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창문 열고 오소소 추워서 놀랐다.
다시 #소중한일상 으로 복귀 📚
일상 = 나의 책 더미들…
다음 주 반납일까지 뽀각뽀각 쪼개 먹어야 하는 #자크라캉 과의 한 주를 만들고저 계획 중이다.
첨부한 뒤 페이지들은 라캉을 분석했던 뢰벤슈타인과 라캉의 관계 이야기인데, 흥미로운 부분이라 올려둔다.
“(136) 라캉은 자유를 구속받지 않는 욕망의 행사라는 측면에서 이해했지만 뢰벤 슈타인은 자유를 정반대 입장에서 바라보았다. 뢰벤슈타인에게서 자유는 싸워서 쟁취해야 할 권리였으며 편협함과 맞서 승리해야 획득할 수 있는 것이었다. 자유가 없었기 때문에 자유의 가치를 알았던 그는 욕망에 따르기 위해 자유를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소형차를 몰면서 트럭이 양보하도록 그냥 달렸다는 라캉 자신의 이야기를 아마도 분석 상황에서 뢰벤슈타인에게 전한 것 같은 일화(정확하지 않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마치 내 꿈인 것처럼 생생하게 읽었었다.
책을 통해 다른 앎에 가닿고자 한다면(대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약간은 역한 부분이 나왔을 때 판단을 중지하고 먼저 마음을 살펴보는 방법을 추천한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밀어냈거나, 내가 감정적으로 합의할 수 없는 것들이 대체로 나 스스로의 지적 성장을 막는 원인이 된다. 물론 독서를 통해서 꼭 성장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내가 끊임없이 책을 일상으로 가져오는 까닭이 그거니까. (잔소리)
다시 돌아가서. 때로는 제 분석가이자 스승마저도 제껴버리는 라캉의 과한 오만함이 묘하게 거슬리면서도 점점 좋아진다. (더 읽어봐야 알겠지만 또한 같은 도전이 닥쳤을 때 그의 태도는 어떠했을까.) 대형 트럭을 들이받아 전복되어버리는 상상에 대한 두려움에 3초 정도 머물렀고, 그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어쩐지 왜 때문인지) 나는 그 일화가 좀 서먹하고 외로웠다.
아주 범박하게 말하자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마주한 대형 트럭을 가뿐히 기싸움으로 제압해 버리고 룰루랄라 다음의 운전을 계속하는 것이겠지만. 이후 내가 갈 그 길은 정해져 있지 않다.
나에게 자유는 (뢰벤슈타인처럼)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것이었고.
나에게 욕망은. 기껏 획득한 자유를 반납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고도 생각 했다.
중요한건 언제나 시점인데. 더 싸워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만 싸워도 되는 걸까. 그건 나도 알 수 없고 아무도 알지 못한다. 욕망하는 주체는 그 시점을 잘 아는 주체라기보다는 그 선택을 감당할 수 있는 주체일 테지만. 감당이 제 위치를 망각한 허세여서는 곤란할 터. 🤔
🍂가을이 느닷없이 닥쳤기 때문에 빨리 적응을 해야겠다.
어느 날 그가 소형자동차를 운전하면서 터널을 지나고 있었을 때 반대편에서 트럭이 정면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계속 가기로 결심했다. 그러자 트럭이 양보했다. 그는 뢰벤슈타인이 둘 사이의 전이 관계를 깨닫게 하려고 이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그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 결국 그는 뢰벤슈타인이 프랑스에서 결코되지 못했던 지식사회의 대가가 되었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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