폰에 익숙하지 않은 할머니. 

나는 엄마가 생각나서 왈칵 눈물이 터질 뻔했다. 페미니즘을 읽는 것의 다른 말은 엄마를 생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주 눈물이 난다. 다섯시간의 버스. 다섯시간의 고독. 종종 서울을 올라오던 우리 엄마도 이런 모습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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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노동계급이었던 벨훅스의 엄마는 독서를 장려하다가도 책에서 그녀를 떼어놓고 싶어했다. “책들이 그녀를 망치고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하며 좋은 주부가 되기 위한 여성적 덕목을 파괴”할 수도 있다며.

사실 맞는 말 이다. 
언제부턴가 나와 우리 자매들은 처지에 비해 ‘너무 과계몽 된거 같아 힘들다’며 스스로의 앎을 비아냥 거리곤 하니까. 슬프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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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여자는 정말로 미쳐버리는 걸까. 확실히 독서는 나를 “인간”이게 하고 동시에 주변의 인간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 같다. 자유롭게 하고 그래서 불안하게 한다. 숨쉬게 하고 아프게 한다.

곁의 속도가 나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했을 때, 괴로웠지만 분리와 고독을 자처해서라도 스스로의 속도를 선택했었다. 
관계를 조율할 수 없을 때, 어쩌면 그 관계를 (떠나 보낼 수 없이) 너무 사랑하게 되었을 때, 일종의 자아분열을 겪으며 너무 진지하게 너무 많은 생각을 했었다. 사실 요즘이 그러하다.

“반항할 힘은 있었으나 자유로울 힘은 없었던” 젊은 날의 벨훅스. 이 불안을 이기고 한 걸음 내딛기 위해선 더 힘이 커져야 하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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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너무 사랑하거나 너무 똑똑하면 미친다는 

저주는 오래부터 있었다. 여전히 그 저주는 힘이 세다.
무시하기 어렵다.

나는 더 사랑하고 싶고, 더 똑똑해지고 싶다.
다행이 아직까지 미치지는 않았다.
더 똑똑/사랑해도 된다는 뜻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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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4-15 12: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똑똑한 여자는 생각이 많습니다. 서로 상충되는 생각들이 부딪히게 되면 내적 갈등에 겪게 됩니다. 이런 혼란스러운 내적 상황을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면 좋은데, 그런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똑똑한 여자는 고독한 존재입니다.

공쟝쟝 2018-04-16 08:41   좋아요 0 | URL
페미니즘 읽을 수록 남친이랑 멀어지고 있어요 힘드네요 ㅠㅠ
 
부장님, 그건 성희롱입니다!
무타 카즈에 지음, 박선영 외 옮김 / 나름북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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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알못의페미니즘책추천 

3번째 책은 역대급으로 쉬운책이다
.......... 음..... 난이도 별반개(☆). 

요즈음의 미투에서 뭔가 억울하지만 그래도, 실수하지 말아야겠다 라는 마음을 먹은 남자들(부장급의 중년 뿐만 아니라도 남자라면 누구라도)이 읽고 공부하기 좋다.

'여자들은 도대체 왜 분명하게 NO라고 말하지 않는가'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부터, '이런것도 성희롱이라고??' 풍부한 예시(남자 입장-여자입장 비교), 심지어 성희롱 가해자로 연루되었을 때 대처법과 (소송까지 안당하려면 이렇게 해라) 좋은 변호사를 고르는 법까지.. 이쯤되면 거의 가해자 입장(!)에서 썼다고 봐도 무방할 만큼 친절하다.

정말 이렇게까지 떠먹여줘야 하나 싶을 정도지만, 그래 모른다는 데(!) 정말로 잘 모른다는 데.. 알려줘야지. (한숨) 가해자가 끝까지 몰라서 제2,3의 피해자가 생기면 안되니까. 지인 중에 미투지목 당하면 어쩌나 걱정되는 사람이 있다면, 사서 손에 쥐어주면 좋겠다. (난 남친에게 주기 위해 읽었다. 응???..)

"(p. 58) 관리자나 교사는 직장 환경, 학습환경을 배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사람의 감정을 ‘이상하다’,‘지나친 생각’이라며 전적으로 부정해버리면 그야말로 성희롱이 되고 맙니다."
"(p. 270) 그래서 제가 깨달은 것은 당사자도 관계자도 성희롱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었다는 것입니다. 나에겐 어떤 문제도 없었다, 나는 ‘누명‘을 쓴 피해자라고 믿고 있는 것 같은 당사자. 당사자 이상으로 사태를 낙관하는 관계자, 멀직이 떨어져 제삼자의 태도를 취하는 것이 ‘중립‘이고 바른태도라고 생각하는 듯한 분들. 실제로 그들은 악의나 이해심과 상관없이 성희롱에 무지하기 때문에 그런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저자는 후기에 본인이 성희롱 2차 피해자 였던 체험을 적고 있다.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에서 일어난 성희롱 사건으로 일을 중도 하차하게 되면서 본인이 성희롱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나역시 피해 당사자가 아닌 상황을 수습해야하는 중간자의 입장에서 속시원하지 못하게 대처했던 경험이 있다. 무지해서 부족했고, 부족해서 무지했었다. 당장 피하고 싶은 상황이 모두 종료되고 몇년이 흐른 후, 페미니즘에 자꾸 눈이 갔던 이유는 그런 까닭이다. 그리고 미투를 통해 알게되었다. 해결되지 못한 상처는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p. 73-75) 둘만 있을 때는 “좋아한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뒤에서 껴안는 상사. 그런데 이 여성은 애처가인데다 아이들도 잘 돌보고 일도 자라는 그 상사에게 호감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그녀의 고민이란 “그가 고백을 하거나 몸을 만져도 아무런 거부감이 없고, 마치 남의 일처럼 사태를 내버려두고 있다”는 것. 성희롱이라고 느껴 혐오감이 일었다면, 이를 거절할 강하나 의지가 생겼을 텐데…. 자신의 ‘경박함’이 이 여성의 고민입니다.
이 상담에서 우에노씨는 “그것은 성희롱”이라고 딱 잘라 답변했습니다. “이 여성은 의지할 상사를 잃을까 두려워 싫은 일을 싫다고 느끼지 않도록 감각을 차단하고 있다. 바로 그것이 뿌리깊은 문제”라고.
(...) 이렇게 “나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 여성이 특별히 자존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흔한 일입니다. 여성은 정말 ‘성희롱인지 아닌지 모르겠’는 겁니다. (...) 아마도 이 사례엔 복잡 미묘한 심리가 작동할 겁니다. 이 여성은 스스로 걱정하고 있듯 “무의식중에 상사에게 존경 이상의 마음을 가져 자신의 매력을 알아줬다는 사실에 기쁜”마음이 있는 겁니다. (...) 따라서 이 경우는 객관적으로 보면 성희롱, 하지만 당사자는 꼭 그렇게만은 생각하지 않는 회색지대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느 순간 달라질 가능성은 매우 높습니다. 상사의 행동이 점점 강도가 세져서 “모르겠다”로 그치지 않게 될지도 모르고, 상사에게 환멸을 느낄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다른 여성에게도 똑같이 행동한 사실이 밝혀지는 것이 흔한 계기입니다). 그 때 여성은 “지금까지 오랫동안 내게 해온 것은 성희롱이었다”고 느끼게 되겠죠."

"(p. 147) 존경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힘은 대놓고 보수와 징벌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 말을 듣게 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합니다. 상대방을 신뢰하는 마음, 존경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상대방의 말을 듣는 태도를 만드니까요.
남성 쪽은 자신에게 이런 힘이 있다는 것을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여성 신입사원,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는 여학생 입장에서는 그 남성이 뛰어난 수완가나 우수한 학자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그 남성은 촌스러운 아저씨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샐러리맨 혹은 교수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는 사장님이나 거래처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가정에서는 그다지 존재감도 없습니다. 그런 자신이 상대방이 싫은 일이라도 무조건 따르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나에겐 그런 힘이 있다’고 평소 생각하는 사람은 사회인의 자격이 없는 자아도취형 인간입니다). 더군다나 젊고 예쁜 여성이 자신에게 그렇게 생각해준다고는 미처 상상도 못합니다. 여기에서 합의를 둘러싼 착오가 생깁니다."



생각보다 많은 여성들이 존경을 사랑으로 착각한다. 그 존경의 시선을 ‘자신의 매력‘으로 셀프 착각해, 그 여성을 성적으로 취할 허락을 얻은 듯이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힘이란, 가지고 있는 쪽에서는 그것을 잘 모른다. 또한 상대적이다. 본인 스스로가 종종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해도 누군가에게는 선배고, 상사며, 금전을 더 가진 권력자다. 지위나 나이차를 이용한 은근한 내리누름. 혹은 그것에 따라 오는 선망의 시선. 공기처럼 포진 되어있는 위계에 ‘성‘이 개입되면 언제고, 문제는 생길 수 있다. 위계에 따른 갑질문화, 만인이 만인을 서열로 나누는 문화가 팽배해져버린 한국사회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당신은 언제고 생각해야한다. 당신이 공기같이 누리고 있는 ‘힘‘을 어떤 존재를 침해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지 않는 지.

물론, “전혀 객관성도 없이 단지 상대의 반응이 이상하다고 해서 성희롱이 될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p.58)”다. 그러나 “성희롱에 해당하지 않는다 해도 상대가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사회생활의 당연한 매너(p.58)”다.

이제 껏 눈치는 약자가 강자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봐야 하는 것이었다면, 앞으로의 눈치는 강자가 약자에게 피치못하게 상처주지 않기 위해서 먼저 조심해야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어떨까? 눈치 좀. 제발 눈치 좀.

마지막으로, 궁지에 몰렸을 때 '진지하단' 소리좀 그만했으면...
너의 진지함이 여성이 거절하지 못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자. 전국의 모든 부장들이여 적읍시다. 여성에게는 거절할 권리가 있다!


(p. 105)
이렇게 착각에서 연애 모드로 폭주하는 남성들이 하나 같이 하는 소리란 "나는 진지하다"입니다. .... 여성들을 침대에 밀쳐 넘어뜨릴 대도 "나는 진심이다", "장난치는 것이 아니다". 남성이 진심이든 아니든 여성에게 아닌 것은 아닌 것. 그런 쉬운 것을 왜 모르는지 여성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 그러니 남성은 "나는 진심이다"라며 섹스만이 목적이 아니다, 너를 가볍기 취급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자신의 성실함을 어필합니다. 남성은 그걸로 상대 여성이 안심하고 자신과의 관계를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남성의 ‘진지함’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실제로는 속지 않도록 조심합니다) 그 남성과의 관계를 바라지 않는 여성은 전혀 기쁠 리가 없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여성에게도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 말할 것도 없이 남성이 진지하다고 그것이 여성에게 성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권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진심이다"라는 대사가 성희롱의 면죄부가 된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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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 결혼이 위험 부담인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우에노 지즈코.미나시타 기류 지음, 조승미 옮김 / 동녘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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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띵문이 많았지만 사진 속 구절과 아래 구절이 와닿았다.

˝연애로 결혼했다고 하면서 자신이 고른 남자와 그만한 커뮤니케이션도 못하는 여자가 어떻게 아이와 마주할 수 있겠어요˝ (p.135)
“특별히 소통할 능력이 없어도 부부가 되고, 부부가 되어 부모가되는 결혼이 지금도 계속 되니까요.”(p.136)
˝부부관계는 성인 남녀의 관계니까 그 관계에서 어떤 결과가 돌아오든 자기 책임이라고 해도 괜찮아요. 하지만 아이는 안 됩니다. 자식과 관계를 잘 못하는 어른들이 나오면, 아이에게 영향을 미쳐요. 아이와의 관계는 귀찮다고 해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거든요.˝ (p.148)
˝소통을 귀찮아하는 사람들이 결혼을 안 하게 되었다는 것은 소통 없는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는 경우가 줄어든 다는 얘기죠. 이는 다음 세대에 태어날 아이들을 위해 좋은 일이에요. 소통을 안하는 사람들은 부모가 되지 않는 게 나으니까˝ (p.154)


대체적으로 비혼을 선택하는 사람들 중에서 소통을 어려워/귀찮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렇게 비혼을 많이 선택하면 국가적으로 손실 아니겠냐는 질문에 대한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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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부부가 될자격 부모가 될 자격은 “돈”이나 “자산” 보유량이 1차적 관문이다. 그래서 사랑할 줄 모르고 민주적이지도 않은 이들이 1차적 기준만 패스하면(패스 못해도 사랑한다는 근거로), 자연스럽게 부부와 부모가 되려한다.

쇼윈도우 부부, 남편을 설득하기는 포기하고 소통을 자식에게만 하려는 엄마, 사랑의 매를 때리며 인권을 삭제해 버린 부모-자식관계. 그런 가정에서 자라나 제대로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이 또 가족을 이룬다. 그런 사회에서 자라나는 아이들. 한 개인에게도 불행이지만 그런 가족들이 재생산되고 있다는 것은 가히 재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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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될 수 있을 만큼 건강한 소통능력이 있는가? 자신에게 자문해 보았다.
아직 없다. 나의 배우자로 상정했던 그 역시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소통능력, 있는 그대로 듣는 능력,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정확하게 요구하는 능력. 그것 부터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겠지.

그때까지는 결혼할 생각도 부모가 될 생각도 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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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 - 외롭지 않은 페미니즘
이민경 지음 / 봄알람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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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 길에는 연극배우 엄지영씨의 미투운동을 유튜브로 보면서 눈시울을 붉히고. 늦은 퇴근 길에는 올해는 참 추웠던 2월 이었지, 봄을 상상했다. 곧 꽃이 피겠구나. 그리고 조금은 낙천적이어졌다. 


2월과 함께 시작된 #metoo 운동은 당분간은 지속될 것 같다. 공작에 놀아날 수 있다, 자기 파괴적으로 성과 없이 끝날 것이다, 여러 예언과 걱정이 유행이므로 나도 예언을 해야겠다. 그 치들이 기대하는 모습의 적폐청산은 아닐지라도,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한국사회는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제지 당하지 않아 독버섯 처럼 피어오른 사적인 그 폭력들은 오늘의 대대적인 ‘폭로’앞에서 잠시 움찔 한 후, 얼마안가 나름의 연명을 도모할 지도 모르겠다. 100% 그리 할 것이다. 그들은 바뀌지 않겠지만, 지켜보는 우리는 변한다. 이미 변했다. 특히 지금을 경험하고, 참여하고 있는 보다 어린 친구들이.

가장 사적인 곳에서 횡행하는 성폭력을 포함한, 인식조차 못했던 위계 폭력, ‘암묵적인 동조’ ‘말할 수 없는 분위기’, 우리를 침묵하게 했던 일상의 부당함들을 - 느끼고, 인지하고, 말하고, 싸우는. 어쩌면 자신의 존엄이 훼손되는 순간을 절대 참지 않는 새로운 세대들이 자라날 지도 모른다.

87년 이후에 자란 우리가 아주 조금의 국가에 의한 물리적 폭력도 예리하게 감지해 내고 동시에 참지 못하는 것 처럼. (영화로 보면서도 상상이 가지 않았다. 국민을 오라가라 하면서 불심검문을 하는 경찰이라니.)

그래서 중요하다. 말해지지 못한 여성들에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계보를 그리는 일은. 여성운동이 역사를 감각하며 현실을 바라보는 일은.

#페알못의페미니즘책추천 
2번째는 #이민경 의 #우리에게도계보가있다 (접근,난이도 별 ★☆)

사실 쉬운 책이지만 이민경씨의 책이 그렇듯 다분히 실천적 입장에서 씌어졌으므로, ‘아직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인 사람에게는 선동적이라는 인상을 줄 것 같아 별 반개를 추가했다. 부제는 “외롭지 않은 페미니즘”이다. 일제시대 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여성운동의 계보를 그렸다. 문제집처럼 풀어가는 방식이 새롭다.


"(p.85)
항일운동에 참여한 여성들은 항일운동을 하면서도 집에 돌아와서는 어머니이자 아내로서 가사를 도맡아야 했다. (...)이토록 많은 관문을 넘었음에도, 여성이 이룬 성취는 오직 여성의 성취라는 이유만으로 오롯이 인정받기까지 또 한 번 높은 문턱을 넘어야 한다. 제주잠녀항쟁은 3대 항일투쟁 중 하나임에도, 여성들의 자주적인 항쟁이라는 이유 때문에 ‘감정적인 판단으로 항쟁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아야 했다. 동일방직 노동자는 남편에게 빨갱이라며 맞아야 했다."


형법은 95년까지 “강간과 추행의 죄”를 “정조에 관한 죄”라고 칭했다. 내가 당한 강간과 추행을 현재 혹은 미래의 남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웩, 후지다. 근데 바뀐지 얼마 안됐다.
93년 신정휴 사건이 있기 전까지 우리나라에는 “성희롱”이라는 말 조차 없었다고 한다. 
그럼 그 전까지 성희롱은 뭐라고 불렸냐고?
글쎄.....

몇페이지 안가서 한가지 깨달음이 온다. 아, 그리하여 여성운동을 언어를 획득하는 운동이라고 하는 것이구나. 뭇 남성들이 미러링에 그토록 민감했으며, 기를 쓰고 “여혐”을 “혐오가 아니다”라며 번역을 잘못했네 어쩌네 딴지 걸고, “한남”이란말 쓰지마 빼액-- 했던 것은 자신들의 기득권이 위협받고 있다는 예리한 무의식적 촉수였던 것!! 소오름! 그러므로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여성들의 움직임에 이름 붙이고, 말하고, 쓰고, 그것을 기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작은 승리는 모래 밭에 남는 발자국 처럼, 분명히 존재했으나 금새 지워진다.“

"(p.135-6) 페미니즘은 갓 생겨난 것처럼 여겨지곤 한다. 늘 갑작스럽고 놀랍고 새로운 사상처럼 취급받는다. (...)비슷한 이야기로, 여성에게는 역사가 없다는 말이 있다. 혹은 ‘논의가 발전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똑같은 소리만 되풀이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한계라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그런 ‘똑같은 소리만 되풀이하는’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는 언제나 돌연하고 당황스러운 존재 취급을 받는다. 혹은 현실을 모르고 공허한 소리를 하는 이, 낯선 불청객으로 여겨진다. 느닷없이 나타나 편안하던 세상을 불편하게 만드는 존재다.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는 처음부터 있었다. 그리고 앞에서 보았듯 세상은 분명 변했다. 정말 낯설던 이들의 목소리는 이제 조금 덜 낯설어졌다. 여전히 오래전의 그들과 똑같은 소리를 해야만 하는 이들이 있지만, 오늘날엔 조금 덜 외로워졌다.

(p.144) 우리는 앞으로도 뒤로도 간다. .. 상식은 그렇게 때로 천천히, 때로 빠르게 세를 넓혀간다. 운 좋게도 지금 우리는오랜 시간에 걸쳐서야 느낄 수 있었을 그 흐름을 눈 앞에서 압축적으로 보고 있다. 어떤 목소리는 설득력을 잃고 어떤 목소리는 힘을 얻어가는 일관된 흐름을 목도하는 일이, 당장 누구의 목소리가 더 힘이 센지 가려내는 일보다 중요하다."

먹고 사는 일 때문에 전공과 관련 없는 근현대사 공부를 종종 해야할 때가 오는 데,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역사공부를 하면서 좋은 것이 하나 있다. ‘고마움’에 대한 감각이다.

내가 살지 않은 어떤 시기의, 내가 모르는 어떤 사람들이, 보이지 않은 희생과 헌신을 했기에, 이나마라도 지금의 내 삶이 존재하는 구나. 좋든 싫든 나는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구나. 미안하고, 숙연하고, 감사한 마음.

이 책을 읽고 그 고마움이 네 배가 되었다. 역사 책에서는 잘 적어 주지 않았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새롭게 발견하게 된 것 만으로도 원래의 감사에서 x2가 되었고, 내가 여성인지라 그 기쁨이 바로 내 역사로 느껴져 두배 더 이득인 기분이었다. 언니들! 스스로를 위해 싸워주어 고마워요!

"(p.161-62) 더운 여름에 소기의 성과를 거둔 이화여대 시위 현장에 대한 소문 하나가 흥미를 끌었다. 이대생들이 구비해둔 물품이 넉넉하고 디저트까지 제공되어 현장이 아주 쾌적하더라는 말이었다. 또한 이들의 시위는 대표가 없이 모두가 함께 참여하느라 의사결정이 느리게 진행된다는 점에서 ‘느린 민주주의’로 불리기도 했다.
(...) 기시감이 들었다. 비슷한 무렵에 진행되던 페미니즘 펀딩 프로젝트는 대부분 순조롭게 성사되고 있었다. 여성들끼리 일을 진행하면서 따로 대표를 두지 않았던 다른 경험이 떠올랐다. 이들의 방식이 우연하게도 친숙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아나가는 와중에 알게 되었다. 친숙함은 우연이 아니었다.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을 뿐 우리는 원래부터 이랬다. 동일방직의 부당해고가 알려지자 사람들은 해고자들을 응원하며 생리대를 비롯한 필수품을 전달했고, 차미리사가 순회강연을 할 때 여성들은 쌈짓돈을 모아 학교를 세웠다. 찬양회에서 세웠던 학교도 또 다른 학교도, 국가가 지원하지 않았지만 사비를 털어 운영하다가 망하곤 했다.
역사에서 여성의 경제적 지위는 언제나 변함없이 열악했다. 그러나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고 여력이 되는 대로 지원했다. 그리고 대표가 없던 것도 역사가 길다. 정해진 규칙이나 대표 없이 게릴라로 행동했던 영 페미니스트의 기록, 대표를 색출하려는 외압에 맞서 주동자는 없다고 소리쳤던 동일방직의 시위를 찾아냈다. 여성들의 움직임은 언제나 새롭고 낯설고 당황스럽게 받아들여졌지만, 근본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일부러 계승하지 않았어도 자연스럽게 이전의 움직임을 닮아 있었다. 여성은 여성으로서 자신의 계보를 알지 못한 채로도 끊임없이 움직였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우연한 듯 반복되는 우리의 원형을 찾았다. 마치 단 한 번뿐인 듯 계속 이어지는 것, 이것이 우리의 움직임이었다."

책의 마지막 부분.
기록 될 기회 조차 박탈 당한 여성의 움직임이, 이렇게나 비슷하게 이어지고 있었다는 것이 감동적이어서 책을 덮고 울었다. 그렇게, 없는 것 처럼 지우려고 해도, 우리는 있었다.

어제 뉴스에서 엄지영씨가 말했다. “오달수가 그 일을 없던 일 처럼 말하는 것을 용서할 수 없었다”고. 없는 일이 아닌 데, 말하지 못하게 했기에, 정말로 없는 일 처럼 되었던 여성들의 역사와도 맥이 닿아있는 증언이었다. 그녀가 “내가 침묵해서, 가르치는 학생들이 이 일이 없는 줄 알고 모르고 연극 생활을 하다, 같은 일을 겪게할 수는 없어서 공개했다”며 울먹거릴 때, 나도 같이 울먹거렸다. 아마, 영상을 본 대다수의 여성은 그랬을 것이다. 공감하려 애쓰지 않아도 우리는 저절로 공감한다. 쥐어짜낸 용기가, 그 억 막히는 고백의 순간이 얼마나 아렸을 지.

없지 않다. 우리에겐. 역사가 있고, 계보가 있고. 움직임이 있었고.
그것이 이어져 오늘의 우리들이 있다.
있었다.

있는 것을 ‘있지 않다’고 우겨온 자들의 오만한 세계에 천천히 금이가고 있다. 
겨울은 물러나고 봄이 온다. 조금은 견디기 힘들었던 2월이 가고. 3월이다. 꽃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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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18-03-01 16: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공장쟝님 리뷰를 읽다가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미투운동 정말 좋아요. ㅠㅠ

공쟝쟝 2018-03-02 15:01   좋아요 1 | URL
˝없지 않고 있다..˝ 라는 말을 하는 것이 왜 그렇게 목소리가 떨리는 것이고 눈물을 쏟아야 하는 것이 되었는지요. ㅜ_ㅜ 분명히 세상은 더욱더 좋아져가야 한다는 생각입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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