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꾼
하퍼 리 지음, 공진호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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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이 책에 대한 수많은 기사와 인터넷 글들을 접했다.

그만큼 하퍼리의 명성은 대단하다는 의미일테고, 지금까지 하퍼리의 유일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앵무새 죽이기]가 많은 사람의 관심과 사랑을 받은 작품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인터넷에는 하퍼리의 작품을 [앵무새죽이기] 외에도 읽을 수 있다는 기대감의 글들이 넘쳐났다.

그런데 그 많은 글들 중에는 이 작품에 대한 기대평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작품이 하퍼리의 작품인지도 확실치 않으며, 앵무새 죽이기와 비교하기에는 형편없는 졸작이라는 글도 있었다.

이런 글들을 읽을 때마다 나의 기대감이 위축되기도 했었다.

'정말 그냥 하퍼리 흉내만 낸 졸작이면 어떡하지?'

그리고 이 책이 출간되자 조리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우선 이 책은 [앵무새 죽이기]와 인물과 배경에서 겹치는 부분이 많다.

주인공은 [앵무새죽이기]에서와 마찬가지로 핀치 가문의 막내딸 '스카웃'이다.

이 작품에서는 어린 시절의 이름인 스카웃보다는 '진 루이즈'로 불려 진다.

그리고 진루이스의 영원한 우상인 아버지 애티커스 핀치가 등장한다.

[앵무새죽이기]에서 스카웃과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오빠 젬은 안타깝게도 20세에 어머니를 죽였던 심장병으로 죽게 된다.

대신 어린시절부터 스카웃과 함께 자랐던 헨리가 그녀와 결혼하고자 하는 남자로 등장한다.

그 외에도 스카웃과 영원한 앙숙인 알렉산드리아 고모, 스카웃의 친구같은 삼촌 존 핀치, 어린시절 스카웃을 어머니처럼 돌본 흑인 가정부 켈퍼니아가 등장한다.

배경은 물론 미국 남부의 보수적인 작은 도시인 메이콤이다.

그 외에 메이콤에 대한 역사 이야기나 핀치 가문의 이야기는 [앵무새죽이기]와 거이 같다.


진 루이즈는 대학을 졸업한 후 뉴욕에서 독립하며 생활하다가 휴가를 맞아 메이콤에 도착한다.

아버지 에티커스는 이제 나이가 들어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노인이 되었다.

아버지의 일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후원을 받아 양자처럼 자란 헨리가 돕고 있다.

헨리는 진 루이즈와 결혼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헨리의 가정이 형편없다는 이유로 알렉산드리아 고모는 결혼을 반대하고 있다.


이야기는1940년대의 전형적인 남부의 시골마을을 묘사하며, 하퍼리 특유의 유모있는 글로 진 루이스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그러다가 진 루이스가 마을 회관에 열린 회의에 참석하면서 이야기가 급반전된다.

그녀는 그 곳에서 흑인들에 대항하는 백인보수적인 모임에 사회를 보고 있는 아버지와 헨리를 발견한다. 

그리고 충격을 받는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흑인을 차별없이 대하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고 자랐었는데...

나이 든 아버지는 백인 보수주의자가 되어 있고, 남자친구인 헨리는 그 일에 앞장을 서고 있는 것이었다.

진루이스는 너무 화가나서 흥분한 상태로 아버지와 헨리를 비난한다.

헨리에게는 절교를 선언하고, 아버지에게는 히틀러와 같다는 악담을 한 후 부녀의 연을 끊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가정과 메이콤을 등지려 한다.

그 때 진 루이스를 막아선 사람이 삼촌 핀치 박사이다.

핀치 박사가 진루이스를 설득하는 과정은 당시 미국의 흑백갈등과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매우 복잡한 문제이기에 글로 설명하기가 모호하다.

솔직히 읽는 동안 나 역시 그 내용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핀치박사의 말 중에 중요한 것은...

그녀가 지금 겪고 있는 괴로움과 혼란은 아버지로부터 정신적인 독립을 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진 루이즈, 이 아가씨야, 너는 너만의 양심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어딘가에서 그 양심을 따개비처럼 네 아버지에게 붙여 놓았던 거야. 자라나면서, 또 어른이 되고도, 너 자신도 전혀 모르게 너는 네 아버지를 하나님으로 혼동하고 있었던 거야, 인간의 심장을 가진, 인간의 결점을 가진 한 인간으로 보지 않았지. 그것을 깨닫는 게 쉽지 앟았으리란 것은 내가 인정한다. 형은 실수를 범하는 일이 별로 없으니까, 하지만 형도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실수를 하기는 해. 너는 정서적 불구자였어, 아버지에게 의지하고 항상 네 답이 곧 아버지의 답일 거라 가정하고 답을 구해 왔지" (P372)


그리고 핀치박사는 조카인 진루이스가 좀 더 성숙한 인격이 되기를 바란다.


"이번에 집에 온 뒤로 줄곧 상당히 불쾌한 이야기들을 들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너는 예의 군마에 올라 무조건 그들을 쳐서 쓰러뜨리기는 커녕 돌아서 달아났어, 거는 그럼으로써 사실상 이렇게 말한 셈이지, <나는 이 사삶들이 행하는 방식이 싫어, 그러니까 나는 이들과 상대하지 않아>라고 말이야. 이것아, 그들과 상대하는 게 좋을 거야. 그러지 않으면 너는 절대로 성장하지 못할 거야. 예순 살이 되어도 지금과 똑같을 거라고, 그러면 너는 내 조카가 아닌 괴짜가 되는 거야, 너는 마음 속에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조금이라도 숨을 쉴 수 잇는 여지를 안 주는 편이야, 그들의 생각이 네 생각에 마무리 어리석어도 말이야." ( P376)


결론적으로 진루이스는 아버지를 오해했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진루이즈가 급진적인 개혁적인 성향을 가졌다면, 아버지는 개혁적이지만 중도적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젊은 날에 흑인들을 옹호했지만, 이제 정부가 흑인과 백인의 완전평등을 강요하자 메이콤만의 정서를 지키기 위해 보수쪽에 섰던 것 같다.

그것이 딸이 보기에는 아버지가 변절자처럼 보였던 것이었다.

자신과 다른 아버지를 발견하고, 그 아버지가 자신을 속였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아버지를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진루이즈는 삼촌의 말을 통해 자신과 다른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성숙임을 깨달았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과 대화할 수 있다는 것...

더 나아가 그 사람까지 포용할 수 있다는 것...

현대 사회에서 가장 원하는 인격적 성숙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사회에서 이런 인격적 성숙만큼 절실한 것이 또 있을까?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극단적인 두 성향의 정치집단에 의해 갈라지고 상처입고 있다.

이제는 인터넷에 들어가 댓글을 보기가 무서운 시대이다.

나와 다르면 원색적인 욕과 비난을 퍼붓는다.

반대로 내가 따르는 사람이면, 그 사람이 어떤 잘못이나 범죄를 저질러도 무조건 믿고 숭배한다.

진 루이즈가 깨달았던 진리가 필요한 시대이다.

또한 진 루이즈를 길렀던 포용적인 아버지의 가르침이 필요한 시대이다.



마지막으로 앞에서 언급한 이 책에 대한 기대평과 혹평 중에 내 입장을 이야기하려 한다.

이 작품은 문학적이 표현은 [앵무새죽이기]보다 미숙한 부분이 눈에 보이지만,

이 작품은 [앵무새죽이기]보다 더 깊고 넓은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앵무새죽이기]가 약자에 대한 포용과 배려를 이야기 하고 있다면,

이 책은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과 대화하고 이해할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나와 다른 사람과 싸우고, 그 사람을 죽이는 것이 가장 어리석은 방식이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진루이즈가 깨달은 것을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깨닫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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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7-24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보다 악평으로 염려를 많이 했는데 님의 리뷰를 읽으니 제가 괜한 걱정을 한 것 같네요. 잘 읽었습니다.

가을벚꽃 2015-07-24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염려하며 읽었는데... 구성이나 문장면에서는 조금 부족해도 전하려는 메시지는 앵무새죽이기 보다 나은듯 해요..
 
마라 다이어 1
미셸 호드킨 지음, 이혜선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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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기억력에 관련된 스릴러나 추리소설을 좋아한다.

로버트 럼들럼의 [본아이덴티티]나 S.J.왓슨의 [내가 잠들기 전에], 마이클 세이키의 [대니얼헤이스 두번죽다]라는 작품처럼 기억을 잃어버리가나 왜곡된 기억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바른 기억을 찾는 과정의 소설을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 소설 역기 그런 류의 소설인 줄 알았다.

사실 이 소설 역시 초반부는 주인공 마라 다이어라는 소녀가 잃어버린 기억을 찾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초반부를 지날 수록 조금은 공포스럽고 환상적인 소설로 분위기가 바뀌어간다.


마라는 어린시절부터의 절친인 레이첼과, 자신의 남차진구 주드, 그리고 주드의 동생 클레어와 함께 한 밤에 패쇄된 정신병원에 놀러간다.

정신을 차려보니 마라는 병원에 있고, 친구들은 모두 죽은 상태이다.

정신병원 건물이 무너져서 마라만 구조된 것이다.

그런데 마라는 그 날의 기억이 없다.

마라와 가족들은 상처를 피해 멀리 다른 곳으로 이사온다.

그러나 마라는 계속해서 죽은 친구들의 환영에 시달리거나 정신을 잃는 일들이 발생한다.

이런 와중에도 새로 전학 온 학교에서 학교의 제일 킹카인 노아라는 남학생의 관심을 받는다.

그로 인해 예전에 노아와 사귀었던 안나의 미움을 받는다.

이로 인해 마라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죽은 친구들의 환영은 더 보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주변의 사람들이 끔찍하게 죽어가는 일들이 발생한다.

그리고 마라는 점점 그 날의 기억을 찾아간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마라가 기억을 찾을 때 무엇을 발견할지를 예상했다.

사실은 마라 자신이 끔찍한 살인자였다는 것이나,

마라의 남자친구 노아가 이 사건과 관련이 되어 있다거나,

앞에 언급한 추리소설들처럼 엄청난 음모가 숨어있는 것을 예상했다.

그러나 마라가 찾는 기억은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이 소설은 여러 가지 장르가 복합되어 있다.

마라가 기억을 찾는 과정은 추리소설 같았다가...

마라가 죽은 자들의 환영에 시달리는 부분은 공포소설 비슷했다가...

마라와 노아의 연애장면은 청춘로맨스와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판타지 소설과 같은 분위기가...

대부분의 독자들이 그렇겠지만 독자의 예상 범위를 뛰어넘는 소설이었다.


아쉬운 것은 이 소설이 3부작이라는 것이다.

1편을 다 읽고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다음 내용이 더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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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형제들에게 전화를 거네 민음사 모던 클래식 72
요나스 하센 케미리 지음, 홍재웅 옮김 / 민음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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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나는 소설은 하나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글로 쓰는 것이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소설들을 좋아했다.


이런 생각은 도스트옙스키의 소설을 읽으면서 변화되기 시작했다.

노파를 죽였다는 하나의 사건은 이미 결말이 나있었다.

그리고 소설의 전개는 사건이 아닌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이 된다. 

나폴레옹과 같은 정의로운 행동을 했다는 자기정당성에 대항하여 자기 안에서 쏫아나는 죄의식과의 싸움이 쏘름끼치게 글로 표현되어 있었다.

당혹스러웠고, 놀라웠다.

이 소설이 그렇다.


이 소설은 스웨덴에서 발생한 차량 폭파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그로 인해 아랍계 사람들이 의심을 받고, 위기에 처하게 된다.

소설은 주인공 아모르의 친구 샤비가 그에게 전화를 거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내용은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몇 일 동안 집 안에만 처박혀 있으라는 것이었다.

그 후에도 주인공은 여러 사람들과 전화를 한다.

이 소설은 구성은 주인공이 전화를 하는 사람들과의 대화에 중점을 둔다.

그러나 전화대화의 내용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대화가 아니다.

대화는 모호하고, 말들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1차적인 대화를 주인공의 의식에서 한 번 걸러서 2차적인 대화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전화상의 대화는 두 사람의 대화라기 보다는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과 같다.

그리고 그 의식의 흐름은 폭파사건으로 인해 부당한 의심과 모멸을 당하고 있는 주인공의 분노와 불안을 따라가고 있다.

소설은 전화 대화 내용뿐만 아니라 전기드릴을 바꾸러 가는 과정, 같은 아랍계 사람이 검문을 당하는 과정등을 통해 느끼는 분노와 불안을 표현한다.

그리고 주인공의 의식은 단순히 분노와 불안에서 점점 폭파사건의 용의자와 자신을 점점 동일시하게 된다.

폭파사건 용의자를 향한 사람들의 집단 분노가 결국 자신과 같은 아랍계 사람에게 향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나는 내 형제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한다. 방금 아주 미친 일이 일어났어. 집으로 가는 길에 대단히 의심스러운 사람을 봤어, 머리가 검고 예사롭지 않은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있었는데 얼굴은 팔레스타인 숄로 가리고 있어어. 나는 내 형제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렇게 말한다. 그게 내 모습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데 100분의 1초도 걸리지 않았어." (P137)


주인공이 느꼈던, 아니 저자가 느꼈던 의식의 분노와 불안을 독자들도 경험하게 하는 당혹스러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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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법칙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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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어느 순간에 한 번쯤은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는 경우가 있다.

쫓기고 쫓기다가 앞이 꽉 막힌 곳까지 쫓기는 경우가 있다.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고...

그래서 여기가 끝이구나 하는 막막함...

누군가가 있어서 손이라도 잡아 주었으면 좋겠는데...

아니, 손을 못 잡아 주면...

얼마나 힘드니?

얼마나 괴롭니?

이렇게 따스한 말 한 마디라도 던져줬으면 좋겠는데...

혹시나 손을 잡아 주다가 자신까지 그 막다른 골목에 갇힐까봐 사람들은 외면한다.

아무것도 아니라는듯이

'인생이란 다 그런 것!'이라는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던질 뿐이다.



이 소설은 막다른 골목에 몰린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소설은 두 명의 여자의 이야기가 번갈아 가며 진행된다.


첫 번째는 윤세오라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은둔생활을 한다.

집밖으로 나가기를 꺼려하고, 사람들을 만나기를 무서워한다.

어느 날 아버지가 그녀에게 백화점에 가서 옷을 찾아오라고 한다.

아버지가 처음으로 그녀의 옷을 사고, 백화점에 맡겨 놓은 것이었다.

옷을 입고 돌아오는 날 그녀의 집은 불에 타고 있었다.

경찰은 빚에 쫓기던 아버지가 자살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리고 그녀는 아버지를 죽게 한 사채업자를 찾아나선다.


두 번째는 신기정이라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교사라는 비교적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이복동생인 신하정이 죽었다가는 전화가 걸려온다.

그녀는 동생의 죽음을 추정하다가 동생이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려던 사람이 윤세오라는 것을 안다.

그녀는 동생이 마지막 순간에 어떤 마음으로 전화를 했는지 궁금해 한다.

그리고 윤세오를 찾아 나선다.

자신이 외면했던 동생의 삶을 알기 위해....


소설은 전혀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던 윤세오와 신하정이, 그리고 그들의 친구인 조미연과 부이라는 남자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서서히 드러내어 보인다.

그리고 그들이 흔히 거마대학생이라고 불렸던 다단계라는 막다른 골목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보여 준다.

막다른 골목인 줄 알면서도 나갈 수밖에 없었던 삶...

내가 살기 위해서...

아니, 너무 외롭기에 다른 사람까지 끌어 들일 수밖에 없었던 삶...

그 막다른 골목에서 그들은 함께 있었고...

또 그렇게 헤어졌다.



내가 편혜영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2014년 이상문학상작품집을 통해서이다.

그 작품집에 실린 [몬순]과 [저녁의 구애]라는 두 단편 소설 역시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몰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작품집에 실린 작가의 작품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작가의 작품론이었다.

작가는 학창시절 때 구청에서 가구별 통계조사를 정리하던 아르바이트를 하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 조사표에서 자신의 가정의 것도 발견했다.

친구들은 그 조사표를 보고 자신의 가정을 알게 되었다고 동질감을 표시했지만

작가는 그런 외적인 것들로 진정의 삶의 모습을 볼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작가에게 있어서 외부에서 보는 몇 가지 조사와 통계로 그 삶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자 폭력이었다.

작가는 자신이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 것이 그때가 아니었나 회상한다.

소설을 통해 통계와 수치로 이해할 수 없는 진짜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그런 작가의 마음이 느껴졌다.

담담하게 이야기 하는 신기정과 윤세오, 신하정, 부이의 삶에서...

나는 통계나 수치로 알 수 없는 밑바닥의 삶을 보게 되었다.


몇 년 전 일본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원작인 [화차]라는 영화를 본 기억이 있다.

어느 날 사라진 약혼녀의 찾아가는 미스테리 소설인데...

그녀를 찾아갈수록 빚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처참한 삶이 드러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조이고, 답답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삶...

빠져 나올 수 없는 삶...

그래서 막다른 골목에서 막다른 선택을 하는 삶...


그런 삶이 있다.

우리가 통계와 수치로 쉽게 판단하고 외면하는 그런 삶이 있다.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은 막막함에 가슴으로 인해 쓰러져 있지만...

그리고 그런 삶에 통계와 수치를 들이댄다.

우리의 이야기가...

통계와 수치의 이야기가 아닌 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이야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 소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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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신저 - 마음을 움직이는 메시지의 창조자들
이남훈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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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있는 말이 그리운 시대이다.

매일같이 뉴스와 언론을 통해서 수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그 말들 중에 가치 있는 말들이 얼마나 될까?

자기 이익을 위해 사실을 교묘하게 왜곡하고, 분열을 조장하고, 남을 깍아내리고....

비전과 꿈의 말들은 사라지고, 불평과 원망의 말들만 넘쳐 나는 시대이다.

그로 인해 사람들이 말로 인해 상처받고, 말로 인해 죽어간다.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다시금 꿈과 비전을 주는 그런 메시지가 필요한 시대이다.


이 책은 역사상으로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시대를 주도한 사람들의 메시지들을 이야기 하며, 그 메시지들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이야기 한다.


이 책은 먼저 충격적인 메시지를 던졌던 두 명의 메신저를 소개 한다.

한 명은 독일 총리 빌리 브란트다.

그는 2차 세계대전때 독일이 수백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폴란드의 아우비슈츠 수용소에 가서 헌화를 한 후 말없이 무릎을 꿇었다.

진정한 사과로 독일의 과거를 청산하고, 미래를 열었으며, 피해자들의 마음을 녹인 메시지였다.


또 한 명의 흑인 운동가 마르틴 루터 킹 목사이다.

그는 흑인운동을 주도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용기를 내어 싸운다면, 기독교적 사랑과 품위를 지켜 싸운다면, 훗날의 역사가들은 이렇게 기록할 것입니다. '옛날 옛적 한 위대한 종족이 있었다. 흑인이라는 그 종족은 문명이라는 혈관에 새로운 의미와 존엄성을 불어넣었다!'라고 말입니다." (p18)

그는 또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명연설로 흑인들의 움직임을 이끌어 냈다.


저자는 이런 메시지의 특징을 '격발(트리거Trigger)-연상(리마인드Remind)-확산(디퓨전Diffusion)의 세 단계로 설명한다.


격발이란 총의 방아쇠를 당기듯, 사람들의 마음에 충격적인 메시지를 심어 주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기존의 메시지를 깨뜨리는 새로운 메시지가 필요하다.

이 과정을 브레이킹-앵커(Breaking-Anchor), 또는 앵커링효과(Anchoring Effect)라고 부른다.

대중들에게 기존의 생각을 깨뜨리고 새로운 생각을 넣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대표적인 메신저로는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와 일본 메이지 유신을 이끈 사카모토 료마, 영국의 대처  총리 등을 든다.

그들은 기존의 생각을 뛰어넘어 대중들에게 새로운 생각과 비전을 심어 주었다.


리마인드란 대중들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생각들과 연관시켜 새로운 생각을 심어 주는 것이다.

참혹한 전쟁터인 게티스버그 전투현장에서 연설한 링컨, 물레를 통해 비폭력을 이야기한 간디 등이 있다.

이것을 맥락효과(context effect)라고 한다.

기존의 생각에 연결하여 새로운 생각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디퓨전이란 작은 메시지가 광범위하게 퍼져가는 것을 의미한다.

디퓨전이 가능하려면 그 메시지가 메신저의 입장에서 고려되는 것이 아니라 수신자의 입장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메신저의 진심이 통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작은 메시지 하나가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메신저가 그 말의 의미를 고민하고, 그 말이 가지는 효과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단순히 메시지의 기술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 메시지에 진심을 담을 것을 이야기 하고, 그 진심이 전해지는 언어를 쓸 것을 이야기 한다.

진심이 전달되는 메시지가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킨다.

그리고 그런 메시지가 그리운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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