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모든 글에 조기 게양 -.- (조기의 출처는 nrim님 서재)
앗싸~ 컴 앞에 앉기 위해, 뒤척거리며 낑낑거리는 연우를 재우려고 한 시간 가까이 자는 척을 해야 했다! 자는 척 누워 있으니, 별별 생각 끝에 내 대학 생활이 떠올랐다. 이젠 딱, 십 년 전 일이 되었군.... 나보다 학번이 한참 위로 추정되는 세밀라(가명^^)님은 노브레인 논스톱 같은 멋진 대학생활을 보냈다는데, 나는 뭔가.... 대학 1학년을 떠올리면 술밖에 남는 것이 없다. 그래서, 94년 내가 세운 혁혁한 음주 공적 몇 개를 추려본다.
음주공적 1탄. 소주 병나발 완샷! ----- 으으으, 지금은 생각만 해도 몸이 부르르 떨린다. 어찌 인간이 저런 엽기적인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저 사건은 1학년 3월, 첫 MT 때 벌어진 일이다. 실로, 술 무서운 줄 모르는 철딱서니였기 때문에 가능했었다. 처음 떠난 MT(기억이 가물가물, 청평이었지 아마?), 한참 마시던 술이 떨어졌다. 한 학번 선배와 내가 매점으로 술심부름을 가게 되었다. 소주를 사들고 돌아서는데, 선배가 꼬신다. "야, 우리, 이거(소주병) 완샷 한 번 해볼까?" 흠...이 선배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다. 가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청개구리 같다고나할까... 왜 그런 제안을 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나중 얘기로는, 설마 한다고 할 지 몰랐단다. 당시 나는 그것이 <매우 재미있을 것>같았다.(미쳤지... -.-) "넷!" 대답하고는 "하나, 둘, 셋!" 센 후 병채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했다. 선배는 반 병을 채 못 마시고는, 내가 금방 그만두겠거니...하며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멈출 기미가 안 보이고, 병이 점점 비어가자 갑자기 내가 죽을까봐 겁이 덜컥 났더란다. "야, 그만해, 그만!" 끌어말렸지만 그 땐 이미 텅 빈 소주병. 멀쩡한 나는 "헤, 내가 이겼죠?"하고는 돌아서 걸었다. 허어.... 하긴, 내가 그날 끝까지 멀쩡했던 것은 아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필름은 끊겼다. 다음 날 동기에게 들으니 호수에서 배 타고 싶다며 한밤중에 물가의 배를 미는 내 다리에 이 녀석, 30분이 넘게 매달려 있어야 했단다. ㅎ...ㅎ...ㅎ...
음주공적 2탄. 소주 네 병 반. ----- 이것은, 음주공적이 아니라 음주 기록에 가깝겠다. 네 병 반, 내가 마시고도 필름이 안 끊기고 말짱했던 최고 기록이다. 명지대 원어 연극을 구경갔던 뒤풀이, 친구와 나는 왠지 그 날 술이 잘 받았다. 빠른 속도로 신나게 먹고 있는데, 내가 얼추 추정한 것이 네 병 반. 더 먹을 수 있었지만 처음 가 본 동네에서 차 끊길까봐 그냥 일어나야 했고, 평소 주량을 한참 오바했는데도 말짱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심지어, 다음 날 새벽, 어설프게 술이 깨면서 잠까지 안 와서 5시 반에 일어나 목욕탕까지 갔다. <주량>의 정의는 자신을 책임질 수 있는 평균 음주량일 것이다. 그러나, 혹여 주량이 마시고 취하지 않을 수 있는 최대치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 주량은 그 때 소주 네 병 반이었던 것이다. -.-
음주공적 3탄. 레몬소주 피쳐 완샷! ----- 내 공적은 주로 완샷이군.^^;; 이 공적에는 드디어 울 서방님이 등장한다. 1학년 겨울방학...학교는 텅 비어 있었다. 그날따라 할 일이 없던 친구와 나는 '누가 술 안 사주나...'하며 캠퍼스를 배회하고 있었다.(1년간 다져진 생활습관...할 말이 없다.) 아무도 없어 포기하려던 그 순간! 저 멀리에서 후광과 함께 등장한 선배 하나! 그가 바로 우리 서방님이었다. 서방님, 나를 좋아한다더라는 소문이 은근히 나돌고 있던 터, 그 날의 물주로 손색이 없었다. 역시나 술 사달란 소리에 두말없이 나섰고, 1차는 레몬소주였다. 그 때는 레몬소주 피쳐라는 것이 있었다. 1700들이 피쳐 잔에 레몬 소주를 타 주는 것. 몇 잔 마셔서 피쳐가 2/3가량 남았을 즈음....무슨 얘기 끝에서 였을까? 서방님, 아니 그때는 선배가 이거 완샷하면 나이트에 데려간단다.(서방님도 설마 하랴...했단다. 그 때 나는 아마, 설마가 안 통하는 엽기녀였던 듯..-.-) 두 말도 안 시키고 바로 집어든 나....일 년간 다진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고, 그 날 우리는 레몬 소주 - 나이트 - 마무리 술, 총 3차를 뛰었다. 어라? 그런데 한참 뒤에 들어보니 나이트 전에 노래방도 하나 있었단다. ^^;;; 나는, 노래방의 기억이 통째로 날아갔다. 그 날 하루, 선배는 우리 둘에게 술값이 13만원(십년 전!)이 들었다 한다. 이 대목에서....나는 선배가 부잣집 아들인 줄 알았다. -.- 속았다....
그 밖에도 음주에 관련한 사건사고는 밤을 지새도 모자랄 지경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렇게 심하게 마셔댄 탓에 일찌감치 속이 가서 대학 2학년 무렵부터는 은퇴 선언을 해야했다. 내 음주 전성기는 짧고도 화려했던 것. 지금은 맥주, 혹은 보양주(백세주나 가시오가피 술^^)를 사랑하는 온건 음주파로 조용히 살고 있다.
내가 왜 그랬을까...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다만, 오랜 세월 눌려 있던 용수철이 심하게 튀어올랐던 것 아닐까...추정할 뿐. 지금은 모두 두고두고 되씹을 좋은 안주거리들. 다시 돌아가라 해도, 아마...똑같이 살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