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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
하퍼 리 지음, 공진호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7월
평점 :

이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이 책에 대한 수많은 기사와 인터넷 글들을 접했다.
그만큼 하퍼리의 명성은 대단하다는 의미일테고, 지금까지 하퍼리의 유일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앵무새 죽이기]가 많은 사람의 관심과 사랑을 받은 작품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인터넷에는 하퍼리의 작품을 [앵무새죽이기] 외에도 읽을 수 있다는 기대감의 글들이 넘쳐났다.
그런데 그 많은 글들 중에는 이 작품에 대한 기대평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작품이 하퍼리의 작품인지도 확실치 않으며, 앵무새 죽이기와 비교하기에는 형편없는 졸작이라는 글도 있었다.
이런 글들을 읽을 때마다 나의 기대감이 위축되기도 했었다.
'정말 그냥 하퍼리 흉내만 낸 졸작이면 어떡하지?'
그리고 이 책이 출간되자 조리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우선 이 책은 [앵무새 죽이기]와 인물과 배경에서 겹치는 부분이 많다.
주인공은 [앵무새죽이기]에서와 마찬가지로 핀치 가문의 막내딸 '스카웃'이다.
이 작품에서는 어린 시절의 이름인 스카웃보다는 '진 루이즈'로 불려 진다.
그리고 진루이스의 영원한 우상인 아버지 애티커스 핀치가 등장한다.
[앵무새죽이기]에서 스카웃과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오빠 젬은 안타깝게도 20세에 어머니를 죽였던 심장병으로 죽게 된다.
대신 어린시절부터 스카웃과 함께 자랐던 헨리가 그녀와 결혼하고자 하는 남자로 등장한다.
그 외에도 스카웃과 영원한 앙숙인 알렉산드리아 고모, 스카웃의 친구같은 삼촌 존 핀치, 어린시절 스카웃을 어머니처럼 돌본 흑인 가정부 켈퍼니아가 등장한다.
배경은 물론 미국 남부의 보수적인 작은 도시인 메이콤이다.
그 외에 메이콤에 대한 역사 이야기나 핀치 가문의 이야기는 [앵무새죽이기]와 거이 같다.
진 루이즈는 대학을 졸업한 후 뉴욕에서 독립하며 생활하다가 휴가를 맞아 메이콤에 도착한다.
아버지 에티커스는 이제 나이가 들어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노인이 되었다.
아버지의 일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후원을 받아 양자처럼 자란 헨리가 돕고 있다.
헨리는 진 루이즈와 결혼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헨리의 가정이 형편없다는 이유로 알렉산드리아 고모는 결혼을 반대하고 있다.
이야기는1940년대의 전형적인 남부의 시골마을을 묘사하며, 하퍼리 특유의 유모있는 글로 진 루이스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그러다가 진 루이스가 마을 회관에 열린 회의에 참석하면서 이야기가 급반전된다.
그녀는 그 곳에서 흑인들에 대항하는 백인보수적인 모임에 사회를 보고 있는 아버지와 헨리를 발견한다.
그리고 충격을 받는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흑인을 차별없이 대하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고 자랐었는데...
나이 든 아버지는 백인 보수주의자가 되어 있고, 남자친구인 헨리는 그 일에 앞장을 서고 있는 것이었다.
진루이스는 너무 화가나서 흥분한 상태로 아버지와 헨리를 비난한다.
헨리에게는 절교를 선언하고, 아버지에게는 히틀러와 같다는 악담을 한 후 부녀의 연을 끊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가정과 메이콤을 등지려 한다.
그 때 진 루이스를 막아선 사람이 삼촌 핀치 박사이다.
핀치 박사가 진루이스를 설득하는 과정은 당시 미국의 흑백갈등과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매우 복잡한 문제이기에 글로 설명하기가 모호하다.
솔직히 읽는 동안 나 역시 그 내용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핀치박사의 말 중에 중요한 것은...
그녀가 지금 겪고 있는 괴로움과 혼란은 아버지로부터 정신적인 독립을 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진 루이즈, 이 아가씨야, 너는 너만의 양심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어딘가에서 그 양심을 따개비처럼 네 아버지에게 붙여 놓았던 거야. 자라나면서, 또 어른이 되고도, 너 자신도 전혀 모르게 너는 네 아버지를 하나님으로 혼동하고 있었던 거야, 인간의 심장을 가진, 인간의 결점을 가진 한 인간으로 보지 않았지. 그것을 깨닫는 게 쉽지 앟았으리란 것은 내가 인정한다. 형은 실수를 범하는 일이 별로 없으니까, 하지만 형도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실수를 하기는 해. 너는 정서적 불구자였어, 아버지에게 의지하고 항상 네 답이 곧 아버지의 답일 거라 가정하고 답을 구해 왔지" (P372)
그리고 핀치박사는 조카인 진루이스가 좀 더 성숙한 인격이 되기를 바란다.
"이번에 집에 온 뒤로 줄곧 상당히 불쾌한 이야기들을 들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너는 예의 군마에 올라 무조건 그들을 쳐서 쓰러뜨리기는 커녕 돌아서 달아났어, 거는 그럼으로써 사실상 이렇게 말한 셈이지, <나는 이 사삶들이 행하는 방식이 싫어, 그러니까 나는 이들과 상대하지 않아>라고 말이야. 이것아, 그들과 상대하는 게 좋을 거야. 그러지 않으면 너는 절대로 성장하지 못할 거야. 예순 살이 되어도 지금과 똑같을 거라고, 그러면 너는 내 조카가 아닌 괴짜가 되는 거야, 너는 마음 속에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조금이라도 숨을 쉴 수 잇는 여지를 안 주는 편이야, 그들의 생각이 네 생각에 마무리 어리석어도 말이야." ( P376)
결론적으로 진루이스는 아버지를 오해했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진루이즈가 급진적인 개혁적인 성향을 가졌다면, 아버지는 개혁적이지만 중도적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젊은 날에 흑인들을 옹호했지만, 이제 정부가 흑인과 백인의 완전평등을 강요하자 메이콤만의 정서를 지키기 위해 보수쪽에 섰던 것 같다.
그것이 딸이 보기에는 아버지가 변절자처럼 보였던 것이었다.
자신과 다른 아버지를 발견하고, 그 아버지가 자신을 속였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아버지를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진루이즈는 삼촌의 말을 통해 자신과 다른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성숙임을 깨달았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과 대화할 수 있다는 것...
더 나아가 그 사람까지 포용할 수 있다는 것...
현대 사회에서 가장 원하는 인격적 성숙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사회에서 이런 인격적 성숙만큼 절실한 것이 또 있을까?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극단적인 두 성향의 정치집단에 의해 갈라지고 상처입고 있다.
이제는 인터넷에 들어가 댓글을 보기가 무서운 시대이다.
나와 다르면 원색적인 욕과 비난을 퍼붓는다.
반대로 내가 따르는 사람이면, 그 사람이 어떤 잘못이나 범죄를 저질러도 무조건 믿고 숭배한다.
진 루이즈가 깨달았던 진리가 필요한 시대이다.
또한 진 루이즈를 길렀던 포용적인 아버지의 가르침이 필요한 시대이다.
마지막으로 앞에서 언급한 이 책에 대한 기대평과 혹평 중에 내 입장을 이야기하려 한다.
이 작품은 문학적이 표현은 [앵무새죽이기]보다 미숙한 부분이 눈에 보이지만,
이 작품은 [앵무새죽이기]보다 더 깊고 넓은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앵무새죽이기]가 약자에 대한 포용과 배려를 이야기 하고 있다면,
이 책은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과 대화하고 이해할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나와 다른 사람과 싸우고, 그 사람을 죽이는 것이 가장 어리석은 방식이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진루이즈가 깨달은 것을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깨닫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