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지] 선택을 선택하지 않는 방법도 있다는데요?

어제는 정희진처럼 쓰기의 대미를 장식하는 5권 <새로운 언어를 위해 쓴다>를 재독했다. 작년에 읽을 때는 ‘공부’에 대한 의미를 재의미화하는 부분에 꽂혀서 읽었는 데, 이번에는 논쟁의 구도나 지식의 전제 같은 부분들이 눈에 더 많이 들어왔다. 차피 또 읽을 거라서 독후감을 쓸까 말까 하다가 이번에 읽으면서 가장 눈에 들어온 부분을 좀 적어두고자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선생님이 줄곧 주장해오신 여성혐오라는 단어를 미소지니misogyny로 바꿔 부를 데에 대한 요청인데… 지금까지 난 이 주장에 동의할 수 없었고. 여전히 “그건 미소지니예욧!!!”라는 말로는 저들의 말(과 행동)을 무력화시킬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으잉~? 지니??🧞‍♂️ 소원을 말해봐??! 할 것이 뻔함. 그에 비하면 “그건 여성혐오예욧!!!” 가해자가 되길 꺼려 하는 세상에서 거북함과 거부감을 끼얹는 공격의 언어로 매섭고 날카롭지 않나? 어차피 말로 상처주는 세상. 나도 니들을 상처주고 싶은 데 말입니다.  


그러나. 이 단어가 여혐/남혐의 이항대립 구도를 강화시켜서 더 중요한 다른 문제를 은폐하게 돼버리는 현실에 대한 지적은 중요하다. 용어를 바꿔쓰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번에 내 눈에 *쎄게* 읽힌 부분은 바로 이 문장들이었다. 


-(180) (특히 20, 30대를 중심으로) 사안에 따라 젠더 문제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데, 모두 ‘여혐, 남혐’으로 몰고 간다. 남성은 남성대로, 여성은 여성대로 서로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나 역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매일 놀란다. 일단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젠더 갈등, 젠더 전쟁으로 미화되고 있다. 


-(183) 검찰 문제를 다루는데 왜 배우자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들먹이며 비난하거나 반대로 개방적인 척 하는가. 윤 씨 측의 물타기인가, 진보 진영의 무지인가. 어쨌든 결과적으로 검찰 문제는 은폐되었다. 위 두 가지 사안은 복잡한 현실을 젠더로 은폐하거나 젠더 문제처럼 보이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젠더만 동원된 것이다.


특히 나의 어떤 부분을 긁은 것 같은 문장. 


-(236) 이제까지 여성주의자들은 사회 구조로서 젠더를 가시화하는 데 주력해왔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나 노동 시장의 성차별, 성별 분업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젠더는 동시에 다른 사회적 문제를 은폐하는 데 동원되기도 한다.* 김건희 씨 사건의 경우 젠더는 본질적인 문제(검찰 개혁)를 은폐하는 데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더구나 내가 가장 좌절한 점은 김건희 씨가 여성성이라는 자원을 활용한 점을 비판한 페미니스트도 없었고, 이를 문제 삼은 내가 여성주의자들로부터 ‘여성 혐오’라고 비난을 받은 사실이다. 이는 현재 한국 여성주의의 일면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매우 우려스럽다. 김건희 씨는 억울하다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여론은 그를 도왔다. ‘회원 유지(Yuji)’와 ‘쥴리’는 비판이든 조롱이든 냉소든 그 자체로 윤 씨를 삭제하고 문제의 성격을 이동시켰다.


지역 감정과 분단 현실을 이용한 (하, 슬프게도 한국 사회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것일까) 선동 정치는 신자유주의의 직격탄(노동시장 자체에 진입 어려움 ㅠㅠ)을 맞은 2030세대가 헬조선/흙수저 담론으로 본인들의 위치성을 자각하는 것 보다 여혐/남혐 대결을 조장하는 것이 통치에 더 유리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습득했을지도 모르겠다. 젠더를 정치에 활용하는 것, 그게 얼마나 위력적인지는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정치를 보면 안다(오스트레일리아의 여성 정치인 줄리아 길라드와 관련한 여성 영화(트랙백 참고)를 본 적이 있는 데, 정말 정말 속상했다). 1세계들의 민주주의도 젠더가 정치의 최종 심급이 되어버린 현실. (희망적으로 보아야 하나? 미국 페미니즘 책 보면 뭔가 희망이  꿈틀 느껴지기도...) 


그런데 한국은. 논쟁의 구도가 여혐/남혐으로 정리돼버리면 백전백패다. 왜냐면 남자도 여자 미워하고 여자도 여자 미워하거든. 심지어 여성주의자도 여자 미워함. 이러다 젠더(성역할 고정관념)를 문제화 하는 데 주력해온 여성주의적 성과마저도 다 무너지는 꼴이 날 지도 모르겠다. 한 줌의 빨갱이를 골라내려다가 후퇴한 민주주의가 얼마인가. 한국은 보수/진보 였던 적이 없다. 레드 콤플렉스와 지역감정을 이용한 정치였지. 언제나.  


논의를 이항 대립으로 끌어서 획득할 수 있는 최대치의 정치는 대단하게도 윤석열 정부를 탄생시켰다.  됐고 중요한 건 이게 아니고. 점점 더 유효해질 것 같다. 마치 종북논란처럼 논의를 산으로 끌고 가는 데 여혐/남혐 이라는 정치적 선동 구도는 말이다.


- 이러한 신자유주의 시대의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가부장제의 일시적 패퇴*다. 물론 성차별은 여전하지만 그 작동 방식이 바뀌었다. 역사상 가부장제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경제 패러다임은 없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계급과 젠더 질서를 가시적으로 변화시켰는데, 이 가시성이 지나치게 과잉 재현되어 ‘남성 역차별’이라는 난센스를 낳았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보다 남성과 남성의 차이, 여성과 여성의 차이가 커졌을 뿐인데, ‘흙수저 남성의 군 입대 vs 중산층 여성의 사회 진출’로 왜곡되었다. 이 왜곡은 이대남 현상, 페미니즘의 대중화, 현실 정치에서 젠더 이슈의 비중이 높아진 점(정치 지도자들의 성범죄와 남성 유권자의 분노) 등으로 드러났다.


사실 이는 *여성의 지위 향상이 아니라 생계 부양자로서 남성, 가사노동자로서 여성이라는 기존의 가족 이데올로기가 실업의 만연화로 남녀 모두 더 이상 실현 불가능해짐으로써 나타난 현상*이다. 저출산, 비혼, 1인 가구의 등장, 남성의 계급분화의 가속화는 실업에 대한 대응이자 현실이다. 취업과 결혼이 동시에 가능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본주의는 여성에게 가족 내 성 역할이 아닌 사회적 개인으로서의 지위를 부분적으로 부여했다. 게다가 신자유주의의 기술 발전의 산물인 1인 매체, SNS는 여성과 사회적 약자가 남성과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가 되었다. 여성은 더 이상 참지 않는다. 비록 여성 노동시장의 질은 100위권 밖이나, 한국 여성의 높은 교육 수준은 여성주의 언어에 대한 접근성을 높였다. 남성 지배 문화에서 여성과 사회적 약자의 개인화는 신자유주의 가장 원치 않은 결과이다.  (릿터, 31호 <정희진 ‘모두가 작가인 시대’를 사는 법-신자유주의 시대의 자아와 글쓰기>)


나는 똑똑하다. 얼마나 똑똑하냐면. 취업과 결혼이 동시에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알았다. (ㅋㅋㅋ) 사회에서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넘나 기력과 체력이 없으므로 반려묘 돌봄 + 자기 돌봄도 간당간당한 처지에, 돌봄을 동거인 남성 및 낳게 될지도 모르는 자식에게 제공할 여력이… 그래… 나는 없다… 나는 내게 그런 대단한 에너지와 사랑이 없다는 것을 슬프지만 인정해야했던 것이다.


여성의 개인화는 신자유주의의 가장 원치 않는 결과이긴 했겠지만… 내가 신자유주의 덕분에 암튼 저임금이나마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나는 아주 좋고… 하하하하하!!! 성역할 때문에 왠지 해야할 것만 같은 돌봄 안 하는 대신 자기 돌봄에 매진하며 책 읽고 독후감 쓸 수 있는 것도 정말 좋은 데… (ㅋㅋㅋ 내 자랑 그만하고)


남성vs남성의 차이, 여성vs여성의 차이가 / 남성vs여성의 차이보다 더 커졌다는 지적이 맞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가시화라기 보다는 내 현실에서... 사회의 노동력이 되어야 하는 진입 단계에서랄까. 어쨌든 IMF이후 이젠 일하지 않는 여성은 거의 없다. 전문직 종사자가 아니라면 나보다 윗 세대 여성 대부분은 돌봄과 관계된 저임금의 일자리와 자영업을 할테고, 그녀들은 나에게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나와 동생들(여남 둘 다 해당된다)이 사회 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의 대부분은 또래 여성/남성들과의 불화가 아니었다. 이미 기득권이 되어있는 윗 세대 (가부장)남성 집단의 빻음—무능력, 일대신 정치, 각종  허세, 눈치 없음, 갑질, 행패, 멸시, 희롱, 추행, 성 역할 강제 및 저임금 강요(이중 노동) 등등—이다. 나는 삼진그룹영어토익반 영화를 보다가 엉엉 운적이 있었는 데... 존경할만한 남자 어른을 만나는 것이 로맨스보다 더 심각한 판타지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 뭐 그래 이것도 흙흙수저 우리 가족 기준 일반화다. 내 친구들은 여자 상사 비위 맞추는 게 더 힘들다고 했다. 나도 그런적 있고. 직군과 직종마다 또 다를테지. 여초회사에서는 여성들 간의 문제가 더 도드라질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생각했었다. 젠더 보다 계급보다 지역에 대해. 흙수저 그리고 지방수저가 있다고. 월급 180을 받던 지방 출신 나는 월세로만 50만 원을 냈다. 같은 월급을 받던 동료는 집에서 다니면서 시드머니를 모았을 수도 있겠다. 우리는 다르다. 다르더라. 나는 쪼잔해지지 않기 위해서 퇴근 후에 치맥이라도 한잔 할라치면 기꺼이 반띵을 했지만, 옷 좀 사 입으라면서 상사한테 은근 비교 당할 때는 정말 화딱지가 났다. ㅋㅋㅋㅋㅋㅋ (옷 안사고 치킨 먹고 맥주 마시는 게 더 중요햇!!) 


직장 동료와 나는 다른 옷차림을 하고 있긴 했지만, 일자리 자체가 없는 현실에서, 이직으로 경력 물타기하면서 버텨야하는 사회 초년생의 처지는 많이 다르진 않았다. 다 흙수저였고 나는 좀더 흙흙이었다는 소리. 그런 우리에게 일도 주(떠넘기)고 모욕도 주는 상사/대표 들은 대부분 남자였다. (권력에 도취되어 눈치없이 쩝쩝대는 생긴것 포함 한남스러움의 표본이 바로 *선출*된 현 대통령이시다.) 무슨 말이냐면. 나의 남혐에는 근거가 있다!!!!!는 소리다. 물론 이것도 생물학적 남성이라기보단 개인적 인격과 그 위치가 근거란걸 인정해. 그리고 일반화/유형화 할 수 있을만큼 그런식으로 사회화된 인간들이 득시글 거리지.  


그런데 동년배 또래의 남성들에겐? … 곰곰 생각해 봤다. 인터넷에서 여성 혐오하는 이상한 놈(이 치들의 포르노에 쩐 뇌에 대해서는 내가 그 머릿속에 들어가 보지 않아서 모르겠으나 포르노는 너무도 너무도 대중화 되어서  다 똑같다. 정도의 차이지만 관대하게 패스하겠다.)들 말고, 일상에서. 남자들. 어떤 종류의 대화를 하면 너무도 역지사지가 안되는 데다가 맨스플레인을 일삼지만, 나는 말을 잘해서 내 앞에서는 차마 맨스플레인을 하지 못하지 니들. 그래. 너희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나는 모른다. 


생각해보면 젠더 갈등은 남친이랑 했고, 동료 남자들과는 그냥 담배나 노나 피면서 윗사람들 욕하기 바빴다. 그러니까. 신자유주의 직격탄을 맞은. 취업 시장에서는 경쟁했었어야하며, 결혼 시장에서는 아마도 미리 탈락된. 나와 비슷한 계층의 또래의 남성들에게. 인간적으로는 애잔한 마음이 든다.…  (근데 그걸 포르노로 풀고 여혐으로 풀면 안되지 않을까? 하, 됐다. 입아픔) 


어쩌면 정말은. 또래 남성들에게 느낀 남혐의 근거는. 관습적 이성애 사회에서 친밀한 관계의 실패 경험일테다. 성적 대상화, 평가. 질 나쁜 연애. 질 나쁜 섹스. 혹은 실패한 연애. 위험했던 섹스. 몰 이해. 소통 실패. 사회생활 속 이중의 억압에 대한 하소연에 돌아오는 맨스플레인. 그들과 비슷한 몸을 한, 좀처럼 성찰하지 않는 종족 일반에 대한. 그리고 인터넷 덕에 드러난 그들의 저열한 문화와 서열질, 속내. 뭐 그런 것들.을 깨치고 나면. 로맨스는 불가능하다. 취할 것이 없는 걸리적/징징 거리는 집단. 나에게 남성은 그런 종족으로 타자화되어 버렸을 지도.


그리고 어떤 집단을 타자화하는 건 여남 불문 빌어먹을 인간의 속성이기도 하다. 

“(182) 문명은 여성의 타자화로부터 시작되었다. 남성을 인간의 대표로 만들기 위해 다른 인간은 배제되어야 했다 겉보기에 남성과 다른 존재, 타자(the others)가 필요했고 ‘바로 옆에 있는’ 대상인 여성이 가장 적합했다. 백인과 유색인종,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가 대칭을 이루지 않는 것 처럼 남성과 여성도 대칭적이지 않다. 단지 가부장제가 인간을 남녀로 구분했기 때문에 여성이 인구의 반이라는 현실이 만들어졌을 뿐이다. 타자 중에서 가장 큰 집단이기에 대칭적으로 보이기 쉽다.”

- 정희진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에 펼쳐진 성애화된 여성성의 이미지(포르노)를 볼 때마다 눈을 질끈 감게 되는 것은 논외로 치자. 이 책이 알려주는 바에 따르면 모든 걸 환원주의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선후차의 문제가 아니다. 젠더가 뒤에 오는 문제도 아니지만(해일 오는 데 조개 줍는) 맨 앞에 항상 위치해야 하는 문제도 아니라는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이미 완전 승리해버린 한국 사회에서 젠더 가시화가 아니라 젠더가 다른 사회적 문제를 은폐하는데 동원되는 방식으로도 쓰인다는 지적은 건조하게 놓고 생각하면 정말 소름끼친다. 마치 지역 감정과 레드 콤플렉스처럼 사람을 재빨리 아메바로 만들어 버리는. 


언젠가 가까이에 있는 대상을 다른 존재로 규정하고 배제하고 싶은 감각(감정)에 대해서 쓴 적이 있다. 

(https://blog.naver.com/jyanggrim/223134792973- 작가라는 문제, 대상화의 문제, 유대인 문제 /  


미세하게 추적해 보면 출발은 위기 앞에서의 자기 보호이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지배와 통제가 목적이기도 할테지만 조금 더 원초적인 것은 방어- 아닐까. 


자신을 보호하지 않으면 잡아먹히는 시절이다. 사실 나는 그것에 거의 완벽히 지쳐버렸다. 살아남은 것은 그것대로 장한 일이지만, 타인에게 가혹해지는 순간들은 낯설었다. 스스로에게. 그리고 이내 익숙해져야 했다. 매번 나를 낯설게 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내가 나와 타인에게 미세하게나마 관대해지기로 한 것은 어찌저찌 살아 남은 후에 고독을 구축할 수 있게 된 후 부터다. 그 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셀프 마취(대체로 취해 있었음).


힘듦과 불안의 이유를 내 안에서가 아니라 나의 외부에서 찾는 것. 가까이 있는 미운 타인에게서 찾기는 참말로 쉬운 일이라, 일찍/이찍을 서로 비난하는 정치만큼이나 여혐/남혐은 심해질 것 같다. 정희진의 지적대로 *신자유주의 덕분에 정말로 젠더가 가시화*되어버린 것이다. 경쟁에서 탈락된 젊은 남성들의 열등감 폭발은 내가 어떻게 해줄 수가 없는 노릇이고. 그들이 자신들의 불만을 가장 쉬운 약자를 혐오하는 방법으로 찾고 있는 것도 너무 짜증스러운 일이지만. 논의를 자꾸 여남 대결로 몰고 가는 것에 대해서는 예리하게 보아야 할 것 같다. 


얼마 전 위근우의 인스타그램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위근우 인스타그램 @plusratioquamvis99)


갈등 자체를 문제시 하는 프레임. 페미니즘 때문에 역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이대남. 허어... 어렵다. 어려운 줄은 알았지만, 너무 어렵네. (한숨 폭폭~😮‍💨) 


무언가로 스스로를 정체화하는 것은 언제나 조심스럽지만, 나는 페미니즘에서 나의 언어 찾고 공부하는 여성주의자다. 다만 내 여성주의적 언어 생산(?)이 현실에서 여혐/남혐의 구도를 부채질해 중요한 다른 문제들을 덮어버리는 데 사용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어떤 언어를 입장을 가져야 하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을 더 해야한다는 것, 더 면밀히 보아야한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동안은 머뭇머뭇했지만, 또 구체적인 상황과 맥락에 따라서 달라지긴 하겠지만 앞으로는 여성 혐오라는 표현보다는 미소지니라는 용어를 더 자주 써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맘을 좀 고쳐먹었다는 소리다. 하지만 역시 입에 착 달라 붙진 않네.



어쨌든 복잡한 현실이다. 

생각하자 생각하자 생각을 하자.

공부하자 공부하자 공부를 하자.


왜?


생각 안 하고 공부 안 하면 영원히 일찍/이찍으로만 싸워야 할 테니. 


그런 공동체에서 이미 충분히 살아 왔으며, 싸우느라 맘이 격해져서 계속해서 모두 함께 멍청해지는 기분… 난 좀 싫다. (물론 싸울 땐 싸울 거다. 그러나 미련을 남겨둔 편향을 인식한 결단 쯤으로.) 



2023. 8. 12.


(여름에 썼던 거 가져옴 ㅋㅋ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젠더 갈등이 아니라 성차별이다" 부분 읽어보면 좋을 듯!)



https://blog.naver.com/jyanggrim/223181537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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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2-18 18: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내 하트도 여름 거 가져옴.

공쟝쟝 2023-12-18 18:24   좋아요 2 | URL
히히❤️❤️❤️❤️❤️❤️❤️❤️❤️❤️❤️❤️❤️❤️❤️❤️❤️
근데 나 그거는 못하게쒀여. 쭈아아압쫩~! 이건 은오님 주자.

단발머리 2023-12-20 19: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안타까운 건 과계몽된 여성들과 이해 못 하는 남성들간의 간극이겠죠. 여성혐오는 미소지니로 번역된 것이 옳았을 거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오천년 가부장제에 도전(?)하고 일부 성공한 건 신자유주의 뿐이라는 정희진 선생님의 말씀에 완벽 동의합니다.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여전히 여성이 더 열악한 처지에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한줌의 이대남들이 과대표되는 현실이 무척 안타깝습니다. 소리는 더 크게 나지만 투표율은 20대 여성이 더 높다고 하죠.

대상화와 타자화에 대해선, 저도 더 생각해보려고요. 그게 참 어려운 문제더라구요.

공쟝쟝 2023-12-21 09:59   좋아요 1 | URL
대상화 타자화는 저도 읽는 사람에 머무르는게 아니라 쓰면서 계속 가지는 질문였어요. 한번에 결론 빵 나면 것두 윤리라고 하긴 어렵지 않겠습니까?… 저는 읽는 사람에 대한 예의와 쓰는 나 자신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않아야하겠다… 정도로만 맘 먹었어요. 아무도 상처주지 않는 글을 쓰는 것 역시 환상이라고 생각하니깐요! (찡긋-!)

그리고 그래봤자ㅋㅋㅋ!! 독후감ㅋㅋㅋ 더 잘 쓰고 싶긴 합니다!!

단발머리 2023-12-21 10:00   좋아요 1 | URL
그 지점 좋네요.
그리고 그래봤자 ㅋㅋㅋㅋㅋ독후감ㅋㅋㅋ
많이 안 읽으심, 내 글을 ㅋㅋㅋㅋㅋ
누가 주의해서 보신다고 이리 조심하나요? ㅋㅋㅋㅋㅋ

공쟝쟝 2023-12-21 10:0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그래봤자 좋아요 50 안된다 ㅋㅋㅋㅋ 하지만 난 안다. *중요한 건 필력이다* ㅋㅋㅋㅋ

단발머리 2023-12-21 10:04   좋아요 1 | URL
좋아요 100 넘으면 나도 좀 진지하고 알차고 자기성찰적인 글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써보려 합니다. 그러나 50이 안 된다 ㅋㅋㅋㅋ 그것도 이웃님들이 💜으로 눌러주시는 것임 ㅋㅋㅋㅋ 여러분, 감사해요 💕

공쟝쟝 2023-12-21 10:05   좋아요 1 | URL
😊😊😊😊😊😊😊😊💕💕💕💕💕💕💕💕💕💕💕💕

단발머리 2023-12-21 10:43   좋아요 0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