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학 책읽기 모임 두번째 책 : 섹슈얼리티 강의, 두번째>
한국성폭력상담소가 기획해 여러명의 저자가 참여한 책은 사례를 중심으로 한 만큼 술슬 넘어간다. 연애, 자위, 성폭력, 성매매, 포르노 어느 것 하나 쉽게 답 나오지 않을 주제는 쉽게 읽힌다 하여 깔끔한 정답을 주는 것도 던지는 질문이 가볍지도 않다. 때도 저자와 논쟁하고 때론 새로운 시선에 경탄하기도 하며 읽어간다.
이 한 권의 책을 읽고 가장 크게 다가온 점은 이 사회의 많은 여성들이 자존의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남성이 표준인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은 필연적으로 열등감과 자존의 문제를 가지고 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흔히 관계를 중시한다는 여성적 특성의 이면에는 관계가 중단될 것에 대한 더 큰 두려움을 느낀다는 반증으로 읽힌다. 이것은 관계에서 여전히 나의 욕망보다는 상대의 욕구에 끌려다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비록 현실을 심하게 비트는 티브이지만 드라마 속 관계에서 여전히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이들은 남성이다. 책 속의 많은 여성들이 첫섹스의 이유로 '남자친구가 원해서'라고 표현한 것과 미혼모가 되는 과정을 '피해자'가 되었다거나 '성폭행'에 비유하는 대목이 몹시 놀라웠는데 이것이 연애와 성에 있어 자율성과 주체성이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욕망의 대상, 관계의 방식 역시 사회적으로 학습되는 것인 만큼 나 역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곤 한다. '나는 이성애자인가'라는 간단한 질문의 답도 아직 확실히는 모르겠다. 내 감정을 분명하고 평화롭게 전하도록 노력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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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문장들>
젊은 여성들이 연애관계에서 느끼는 자신감과 힘을 표현하는 현상은 여성들이 본질적으로 사랑에서 힘을 얻어서라기보다 자신의 의지가 반영되는 관계의 통제력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65쪽)
엄밀한 의미의 성관계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관계를 맺더라도 좀 확장해서 생각하면 상대를 놓고
여러 가지로 자위를 시도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사실 그런 움직임들이 나의 쾌락을 위한 것이잖아요.
물론 상대가 나의 움직임으로 오르가슴에 오를 때
덩달아 기분 좋은 느낌도 있고 또 그것만을 위해 노력할 때도 있지만
그 또한 간접적으로 나에게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잖아요.
이런 모든 의미에서 '자기 스스로 위안하는' 자위인 것이지요.
모든 게 저한테는 자위의 틀 안에 있는 것이지요.
<이프> 자위 프로젝트 게시판(2004)
(88쪽)
"언제 자신이 이성애자임을 알았는가? 이성애자가 된 계기나 원인이 있는가?", "동성애를 경험해 보지 않고도 이성애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신할 수 있는가?", "왜 이성애자는 동성애를 못하는가?" 하는 질문들이 벽장 안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벽장 밖에서는 가능하다. 그래서 이제 벽장 밖에 서 있는 이들이 벽장 안을 향해 외쳐 묻는다. "당신의 성 정체성은 무엇인가?"
(256쪽)
연대의 가능성은 공통분모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서로의 차이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여성을 좋아하는 여성과 남성을 좋아하는 여성이란 정의에는 사실 아무런 차이가 없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차이는 이성애주의 사회에서 정체성을 인식하고 내재화하는 과정의 차이,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혼란과 갈등의 지점, 경험과 가치관이 형성되는 과정의 차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각각의 개개인을 다양한 차이를 가진 주체로 인식할 수 있다. 그 차이가 왜 발생하는지, 그 차이 때문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어떤 차이가 어떻게 존중되어야 하는지, 차이로 인한 차별이 어떻게 해결되어야 하는지 소통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지금 우리에겐 자신을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것이 절실할 때다.
(270쪽)
포르노는 우리 사회의 육체와 성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전개의 한 부분으로, 이때 이데올로기는 모든 성적 재현 양식에 작동하며 특정한 재현 양식과 성적 행위는 무수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담론 안에 깊이 새겨져 있다. 그러므로 성적 재현에 감춰져 있는 복잡한 의미 구조를 읽어 내는 작업은 결국 과거 우리 모두에게 부여되었던 성에 관한 인식의 틀을 바꾸려는 작업과도 연관되어야 한다. 이러한 작업은 성적 재현에 감춰진 인종 차별적이고 성별화된 욕망과 시선, 권력관계에 주목하면서, 한 성을 일방적인 성적인 대상으로 설정하는 사회,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성관계가 강제되는 사회를 동시에 문제시한다. 포르노를 존재하게 하는 구조와 불평등한 사회관계에 대한 도전 및 균열을 의미하는 것이다. 포르노는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이성애 중심주의와 성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가 복잡하게 결합된 과정이자 결과물이기 때문에, 포르노 문제는 성적 취향, 인종, 계급, 나이, 국가를 비롯한 다른 모든 관계적 틀과의 연관성 속에서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307쪽)
포르노적 재현의 주요 대상이 남성이라고 생각해보자. 만약 "어리숙한 한국 남성", "음란한 일본 남성", "센 흑인", "테크닉이 뛰어난 백인"이라는 배너 아래, 다양한 남성들이 성기가 클로즈업된 채, 혹은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성적 희롱을 당하면서 화면을 가득 채운다면 어떨까? 여전히 포르노가 성적 욕망의 구현물로 '자연스럽게' 다가오는가?
(3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