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신전
황광우 지음 / 생각정원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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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이라는 거대한 산


내가 처음 플라톤의 [국가]라는 책을 접한 것은 고등학교 방학 때였다.

어린 나이에 만난 [국가]라는 거대한 산이었다.

그곳에 인생과 철학이 있었다.

그 후 내가 읽는 철학서와 사상서를 보는 기준은 플라톤의 [국가]가 되었다.

책을 읽을 때마다 이 책은 어떻게 플라톤의 사상과 다른지, 이 책은 어떤 부분이 플라톤의 국가와 비슷한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캄파넬라의 [태양의 나라]라는 책을 읽을 때는 반가웠고,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을 읽을 때는 불편했다.

나이가 들면서 플라톤의 이상주의가 점점 현실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아직까지는 플라톤은 산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플라톤이라는 거대한 산이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

플라톤 역시 한 명의 인간이었고, 플라톤의 사상은 시대와 플라톤이라는 인간성이 만든 하나의 사상이었다는 것을......



플라톤도 인간이었다.


먼저 이 책은 플라톤의 사상 배경과 그 배경으로 탄생된 [국가]라는 책에 대해서 설명한다.

저자는 플라톤은 당시의 아테네의 정치에 대해 회의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아테네는 페리클레스라는 이상적인 지도자를 통해 민주정치의 전성기를 누렸지만, 그가 죽은 후 정치가들은 백성들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한 선동가에 불가했다.

플라톤은 이런 시대에 철학적인 지식을 가지고 시대와 국가를 이끌 철학적인 정치인의 필요성을 이야기 한다.


플라톤은 소피스트를 사육사에 비유했다. 사육사는 거대하고 힘센 짐승을 다루는 사람이다. 사육사가 짐승을 잘 다룰 수 있는 것은 짐승의 기질과 욕구를 잘 파악하고 잇기 때문이다. 짐승이 어떤 대 난폭하게 되고 어떤 때 유순하게 되는지 그 성질을 아는 사육사는 사나운 짐승을 자신의 뜻대로 잘 부린다는 것이다. 아테네의 청년들에게 연설을 가르치는 소피스트의 지혜는 고작해야 대중의 의견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낟. 또 플라토은 아테네의 정치가를 사육사에 비유하면서 정치인이 대중에 대한 아첨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P56)

결국 플라톤은 자신의 철인 정치의 근거를 세우기 위해 [국가]라는 책을 쓰게 된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영혼에는 이성과 기개와 욕구가 있듯이, 국가 안에서 이성적인 철학자와, 기개가 있는 전사와 욕구를 충족시키는 장인이나 농민이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성이 몸을 통치하듯, 철학자가 국가를 통치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 철학자의 이성은 이데아, 곧 신의 세계로 부터 나오는 것이다.


이런 플라톤의 사상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것이 [국가]에 나오는 '동굴의 비유'이다.

저자는 이 동굴의 비유를 감금된 단계, 풀러남의 단계, 동굴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단계, 내려가는 단계의 4단계로 나누어 쉽게 설명한다.

철학적 지식을 깨달은 철학자는 이제 다시금 동굴로 내려가 동굴에 묶여 있는 일반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 이것이 플라톤 자신이 가졌던 사명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명감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대상이 '호메로스'였다.



인간적인 신을 이야기한 호메로스


저자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 나오는 신은 인간의 내면의 또 다른 목소리라고 말한다.


호메로스의 신은 인간 위에 군림하는 절대적 지배자가 아니었다. "당신이나 파리스의 잠 시중을 들어라. 나는 그렇게 못 하겠다." 호메로스의 신은 인간의 내면에서 울려나오는 자신의 의지에 반대되는 또 다른 음성이 아닐까? (P126)

저자는 그리스인들은 신을 통해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심리와 자연현상, 역사 등을 이해했다고 말한다.


신은 인간의 동반자이다. 신은 인간을 통해 인간사에 개입한다. 인간은 신의 뜻을 통해 인간의 의지로 해결되지 않는 삶의 오묘를 이해한다. 고대인들은 신을 통해 인간 심리의 복잡성을 풀이했으며, 역사의 뒤틀림을 이해했다. (P139)

그러기에 호메로스의 신은 인간적이다.

올림푸스의 신들은 변덕스럽고, 이기적이고, 정욕적이다.

그들은 편을 나누어 사람을 도와 주준다.

자신에게 많은 재물을 바치는 사람을 도와 주고, 자신에게 재물을 바치지 않는 사람을 저주한다.

[일리아드]는 신들이 편을 나누어 인간을 도우며 벌인 전쟁이야기 이고, ]오딧세이]는 신에게 재물을 바치지 않아 20년 동안 방황한 오딧세이의 이야기이다.



플라톤이 호메로스를 싫어했던 이유


절대적인 정의를 추구하고, 그 정의가 신의 존재와 그의 세계로부터 유례했다고 믿는 플라톤에게 변덕스러운 신의 존재를 이야기하는 호메로스의 사상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그러기에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에서 '시인추방론'을 이야기 한다.


저자는 더 나아가 플라톤이 호메로스를 싫어한 이유가 죽음을 보는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호메로스에게 있어서 인간은 필멸의 존재이다.

비록 신화를 통해 죽음을 하데스의 지배를 받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지만, 호메로스는 죽음을 이생과 분리되는 어둠으로 표현하고 있다.

반면 플라톤에게 있어서 죽음은 신에게도 돌아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돌아가는 과정이 올바르기 위해서는 이생의 삶도 올바라야 한다.

결국 플라톤에게 있어서 죽음과 신의 존재는 이 땅에서의 도덕적인 삶을 유지하는 근거이다.

그러기에 그 근거를 허무는 호메로스의 이야기와 그리스 신화에 분노하고 배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런 관점이 놀랍다.

이 책을 읽고 인터넷을 통하여 서평들과 평가에 관한 글들을 찾아보았다.

저자의 관점을 동의하는 글과 동의하지 않고 비판하는 글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의 관점이 맞고, 틀리고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한국인이 자신의 관점으로 서양철학의 뿌리인 플라톤과 그리스 사상을 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내가 읽은 한국 철학자들의 책은 보통 서양철학자들의 책이나 사상을 번역하거나 주석하는 정도였다.

그것도 대부분 비슷한 시각으로......

서양 사상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주장하는 것을 넘지 않아야 할 선으로 여기고, 그것을 넘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당연히 학자의 무거움일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 무거움을 넘어 자유롭게 그 사상을 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저자의 글은 자유롭다.

때로는 인문학 글에서 볼 수 없는 호방함과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어떤 대목에서는 라톤이 호메로스를 인간적으로 시기해 그를 비판했다고 자유롭게 말을 한다.

아마 플라톤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무척 불편했을 글이었을 것이다.

또한 호메로스의 이야기의 주인공들의 심리를 마음껏 해석하고 비판한다.

플라톤을 인간으로 보고, 호메로스도 인간으로 본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다.

인간이기에 틀릴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다.

그렇게 보고,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자유로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유로운 사상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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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떠났다 그리고 자유를 배웠다 - 짜릿한 자유를 찾아 떠난 여성 저널리스트의 한 달에 한 도시 살기 프로젝트!
마이케 빈네무트 지음, 배명자 옮김 / 북라이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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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생에서 항상 자유의 시간을 갈망했었다.

새벽에 등교해서 자정무렵에 하교해야 하는 고등학교 시절에는 이 시간만 끝나면 마음것 자유를 누리겠다고 생각했었다.

26개월을 묶여있던 군대생활에서도 제대만 하면 진정 자유로운 삶을 하겠다고 생각했었다.

정신없이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1년 간의 휴가만 주어진다면 그동안 못했던 일들을 하며 자유를 누리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자유가 주어졌을 때 나는 그 자유에 의해 당황하고 자유 이후에 주어질 시간에 두려워했었다.

마치 군대에서 첫 휴가를 복귀날을 두려워하며 보냈던 것처럼 그렇게 자유의 시간들을 허비했었다.

결국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 역시 능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 자유의 시간을 마음 것 누린 한 여행가가 있다.

[나는 떠났다 그리고 자유를 배웠다]의 저자 '마이케 빈네무트'라는 50대의 독일 여성이다.

마이케는 독일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다가 한 퀴즈 프로그램에 나가서 50만 유로를 상금으로 받았다.

그는 우승하기 전에 상금을 받으면 무엇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1년 동안 12개 도시를 여행하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주어진 돈과 시간을 자신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사용한 것이다.

대단한 결단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자유를 누리려면 돈과 시간보다 먼저 그 자유를 쟁취하고 누릴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사실 난, 올해 아무것도 제대로 시작하지 못하면 어찌나 겁이 났어. 그런데 시드니가 멋진 사다리를 놓아주었고 그것을 넘자 마음이 편해졌어. 처음엔 자유가 부담스러웠어 너나 나나 자유가 뭔지 제대로 배운 적이 한 번도 없으니까, 그렇지만 오늘 하루를 무엇으로 채울지 상사, 부모, 가족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오로지 혼자 결정하는 삶 그리고 아무런 계획 없이 생활한다는 것, 물론 불안하고 초초하면서도 동시에 굉장히 신날 거야, 아무것도 잡지 않고 자유로운 손으로 걸으려면 제대로 훈련 해야 할 거야. 언제든지 붙잡을 수 있는 익숙한 난간도, 양옆을 안전하고 튼튼하게 막아주는 울타리도 포기해야 할 테니까."

- 본문 중에서(P40)-

 


그렇다고 저자가 주어진 자유를 누리며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마이케는 주어진 자유를 통하여 지금까지 살아 온 인생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인생을 계획한다.

자신이 정말 맞게 살아온 걸까?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을까? 여행을 통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인생을 조망하고 점검하려면 잠시 멈춰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한데 제겐 두 번의 기회가 있었죠, 작년 여름 50번째 생일과 지금 이 여행, 그러니까 일종의 인생 재고 목폭을 작성하는 거예요. 내가 지금 가진 것, 내게 없는 것, 제 기능을 발휘하는 것, 기능 상실한 것, 버리고 싶은 것, 더 필요한 것, 한 마디로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 본문 중에서 (P114)-

 


마르케는 1년 동안 12개의 도시를 돌며 각각의 도시에서 12사람에게 편지를 쓴다.

그래서 이 책은 12개의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코펜하겐에서 어린시절의 자신에게 보낸 편지이다.

앞 날에 대한 불안과 여러 가지 고민이 많은 10대 자신에게 따스한 충고를 보낸다.

 

"나는 현재 세계 여행 중이야. 열심히 노력하고 계획해서 세계 여행을 하게 된 건 아니야. 그냥 저절로 그렇게 되었어, 내 인생의 다른 중요한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어찌어찌 그렇게 되었어, 그렇기 때문에 나는 너에게 안심하라고 말하고 싶어. 미래는 걱정하지마, 저절로 널 찾아올 테니까. 모든 게 무의미해 보이고 혼란스럽더라도 너는 잘해낼 거야. 의미 역시 저절로 생기니까. 나는 방금 자전거를 타고 철학자 쇠렌 키에르케고르의 무덤이 있는 아시스텐스 공동묘지를 지나왔어. 키에르케고르는 인생에 관해 인간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한 마디로 표현했지.


인생은 순방향으로 살게 되고 역방향으로 이해된다.


그러니 그냥 기다려. 어떤 결정을 내리든 어떤 길을 가든, 지나고 되될아보면 모든 것이 옳았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게 밝혀질거야.

- 본문 중에서(P217)-

 

 

 

또 이 글에 나와있는 가장 인상깊은 방문지는 샌프란시스코이다.

그녀는 원래 20대 초반에 존이라는 남성과 연애를 했었고, 한 동안 차를 타고 무전여행을 했었다.

그리고 여행의 경유지 중에 샌프란시스코가 있었다.

하지만 여행도중 그녀와 존은 크게 다투고 해어졌기에 그때 그녀는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거이 30년만에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하며 여러 가지 회상에 잠긴다.

그녀의 글을 보며 인생은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그녀의 여행지가 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다.

이 책에 나오는 그녀의 최악의 여행지는 인도의 뭄바이라는 도시였다.

그녀는 뭄바이의 북적거림과 가난, 그리고 계속해서 달라붙는 호객꾼들에게 견딜 수 없어 비명을 질러댄다.

 

"제발 절 좀 여기서 꺼내줘요. 더는 못 견디겠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어요, 하루도 더 뭄바이에 있고 싶지 않아요. '여행 블루스'도 이제 그만 추고 싶어요. 지금 절 만난다면 아마 알아보지 못할 거예요. 전 완전히 지치고 예민해져서 계속 짜증만 나고 걸핏하면 화를 내요. 이게 다 인도 때문이예요."

- 본문 중에서(P77) -

 

 

 

그럼에도 그는 점점 도시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따스한 시각으로 그 도시와 그 도시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성장해 간다.


이 책을 읽으며 자유를 누리는 것, 그리고 그 자유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번역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싶다.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라도 번역이 시원찮으면 그 작품의 감동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반면 이 책과 같이 저자의 통통튀는 글들과 색다른 표현들을 한국어로 멋지게 옮기는 작품들이 있다.

이 책은 독일어로 쓰여진 책임에도 훌륭한 번역으로 한국어로 쓰여진 것처럼 곳곳에 의성어와 감탄사, 비유등이 마치 한국사람의 말처럼 멋지게 표현되어 있다.

멋진 여행칼럼에, 멋진 번역이 좋은 책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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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알라딘에서 상복?이 없었는데...

처음 이 곳을 가입한 해에 '이달의 우수리뷰'에 한 번 당첨된 후 쭉 조용하더라구요...

그런데 이번에 크게 당첨되었네요.

민음사에서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리뷰대회를 열었었는데 1등이 당첨되었네요.

특별히 이 상을 노리고 리뷰를 쓴 것은 아닌데......

당첨이 되고 나니 기분이 좋네요.

원래는 목걸이가 상품이었는데.....

목걸이 가격만큼 책으로 받을 수도 있다고 해서 책을 선택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민음사 모던 클래식 시리즈를....

1권부터 6권까지 순서로 시키고, 제가 좋아하는 고맥매카시의 작품을 더 추가했네요.

얼른 읽고 리뷰 남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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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9-17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원래 글을 잘 쓰시니 당연한 결과겠죠!! 알라딘은 좀 인기있는(?)사람의 글을 우선 뽑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 맘 쓰지 마시길~~^^;;;

가을벚꽃 2015-09-18 12:04   좋아요 0 | URL
무슨.. 과찬의 말씀을^^ 항상 삶과 연관이 있는 비비아롬나비모리님의 글을 잘 읽고 있습니다. ^^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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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학교때 지방에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갔었다.

당시에는 남학교에서는 폭력이 당연시 되는 분위기였다.

매일같이 선생님들은 학생을 때렸고, 학생들끼리도 힘센 아이가 약한 아이를 때리며 물건등을 갈취했다.

특히 매달 마다 치르는 모의고사 후에는 선생님의 매질이 시작되었다.

학급간 순위를 매겨서 성적이 우수한 반 담임에게는 보너스가 주어지고, 성적이 나쁜 반 담임은 시말서를 써야 했다. 

그러기에 시험성적이 발표되는 날이면 성적이 나빠서 반 평균을 깍아 먹었다고 생각하는 아이는 모든 반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빨가 벗겨 엎드리게 한 후 대걸래 자루로 매질이 시작되었다.

물론 아이의 성적을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매질이 시작되다 보면 어느 순간 선생님이 이성을 잃고 주먹과 발로 아이를 무차별로 폭행하기가 다반사였다.

그런 모든 장면들이 어린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학교를 졸업한 후 성인이 되어 우연히 그 학교에 운동장을 간 적이 있었다.

그 학교의 운동장과 주변의 교실들을 보았을 때 다시금 다가오는 압박감이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문득 그 압박감이 생각났다.

그리고 소설을 읽는내내 주인공의 압박감이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다.


이 책의 남자 주인공은 어린 시절 학교에서 자기를 괴롭히는 친구를 칼로 찔러 살해했다.

그리고 소년원과 형무소를 거쳐 이제는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그 폭력의 기억은 계속해서 그를 쫓아다닌다.

특히 주인공이 살해 한 친구의 어머니는 집요하게 그를 쫓아다닌다.

그에게 자신을 어머니라고 부르라며 친근하게 대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가 사는 곳이나 일하는 곳마다 찾아다니며 그가 전과자라는 사실을 소문내고 다닌다.

그리고 그로 인해 그는 어디에도 적응하지 못한다.

또 다른 폭력이 그를 쫓아다니는 것이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묵묵히 그 폭력을 감당한다.

그는 세상을 하나의 패턴으로 본다.

그리고 그 패턴이 매우 단순하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있어서 이 패턴이란 어쩌면 세상의 부당한 폭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주인공의 그 세상의 패턴은 묵묵히 받아들인다.


주인공 남자에게는 보람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여자친구아 있다.

무슨.. 과찬의 말씀을^^ 항상 삶과 연관이 있는 비비아롬나비모리님의 글을 잘 읽고 있습니다.

출판사 편집실에서 일하던 그녀는 우연히 그가 투고한 작품을 통해 그를 다시 만난다.

그녀 역시 어린 시절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학대를 받았었다.

그리고 지금은 출판사라는 직장에서 보이지 않는 학대를 받고 있다.


소설에서 남자는 자신 안에 '우주 알'이라는 것이 들어와 과거와 현재, 미래를 패턴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우주 알이란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남자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남자는 자신의 운명, 그리고 여자와의 만남의 운명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초연한듯이 행동한다.

그리고 그 모든 운명을 패턴으로 받아들인다.


소설은 다소 복잡한 구성과 남자 주인공의 난해한 말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관심을 가졌던 것은 구성이나 언어가 아니었다.

남자 주인공이 느끼는 세상의 패턴들......

아무렇지 않게 그 패턴들을 묵묵히 받아들이기에 더 무거움으로 다가왔던 주인공의 압박감.....

우리는 진정 그 세상의 패턴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일까?

주인공의 마지막 선택은 필연이었을까?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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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1Q84 1~3 세트 - 전3권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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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하루키를 접한 것은 우리나라에 아직 하루키의 열풍이 불기 전이었다.

처음 그의 작품 [상실의 시대]를 접하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

내가 하루키의 작품으로 위로를 받았다는 것은 하루키의 작품의 주제나 그 속의 메세지에 감명을 받았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사실 하루키의 작품을 읽으면 읽을 수록 도대체 저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더욱 더 모호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비오는 날 쓸쓸한 마음으로 집 밖에 나와서 도시의 뒷골목을 걷고 있는데 누군가가 말없이 내 옆에 와서 함께 걸어주는 기분이었다.

비오는 날 도시의 뒷 골목은 비릿내도 나고, 여러가지 네온들로 인해 분위기도 심란하지만 그래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안함이 있다.

하루키의 소설의 분위기가 그랬다.

때로는 마음이 쓸쓸하거나 심란할 때 읽으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안함을 주는 소설이었다.


그러다가 군대에 있을 때 정도에 하루키의 인기가 쏟으며 [태엽갑는 새]가 발표 되었다.

나는 지금도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하루키의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주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과 인생관이 여기에 다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하루키의 소설을 몇 권을 더 읽은 후 그의 소설을 접할 기회가 없었다.

하루키의 작품도 드물게 발표되었지만, 그 소설을 읽을만한 여유도 없었다.

당연히 몇 년 전 오랫만에 하루키의 장편소설인 [1Q84]가 출간하고 떠들석 했을 때도 이 책을 읽을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거이 10년만에 다시 하루키의 소설을 접하게 되었다.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예전에 하루키에게 느꼈던 그만큼의 감성은 느끼지 못했다.

구성은 더 치밀해졌고, 묘사는 더 사실적이 되었다.

마치 이 소설에서 고마쓰가 덴코가 고쳐 쓴 [공기 번데기]를 향하여 한 조언을 하루키가 들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대부분의 독자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것을 소설 속에 끌어들일 때는 되도록 상세하고 정확한 묘사가 필요해. 생략해도 괜찮은 것, 혹은 반드시 생략해야 하는 것은 대부분의 독자가 이미 목격한 적이 잇는 것에 대한 묘사야" (1권 P370)


이 소설은 [태엽갑는 새]를 더 사실적이고 현실적으로 묘사해 놓은 소설 같았다.

그럼에도 예전의 하루키의 그 쓸쓸하고도 공허한 표현이 조금은 퇴색한 느낌을 받는다.

물론 그의 여전히 모호한 세계관과 그 세계 속에서의 걸음은 계속되지만...

아직도 모르겠지만 이 책을 통해 하루키가 이야기하는 세계와 상실의 의미가 조금은 더 손에 잡힐 듯 하다.





이 소설은 아오마메라는 여성과 덴코라는 남성의 시각에서 번갈아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3권에서는 우시카와라는 인물이 끼어들기는 하지만 주된 흐름은 아오마메와 덴코가 이끌어간다.


아오마메는 한 때 소프트볼 팀에 속해 있었던 스포츠 클럽 강사이다.

그녀는 마르지만 근육이 있는 체형에 간결하고 깔끔하 성격의 여성으로 묘사된다.

그녀는 겉으로는 스포츠 클럽 강사지만 여성을 학대하는 남성들을 다른 세상?으로 보내는 일을 한다.

개인적으로 개발한 아이스픽이라는 작은 침으로 자연사처럼 위장하는 것이다.


이야기는 아오마메가 한 남성을 다른 세상으로 보내러 가기 전에 교통체증으로 인해 고가도로 위의 택시 안에 갇히는 것으로 시작된다.

차에서는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라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운전사는 급한 일이면 고가도로와 일반도로를 연결하는 비상 사다리가 있다고 제안한다.

그리고 그녀는 그 사다리로 다른 세상으로 내려간다.


그녀가 다른 세상에 도착해서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경찰관 제복이 바뀌어 있고, 무기도 자동소총으로 바뀌어져 있다.

무엇보다는 저녁마다 달이 두 개씩 뜬다.

그녀는 자신이 속해있던 1984년과 지금의 세상이 다르다는 의미에서 지금의 세상을 1Q84라고 부른다.



덴코는 학원에서 수학을 가리키는 임시 강사이면서, 소설을 쓴다.

물론 그의 소설은 한 번도 당첨된 적이 없다.

단지 고마쓰라는 편집자가 부탁하는 잡일을 하면서 그의 지도를 받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고마쓰는 후카에라라는 소녀가 쓴 [공기번데기]라는 작품을 덴코에게 개작할 것을 제안한다.

이 작품은 신선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지만 문장은 형편이 없기 때문이다.

덴코는 처음에는 이 제안을 거부하지만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후카에라를 만나고 공기번데기를 개작하게 된다.


아오마메와 덴코의 이야기는 처음에는 전혀 상관이 없는 두 남녀의 이야기처럼 흐른다.

그러다가 덴코의 어린시절 회상에서 자신의 손을 잡아주던 증인회 소속의 여자 아이를 떠올린다.

그리고 1권 말미에서 그 여자 아이가 아오마메임을 암시한다.



둘은 점점 선구라는 종교단체에 다가가면서 일치점을 찾아간다.

아오마메가 최종적으로 다른 세상으로 보내려는 남자는 선구의 지도자이다.

덴코 역시 [공기번데기]라는 작품을 통해 선구라는 종교단체에 접근해 간다.

[공기번데기]라는 작품은 실상 후카에라가 선구라는 종교단체 속에서 경험한 이야기이고,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리틀피플을 [공기번데기]라는 작품을 통해 드러나게 된다.

여기서 리틀피플이 무엇인지...

그들이 어떻게 선구의 지도자나 후카에라, 덴코와 연결되어 있는지는 무척 모호한 단어들로 설명을 한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오마메는 덴코를 만나 함께 1Q84의 세계를 빠져 나오게 된다.





하루키의 다른 소설처럼 이 소설에서 상징적인 단어들, 모호한 설명, 그리고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보통 하루키 소설에서는 다른 세계로 통하는 관문이 등장한다.

우물 속에 빠지는 것과 같은 순간적인 경험들이다.

그리고 그 사건을 통해 무언가를 상실하게 된다.

아니면 상실했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든지...


하루키가 말하는 '상실'이 무엇인지는 나로서는 아직 알 수 없다.

아마 안다고 해도 그것은 글로 표현하기 모호한 것임에 분명하다.

그것을 글로 표현한다고 하면 아마 하루키가 이야기하려는 '상실'과는 다른 것일 테니까...


이 소설에서도 아오마메는 고가도로를 내려가는 경험을 통해...

(고가도로이지만 무언가 아래로 내려간다는 부분에서는 우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다른 세계로 가게 된다.

그리고 그 세계는 무언가가 상실된 세계이다.


하루키의 소설 속에서의 상실은 단순히 어떤 다른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만으로 묘사 되지는 않는다.

어떤 기묘한 만남을 통해 상실을 경험하게 된다.

이 소설에서는 그 만남을 리틀피플과의 만남으로 묘사한다.

리틀피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 소설은 계속해서 모호한 입장을 취한다.

이 소설을 읽고 이해하기 힘들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도대체 리틀피플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하루키가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리틀피플이 뭐냐?'가 아니라 '리틀피플과의 만남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 리틀피플과의 만남으로 세계는 무엇을 상실했고, 나는 무엇을 상실했냐는 것이다.

하루키는 이 세계가, 그리고 이 세계의 사람들이 이런 상실 속에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 상실 속에 묻혀서 살아간다고 본다.


그럼에도 아오마메와 덴코는 그 상실된 세계에서 앞으로 나가려 한다.

올바른 길도 모른다.

해결책도 없다.

하루키는 아예 처음부터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가정할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그의 소설은 모호한다.


사람들은 자신만이 아는, 아니 안다고 생각하는 길이나 해결책이 있기에 글과 소설을 쓰려고 한다.

글을 통해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길과 해결책을 제시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루키는 그런 것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그런 상실의 세계 속에서 길을 찾아 나선다.

그 세계를 벗어나기 위해 나름대로 최고의 몸부림을 친다.

그것이 그의 소설이고, 그 주인공이 아오마메와 덴코이다.

아아마메와 덴코, 그리고 하루키는 상실의 세계 속에 살고 있고, 그 속에서 앞으로 걷고 있다.

태엽에 감기어 계속해서 걸어가는 새처럼....


아오마메와 덴코가 그 상실의 세계에서 빠져나왔는지는 소설 끝에서도 여전히 모호하다.

어쩌면 다른 상실의 세계 속으로 들어갔을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한다.

그러나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상실의 세계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상실의 세계 속에 있고, 그 세계에서 걸어가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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