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목 장교 시험을 거뜬히 통과하고,

엘리트 코스를 차근 차근 밟아오던 한 후배 녀석이 뜬금없이 학교를 그만두겠다며 말을 걸어왔다.

안타까운 마음보다 먼저 앞선 건 홀로 계실 그의 어머님에 대한 걱정이었고,

넉넉치 않은 형편에 대한 근심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심 반가웠던 건, 자아 실현을 위해 치열하게 몸짓하는 그 모습 때문이고,

이제 그가 나의 정면교사가 되어주었다는 사실에 문득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며칠전 故 권정생 선생님의 생가에 다녀왔다며, "그토록 치열한 삶도 있는데, 그렇게 '잘 사는' 삶도 있는데..."라고 읊조리는 그의 모습은 참 아름다웠다.

도종환 시인은 <단풍드는 날>이라는 시에서 "버려야 할 것을 아는 순간부터 단풍은 붉게 물든다"고 노래하였다. 자아 실현을 위해 자신의 안온한 삶을 질타하고, 내려놓은 그의 모습에서 붉게 타오르는 단풍이 내내 오버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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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8-11-03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원해주는 선배가 있어 그후배님 든든할겁니다. 다 잘될거에요.^^-

바람결 2008-11-04 02:20   좋아요 0 | URL
그래요, 바래요, 든든하기를요.
다 잘될거라는 배꽃님의 말에 위로를 얻습니다.^^
 

그동안 참 많은 분들이 다녀갔다.

아니 몇몇 분들이 자주 들러주셨을 수도 있겠다.

무튼 12000이라는 숫자 속에 담긴 모종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별 것없는 '마른 섬(嶼裁)'에 다녀간 헛수고를 위로하며

죄송하단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다.

게다가 조악하고, 미욱한 글들을 못내 읽어주시느라

몸과 마음, 모두 피로하셨을 분들에게도 그저 죄송할 따름이다.

앞으로는 지금보다 조금만 더 발걸음을 자제해주셨으면 한다.

다만 문득 기억이 미치면, 들러서 좋은 말씀 나누어주셨으면 좋겠다.

변변치 않은 사람이,

변변한 색경이 되기위한 몸짓을,

측은하게, 그리고 은근하게 바라봐주셨으면 좋지 싶다.

모두 sha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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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8-11-02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결님 아주 오랜만이죠.^^ 변변한 색경이 되기 위해 부단히 몸짓하는 님,
두달 남은 한 해 은총 가득하시길 빌어요.

바람결 2008-11-03 16:49   좋아요 0 | URL
네, 혜경님. 정말 아주 오랜만이네요.
그간 잘 지내셨나요?
변변치 않은 서재를 꾸려놓고, 드문드문 들렀다 갈 뿐이니
이 공간의 모습도 참담하다 싶습니다.
어쨌거나 간만에 전하는 안부에 마음이 참 좋습니다.

아...이제 겨우 두달이로군요.
이 두달만이라도 '매듭짓는 달'로 삼아 온존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혜경님도 남은 두달이 그저 행복한 시간이길 빕니다.
 
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더 이상 꿈을 꿀 수 없는 인간을 상상하는 일은 괴롭다. 꿈을 망실한 인생의 불우는 곧 희망과의 절맥(切脈)을 의미하기 때문이리라. 인간이 비루한 일상을 면면히 버텨내고, 지난한 인생을 어렵사리 살아내는 건 꿈이 있어서이고, 꿈에 잇댄 희망의 조짐 때문이다. 기실 희망의 생명력이 ‘도래하지 않은 미래’라는 시간적 속성에 있듯이, 꿈의 존재 근거는 바로 그 오지 않음, 反-현실, 무한성, 가능성과 같은 미증유(未曾有)의 맥락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꿈은 ‘그대로 꿈’이고, ‘그대로 꿈’은 바라고, 기대하고, 소망하는 희망의 수치를 유지한다. 이는 다만 ‘오지 않음’이라는 그 속성을 설명하기 위한 언사에 불과할 따름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꿈은 결코 현실일 수 없고, 희망 또한 성취될 수 없을 때, 꿈은 꿈이요, 희망은 본디 희망이라는 말이다.

   
 

꿈꿔왔던 것에 가까이 가본 적 있어요? 그건 사실 끔찍하리만치 실망스러운 일이에요. 희미하게 반짝거렸던 것들이 주름과 악취로 번들거리면서 또렷하게 다가온다면 누군들 절망하지 않겠어요. 세상은 언제나 내가 그린 그림보다 멋이 떨어지죠. 현실이 기대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일찍 인정하지 않으면 사는 것은 상처의 연속일 거예요. 나중엔 꿈꿨던 일조차 머쓱해지고 말걸요.

 
 

(본문, 7쪽) 

  '별이 아름다운 건 멀리 있기 때문'이라는 혹자의 말처럼 꿈 역시 멀리 있어 아름답다. 그 멋과 풍미는 ‘거리’로서 발생하고, 아득함으로부터 전해온다. 그러나 현실의 가차 없음에 복속된, 그리하여 꿈과 환상의 상상력마저 빼앗긴 존재들은 허덕지덕 가파른 비탈을 오르는 시지프스를 떠오르게 한다. ‘멀리’의 관조, ‘거리’의 여유를 상실한 이 사회가 낳은 사생아들은 그렇게 꿈과 희망을 예단 당했고, 부박(浮薄)한 성공을 천형으로 삼는 인간 군상들로 변해버렸다. 그들은 더 이상 밤하늘을 보기 위해 창문을 열지 않는다. 예컨대 책에서처럼, 적금과 부동산에 관심하며, 사업의 무한한 번창을 바랄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모두 ‘꿈과 같은 것으로 되어 있다’고 책은 말한다. 그 대목. 고모의 남자친구 알리의 입을 통해 발설한 작자의 심중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이 배우들은 모두 요정들일세. 이젠 대기 속으로, 엷은 대기 속으로 사라져버렸지. 이 대지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환상의 세계처럼 저 구름 위에 솟은 탑도, 호사스러운 궁전도, 장엄한 신전도, 이 거대한 지구도, 마침내 다 녹아서 지금 사라져버린 환상처럼 흔적조차 남기지 않을 걸세. 우리 인간은 꿈과 같은 것으로 되어 있고 이 허망한 인생은 긴 잠을 막을 내리게 되지.  
 

 (본문, 116쪽) 

  꿈이 사라진 자리에, 환상이 증발한 자취에 현실 또한 흔적 없이 사라져버린다는 말로 이해한다. 결국 꿈이라는 골간 없이 고단한 현실을 살아낼 수 없음은 물론이요, ‘긴 잠’은 언제고 목전에 둔 인생이라는 현실을 긍정해야 꿈도 가능하다. 성급하게나마-요는, <달의 바다>는 <생의 바다>고, <꿈의 바다>라는 사실을, 그 생과 꿈의 긴장 속에서 유영하며(노닐며), 희망을 꿈꾸는 몸짓이 우리에겐 필요하다는 사실을 조금은 알겠다는 것이다.

   
 

“왜 할머니한테 가짜 편지를 쓴 거야?”

고모는 미소를 지었다.

“즐거움을 위해서. 만약에 우리가 원치 않는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라며, 그런 작은 위안도 누리지 못할 이유는 없잖니.”

 
 

(본문 126-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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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3개월동안 주어진 대학원 생활의 끝자락에서, 나에게 주어진 과제가 있다면 바로 '논문'을 한 편 써내는 것이다. 지난 학기부터 주제를 잡고 개요를 제출한 터라 이제 남은 것이 있다면 활자 하나 하나를 논문의 표제 아래 새겨넣는 일이다. 당연한 이 일이 주는 난감함은 다른 어떤 고투와도 비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글을 쓰는 일이 의무를 동반할 때 오는 피로감과 그로 인한 무한한 창의의 결핍만큼 초라한 것은, 짐짓 없어 뵌다. 그러나 한편 논문을 써야하는 책무를 가까스로 이행할 때 오는 성취감과 한편의 논문을 짓기 위해 해야만했던 '공부'들에 어김없이 뒤따르는 지식의 확장은 또 적지 않은 기쁨을 줄 것임을 알기에 나는 지금 한창 논문을 준비중이다.

토마스 베리(Thomas Berry). 그의 이름이 생소하게 들리는 이유는 그가 국내에서 널리 알려진 인물이 아닌 까닭이다. 가톨릭의 사제이자, 환경 철학자, 그리고 종교생태학자로서 서구에서는 그리 녹록치 않은 인물로서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관한 국내 학계의 관심은 그다지 크지 않다. 이미 여러편의 저서가 있지만 여전히 국내에 소개된 그의 책은 <신생대를 넘어 생태대로>라는 얇은 단행본 한 권에 불과하다.(이 책을 출간한 '에코조익' 출판사는 열악한 국내의 출판 유통문제로 인해  이 한 권의 책을 남기고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때문에 세간에서 그를 관심하기란 어려운 일일 뿐더러 가톨릭을 제외한 신학계 전반에서도 그에 대한 관심이 심히 미약할 따름이다. 어쨌거나 그의 사상을 중심으로 나는 우리 시대의 최대 화두인 '생태'의 문제와 '빈곤'의 문제를 신학적으로 접근해보고자 준비중이다. 그리고 종교와 과학의 오랜 불화를 해소하기 위한 전범으로 그를 소개하고자 하는 것도 논문의 의도로 삼고 있다. 아직도 나의 의도가 논문에 잘 반영될지는 모르겠지만 그에 대한 공부는 제 능력껏 꾸준히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던 차에 오늘 토마스 베리에 대한 블룸베리 리뷰(The Bloombury Review)의 토마스 레인 크로우의 찬사에 문득 코 끝이 찡해졌다. 거두절미하고 그 단 한 줄을 적고 싶어 오늘 이곳에 끄적거리기로 했던 것이다.

"몸서리치도록 많은 인간 가운데 100년에 한 번, 심오한 명료함을 가지고 우리에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나타난다. 토마스 베리는 그러한 인물이다."

생태대(Ecozoic)에 대한 그의 비전을 다시 한 번 상기하며 글을 끄적이고 있는 지금 나도 마찬가지로 몸서리치고 있다. 앞으로 적어도 3개월간은 몸서리치는 일에 익숙해져야 할 듯 싶다. 아래에 그의 저서 몇 권을 끄집어 넣는다. 종교와 과학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그리고 지구와 우주, 그리고 그 아래 살고 있는 온 생명의 경이로움과 만나고 싶은 이들을 이 책들을 참고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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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 2008-09-07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서리치는 그 경험, 이번 학기에 제발 마치시기를~~~~^^
 

겨를없이 지난 며칠을 보냈지요.

이제야 당신 부음 들었어요.

가셨군요, 그렇게 가셨군요.

이 곳 등지고 저 황망한 바다로 여로를 떠나는

당신 '천년의 돛배'가 눈에 선합니다.

드디어 생의 절정인가요?

 

잘 가세요, 그렇게 잘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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