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결혼식을 보고 다녀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벨훅스의 사랑은사치일까를 읽으면서 밑줄을 긋는다.
내 분열의 어딘가를 매만지는 글씨들 속에서 위로받고 있는 데, 옆자리의 시선이 느껴진다. 티비를 보다가, 창밖을 보다가, 가방을 뒤적이다가, 사실은 읽는 나에게 무언가 말걸고 싶어하는 눈치의 스마트 폰에 익숙하지 않은 할머니.
나는 엄마가 생각나서 왈칵 눈물이 터질 뻔했다. 페미니즘을 읽는 것의 다른 말은 엄마를 생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주 눈물이 난다. 다섯시간의 버스. 다섯시간의 고독. 종종 서울을 올라오던 우리 엄마도 이런 모습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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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노동계급이었던 벨훅스의 엄마는 독서를 장려하다가도 책에서 그녀를 떼어놓고 싶어했다. “책들이 그녀를 망치고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하며 좋은 주부가 되기 위한 여성적 덕목을 파괴”할 수도 있다며.
사실 맞는 말 이다.
언제부턴가 나와 우리 자매들은 처지에 비해 ‘너무 과계몽 된거 같아 힘들다’며 스스로의 앎을 비아냥 거리곤 하니까. 슬프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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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여자는 정말로 미쳐버리는 걸까. 확실히 독서는 나를 “인간”이게 하고 동시에 주변의 인간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 같다. 자유롭게 하고 그래서 불안하게 한다. 숨쉬게 하고 아프게 한다.
곁의 속도가 나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했을 때, 괴로웠지만 분리와 고독을 자처해서라도 스스로의 속도를 선택했었다.
관계를 조율할 수 없을 때, 어쩌면 그 관계를 (떠나 보낼 수 없이) 너무 사랑하게 되었을 때, 일종의 자아분열을 겪으며 너무 진지하게 너무 많은 생각을 했었다. 사실 요즘이 그러하다.
“반항할 힘은 있었으나 자유로울 힘은 없었던” 젊은 날의 벨훅스. 이 불안을 이기고 한 걸음 내딛기 위해선 더 힘이 커져야 하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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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너무 사랑하거나 너무 똑똑하면 미친다는
저주는 오래부터 있었다. 여전히 그 저주는 힘이 세다.
무시하기 어렵다.
나는 더 사랑하고 싶고, 더 똑똑해지고 싶다.
다행이 아직까지 미치지는 않았다.
더 똑똑/사랑해도 된다는 뜻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